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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강좌

양심과 본심

◑ 세계경전 - 양심과 타고난 선

120 양심은 우리가 선을 행하도록 추구하고 악을 행하는 성향을 막는 내면의 神的 光彩이다.

* 보배 같은 스승이다.

양심은 하나님이 膳賜선사한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그릇된 판단들로 양심을 洗腦하는 것은 실로 인간의 靈魂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다.  

 

◑ 본심과 양심

 

1. 선을 지향하는 마음.

- 성상적인 부분을 본심이라 하고 형상적인 부분을 양심이라고 한다. 

 

▣ 원리강론

- 생심과 육심과의 관계로 본 인간의 마음

 

062 생심과 육심과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같아서 그것들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영인체와 육신을 합성일체화하게 하여 창조목적을 지향하게 하는 하나의 작용체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은 타락되어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 선의 절대적인 기준도 알지 못하게 되었으나 위와 같이 창조된 본성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은 항상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니 이것을 양심이라고 한다.  

 

그런데 타락 인간은 선의 절대적인 기준도 알지 못하여 양심의 절대적인 기준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선에 기준을 달리 함에 따라서 양심의 기준도 달라지게 되어 양심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흔히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의 성상적인 부분을 본심이라 하고 그 형상적인 부분을 양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무지에 의하여 창조본연의 것과 기 기준을 달리 한 선을 세우게 될 때에도 양심은 그 선을 지향하지만 본심은 이에 반발하여 양심을 그 본심이 지향하는 곳으로 돌이키도록 작용한다. 

 

사탄의 구애를 당하고 있는 생심과 육심이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악을 지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작용체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우리는 사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심이나 양심은 이 사심에 반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사탄을 분립하고 하나님을 상대하게 함으로써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하게 하는 것이다.  

 

◑ 본심은 변하지 않지만 양심은 여러 가지의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 1965. 10. 7(목) 동경교회. 우주의 근본과 인간의 가치.

- 식구님들이 질의응답

 

015-159 문: 우리에게는 하나님도 사탄도 간섭할 수 없는 자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때에 우리들은 자기의식권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필연적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지요?

 

답: 자기의식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 편을 중심 삼은 자기의식과 육심을 중심 삼은 자기의식의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육심을 중심할 때는 결연히 잘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 삼은 자기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지켜야 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문: 본심과 일치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입니까?

 

답: 그렇다. 양심은 변한다. 본심은 변하지 않지만 양심은 여러 가지의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 1961.2.12(일) 전본부교회.  모시고 싶은 아버지.

011-091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타락의 후손이요, 타락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갖고 있는 양심을 어느 정도는 용납하시지만 전체적으로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은 환경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웠던 본연의 양심의 기준은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양심의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양심의 기준입니다. 또 몸도 여러분의 몸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이 기준입니다. 또 생활도 여러분의 생활이 기준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활이 기준입니다.

 

▣ 1970.10.3(토) 선악의 출발의 선후. 전본부교회.

- 제2회 전국성화대학생총회.

 

035-058 우리의 양심은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가을에 밤나무의 밤송이가 완전히 여물어서 껍데기가 벌어져 떨어지는 알밤과 같으면 양심이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은 아직까지 미숙한 밤톨과 같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성숙되어 타락한 것이 아니라 미숙한 때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 본심 

 

▣ 원리강론 총서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될 때 오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욕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 본의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그 욕망이 선보다도 악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를 맺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심은 이러한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지향하려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선한 욕망을 성취하려는 본심의 지향성과 이것과는 반대로 악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사심의 지향성이 동일한 개체 속에서 각기 상반된 목적을 앞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인간의 모순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 원리강론  2. 복귀섭리의 목적

113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의 본심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을가지고 시공을 초월하여 선을 지향하고 있는가? 그것은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선의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비록 타락 인간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선의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으나 선을 추구하는 그 본심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들로써 엮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골 곳은 결국 선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 원리강론 제7절 복귀섭리로 본 역사발전

451 타락한 인간에게는 선을 지향하는 본심과 이 본심의 명령을 배반하고 악을 지향하는 사심이 있어서 이 두 마음이 항상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본심의 명령을 따르는 선행과 사심의 명령을 따르는 악행이 우리들의 한 몸에서 상충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러나 인간은 본심과 사심의 집요한 싸움 가운데서 악을 물리치고 선을 따르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행동도 점차 악행을 버리고 선을 행해 나아가는 방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타락된 인간에게도 이와 같이 선을 지향하는 본심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응하여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에 의하여 엮어져 내려언 역사는 선악이 교착되는 와중에서도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해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지향하는 종국적인 세계는 바로 선의 목적이 이루어진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1. 양심이 본연의 마음, 본심이다.

 

▣ 1998.11.15(일) 하나님과 자녀의 절대 주인과 소유권 완성하자. 벨베디아.

297-026 타락은 했을망정 지남철과 같이, 지남철은 하나님과 같은 방향을 갖추기 때문에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외와 같은 자리를 원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그다음에는 스승의 사랑, 그다음에는 주인의 사랑을 연결시켜 내 몸에 그 씨로 뿌려 준 것이 양심이라는 거예요. 그 양심은 본연의 마음, 본심이라는 거예요.

 

참사랑을 중심 삼고 그 셋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상대로서의 가치를 갖는 거예요. 횡적으로 그러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 본심입니다. 알겠어요?

 

2.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기준.

 

▣ 1966.1.2(일) 심판의 목적. 전본부교회.

016-105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고 악이 점령하고 있는 세상인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선한 사람을 길러 낼 것이냐? 이 천지를 창조한 주인이 있다면 이것은 그분에게 중대한 과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길러 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 땅을 대하여 섭리해 나오신 방향입니다. 그리고 이 선한 사람을 길러 내는 방편으로 세우신 것이 무엇이냐? 종교입니다. 종교. 아시겠어요?

 

그래서 타락한 그날로부터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타락했지만 인간의 본심 깊은 곳에는 종교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의 바탕 즉 신앙을 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악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인간에게 선만의 기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기준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목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본심은 언제나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지향하는 선의 목적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우리 양심은 우리가 선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3, 본심은 언제나 사랑을 찾아간다.

 

▣ 1992.6.21(일) 세계여성해방선포와 가정 정착. 한남동.

- 참부모님 귀국 환영대회.

 

231-305 인간의 본심의 마음은 언제나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남자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고 여자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4. 본심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에 의해서만 진정한 만족을 느낀다.

 

▣ 1983.11.25(금) 통일주의는 새 문화 혁명의 기초. 시카고 메리어트 호텔.

- 제12회 국제과학통일회의 기조 연설문.

 

129-302 둘째로 그들은(공산주의자들) 인간의 본심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에 의해서만 진정한 만족을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5. 본심은 창조주를 인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1982.10.5(화) 사회의 제 문제와 언론의 책임. 서울 롯데호텔.

- 제5차 세계언론인회의 개회 연설문.

 

120-100 인간의 본심은 우리의 창조주 또는 인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인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하나님을 인류의 아버지로 모시는 데서 하나의 세계 통일 가족이 구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 1968.7.14(일) 보다 중요한 것. 전본부교회.

020-306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본심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 시조가 타락하지 않고 선의 부모로서 이 우주 가운데 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이 번식되어 이 세계 인류가 되었다면 오늘날 인류가 하나님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공론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핏줄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대번에 몸으로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나무와 마찬가지로 거기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설명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지으셨다면 하나님은 창조를 잘못한 것입니다. 본래 인간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설명의 과정을 넘어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여야 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격리된 입장에서 출발되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벌어져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논의하는 이런 세계가 된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선한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변론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연히 안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배 속에서부터 젖 먹는 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나자마자 눈앞에 적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