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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충신 효자 열녀가 돼라. ▣ 1961.1.29(일) 전본부교회.

▣ 1961.1.29(일) 하나님의 충신 효자 열녀가 돼라. 전본부교회.

011- 077 심정에 사무치게 될 때 주위가 움직이게 된다. 왜 주위가 움직이느냐?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은 것은 마음의 방향성이 틀렸었기 때문이다.

 

이제 심정적인 기준이 하나님과 90도가 되어야 한다.

 

세계 인류의 가장 긴박한 문제는 이념적인 방향을 갖춘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자리를 갖추어 가지고 변치 않고 나아가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하나님이 인간 타락 후 슬퍼하신 것은 사랑의 굳은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참다운 마음, 참다운 사랑, 참다운 심정은 모두 간곡한 자리에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 하나님 앞에 충신 효자 열녀가 되는 것이 인간의 정도이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군왕과 부모에게는 그랬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 하나님은 위하고 싶고 그리워하고 좋아하고 보고 싶어하신다. 또 모든 것을 하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하고 싶지 않으신 것이 없다.  

 

내 웃음, 내 만족은 하나님과 함께한 것이라야 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돌보지 않고 나가는 것이 신앙의 길이요, 도의 길이다.    

 

*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운데 주고받고 동하고 자고 깨고 먹고 싶은 것이다.

 

* 인간이 좋아하는 길로 가면 길이 막히고 싫은 길로 가면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종교의 길이다.

 

이목구비가 하나님께서 자랑하실 수 있는 것이 되어 있느냐?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한 성경의 이 말씀은 인간에게 구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에게 구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중심이 서 있기에 우리에게 권고하셨다.

 

성경의 "하지 말라"는 말씀이나 "하라"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뼈와 살이 녹아져 있다.  

 

하나님은 그리워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시나? 땅 위에서 자기를 찾는 사람을 찾으신다. 무한히 찾아 헤매며 구하고 두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인간 타락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다. 인간을 떠나실 때도 눈물로 떠나셨고 찾아올 때도 눈물로 찾아 오셨다. 고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인간들은 눈물로 찾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은 고통과 통곡과 눈물을 안 가지고는 서로 대할 수 없다.

 

* 아버지는 어느 한때 심정을 풀겠는가! "당신의 고통과 사정과 심정이자 내 것입니다"라고 하는 아들딸이 나타날 때 풀린다.

 

몸 둘 곳이 없어 허덕이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

 

* 스스로 다짐하여 알아도 모르는 듯, 있어도 없는 듯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해야 한다.

 

* 천 번 만 번 학대받고 몰림 받고 쫓김 받아도 "감사합니다" 해야 한다.

 

역사적인 원수였던 인간이므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에는 자기의 몸과 이목구비의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추방된 것을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과의 인연을 중시하며 받아들여야 정상적이다.

 

만민의 부끄러움을 가리워 주기 위하여 죽어간 분이 주님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의 실적을 내세워 "이만했으면 됐지!"라고 할 수 없다. 스스로 자랑할 자가 있고 기뻐할 자가 있다면 하나님밖에 없다.

 

*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백성이 되든 아들이 되든 한 가지는 돼야 한다. 

 

자랑한다면 못난 모습이지만 "어느 조건에든지 걸리지 않겠다"라고 자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피와 살에 심정을 심어 주고 싶어하신다.

 

쓰러질 때 몸뚱이가 쓰러지는 것에 대해 슬퍼하지 말고 피눈물로 외치시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슬퍼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보이고 싶어하라.

 

스승이 좋아한다고 해서 좋아하지 말라.

 

우리의 길은 외갈래 길이다. 

 

옆에 대고 말이나 눈짓을 해서는 안 된다.

 

스승에게는 신념이 있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신념이 있는가.

 

지도자는 기뻐하는 자리에서가 아니라 슬퍼하고 눈물겨워하는 자리에서 인연 맺어야 한다.

 

하나님이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고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말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스승은 이 길을 찾아 나오기까지 참으로 비참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내 수족과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기가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것을 불구하고 나서야 했다. 이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고 축복을 하시고자 하신다.

 

마음으로 비웃기나 하고 눈으로 곁눈질이나 하고 손으로 성물을 더럽히는 이런 사람들은 이 길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스승이 술을 안 마시면 음주자는 참석하지 못하고 스승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담배 피우는 자는 참석하지 못한다.

 

지켜야 할 조건이 수십 가지가 있으나 말하지 않겠다.

 

3년 이상 뜻 앞에 충성할 기력이 없는 사람은 참가해서는 안 된다. 유언으로 예물을 후손에게 상속시킬 수 있는 자신이 없는 사람도 참가할 수 없다.

 

과거의 모든 후회의 조건과 곡절을 씻어 버리고 어린애의 입장으로 돌아가라. 어린애는 자기가 없다. 자기라는 의식과 소유관념을 망각해 버려라.

 

이 시간 여기서 가르치는 것에 어긋나면 생애의 조건으로 남아져 사탄의 참소를 받을 것이다.

 

* 고아 중의 고아가 돼라.

 

이번에 18세 이상 60세 이하 연령에 해당하는 사람은 전도에 참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