▶ 아버지의 눈은 6천 년 동안 눈물이 그치지 않은 눈입니다.
▣ 1959.7.26(일) 전본부교회. 끝날에 남아질 아버지의 참아들딸.
007-119 끝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끝날은 기필코 오고야 말 것인데 이 끝날에 하늘은 무엇을 가지고 심판 행사를 벌이겠습니까?
똑똑히 아십시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믿고 있는 분이나 믿으려 하는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겠습니다. 그 끝날에 하나님은 기쁨의 내용으로 웃으면서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도 그럴 것입니다.
*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오, 주여!" 하며 붙들려 할 때 "붙들지 말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슬픈 예수의 심정을 통하고 고통당한 예수의 심정을 통하여 천륜의 고통과 슬픔의 노정을 통하고 난 후에야 예수를 붙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단단히 알아야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슬픈 눈물을 흘리고 고통당하는 경지에 들어가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될 때 아버지의 성상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아버지의 눈은 6천 년 동안 눈물이 그치지 않은 눈입니다. 아버지의 귀는 6천년 동안 모든 원수들의 조롱과 비난과 비소를 끊임없이 받은 귀입니다. 아버지의 입은 6천년 동안 하시고 싶은 말씀도 못 했거니와, 굶주린 인류와 더불어 굶주림에 허덕이신 입입니다.
아버지의 손길은 피눈물이 어려 있고 피땀이 어려 있는 손길임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아버지의 발걸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의 골고다의 험산준령을 몇백 번 몇천만 번 넘은 발걸음입니다. 아버지의 몸은 상처를 입고 억울하게 매맞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아버지는 누구 때문에 그랬겠는가? 불쌍한 인류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황공 망극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은 천만 번 죽어도 아버지의 서러움을 막아 낼 수 없으며 나 같은 죄인은 천만 번 죽어도 아버지의 눈물을 씻어 드릴 수 없습니다" 응당 이런 마음에 사무쳐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불러 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 할진대 회개, 회개해야 합니다.
◑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 1968.6.9(일) 하늘 편에 서자. 전본부교회.
- 방한한 일본식구 환영식.
020-206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을 지으시고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 시조를 에덴동산에 지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이 어떠한 희롱거리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지어 만물을 대표하는 중심으로 세우게 될 때까지의 하나님의 수고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020-207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실 때 온갖 정성을 다 들이시고 또한 심혈과 당신의 생명의 핵심을 다 기울여 지으셨으며, 사랑과 애정을 몽땅 퍼부어서 지으셨습니다. 어떠한 힘 가지고도 떼려야 뗄 수 없고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는 인연 가운데서 지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으신 인간이기에 그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평화가 깃들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정과 행복은 그 인간을 통하여서만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퍼부어 지은 인간이기에 이런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안 끌려 오실 수 없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끌으시면 안 끌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연 가운데서 내용과 목적이 일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 곁보기에 아무리 흉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흐를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싹틀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의 노래가 읊어질 수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차적인 하나님을 중심한 고귀한 가치를 지닌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 하나님이 땅을 대하여 탄식하시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 1957.9.15(일) 참아버님의 참아들딸이 되자. 전본부교회.
003-026 이제 우리는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을 중심 삼고 하나님을 대하여 "나의 아버지시여!"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아버지의 심정을 유발시켜서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새로이 부자의 관계를 맺는 입장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003-028 이러한 것을 인간들에게 체훌시키고 인간들과 부자의 관계를 맺기 위해 수고하고 계신 아버지이신 것을 여러분들이 마음으로나 생활에서 느껴야 되겠습니다.
* 하나님이 땅을 대하여 탄식하시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은 사탄 때문에 서러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악이 밉다고 해서 서러워하시고 죄인들이 많다고 해서 탄식하시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서러움과 탄식은 하나님이 아직까지 인간들을 대해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로다"라는 말을 하실 수 없고 그 아들딸로부터 "내 아버지시여"라고 부르는 말을 들으시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 인간들이 불러야 하는 본연의 참아버지는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요 이상의 중심이시며 인간의 모든 행복의 중심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마음에 침범해 들어오는 악을 끊어 버리고 마음놓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되면 천국이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이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어차피 필연적으로 본연의 참아버지를 찾아 나가야 할 운명길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 그리고 내가 부르고 있는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하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참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아버지는 6천 년 동안 쉬지 못하시고 싸워 나오신 아버지시요 섭리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수없이 어려운 고개를 참고 넘으시면서 오늘의 내 한 자신을 찾기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땅 위에 살고 있는 어떤 인간이 느낄 수 없는 최대의 서러움과 슬픔을 느끼고 계신 아버지이신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어느 정도로 실감하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서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서러움과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비통함이 그 사람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인간들이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인류의 소망이요 모든 만물의 소원이며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참아들딸로서 복귀의 운명을 타개해 나가야 되겠는데 여기서 우리가 단 하나 바랄 것이 있다면 참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을 복귀해야 할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고 아버지의 사정을 아버지 대신 염려하면서 진정으로 심정이 교류되는 가운데서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003-030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복귀의 조건을 넘어서 하나님을 대해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한날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은 6천 년 동안이나 소원해 오신 것입니다.
* 오늘날 남다른 고난길을 찾아 나선 여러분! 6천 년 하늘의 수고 끝에 찾아진 여러분! 여러분은 참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아버지의 유업을 맞아 언제까지라도 사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하늘의 대신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이를 위해 자신을 아버지 앞에 다 내어놓고 새로운 사명을 인계받겠다고 할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라도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마음속에 떠올라야 하고 아버지의 고통과 근심 전체를 다 책임지지는 못 할지라도 아버지를 마음에 모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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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12.11(토) 모든 사람이 소원하는 이상세계. 로스앤젤레스.
052-018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이기에 가난하고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동정과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부모들은 보다 못한 자식에게 더 많은 걱정과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보다 낫거나 아주 뛰어난 자식에게보다는 못한 자식에게 더 많은 애정을 느낍니다. 하나님도 똑같이 느끼십니다.
▣ 1960.2.28(일) 아버지,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전본부교회.
- 기도 중.
008-331 아버지! 저희들은 남루한 옷을 입고 추한 모습으로 본래의 자기 집을 찾아 안방에 들어온 탕자와 같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잃어버린 아들딸을 그리워하신 것이 6천 년이었사옵고 저희도 6천 년을 사탄에게 유린당하여 왔사옵니다. 아들딸을 찾기 위해 허덕이신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저희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양이야 추하든 얼굴이야 어떻든 아버지를 알아보는 아들딸을 원하셨사오나 아들딸이면서도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붙들고 서글픈 역사 노정을 걸어오신 아버지 앞에 저희들이 무슨 말을 하오리까. 이제 저희는 이 땅 위에서 그 무엇을 원치 않사옵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볼 수 있는 그 한 가지가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 말씀
008-341 세상이여 어떻게 하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었던 마음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 나는 아버지의 친구가 되고 싶고 효자가 되고 싶습니다.
008-345 여러분이 자고 있는 그 시간에 하늘이 여러분을 몇 번이나 찾아오셨는지 알아요? 나 한 사람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몇 백 번 몇 천 번을 시늉으로 혹은 음성으로 비유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6천 년 동안이나 몰랐어요. 이제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 한 자체를 찾기 위하여 하늘이 이렇게 이렇게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자식들을 길러 봤지요? 사랑하는 자식이 원수의 품에서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 것 같아요? 기가 막힐 것입니다. 자식을 대한 여러분의 심정이 그러하다면 그 심정은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출처 없이 나올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그러하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는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아버지냐? 역사 노정에서 제일 비참하게 걸어오신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 노정에 있었던 어떠한 참사 이상의 참사를 당해 나오신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죽음의 울타리에서 허덕이는 자식을 바라볼 때 "너희들 잘하는구나!" 하는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슬픔에 사무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슬픈 자리에 계셨으며 고통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고통스러운 입장에 계셨던 아버지셨습니다. 또한 죽음으로 사라지는 그 아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은 아버지이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 이 땅 위에 어떤 거지도 하나님보다는 낫습니다.
▣ 1960.9.18(일) 전본부교회. 참되신 아버지와 자녀.
010-134 한이 무엇이뇨?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 기뻐하신 하나님인 줄 아십니까?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멱살을 잡고 胸倉むなぐらをつかむ 싸울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이야?"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한이 있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은 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 못 할 곡절과 한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허덕이시며 찾아 나오신 하나님은 어떤 신세뇨? 슬픈 신세입니다. 이 땅 위에 어떤 거지도 하나님보다는 낫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천지만물을 호령해서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된다면 왜 6천 년 동안 죄악의 인류를 끌고 나오셨겠습니까?
제일 불쌍한 분입니다. 주인인데도 불구하고 주인 노릇을 못하셨습니다. 아버지이신데도 불구하고 아버지 노릇을 못하셨습니다. 이처럼 분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으신 것이로되 당신 마음대로 못하셨고, 당신의 아들딸이로되 아들딸이라 하지 못하셨습니다. 이 담을 무너뜨리기 위해 섭리해 나오신 것이 6천 년 역사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한을 품고 오셨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들딸 앞에 나타나실 때의 모습은 어떠하겠느뇨? 상처 입은 모습이요, 말할 수 없이 남루한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으로 이 땅 위의 타락한 인간 앞에, 몇백 번, 몇천만 번 오셨다 가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2. 조금만 잘해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
▣ 1961.7.17(월) 전본부교회.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
- 전국 순회 보고.
011-186 하나님께서 좀 더 악독하고 좀더 추악한 악마와 같은 마음이 있었다면 타락한 인간들에 대한 복귀 섭리 역사를 6천 년 동안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인간들이 조금만 잘하면 "야, 우리 아들딸 보아라" 하시며 사탄까지 공인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한바탕 자랑했다가도 인간들이 그대로 못하면 꽝 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개인을 자랑했다가 그대로 못해서 꽝, 가정을 자랑했다가 꽝, 이스라엘 민족을 자랑했다가 꽝, 또 예수를 한바탕 자랑했다가 꽝, 이렇게 무너졌던 것입니다.
조금만 잘해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부모의 심정이 그런 것 같이 하나님의 심정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쁘게 해 드리고 잘만 하면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그런 아버지의 자랑거리를 체험하러 나가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뭘 체험하러 간다고요? 자랑거리요? 그래요. 자랑거리를 체험하러 나가야 합니다.
2.
▣ 1968.10.14(월) 종묘.
- 서대문 형무소 출감 13주년과 흥남 출감 18주년 야외예배.
021-073 타락한 세계를 책임지고 복귀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높고 귀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곳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비참하고 비통하고 참혹한 배후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그 수고로운 사정을 오늘날까지의 역사 과정에서 그 누구에게도 호소해 본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렵고 슬픈 일을 무한히 당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신 넓고 크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 이상 참은 사람이 없고 역사 노정에서 제아무리 고생한 사람도 하나님만큼 고생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추측도 할 수 없는 내적인 고통을 지니시고도 인간 앞에 그것을 표시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짐을 품고 신음하면서도 그것을 나타내지 않고 극복해 나오면서 자신이 계획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 고개를 넘고 넘어서 새로운 복귀의 섭리를 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고생하기 전에 더 큰 고생을 하시고 우리가 슬픔을 당하기 전에 더 큰 슬픔을 당하시며 오늘의 이 슬픈 세상을 다시 구해야 될 책임을 지고 계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어려운 입장에 계시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 자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어떤 조건으로 제시하고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그런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계신다고 생각하면 우리 자신들은 견뎌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의 갈 길을 마련해 주고 우리를 위하여 염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중의 빚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이중의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자인하면서 이것을 앞날의 갈 길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는 하나의 동기로 삼아 주기를 부탁합니다.
▣ 1968.11.17(일) 우리의 인연. 전본부교회.
021-110 사람이 말을 하다가 실수하면 그 실수한 것을 누가 책임지느냐? 말한 사람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일하다 실수를 했다면 그것도 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생각한 사람이 책임지고 실행한 사람이 있으면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창조이상을 중심 삼고 사람을 창조했고 그것이 하나님이 이상했던 창조물이 할 때 하나님이 이상했던 창조물이 안 됐다고 해서 그 실수를 창조물이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조물이 변화가 되어 원하던 것이 안 됐다고 해서 그 물건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책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책임져 나오신 것입니다.
▣ 1969.5.25(일) 전본부교회. 장자 복귀에 대하여.
023-231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해야 합니다. 타락권내에 있는 여러분은 이것을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사탄세계의 자식들을 더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장자인 사탄세계가 차자인 여러분을 치게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은 내 아들딸보다도 여러분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잠을 자지 않고 밥을 먹지 않으면서 사랑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에 있어서 장자가 차자를 칠 수 있는 기준을 완전히 방지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장자가 차자를 칠 수 있는 기준이 남아 있지만 차자보다도 장자를 더 사랑했으니 차자를 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대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가인을 좋아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가인의 제물을 못 받은 것이 한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자기의 아들딸을 내놓고 사탄세계의 자식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사탄세계가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원리적인 관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성진이를 버리고 삼팔선을 넘어 이북으로 간 것입니다. 그것은 내적으로 자식을 버리고 38선 이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 기준을 세워서 공산당에 대비할 수 있는 세력을 이끌고 왔습니다.
▣ 1992.2.9(일) 본부교회. 참부모님과 세계 평화.
- 참부모님 탄신일.
226-304 하나님이 지옥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쓰레기통을 만들어 놓고 싶겠어요? 지옥이 뭐라구요? 하나님이 만들었다구요? 타락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지옥을 누가 해방할 거예요. 하나님의 恨은 인간들이 地獄에서 解放될 때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급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히, 내 앞에
▣ 출애급기 20장 십계명 (신 5:1~21)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1. 사랑은 最高의 嫉妬와 最高의 미움과 통한다.
▣ 1992.8.1(토) 천국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자. 서울 만리장성 중국음식점
233-214 사랑은 最高의 嫉妬와 最高의 미움과 통하는 것입니다.
2. 방어적 울타리.
▣ 1972.7.16 (일) 전본부교회. 인연의 행로.
059-134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시기 질투가 많은지 알아요? 하나님은 시기하는 데도 천하의 대왕이요, 질투하는 데도 천하의 대왕입니다. "나만 사랑하라! 그 대신 나도 너하고 죽자 살자 사랑하겠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됐지. 그렇지 않아요?
그게 나쁘냐 이겁니다. 시기도 좋다, 질투도 좋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시기가 나빠요? 질투가 나빠요? 사랑하게 마련인 자리에서 자기만 사랑하겠다고 猜忌하고 嫉妬하는 것이 나빠요? 그것은 防禦的 울타리라구요. 防禦的 울타리. 누가 侵犯할 수 없는 절대적인 防禦的 울타리라구요.
◑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것
▣ 1977.5.22(일) 미국. 행복한 통일교회.
093-156 그러면 사탄의 사랑은 어떠하냐? 임시적인 사랑이요, 파탄적인 사랑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냐? 영원적이요, 본질적이요, 건설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 하나님이 완전히, 제일 미워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것을 파괴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무기로 하나님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모든 이념을 파괴할 수 있는 행동하는 사람을 제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 비질서, 비원리적인 사랑은 지옥으로 직행하는 레일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세계는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얼굴도 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 하나님에게 있어 제일 비참하고 잊을 수 없는 2가지 사건
1. 아담 해와의 타락.
▣ 1972.3.10(금)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 세계. 버클리 클레어몬트 호텔.
- 미국 7대 도시 순회 공개 강연.
054-049 여러분, 역사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제일 비참한 사건이 무엇이냐 하면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사건이요 그다음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사건입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 1972.3.21(화) 후렌즈 미팅 하우스.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 세계.
- 영국에서 3일간 공개 강연회.
054-125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제일 비참한 사건이요, 하나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사람이요, 진리의 씨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 씨가 이 땅 위에 심어지는 데는 죽음으로 심어질 것이 아니라 살아 가지고 사랑으로 심어져야 했는데 죽음으로 심어지는 비참함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