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강좌

양심이란 무엇인가? - 16가지.

◑ 양심이란 무엇인가? 

 

1. 선을 지향하는 마음.

- 성상적인 부분을 본심이라 하고 형상적인 부분을 양심이라고 한다. 

 

▣ 원리강론

- 생심과 육심과의 관계로 본 인간의 마음

 

062 생심과 육심과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같아서 그것들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영인체와 육신을 합성일체화하게 하여 창조목적을 지향하게 하는 하나의 작용체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은 타락되어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 선의 절대적인 기준도 알지 못하게 되었으나 위와 같이 창조된 본성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은 항상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니 이것을 양심이라고 한다.  

 

그런데 타락 인간은 선의 절대적인 기준도 알지 못하여 양심의 절대적인 기준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선에 기준을 달리 함에 따라서 양심의 기준도 달라지게 되어 양심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흔히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의 성상적인 부분을 본심이라 하고 그 형상적인 부분을 양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무지에 의하여 창조본연의 것과 기 기준을 달리 한 선을 세우게 될 때에도 양심은 그 선을 지향하지만 본심은 이에 반발하여 양심을 그 본심이 지향하는 곳으로 돌이키도록 작용한다. 

 

사탄의 구애를 당하고 있는 생심과 육심이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악을 지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작용체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우리는 사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심이나 양심은 이 사심에 반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사탄을 분립하고 하나님을 상대하게 함으로써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하게 하는 것이다.  

 

 

▣ 원리강론

-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역사다. 

 

116 인간의 본심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시공을 초월하여 선을 지향하고 있는가? 그것은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선의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비록 타락 인간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선의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으나 선을 추구하는 그 본심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모든 사랑의 본질을 그냥 그대로 대신 이어받은 것이 양심이다. 

- 하나님은 영원한 참부모. 절대적 선한 스승. 절대적 주인이시다. 

정오정착 

기도할 때 하늘 보고 하지 말아요. 양심 보고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 1998.3.11(수) 한남동.

291-183 제일 힘든 게 배고픈 것, 잠자는 것, 성 문제 이 3대 원칙입니다.

 

* 양심이 뭐냐? 3대 주체사상이라고 그랬지요? 양심은 뭐냐? 하나님의 모든 사랑의 본질을 그냥 그대로 대신 이어받은 것이 양심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지요? 하나님은 영원한 참부모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은 스승입니다. 절대적인 선한 스승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에요. 절대적인 주인입니다.

 

그러한 주체되는 하나님이 대상 되는 인간 앞에 하나님의 주인 될 수 있는 부모 자격, 부모를 대신한 것을 꽂아 준 것이 양심이고 또 최고의 선생을 대신해 꽂아 준 것이 양심이고 천년만년 주인을 대신해 꽂아준 것이 양심입니다. 3대 주인을 양심 보따리에 넣어 가지고 하나님 자신의 뭐라고 할까, 하나님의 열매와 같이 심어 준 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다 이거예요.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습니다. 양심은? 주인보다 앞서 있다 이거예요. 부모나 스승과 주인은 갈라져 살 수 있어요, 갈라질 수 있지요? 양심은 갈라질 수 없습니다. 영원히 갈라지지 않아요. 그 양심의 마음, 양심이 하라는 대로 하면 완전히 하나님의 직계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아침과 오후가 되면 그림자가 생기지만 오정이 되면 그림자가 없어져요. 실체라구요. 그림자가 없으니 이 자리에 들어가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본체와 이퀄이 되어야 그림자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여러분의 일생을 모르는 게 없어요. 하나님 자신이 들어와 있어요. 아는 것이 하나님 자신이요, 주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 이렇게 귀한 보배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심어줬다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보다 높여야 할 양심이요, 자기 어떠한 스승보다도 높여야 할 양심이요, ···

 

*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몸 마음 전체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이 주체와 대상이 같은 자리에서 사랑의 상대적 자리를 점령할 수 있는 거라구요. 무섭고 귀한 주인을 나에게 심어준 것이 양심입니다.

 

그러니 양심의 명령을 부모의 명령보다 더 존중시해야 됩니다. 어떠한 효자보다도, 어떠한 충신보다도, 어떠한 성인보다도, 어떠한 성자보다도 더 존중시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늘 보고 하지 말아요. 양심 보고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3. 양심은 부모 대신. 하나님 대신이다. 

 

▣ 1998.3.28(토) 성약시대 축복가정 안착. 중앙수련원.

- 제39회 참부모의 날.

  

292-109 良心은 부모보다 앞서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양심은? 곽정환! 무엇보다 앞서 있다고? (부모보다 앞서 있습니다.) 둘째 번? (스승보다 앞서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래,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자기보다 아들딸, 상대가 훌륭하기를 바라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하나님으로 볼 때 제일 귀한 것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는 거예요. 

 

양심은 나하고 한순간이라도 갈라지지 않아요. 그 갈라지지 않는 그분이 누구냐 하면 부모 중의 부모입니다. 부모 대신 와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근본 되는 하나님 대신 와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혈통적 조상보다 앞서 있다는 거예요. 선생 중에서도 최고의 선생이 하나님이라구요.

 

4.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목적, 합할 수 있는 제1의 기반이 양심이다.

 

▣ 1972.5.14(일) 하나님과 우리 인간.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 야외예배.

 

056-137 우리 인간에게는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양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만일 하나님이 있다는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그 하나님은 창조주요 그 하나님이 지은 인간은 피조물인데 그런 피조물과 창조주가 합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목적을 제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면 그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의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점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힘의 작용체를 만들지 않고는 인간을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니 절대자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합할 수 있는 제1의 기반, 접촉할 수 있는 제1의 터전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대해서 그 목적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게끔 우리 인간 가운데 작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존속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이 바라는 제3의 목적 기준 앞에 도달해서 하나님도 기쁘고 인간도 좋아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절대자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을 때 인간을 창조하던 창조목적의 기준과 지음 받은 우리 인간으로서 가야 할 목적의 기준은 서로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하나될 수 있는 데에서 하나님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인간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인간 가운데 절대적인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것을 찾아 올라갈 수 있는 무슨 작용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이 없게 되면 도달할 수 없으니 그것을 바라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끌고 나를 자극시켜 가지고 끌어내어 밀어주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 힘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는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양심이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면 높아지기를 바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지금 현재의 자기보다 나아져라 나아져라 하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이 작용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5. 본연의 양심은 하나님의 참사랑과 직통하는 것입니다. 

 

▣ 1998.4.26(일) 벨베디아. 제4차 아담 완성권과 지상천국.

292-244 본연의 양심은 하나님의 참사랑과 직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같아지는 거예요. 완전한 플러스인 하나님 앞에 완전한 마이너스가 됨으로써 하나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완성은 문제없습니다.

 

6. 양심은 선악을 안다.

 

▣ 1999.4.16(금) 중앙수련원. 제40회 참부모의 날은 천지개벽시대를 연다.

301-021 양심은 직고입니다. 양심은 선악을 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선악을 알아요? 선악을 알아요, 몰라요? 압니다.

 

▣ 1963.7.1(월) 전 본부교회. 공적 생활과 축복.

012-277 양심은 좋은 곳, 선한 곳을 지향한다.

 

▣ 1963.11.8(금) 나는 어떠한 존재냐. 전본부교회.

- 제1회 성화 학생 총동창회.

 

013-106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심은 선을 기반으로 움직이기에 양심을 중심 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참된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준비하고 참된 것을 실천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 의무입니다. 사람이 그러할진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시다면 그 창조주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7. 살아 있는 하나님. 

 

▣ 1994.3.13(일) 본부교회. 참사랑은 신인 세계 완성의 꽃.

256-201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이에요. 양심을 교육하겠다는 사람 봤어요? 양심을 교육하겠다는 사람은 못 봤어요.

 

* 양심이 누구냐 하면 내 주인입니다. 스승입니다. 양심은 주인이 되는 겁니다. 양심은 부모로부터 계대를 이은 제2의 부모입니다. 양심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은 부모의 명령을 지킨 이상으로 통과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부모의 부모의 부모보다 앞서는 거예요. 양심은 스승의 가르침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아는 것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다면 양심이 자기에 대해서 먼저 알겠어요, 하나님이 자기가 하는 일을 먼저 알겠어요? 양심이 먼저 아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냐? 하나님의 상대예요. 또 다른 인격이에요. 하나님이 먼저 안다고 하게 되면 양심이 하나의 속성이 되기 때문에 부속품이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양심은 또 다른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남자 하나님 앞에 여자 격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하나님을 완결시킬 수 있는 것이 양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양심은 하나님의 상대이기 때문에 주체 성격과 다른 겁니다.

 

* 그렇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으면 절대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어요. 하나님은 내 안에 다 있어요. 양심이 다 가려 가지고 명령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영계를 통하게 된다면 마음이 말을 해요. "하나님, 어디 있소?" 하면 "야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배 속에서 얘기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배 속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중심 곳에서 말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밭을 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거예요. 마음이 수직이 서 가지고 수평으로 운동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의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표준자가 되어야 된다구요. 그러니 모르는 것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이러한 모든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것은 그러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벌써 틀리면 찌그러진다구요. 돌려보면 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돌려보면 걸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창조원리에서는 하나님의 95% 창조에 또 다른 5%를 보탬으로 말미암아, 협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같이 공동 창조주의 자리에 선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우리 일상생활에 양심을 중심 삼고 볼 때에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인 동시에 나에게 있어서는 제1의 하나님보다도 더 가까운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양심을 모실 줄 아는 사람은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종교가 필요 없다는, 무종교의 필요성을 이러한 원칙에서 논리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잘 알고 나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귀한 양심을 갖고 있는데, 하나님 대신 존재인데 종교를 무엇 때문에 믿어요? 양심이 하자는 대로 하면 종교 완성자가 되기 때문에 무사통과입니다.

 

256-203 그래서 양심의 명령에 절대복종할 수 있는 일일 생활을 강구하라 이거예요. 그래, 어때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사기꾼들입니다. 망하는 거라구요.

 

양심이 누구냐? 살아 있는 하나님이에요.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사지백체를 중심 삼아 가지고 오관으로 나를 凝視응시하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이 완성의 자리에 못 나가서 행차를 못할 뿐이라구요.

 

8. 양심은 못 속인다.

 

▣ 1997.4.15(화) 제주 국제연수원. 일심 통일.

- 문씨 한씨 종친회 특별 수련 개회식.

 

284-023 양심은 못 속입니다. 여러분이 전부 다 비디오테이프와 마찬가지로 전부 기록돼요. 일생 동안 산 것을 보면 가게 되면 번호가, 영계에 번호가 있어요.

 

심령 상태의 빛을 벌써 알고 누구 올 때 데리고 와요. 데려 오면 어디 넘버 몇 번해서 18번이면 18번을 꼭 누르면 순식간에 알아요. 나서부터 순식간에 아는 겁니다. 어쩔 수 없어요. 양심은 통곡하는 거예요. 그 비례에 따라 지옥과 천국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런 놀음이 연결되었다는 걸 여러분이 모른다구요.

 

그런 걸 다 알기 때문에 문 총재가 이런 놀음하는 것입니다. 문 총재가 이 미지의 세계를 개발한 챔피언입니다. 아시겠어요?

 

영계의 제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문 총재에게 배워야 됩니다. 그런 얘기를 하게 되면 무슨 도깨비장난 같고 믿지 못할 일이 참 많지요. 그 세계가 그냥 함부로 주먹구구로서 움직이지 않아요. 수리적인 세계예요. 이론적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과학자의 왕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천국이 제멋대로 안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까 인간 세계에 내려와 가지고 ···.

 

284-027 이제부터 여러분이 양심은 하늘의 基地요 육신은 地獄의 基地인 것을 알았으니 어디를 존중시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행하게 될 때는 하늘나라의 사람으로 변천해 갈 것입니다. 아멘. 가능성이 있어요 없어요? 가능성이 절대적이에요. 절대적입니다. 

 

9. 양심은 하나님이 믿으실 수 있는 집이요, 하나님께서 같이 사실 수 있는 집이다.

 

▣ 1962.12.10(월) 전본부교회.  양심을 스승 삼고 나가서 싸우라.

- 제14회 전국 전도사 수련회 수료식.

 

012-97 함부로 믿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잘못 배우면 큰일 납니다. 마음 놓고 살 수도 없습니다. 빨갱이와 살다가는 큰일나지 않습니까? 싸움도 잘못 싸웠다가는 큰일납니다. 함부로 싸울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은 모든 것을 버리며 가는 길이며 양심을 찾아 나아가는 길입니다. 양심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것을 알면 됩니다. 과거에는 양심에 반대되는 것과는 싸울 용기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양심은 무엇이뇨? 하나님께서 믿으실 수 있는 집이요, 하나님께서 같이 사실 수 있는 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인간을 기다리십니다.

 

* 오히려 싸우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잘못하면 사탄이 집어가고 맙니다.

 

* 양심적인 사람은 이 세상에는 고충밖에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양심은 선을 찾아가라고 뒤에서 명령하고 있습니다.

 

012-098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만사를 해결하는 절대의 중심인 그분과 나와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의 중심인 그분과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요, 마음은 아버지요, 몸은 아들로서 부자가 동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아버지 대신, 몸은 아들의 대신이라는 입장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명령을 받는다 할진대 천하의 누구도 이것을 빼앗지 못합니다.

 

양심의 명령을 받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명령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의 소원은 아버지의 소원인 동시에 나의 소원이요, 몸의 소원이요, 만물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한 양심은 내 몸도, 천지 만물도 모두 좋아합니다.

 

* 소원은 하나의 인연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내 소원, 즉 양심의 소원, 몸의 소원과 만물의 소원이 하나의 인연 속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내 양심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의 소원도, 몸의 소원도, 만물의 소원도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남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이요, 내가 남겨 놓아야 할 것도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입니다. 이것이 3대 요건입니다.

 

* 때문에 제일 귀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을 알아 이루어 드리는 사람입니다.

 

* 인간이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과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타락의 원인입니다.

 

* 그렇게 못 되어 있는 것을 되도록 하려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복귀요, 복귀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보다 배 이상 힘이 드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쉽지만 양심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배 이상 힘이 듭니다. 하물며 천지를 위하여 사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법도대로 하시기에 힘이 드시는 것입니다.

 

10. 종적인 나.

 

▣ 1993.1.1(금) 일본 축복가정의 사명. 국제연수원.

- 일본 간부 및 회원. 일본어.

 

243-027 하나님은 참된 사랑을 중심으로 한 종적인 부모이고 참아버지는 횡적인 부모입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90각도로 일체 된 횡적인 아버지입니다.

 

종적인 아버지의 혈통을 계승한 것이 종적인 양심입니다. 양심은 도대체 뭐냐? 종적인 나입니다. 그러면 육신은 뭐냐? 횡적인 나입니다.

 

이것이 창조주인 종적 부모와 사랑의 상대가 되어서 창조이상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체 아담과 해와입니다.

 

실체 아담과 해와가 성숙해 가지고 일체된 결혼식을 하는 것은 아담 속에 있던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플러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숙한 해와 속에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이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결혼하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결혼식입니다. 누구 결혼식이라구요? 하나님의 결혼식입니다.  

 

▣ 1999.9.10(금) 중앙수련원. 삼십절 선포식.

304-114 양심과 육신이 수직과 수평의 관계가 돼 있습니다. 양심은 종적입니다. 그리고 육신은 횡적입니다.

 

11. 종적 부모를 이어받을 수 있는 혈통적 상속 기준이다.

 

▣ 1989.6.18(일) 한국은 인류의 조국. 본부교회.

190-128 사람에 있어서 양심이 뭐냐? 왜 양심이 있어요? 양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종적 부모를 이어받을 수 있는 혈통적 상속 기준이요, 몸뚱이는 뭐냐 하면 90각도가 돼 가지고 그 종적인 참부모 앞에 횡적인 참부모와 사랑으로 일체화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이 두 기준에 보조 맞추기 위한 몸과 마음이 있어요. 몸은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나 앞에 절대적인 횡적인 수평선을 그릴 수 있는 이 기준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횡적인 나요, 양심은 뭐라구요? 종적이에요.

 

12.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

-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한다. 

 

▣ 1991.8.28(수) 세계 평화로 가는 길.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 세계평화연합 창설대회.

 

219-118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을 향해 달리려 합니다. 여기에 몸은 반항을 합니다. 몸은 자기만 편하려 하고 이기적이며 본능적 요구에 따라 육욕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양심은 이 몸을 叱責질책하여 마음에 순응케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항상 피나는 갈등과 투쟁이 한 몸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역사를 두고 모든 종교는 내 몸을 치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종교는 육욕을 제어하고 몸을 마음에 굴복시키는 도장입니다. 종교는 인간을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이끌어 가는 道場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지 않고서는 내 몸을 정복할 자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참사랑과 진리의 힘을 중심 삼고 주체되는 마음은 대상 되는 몸을 거느리고 하나님과 일체 이상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가 말하는 완성한 인간입니다.

 

13. 양심은 타락한 세상의 땅끝에 선 초소.

 

▣ 1968.7.14(일) 전본부교회. 보다 중요한 것.

020-316 여러분의 몸이 사탄의 것이라 할지라도 마음은 하나님을 중심 삼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제일선 초소는 양심이 되는 것이요, 사탄의 제일선은 인간의 몸뚱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哨所(ばんごや 番小屋 checkpoint, guard post, sentry post)하고 사탄의 일선하고 싸우면 번번이 양심이 졌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타락한 세상의 땅끝에 선 초소와 마찬가지입니다. 몸뚱이는 사탄 세계의 일선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양심이 몸뚱이한테 번번이 졌습니다. 그렇지만 종교의 이념을 중심 삼고 승리의 기반을 넓혀 왔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몸뚱이를 위주로 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런 사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가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 1969.1.1(수) 전본부교회. 전면적인 진격을 계속하자.

- 참하나님의 날

 

021-344 양심은 언제나 인간이 나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참소합니다. 또 양심은 나쁜 것을 制止하는 역할을 합니다. 양심은 누구에게나 다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미지수입니다. 이 양심은 "나쁜 것은 나쁘고 좋은 것은 좋다"는 두 가지밖에 모릅니다. 잘하면 기뻐하고 못하면 슬퍼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자연 작용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어서 서로 작용하지 않으면 힘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힘은 혼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대상이라 할 때, 내가 마음에 나쁘다고 느껴져도 주체가 있어야 되고 좋다고 느껴져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에 이성성상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노래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춤을 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목적도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인생길 또한 무엇을 찾아 나가는 길이냐 하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 하나님은 현실적인 하나님입니다.

 

14.제2의 하나님. 

 

1) 하나님의 말이다. 

2) 하나님의 마음이다. 

 

▣ 1993.1.5(화) 제주 국제연수원. 참된 나를 찾아서.

252-321 양심은 언제나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여러분의 몸뚱이가 나쁜 일을 할 때 양심이 경고해요, 안 해요? "이놈아, 그런 건 하지 마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하는 말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완성하지 않은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사탄을 대해서 명령할 수 있는 자리를 취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사탄이 이걸 위협해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요것을 막아 치워야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양심은 뭐냐? 양심은 뭐냐 하면 제2의 하나님입니다. 왜 두 번째예요? 하나님이 주체라면 양심은 대상관계에 있습니다. 두 번째는 종적인 것이 아니라 횡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체와 대등한 가치, 같은 수준에 설 수 있는 자격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라면 양심은 마이너스입니다. 이 둘이 하나되어야 돼요.

 

2) 하나님은 양심을 통하여 누구에게나 가르쳐 주신다. 

 

▣ 1969.1.5(일) 전본부교회. 귀향객.

022-033 먼저 가르쳐 주지 않고 가게 하는 하나님이라면 그는 원수다. 하나님은 각자의 양심을 통하여 누구에게나 가르쳐 주신다. 우리들은 그 양심을 얼마나 잘 모시고 있는가?

 

양심은 인간이 걸을 때나 먹을 때나 선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양심을 벗 삼고 주인으로 삼고 그 말을 들어야 한다.

 

양심은 깊은 땅속에서도 작용한다. 하나님도 그렇게 작용하신다.

 

양심은 몸과 결연하지 못하고 고독단신으로 살다가 간다. 양심이 소원성취하여 춤을 추다가 가야겠는데 엉엉 울다가 원귀가 되어 가는 것과 같다.

 

주인인 양심을 푸대접하지 말라.

 

양심에 가책받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 

 

15. 사람의 양심은 지극히 거룩하다. 

 

▣ 1965.11.2(화) 전주교회. 인류의 행복과 통일 신도의 길.

015-283 사람의 양심은 지극히 거룩하다.

 

1)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게 뭐냐 할 때 양심과 사랑이다 

 

▣ 1991.4.15(월) 참부모님의 승리권을 계승하자. 세계선교본부.

- 제32회 참부모의 날.

 

216-313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게 뭐냐 할 때 양심과 사랑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는데 "음, 나는 필요 없다, 아니다!" 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변할 줄 모르는 양심은 변할 줄 모르는 사랑을 찾고 있다 이게 정답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16. 인생의 나침반 

 

▣ 1994.1.23(일) 성화의 젊은이, 통일의 젊은이. 중앙수련원.

- 제29회 성화학생총회.

 

253-173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 하면 양심의 뿌리에 계십니다. 일생의 바다를 항해하는데 나침반을 따라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침반은 출발서부터 끝까지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 나침반을 보고 갈 때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목적하는 항구를 찾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의 나침반과 같은 것이 무엇이라고요? 양심입니다.

양심을 따라가면 자기가 태어난 항구를 출발해서 항해 노정을 통해서 목적지까지 틀림없이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앙강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심과 본심  (0) 2025.02.25
양심작용과 양심의 가책, 양심과 타락 등  (0) 2025.02.25
3대 양심선언과 3대 주체사상  (0) 2025.02.25
전환Turning Point의 때.  (0) 2025.02.14
일생에 대한 반성 - 4가지.  (0) 202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