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부모의 사명? 재림주의 사명.
- 제1 아담과 제2 아담의 모든 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예수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 아담의 사명, 예수의 사명
1) 하나님을 지상에 모실 수 있게 한다.
ㄱ) 부모가 와 가지고 이 땅에서 뭘 하느냐? 하나님이 올 수 있는 길을 닦는 거예요.
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證據하기 위한 인간의 대표자로 혹은 하나님의 대신자로 오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땅을 찾아야 한다.
3)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을 가르쳐 주고 심정 일체를 이루게 하여야 한다.
-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因緣을 回復하게 하기 위함이다.
4) 새 전통, 새 도덕, 새 생활방식을 확립하는 것이다.
5) 음란의 세계를 청산해야 된다.
6) 종적인 창조주 하나님 앞에 횡적 90 각도를 맞추는 사랑의 부모를 이루어 보자는 것이다.
- 종적(내적) 참부모 앞에 횡적(외적 ) 참부모.
7) 종교와 정치의 통일권을 이루어야 된다.
8)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하나님을 중심 삼고 절대 신앙해야 된다. 그게 첫째 계명이다. 사랑해야 된다.
9) 세계를 구해 주기 위해 오신, 주인이요, 부모요, 스승.
- 진리로써 천국을 소개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 사탄 세계에 와 가지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와 형제를 다 버리고 따라올 수 있는 운동을 일으켜야 되는 것이다.
2. 통일교회의 사명.
3. 참아버님의 탄생
1) 동시성으로 본 메시아 재림
아담 - 아브라함 2천 년
아브라함 - 예수 2천 년
예수 - 재림 2천 년
2) 불교(668~1392. 통일신라와 고려 약 700년) 유교(1392년~1905년) 기독교의 한국 역사와 신령집단.
3) 3.1 독립운동 참부모님의 탄생
4. 2차 세계대전과 7년 노정.
▶ 참아버님 탄생 1920.1.6(음)
▶ 참어머님 탄생. 1943.1.6(음)
* 3대 : 조원모 홍순애(정주) 한학자(안주)
* 김성도의 성주교 허호빈의 복중교
* 김성도 씨의 유언
◑ 인류의 눈물을 닦아 주는 평화의 어머니 자서전 제1장 ~11장
제1장 내가 바라는 평생의 소원
▷ 그날, 독립만세를 외쳤던 한 여인.
- 조원모 외할머니의 독립만세운동.
17 그날은 절기상 봄으로 접어든 3월의 첫날이었지만 새벽이면 찬서리가 내릴 정도로 아직 추위가 남아 있었다. 이른 아침 내내 평안도 안주의 하늘은 희미한 안개로 뒤덮였다. 옷깃을 사늘하게 파고드는 차가운 봄바람이 일렁일렁 불어올 때 한 여인이 새벽 일찍이 부엌으로 나가 아침밥을 지었다. 장작불을 때서 식구들이 먹을 밥을 지어 놓고 찬장 깊숙이에서 무명 헝겊으로 싼 무언가를 조심스레 꺼냈다.
* 그것은 꿈에서조차 한 번도 잊지 못한 태극기였다. 슬픈 마음과 함께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18 남편이 새벽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여인은 딸아이를 안고 함께 아침밥을 먹었다. 그리고 부엌과 안방, 토방과 마당을 정결하게 청소했다. 정오가 조금 지나자 평온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등에는 6살 딸을 업고 가슴에는 태극기를 품었다.
* 등에 업은 딸은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났다. 여인은 고개를 돌려 사랑스러운 딸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딸에게 그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 순간 함성이 터졌다. "대한독립만세!" 그 외침에 끝나기도 전에 여인은 품에서 태극기를 꺼냈다. 그리고 세차게 흔들면서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 여인은 그 누구보다 크게 외쳤다.
19 여인은 그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며칠 전부터 밤을 새워 가며 떨리는 손길로 어린 딸과 함께 태극기를 만들었다. 호롱불 아래에서 딸에게 우리 민족이 어떠한 민족이며 왜 독립만세운동을 해야 하는지도 들려주었다. 딸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의미를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 엄마의 등에서 만세 소리를 들었다.
* 훗날 우주의 어머니 독생녀가 태어나 사랑과 평화의 참다운 어머니가 되어 한반도와 아시아, 세계를 진정한 평화로 넘치게 할 것이라 믿었다.
* 여인의 믿음처럼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지고 24년 후 이 땅에 하늘 섭리에 따라 민족을 넘어 인류의 횃불로 독생녀가 태어났다.
20 나의 고향 안주는 본래 애국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곳이며 일찍이 기독교가 전래된 지역이다.
* 그리고 내가 3살이 되던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이번에는 외할머니가 나를 업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해방된 기쁨에 겨워 목청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 3대 외동의 가문
*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준비해 왔다.
*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어진 집안이었다.
* 잃어버린 인류를 찾기 위해 하늘이 특별히 찾아 세운 가문을 통해 하나님의 독생녀인 나는 핍박받는 한반도 땅에 왔다.
제2장 나는 독생녀로서 이 땅에 왔습니다.
▷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45
45 나의 고향 평안남도 안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정겨운 소리들은 벌써 70여 년이 흘렀음에도 내 마음속에 오롯이 자리 잡고 있다. 꼭 가고 싶은 정든 고향이다. 언젠가는 내가 돌아가야 할 본향 땅이다.
46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 한승운 선생께서는 태몽이라기보다는 몽시를 받으셨다. 푸른 소나무숲이 아주 울창한 가운데 맑고 아름다운 햇살이 비치면서 두 마리 학이 정답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 이름을 학자라고 지었다.
나는 청주 한씨이고 본관은 충청북도 청주이다. 충청은 마음의 중심이 맑다는 뜻이며 청주는 맑은 고을이라는 의미이다.
* 그 고을에 살던 나의 선조들은 마음이 맑고 겸손했다. 청주 한씨의 한은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크다"는 우주 만물을 품에 안으며 가득하다는 충만함을 뜻한다.
* 청주 한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의 한 사람인 한란이다.
47 하늘을 숭상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선민이었다. 韓民族인 東夷族이 한 씨 왕국을 세웠다. 역사적으로 고조선 이전 한씨가 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단군신화에는 한민족을 천손민족으로 택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또한 우리 민족은 배달(밝은 산이라는 뜻) 민족이기도 하다. 배달은 밝은 나라, 환한 나라, 하늘을 숭상하는 우리 민족을 말한다.
* 그런데 한민족이 걸어온 5천 년 역사를 헤아려 보면 누군들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선천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민족임에도 끊임없이 외민족의 침입을 받았다.
* 하나님이 왜 우리 선한 민족을 그토록 큰 시련과 아픔을 통해 연단하셨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한민족에게 커다란 사명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성경에도 그런 역사가 나온다. 하나님은 노아 아브라함 등 중심인물을 세워 섭리를 이끌어 오시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해 예수님을 보내셨다.
48 2천 년이 흐른 후 하늘은 한민족을 택해 독생자와 독생녀를 보내셨다.
* 한민족은 하늘이 선택한 참다운 선민이다.
▷ 암탉이 병아리를 품은 듯 정겨운 동네. 49
49 우리 한반도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암울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혹한 고초를 겪었다.
그 처절한 억압의 시기인 1943년 2월 10일, 음력으로는 1월 6일 새벽 나는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안주시 칠성동으로 이름이 바뀐 안주읍 신의리 26번지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 달래강 전설, 하늘의 섭리 잉태하고. 52
52 어머니가 태어난 정주는 나의 남편 문선명 총재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청천강(살수 撒水)을 건너면 바로 안주이다.
* 이 강을 경계로 평북과 평남으로 나뉜다.
* 안주에서 정주까지의 거리는 60여 킬로미터. 평양까지는 75킬로미터.
* 청주 한씨 승운 선생은 1909년 1월 20일 안주군 대니면 용흥리 99번지, 5형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산 기간이 무척 짧았다. 그러나 그 온후한 성품과 모습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성품은 치밀하고 알뜰하셨으며 체격이 건장하고 체력도 뛰어났다.
* 공부도 잘 했으며 기독교 신앙이 독실하셨는데 충직한 교편생활과 신앙생활로 인해 집안에 머무는 날이 드물었다. 이용도 목사의 새 예수교에 몸담아 중견간부로 바쁘게 생활하셨다.
* 어머니 홍순애 여사는 1914년 음력 2월 22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셨다. 기독교 신앙을 지닌 아버지 남양 홍씨 유일 선생과 어머니 영변 조씨 원모 여사 슬하에서 1남 1녀 중 맏딸이었다.
54 외할머니는 조선시대 부유한 선비였던 조한준의 직계 후손.
* 그곳 정주에 달래강 다리가 있었다.
* 예로부터 내려오는 예언이 있었다. 달래강 다리에 바위를 깎아서 세워 놓은 장승 표석이 묻히는 날에는 나라가 없어지고 드러나는 날에는 조선 땅에 신천지가 펼쳐지리라.
* 조한준 할아버지는 다리를 새로 만드는 데 전 재산을 다 쓰고 엽전 세 푼을 남겨 놓았다.
55 그날 밤 꿈에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나 "한준아, 네 공이 크구나. 그래서 너희 가문에 천자를 보내려 했는데 남겨 좋은 엽전 세 푼이 하늘에 걸려 공주를 보내겠노라" 꿈에서 깨어나 의아한 생각이 들어 달래강에 가 보니 언덕 위에 이제까지 없던 돌미륵불이 생겨나 있었다.
* 한반도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생녀를 탄생시키기 위한 하늘의 섭리와 정성이 그 옛날 조한준 선조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이시다. 56
- "주님의 귀한 따님"
56 나는 4살 무렵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교회에 다녔다.
* 아직은 몹시도 어린 때였건만 어머니는 기도하듯 힘을 실어 "주님의 귀한 따님"이라고 나에게 말씀해 주시곤 했다.
* 그렇게 나는 하나님의 딸, 주님의 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외할머니 역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또박또박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시다" 그래서 아버지라 하면 육친의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고 항상 하늘 아버지를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이 푸근하고 정겨웠다.
58 하루는 어머니가 물었다. "네가 태어났을 때 어떻게 울었는지 아니?" "아기니까 "응아" 하고 울었겠지요" "아니다. 너는 랄라랄라 노래를 했단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이 아이는 커서 음악가가 되려나 보다 하고 말씀하셨지" 나는 그것이 나의 앞날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속 깊이 새겨 두었다.
* 어머니가 출산 후 첫 미역국을 먹고 나를 안고 잠들었을 때 시커먼 뿔이 달린 사탄이 다가와, - "이 아기를 그대로 두면 장차 세상이 위험해진다. 지금 이 아기를 없애야 한다" 그러면서 나를 헤치려 했다.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고 항거했다. "사탄아, 썩 물러가라. 이 딸이 하늘 앞에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데 네가 감히 해하려고 하느냐!"
꿈속 싸움은 격렬했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외할머니가 깜짝 놀라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예야, 네가 아이를 낳고 속이 많이 허한가 보구나"
59 어머니는 일어나 앉아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태어나자마자 사탄이 해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 "이 아이는 정성을 다해서 키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 앞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게 주님을 위해 깨끗하고 아름답게 길러야겠다"
어머니는 한 달쯤 후에 또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흰옷을 입은 천사가 하얀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순애야, 그 아이 때문에 걱정했을 것이니라. 그러나 결코 걱정하지 마라. 아기는 주님의 딸이고 너는 유모와 같다. 성심을 다해서 양육하거라"
* 내가 6살이 되어 북한을 떠날 때까지 어머니의 꿈에 흉측한 몰골로 불쑥불쑥 나타나 나를 해치겠다고 온갖 위협을 다했다. 어머니는 나를 지키기 위해 꼬박 6년이나 싸웠다.
▷ 어둠의 시대, 주님을 맞기 위한 선택.
▶조원모 - 홍유일 선생
* 홍유일
60 키가 크고 친근감이 넘치는 好男( 호걸의 풍모나 기품이 있고 남성다우며 풍채가 좋은 사나이.) 형인데다 생각 역시 진취적이어서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유교 전통이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났음에도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처음 문선명 선생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외할아버지와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선명 총재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 조원모
61 조원모 할머니는 작고 예쁜 용모에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신여성이었다. 읍내에 평안상회라는 가게를 열고 재봉틀을 팔아 살림을 꾸려 갔다. 때로는 고장 난 재봉틀을 수리하는 일도 했다. 그 시절 재봉틀은 혼수품의 첫 번째로 꼽힐 만큼 귀하고 비싼 기계였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시집가는 새색시들에게 싼값으로 팔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 홍순애 - 한승운 선생
61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열성적인 신앙을 이어받아 19세까지 장로교회를 다녔다. 홍순애라는 이름도 교회 목사님이 지어 주었다. 외할아버지 가족은 정주를 떠나 청천강을 건너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신의리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안주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平壤聖徒學院을 졸업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1934년 3월 5일 혼례를 올려 부부가 되었다. 내가 출생한 해가 1943년이니 결혼 후 9년 만에야 나를 보았다. 두 분 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몰두하다 보니 뒤늦게야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한승운 선생을 데릴사위로 삼으려 했으나 아버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씨 집안의 맏아들이었고 멀리 황해도 연백에서 교사로 일하고 계셨기에 처가에 터를 잡을 수 없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어 교회 일에 전념하느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드물어 서로 함께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신의리 외가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자랐으며 자연스레 하나님을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광복을 맞은 해인 1945년부터 만성공립보통학교에 재직했다. 내 나라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뿐 공산당의 만행과 위협이 갈수록 심해져 남한으로 내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3살 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집에 오셨다. "북한에서 더 이상 살기 어려우니 남한으로 내려갑시다"
* 어머니는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재림주님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 오로지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간절함이 가득했기에 아버지의 간청에 어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핍박에 굴하지 않고 이 땅에서 주님을 맞이할 신앙길을 지켜 가겠어요." 어머니의 거절은 아버지에게는 참으로 뜻밖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만큼 기독교가 부흥하던 곳이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재림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는 성스러운 곳이었다.
63 성경에 재림주님은 구름을 타고 온다고 쓰여 있었으나 평양의 신령집단은 "육신을 쓰고 오신다"고 믿었다. 어머니 역시 재림주님은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 오신다고 믿었다.
그동안 외할머니를 통해 믿음을 신실히 했고 새 예수교에 다니며 헌신한 어머니는 충실한 메시아 집안으로서 사명을 다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는 남편이지 아비로서 인륜의 도리를 다하고자 했으나 하늘의 섭리는 끝내 가족을 헤어지게 했다. 대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어린 나는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건만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홀로 남한으로 내려온 아버지는 40여 년 동안 열대여섯十数 곳의 학교를 거치면서 온전히 교육에 헌신하셨고, 교장선생을 마지막으로 교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1978년 봄, 평화스럽게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 청평 미원초등학교에 아버지가 한때 봉직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하늘이 인도하신 역사라 생각했다.
나는 복한에서 살던 어린 시절 외에는 평생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간혹 아버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궁금하기는 했어도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 두서너 살 때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말을 내 가슴과 머릿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 말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진리로 알고 자랐다. 하나님의 딸로서 내가 태어났으니 나의 진정한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육신의 아버지에 대해 사사로운 감정을 갖지 않았다.
내가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홀외할머니와 홀어머니 가정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외롭게 자란 것은 하늘이 예비하신 준비기간이었다.
▷ 선민의 나라, 독생녀를 보내실 민족. 65
60 하나님이 독생녀인 하늘의 신부를 지상에 보내기까지는 가장 먼저 한민족의 5천 년에 걸친 희생과 탕감의 민족적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나아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신앙과 3대의 심정적 계대를 잇는 고난의 가정적 기반도 뒷받침 되어야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야 평화로운 세상을 이룩할 평화의 어머니를 이 땅에 맞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