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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 1975.2.2(일) 전본부교회.

▣ 1975.2.2(일) 체휼과 실천. 전본부교회.

076-123 우리 자체들은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자기가 체험하고 깨닫고 가는 길이 아니 되어 가지고는 일생을 혹은 생애를 걸고 갈 수 없는 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076-124 누구의 말을 듣고 그 말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 말을 중심 삼고 체험을 통해 실제 사실인가 아닌가를 경험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입장인 것입니다. 


* 더욱기나 신앙의 대상은 보이지 않는 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 삼고 신앙해 나가기 때문에 그 주체되는 신앙 자체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이 확실하게 현실적으로 우리가 몸으로 느끼고 만져 가지고 체험할 수 있는 내용으로 나타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의 오관을 통해서 척 보는 것과 같이 우리가 평면적인 입장에서 느끼는 것과 같이 그렇게 실감적인 입장에서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동시에 무형적인 주체를 상대로 하느니만큼 그 자체와 내 자체가 체휼적인 체험 단계까지 나가기란 쉬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체휼은 반드시 우리의 신앙생활에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체휼을 통해서 하나님의 人格에 대해서 알 수 있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어떠한 내정적 심정의 因緣을 갖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체휼의 길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고 또 신앙생활을 통해서 보다 이상적인 새로운 所望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이 체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체휼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독교 역사를 보더라도 400년 동안 迫害時代에 있어서 그런 핍박을 받으면서, 사자의 밥이 되면서 신앙길을 꿋꿋이 갈 수 있었던 것은 막연한 입장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건 반드시 그러한 자리를 넘어갈 수 있는 체휼적인 내용, 그들에게는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환경이 그들을 制壓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이 될 수 없게 한 사실적인 입장에 선 그 자체가 殉敎의 길도 무난히 넘을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베드로나 바울 같은 양반들이 어려운 문제를 맞이할 적마다 반드시 하늘 앞에 기도를 했고 그 기도를 통해 하늘은 지시를 했습니다.  

 

076-125 그 도수를 맞추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와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점 자리를 찾아야 돼요. 영점 자리가 어디냐? 그것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에 그 마음의 심성을 이와 같이 표시하면 반드시 영점이 있다 이거예요. 영점이 있어서 그 영점 자체를 수평선으로 한다면 그 수평선을 중심 삼고 어떠한 수직선이 그어질 것입니다.

 

하늘이 주체라면 그 주체 앞에 내가 대상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주체되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대상으로서 감응할 수 있는 바탕을 반드시 주었기 때문에 평면적인 마음 바탕의 기준 앞에 수직으로 향하는 그러한 방향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반드시 있다는 거예요.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영점 기준은 어떤 자리냐? 있으면서도 없는 것같고 없으면서도 있는 것 같은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참선을 하는 사람들이 無我之境이라든가 하는 말을 쓰는데 그것도 역시 그런 경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어떤 영적 기준에 접근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이 되게 되면 반드시 자기의 수평선 기준이 반응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076-127 그렇기 때문에 마음도 보면 뭐라 할까요, 마음의 문이 있습니다. 心門이라고 하지요? 마음이 문이 있다는 거예요.

 

* 여러분이 기도를 해 보면 아는 거예요. 기도를 해 보면 말이에요,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달라요.  

 

* 하나님의 마음의 문과 인간의 마음의 문이 딱 맞아 가지고 같이 어느 기준까지만 맞추어 돌아가는 날에는 하나님이 느끼는 것을 체휼할 수 있는 길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와 같은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마음을 중심 삼고 마음을 닦아야 됩니다. 마음의 상태를 우리가 찾아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이 영도를 어떻게 찾느냐, 영도를, 영도를 어떻게 찾느냐, 마음 문을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앙과정에서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은 마음 문이 열리는 때를 알아서 하늘의 마음 문과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언제나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심도를 가려 가면서 마음 문을 열게 하고 그래 가지고 하늘이 향하는 문과 어떻게 一致化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076-129 점점점점 이 상대적 입장에 서면 무슨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입체적인 느낌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인지 모르게 온다는 거예요.

 
* 이것을 많은 체험을 통해서, 많은 기도생활을 통해서 "아, 지금 때가 어떤 때에 처해 있구나" 하는 걸 가릴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어떠한 현상이 벌어지느냐?


여러분은 대개 그렇잖아요? 우리말에 暗示 (넌지시 알림. 또는 그 내용.)라는 말이 있습니다. 암시라는 말이 있지요? 암시!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길을 무심코 쓱 가는데 어떤 좋은 집 담벼락에 앉아 있던 새가 날아가는 걸 보았을 때 새는 날아갔지만 퍼뜩 새가 날아가는 그 자체를 보게 될 때 그 마음의 문이 딴 것으로···.

 
그 사실을 통해서 암암리에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에 있어서 그런 형태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거예요. 암시적 조건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말하는데 "아!" 무엇인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점점점점 많아진다는 거예요.   

 
076-131 이 단계를 지나가게 되면 어떠한 형태가 벌어지느냐 하면 夢示 같은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꿈 가운데 일어나는 일인데 꿈도 깊은 잠 가운데의 꿈이 아니라구요. 비몽사몽 간에 ···. 


바울 같은 양반도 비몽사몽간에 3층천을 체험했다구요. 꿈같기도 하고 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꿈 안에 있는지 사실 안에 있는지 옆에서 누가 말하는 것을 다 들으면서 3분의 2는 캐치하면서 비몽사몽간에 그런 현상이라든가 혹은 음성이라든가 하는 것, 이 오관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이 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런 걸 무심코 흘려보내지 말라는 거예요.


* 반드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잊을 수 없는 몽시 같은 것은 100% 적중한다 이거예요. 그런 체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076-132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말이에요,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느냐? 공중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과 내가 둘인 것을 알아요. 딴 존재인 것을 안다구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지요?

 

왜 그러냐 하면 마음이 아직까지 존재성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지, 몸뚱이한테 끌려다니는 사람이 됐기 때문에 그렇지 그 마음이 존재성을 확립해 가지고 또 다른 하나의 주체다 하는 그런 인격적인 차원의 자리가 형성되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다르다는 거예요.

 

차원이 높아지게 되면 은은한···. 祈禱를 하게 되면 마음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마음하고 공명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원높은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속에서 말하는 것을 내가 듣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로 발전해 나가는 거예요. 

 

맨 첫 단계에서는 암시와 같은 사실들이 여러분의 생활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신앙자는 이런 막대한 자료를 수집해야 됩니다.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심코 대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가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줄 것이냐? 언제나 배고픈 자의 심정이 돼야 됩니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줄 것이냐? 그렇게 찾는 마음이 있어야 돼요.  

 

결국 그 자체는 뭐냐? 내가 언제나 주체가 되든가 대상이 되는 거예요. 확정적인 주체요, 확정적인 대상의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내가 언제나 찾고 있다는 사실은 그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주체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면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혹은 대상적인 존재가 나타나면 대번에 압니다.

 

내가 누굴 전도할 사람이 있으면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괜히 그저 마음이 좋아서 간다는 거예요. 그걸 심파라고 하지요? 마음의 파장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게 있을 거 아니냐.

 

여러분, 보게 되면 고기 장사하는 사람은 푸주 냄새가 나지요? 그렇잖아요? 천 장사하는 사람은 천 냄새가 나요. 냄새가, 냄새가 난다구요. 여러분 몸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그 마음의 냄새를 맡는다는 거예요. 그런 형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촉각 같은 것이 있어 가지고 전부 접선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전파 같은 것을 발사해 가지고 상대적 대상을 찾고 있다는 생활···. 사실 그렇다구요. 내 마음은 이쪽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거절한다구요.

 

* 그렇기 때문에 신앙하는 사람의 태도는 전부 다 나와 더불어 관계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모든 관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관계, 본연의 인간에 대한 관계, 본연의 신에 대한 관계를 전부 절단해 버린 것입니다.

 

절단된 관계의 세계를 우리가 다시 접속시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내 자체가 이걸 접속시킬 수 있는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작용을 해야 만이 관계가 개척되지 접속시키고자 하는 태도를 갖지 않는 한 이 환경은 개척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가장 이론적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전부 다 무엇을 찾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기도하고 나면 "아, 오늘 좋은 일이 있다" 하는 것을 안다는 거예요. "좋은 일이 있으니까 그냥 좋은 일이 나타나겠지" 이게 아니라구요. 그걸 찾아야 된다구요. 이러한 생활태도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돼야 돼요. 그러므로 체휼과 실천이라는 것은 생명의 인연을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비몽사몽간에 이런 사실이 벌어져요.

 

076-133 그 단계가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그다음엔 여러분이 啓示라든가 指示라든가 이런 것이 벌어져요. 啓示라는 것은 우리가 分析해야 됩니다.  지시라는 것은 직접 가르쳐 주는 것이지만 계시는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건 반드시 해석을 해야 된다구요. 무엇을 가르쳐 줄 때도 가르쳐 주는 데는 音聲으로 들려주기도 하지만 幻想으로도 보여 준다는 거예요. "좋은 봄날을 맞이하여 사슴 한 쌍이 시냇가에서 생수를 마시면서 먼 산을 바라본다" 이런 환상은 지극히 행복스러운 소망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런 모든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것이 우연한 사실이 아니에요.  마음의 밭을 啓發하기 위한 하늘의 역사라는 거예요.

 

啓示의 단계를 지나면 默示(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 중에 뜻을 나타내 보임. 하나님이 계시를 내려 그의 뜻이나 진리를 알게 해 주는 일.) 단계입니다.

 

여러분, 묵시록 있지요? 하루 종일 영계에 들어가서 체험을 한다든가 저나라의 세계가 어떻다든가···. 전부 다 그런 세계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활적인 감정권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러한 체휼적인 신앙을 안 가지고는 위대한 하늘의 뜻과 결과 세계를 우리의 생활장, 생활무대에 적용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험을 갖지 않은 신앙자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體恤的인 신앙이 얼마나 고귀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걸 계발해 나가야 됩니다.

 

076-134 우리 식구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役事를 합니다. 역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힘이 전기 작용과 마찬가지로 들어와요.
여러분이 체험을 해 봤으면 알겠지만 고압에 접한 것과 같은 힘이 찾아들어오게 되면 우리 의식보다 강한 힘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건 딴 세계의 의식이에요. 초자연적, 초인적인 의식적인 감정이 찾아들게 되면 우리 몸, 이 육신이라는 것은 타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본연의 심성, 본연의 하나님의 신성과는 반발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 앞에 어떤 신의 성품이 강력하게 들어와도 자연적으로 순화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들어오는 데는 플러스 마이너스와 같이, 음파도 강약으로 전파되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힘도 한꺼번에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강하게 들어왔다 약하게 들어왔다 이러면서 개척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진동이 벌어지고 자기의 의식이 없어지고 영적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자꾸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 몸뚱이가 육성이라는 것이, 타락성 그 자체가 전부 순화되어 가지고 자연히 100%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현상이 없이 역사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서 하늘이 가르쳐 주는 것을 다 받으면서도 감쪽같다는 거예요. 모른다는 거예요.

 

이러한 현상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순화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단계적 현상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암시라든가 몽시라든가 계시라든가 지시라든가 하는 이런 과정을 여러분이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체휼 단계에 들어가면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을 명령하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누구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말을 못 하게 한다는 거예요. 혹은 내가 좋은 말로 그 사람을 위해서 말해야 할 텐데 책망의 말이 나오는 거예요.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구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가끔 벌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조정할 줄 모르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와 같은 체휼적인 신앙을 반드시 가져야 됩니다. 그 체휼적인 신앙을 가지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체휼한 것을 가지고 실험을 통한 체험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은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거예요. 체휼과 실천,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076-136 그러면 이런 경지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개 우리 사람을 보게 되면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지성적인 사람으로 진리로써 뭘 탐구해 가지고 이치에 맞으면 인정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부정하는 타입의 사람.
또 다른 하나는 그런 이치보다는 감으로 파악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우리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영적이다, 지적이다 하는 것입니다.

 

* 영적인 사람은 내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가지고 외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이요 지적인 사람은 외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가지고 내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나가는 종류요 하나는 들어오는 종류입니다. 이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지성적인 사람은 대개 기도를 싫어합니다. "아, 거 기도, 기도가 무슨 필요 있느냐?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을 어떻게 하노?" 실감이 안 난다구요. 그걸 딱 생각하면 미신 같고 믿을 수 없고 자기 자체가 부정되는 것 같고 말이에요.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이건 지성적인 사람입니다.

 

이론을 따져 가지고 무엇을 찾겠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 동시에 나면서부터 "하나님!" 하는 말이 아주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설명하기 전에 막 좋다구요. "아버지." 하게 되면 밥을 안 먹더라도 좋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 대개 영적인 운동에 있어서 혁명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지성적인 사람은 못 합니다. 난 그렇게 봐요. 대개 신앙세계에서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은 지적인 사람이 아니라 무식하고 미욱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느끼는 대로 해 보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라고 했으니 해 보는 거라구요. 이럼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인물로 등장할 수 있는 일도 벌어지는 거예요.

076-137 우리 사람은 이 두 종류가 있는데 나는 어떠한 타입의 사람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대개 영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영적으로는 크지만 진리면에서는 뾰쪽하다는 거예요. 이것이 달라요. 처음에는 굵지만 끝이 뾰쪽해지면 이것이 시종여일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못 가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반드시 굴러 떨어진다 이거예요. 

 

또 진리는 크지만 영적인 면이 이렇게 작다면 이것이 영원히 못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하는 생활을 우리는 해야 됩니다.  

 

기도와 진리, 영적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평행을 만들어 가지고 화하는 자리에 들어가라". 우리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조정해야 됩니다. 영적 세계의 중앙에 서 가지고 중심적 자리에서 좌우로 조정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되지 않고는 완전한 자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그래 선생님 같은 사람은 영적 체험이 있더라도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체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구요. 그걸 어떻게 하느냐? 진리로 조정해야 됩니다. 이것은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하면서 中庸의 길을 가면서 언제나 하늘의 섭리관에 방향을 일치시키는 놀음을 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영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고 지상세계의, 진리 세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러려면 영적 세계가 어떻게 움직여 들어오고 진리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그 사실을 생활화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리가 반드시 하나 돼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돼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인간 자체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체가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느냐? 진리면에서 느끼는 행복은 방향적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거 왜 방향적이냐? 영과 육, 신령과 진리를 두고 보면 어떤 것이 주체냐? 신령이 주체입니다. 진리는 상대적이에요. 상대적이라는 것은 방향적입니다. 이건 변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신령은 변하지 않아요. 중심적이기 때문에 사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면을 통해서 느끼는 행복이 귀하냐? 진리를 통해 느끼는 느낌은 방향적이기 때문에 변합니다. 오래 못 간다 그 말이라구요. 그렇지만 신령을 통해서 느낀 그 느낌은 중심적이기 때문에 오래간다는 거예요. 중심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진리는 상대적 입장이고 신령면은 주체적 입장입니다. 주체란 중심자리를 말하기 때문에 중심이란 것은 둘이 있을 수 없고 하나라는 것입니다.

 

중심이라는 것은 사방을 대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주체적, 중심적 입장의 신령면을 통한 기쁨이라는 것은 영원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체험을 통하여 느낀 그 기쁨은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당연한 결론입니다. 이렇게 돼 있는 거예요.

 

이러한 두 면의 사람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지식을 중심 삼고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실천 문제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반드시 보강해야 됩니다. 보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생활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또 기도만 하고 신령면에만 치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드시 진리에 대해서 연구해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양면이 보강돼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걸 내 자신이 혼자 조정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를 잘 선택하라는 거예요.

내가 신령적이거든 진리적인 사람과 하나 돼라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둘이서 "야, 내 맘은 이런데 네 마음은 어떠냐?" 이렇게 속삭이고 말이에요. 형이 달라요.  

 

하나는 내형적이요 하나는 외형적인 이 두 사람이 "내가 그래?" "내가 그래?" 이렇게 서로 의논하고 서로 협조해서 완전히 하나 될 수 있으면 신앙세계에 있어서 서로서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가 필요한 거예요.

 

076-139 여러분이 원만한 인격을 지니려면 춘하추동 사시계절 형태의 마음의 밭, 심전이 있으면 그 마음의 밭은 개발하려면 그런 소성의 사람을 내가 친구로서 환영할 수 있는 자격자가 돼야 됩니다.

 

"아이구 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싫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싫은 사람이 나에게 제일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싫은 사람은 좋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악한 사람이 선하게 될 수 있는 첩경을 간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반드시 제일 싫은 사람이 있다구요. 반드시 있어야 돼요.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싫은 사람이 내게 있어서 원수가 아니에요. 나와 제일 가까울 수 있는 것입니다. 참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고 가까울 수 있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 그런 경지가 있다는 거예요. 친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지적인 사람은 기도가 필요함과 동시에 뭐가 필요해요? 신령적인 사람은 지적인 면의 보강이 필요함과 동시에 뭐가 필요해요? 친구가 필요합니다. 혼자 하려면 상당히 어려워요. 그래서 여러분이 남의 간증을 듣고 경험을 듣는 것은 신앙생활에 지극히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거들랑 통일교회 간부들의 간증을 듣고 싶어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협회장은 어떻고 누군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전부 다르다구요. 이런 것을 내가 상대로서 소화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도수가 넓어진다는 거예요. 도수가.

 

내 성격이 이러면 짧은 이 면을 메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나오는 간증을 들으라는 거예요. 이것을 들어서 자기 것으로 흡수하라는 거예요. 보강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체험담을 들어라! 들어 가지고 남이 말한 그것을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비판하는 것은 사탄 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하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비판했다 할 때는 사탄 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갈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은 내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의 암이라는 거예요. 암. 사탄 편이 됐던 녀석이 하나님 편에 갈 수 없고 하나님 편이 됐던 녀석이 사탄 편에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생활에 있어서 가는 데에는 직행을 절대 못합니다. 지그재그로 간다는 거예요. 선조도 선한 선조만 있는 게 아니라 악한 선조들도 전부 다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내 자체가 소성적으로 볼 때 선한 선조의 소성을 많이 갖고 있을 때는 이렇게 가지만 악한 선조의 소성을 받은 부분도 있다구요. 그런 때가 온다구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럴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하게 돼요. 비판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다 그런 이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거예요.  

 

신령적인 면에 자기 소성이 맞는 사람들은 그저 영적인 것에 대해 궁금해요. 선생님 같은 사람은 본래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어요.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주 궁금하다구요. 밥을 안 먹고 24시간 동안 들어도 들을수록 재미난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그러면 그것을 일방적으로 하지 말고 진리로 보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면을 가려 가지고 가야 돼요. 자기의 소성, 자기가 어떠한 면의 사람인가는 각자가 알 거예요. 그러면 그 반대적인 면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혹은 진리를 탐구하고 혹은 신령면에서 체휼하고 말이에요. 여기에는 반드시 뭐가 필요하냐 하면 기도와 진리 탐구가 필요합니다. 
신령한 사람은 이미 영적으로 느낀 것을 진리로 소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되고 진리적인 사람은, 지성적인 면의 사람은 그 지성적인 면에 영적인, 신령적인 면을 보강할 수 있는 체휼적인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반드시 내가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터전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그러한 것을 느꼈을 때는 "아! 이젠 나도 알았다." 할 때는 그 "알았다." 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라는 거예요. 실천하라는 거예요. 자기가 해 봐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그렇잖아요? 실험을 해 보고 말이에요. 전문가는 무엇이 전문가냐? 같은 일을 많이 해 본 사람입니다. 전문가가 따로 있지 않다구요. 그렇잖아요? 기술자는 어떤 사람이 기술자냐? 같은 일을 많이 해 본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실험을 해 봐야 됩니다. 

 

076-142 여러분, 그래요. 영적인, 정신적인 세계가 얼마나 통일권인지 몰라요. 내가 누구를 보고 싶다 하며 24시간 기다리면 그 사람이 온다구요. 그게 실현된다구요. 오는 거예요. 집중하게 되면 나타나는 거예요. 그것은 전파가 방향성 전파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수신기와 같은 자기 마음 바탕이 있기 때문에 괜히 궁금하고 가고 싶고 그런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그 마음이 강해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내가 학교에 간다고 떠났는데도 그 가는 길의 방향을 거쳐서 오게 되면 교회에 와 있는 거예요. 이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자기의식 기준을 넘어 가지고 행동하는 그런 결과를 반드시 체험한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도 한창 반대받고 핍박받을 때는 말이에요, 이 아주머니들이 바구니 들고 시장에 간다고 갔는데 통일교회에 오는 거예요. 그것은 보통지사라구요. 그건 뭐 신기한 것도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미쳤느니 무슨 전기장치를 했느니 뭐 어떻고 해 가지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실제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최면술 같은 것도 말이에요, 인간이 그런 체험을 통해 가지고 그게 가능하거든요. 하나님을 중심 삼고 신령적인 그 길을 통하면 가능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에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 거예요. 이 경지에서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체휼한 모든 사실을 실천장에 적용시키는 데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상대성을 갖고 일일생활권 내에 접맥시키느냐, 형성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신앙자입니다. 막연한 신앙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는 하나님을 대역하여 시대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알겠어요?

 

체휼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된다구요? 먼저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 정신집중을 해야 돼요. 될 수 있으면 영점의 자리에 내려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 가든가 해야 돼요.

 

* 마음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영원한 이상적인 선의 주체이시면 그 주체적 존재 앞에 상대적 바탕으로서 언제나 변함없이 상대 기준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마음의 중심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걸 통일교회에서는 생심의 기원이라고 보는 거예요. 이 상대기준만 딱 맞으면 초연한 힘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기도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면···.

 

석가모니 같은 양반도 그런 경지에 들어가서 그런 것을 말한 거예요. 수도하면서 정신을 통일해 가지고 신령한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체험하는 가운데 완전히 하나님 주체 앞에 대상의 자리에 딱 들어가기 때문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내가 세상을 한번 꽉 쥐면 세상이 움싹 이 주먹 안에서 녹아나는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이거 들게 되면 들리는 기분이 나고 말이에요. 치게 되면 한꺼번에 녹아는 기분, 이런 경지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이적기사는 자동적이에요. 병 고치는 그런 일은 자연히 신앙생활의 부속물로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心門에 맞추어 가지고 心田을 啓發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밭을 계발하고 방향 기준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런데 주체되시는 하나님은 모호하니까 하나님을 연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신을 집중시켜 가지고 내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부터 마음을 맑혀 놓으면 반드시 방향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지남철과 같이 말이에요,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는 자연히···. 누가 가라고 해서 가나요? 자연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 산에 가더라도 기도가 잘 되는 곳이 있습니다. 또 사탄이 모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건 음지예요. 陰地와 陽地라는 것이 영적으로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모든 암시나 몽시나 계시나 묵시가 벌어지는 것은 인간과 하늘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 개척적이고 발전적인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요건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소홀히 하지 말고 여러분의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076-145 여러분은 반드시 체휼적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신앙을 하라, 교회에 가라 할 필요 없어요. 그런 건 문제가 아니라구요. 벌써 내가 내 갈 길을···.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이 마를 때 물을 먹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히 그렇게 되는 거예요.

 

선생님 같은 사람은 자연을 참 좋아합니다. 왜 자연이 좋으냐 하면 선생님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런 신비스런 체휼을 한 그런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기분이 언제나 새롭다는 거예요. 그 기분이 아쉬웠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기가 옛날에 은혜스러운 자연을 바라보고 명상하던 그런 경지 혹은 밤이면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런 경지, 사시사철 그 기분이 다 다르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복잡다단한 도회지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생활권내에 스스로 싸여 자기의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수택리로 갈 때도 있고 청평을 잘 갑니다.  

 

미국 가기 전에도 매일같이 청평에 갔다 왔다구요. 어제저녁에 갔다 왔는데 또 뭐하러 가느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가려면 3시간 4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에요, 거 왜 가느냐?

 

자연이 아주 새롭다는 거예요. 느껴지는 무엇이···. 영적으로 플러스된다는 거예요, 이게. 클클할 때는 메울 수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런 놀음을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을 보강해야 됩니다. 이런 체휼적인, 본성의 감도라고 할까 그러한 느낌을 언제든지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가 안다는 거예요.  "아, 내가 지금 어떠한 단계에 들어왔다."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지금 내가 얼마만큼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는 거예요.

 

*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사람을 대할 때 척 보면 벌써 설명하기 전에 그 사람이 A B C형 중의 어느 형인가를 분석한다는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이 빠르다는 거예요. 그런 체휼이 벌어져야···. 

 

영들도 무수해요. 사람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별의별 영이 다 있다구요. 사람 가운데도 별의별 녀석이 다 있지요? 마찬가지로 영들도 그래요. 그러니 영을 감정하기 위해서는 그런 내 스스로의 척도, 마음의 영점을 중심 삼아 가지고 이것이 왼쪽으로 가느냐 바른쪽으로 가느냐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것을 가릴 수 없다는 거예요.

 

선한 신이냐 악한 신이냐 하는 것도 그런 느낌을 통해서 대번에 분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체휼적인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076-146 여러분이 체휼하려면 반드시 무엇을 해야 되느냐? 마음 문을 맞추고 마음 밭을 갈고 이러면서 이것을 전부 개발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영적인 면의 사람, 진리적인 면의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 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인 어떤 지도자를 따라가든가 어떤 친구를 따라가든가 해서 보강하면서 서로서로가 하나 되는 입장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많이 보필받아야 빨리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이 있으면 반드시 현실과의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실천장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무엇을 느꼈으면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므로 "무엇이 있었다," 그저 잊어버리지 말고 그것이 어디에 적중하느냐를 살펴야 됩니다. 반드시 가르쳐 준다 이거예요. 반드시 가르쳐 주는 내용으로써 이렇게 줬다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무엇이 어떻게 맞아떨어지느냐 하는 것을 언제나 찾아야 됩니다. 몽시라든가 환상 가운데서 됐던 사실들이 현실에 적중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076-147 이렇게 보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이에요, 조금만 정성 들이게 되면 기성교회가 10년 공들여서 할 수 있는 것을 통일교회는 1년만 공들이면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길이 다르다고요. 왜 다르냐?

 

*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되고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제멋대로 돌고 있으니 이게 빙글빙글 제멋대로 돌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 이거 기도를 해도 중심이 어딘지 막연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전부 해 주기 전에는 체휼적 신앙 단계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딱 관이 서 있다 이거예요.   

 

076-149 영적 지도자는 그런 체휼적인 무엇이 없어 가지고는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책을 봐 가지고 설교 준비하고 책을 봐 가지고 하늘이···. 그 책 가운데 하나님이 있나요? 그렇지 않다구요. 하나님은 신령한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신령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되겠어요.  

 

076-151 체휼적인 신앙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온 식구라면 대개 체휼하게 됩니다. 반드시 체험을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현실적 생활권 내에 다 벌어지는 거예요. 진정 뜻을 위해서 있는 정성을 다 들이면 하늘이 같이해 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일본 식구들이 인삼차 팔이를 하는데···. 선생님이 영적으로 인삼차를 팔아 주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런 경지에 들어간다구요.

 

지금 현실에서 내가 인삼을 팔러 다니는데 눈으로 보면 선생님이 따라다닌다구요. 아무 집이나 들어가는 집집마다 팔린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거 이상하지요? 그것이 가능하다 이거예요.


어떤 때는 여러분이 옛날에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고생한 선생님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나고 밥 먹을 것을 잊어버리고 잘 것을 잊어버리고 미치다시피 되게 된다면 선생님이 좋은 양복을 입고 기분 좋게 쓱 나타나 가지고 위로도 해 주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런 일이 많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종교에서 체휼할 수 없는, 수십 년 정성 들여야 체휼할 수 있는 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즉각적으로 체휼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은 비약적인, 뭐라 할까요, 혁명적인 영적 세계의 발전을 이루어 놓은 통일교회라고 나는 보는 거예요. 여러분, 다 체휼했어요? 체휼한 적 있어요 없어요? 있지요? 이건 뭐 다 있어야 된다구요. 그 체휼한 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을 위하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형제를 위하고 형제를 좋아해야 이것이 되는 거예요. 그런 것이 가능하게 된다면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천국 갑니다.  

 

076-152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어디 있느냐 할 때 기도 가운데서 음성을 들어보면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라, 선생님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려라" 하는 거예요. 그것밖에 없다구요. 그렇게 가르쳐 준다구요. 그리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잠을 안 자고 그러다 보니 영계가 열리더라 이거예요. 제일 빠른 게 그거라구요. 영계가 열린다구요. 선생님이 미국에서 뭘 하는지 앉아서 보거든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이것은 막연하던 신앙의 주체적 대상을 현실적인 실체적 주체로서 횡적 무대에서 체휼할 수 있는 권을 형성했다는 거예요. 이러한 사실은 종교세계에 위대한 혁명을 제시하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휼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오늘은 체휼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입니다. 체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를 해야 되고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서 나타나는 계시나 몽시를 절대 무시하지 말라구요. 그것을 조정해서 현실적 생활권 내에, 실천무대에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다구요.  

 

076-153 설교할 때도 그렇습니다. 반드시 내가 은혜받고 눈물을 흘린 그 체휼적인 사실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 그 환경은 은혜의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이 없이, 체휼적인 그 내용이 없이는 아무리 외치더라도 그 환경은 전부 다 따로따로 돌아갑니다. 

 

076-155 통일교회 반대하다 잘 되는 녀석은 내 하나 못 봤다구요. 내가 보기에는 통일교회는 참 무서워요. 내가 그걸 알아요. 통일교회는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느껴요. 내가 만일에 분해 가지고 이를 악물고 이를 갈면서 기도하는 날에는 옥살 박살되는 걸 봤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