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신에게 미쳐지는 근심과 고통과 슬픔을 하늘 앞에 짊어 지우지 말고 스스로 탕감하고 나갈 줄 아는 사람.
2. 영광의 자리에서 모시려고 하기보다 비참한 자리에서 모시는 참효자 참효녀.
3. 심정일치, 생활 일치, 행동 일치, 목표 일치.
4. 선생님을 고생시키면 안 된다.
5. 슬픈 일에 부딪치더라도 그것을 자기 혼자 처리하지 말라.
6. 꾸준히 자기의 갈 길을 걸어가고 올라가라.
7. 부모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자식이 기뻐하면 불효가 되는 것이다.
8. 본래 자녀는 부모를 업고 가든가 모시고 가든가 해야 한다.
9.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10. 오시는 부모님이 자녀를 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신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이다.
▣ 1964.4.12(일) 참부모와 참자녀가 가야 할 길. 대구교회.
- 제3차 원리대강연회. 재5회 참부모의 날.
013-280 원래는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 삼고 일체가 되어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날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우주가 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송영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의 날은 온 우주가 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송영을 드리는 기쁨의 날인 것입니다. 이 날을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013-282 인류 역사는 무슨 역사냐 하면 참부모 복귀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부모를 복귀하지 않고는 참다운 자녀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세우기 전에 참다운 가정과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해 6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013-285 참부모는 두 분이 있어야 됩니다. 두 분이 없으면 참부모의 기준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웠다 하더라도 지상에 실체의 참부모가 세워지지 않으면 실체 세계에서 승리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영계에서 승리의 조건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지상에 참부모가 세워지지 않으면 그 영적인 세계의 발판에 해당되는 발판을 이 지상에 닦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시는 참부모는 이것을 위해 생명을 바쳐 땅과 하늘을 대신하여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의 기간이 40년 기간이란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013-291 이제 우리가 품어야 할 소망이 무엇이냐?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시는 참부모님을 진정으로 모시는 것을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모시는 데는 승리의 터전이 이루어진 후에 만민이 우러러보고 민민이 공경하게 된 자리에서 모시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거치시는 참부모를 모시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거치시는 참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선조들은 한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진정으로 모시는 것은 모든 인류가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자리에서 모시려고 하기보다 비참한 자리에서 모시는 참효자 참효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참효자 참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자리, 낙망할 수 있는 자리, 비참하여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자리에 서더라도 "하늘이여, 나를 인도하시는 하늘이여, 참부모님은 예수님보다도 더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시니 부모를 모시는 나로서는 어떤 가중된 십자가를 지게 되더라도 당연합니다. 나는 그것을 찬양하오니 하늘은 나로 말미암아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미쳐지는 근심과 고통과 슬픔을 하늘 앞에 짊어 지우지 말고 스스로 탕감하고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개인적인 기준에서 개인적인 부모의 승리의 인연에 접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013-296 여러분이 참부모의 인연 앞에 화할 수 있는 모심의 생활과 참부모의 심정 일치, 생활 일치, 행동 일치, 목표 일치를 이루어 나아가게 되면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개인적인 시대를 넘고 가정적인 시대를 넘고 종족 민족 국가적인 시대를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013-305 책임자가 슬픔을 먼저 당하면 그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민족이 되려면 책임자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알고 책임자보다 먼저 당하려고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삼천만의 슬픔을 이 민족의 책임자에게 돌리지 않고 이것을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런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 이 민족이 흥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망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이스라엘 민족이 슬픈 일을 전부 모세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모셔야 합니다. 어떤 자리에서 모셔야 되느냐? 탕감하는 자리에서 모셔야 됩니다.
* 오늘의 통일교회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을 고생시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갈 길은 거기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마지막이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고생을 책임지고 인류의 고생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염려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낙망시키지 않았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대번에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복귀도상에 서 있는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절개가 무엇이냐? 나는 슬퍼도 하나님을 슬프게 해 드리지 않겠다. 나는 삼천만으로부터 매를 맞고 죽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입장에 서시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절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일 그런 제자를 두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 슬픈 일에 부딪치더라도 그것을 자기 혼자 처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먼저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가 이 일을 당하시면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모셔 놓고 아버지와 의논해 보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아버지께서 지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서 해결하고 절대적으로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생활 무대를 수습하고 환경을 수습해 나감으로 말미암아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사회적인 시대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시대를 거치면서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꾸준히 자기의 갈 길을 걸어가고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뜻을 이룰 때까지 꾸준히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013-307 부모가 슬퍼할 때 자식이 슬퍼하지 않으면 불효가 되는 것이요 부모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자식이 기뻐하면 불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 노정을 걷고 계시니 선생님도 그렇고 여러분도 죽든지 살든지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민족 기준을 세우고, 유대교와 전 세계 기독교를 대신할 수 있는 교단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승리의 부모의 날을 설정해서 세계적인 승리의 부모의 날이 되게 해야 합니다.
013-309 우리는 인류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몸들입니다. 본래 자녀는 부모를 업고 가든가 모시고 가든가 해야 합니다. 효자라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원리를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늘땅 앞에 사탄은 어떤 존재이며 여러분의 갈 길은 어디이며 속죄의 길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를 모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적인 복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실제로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어떤 슬픔과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적은 조건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기쁨의 조건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커져서 가정적인 기쁨의 터전이 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기쁨의 터전이 되어야 비로소 지상에 천국의 기반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이 조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부모님이 자녀를 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신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부모를 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신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책임을 맡기느냐? 타락을 인간이 했기 때문에 인간적인 모든 고통을 대신 책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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