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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극복 가인과 아벨

타락한 세계에서의 생활철학은 참고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 참고 견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에서의 생활철학은 참고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 어디까지 참고 견디어야 되느냐?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이다. 여기서부터 효의 도리가 시작된다. 

견디는 데는 目的이 있어야 된다.

감사하는 마음이 밑바침이 되지 못하면 참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 아무개야, 더 이상 참지 마라. 그 길을 더 이상 가지 마라." 하고 정지시키는 것이 복귀의 자리이다.

 

▣ 1971.5.4(화) 중앙 수련원. 신앙자의 주의점

- 축복가정부인 전도대원 수련회.

 

044-027 인내와 극복, 이 말이 뭐예요?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군요. 싫긴 싫지요?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 사람이 참고 견디며 살게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墮落했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報應(응보, 선악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길흉화복의 갚음)을 치르고 넘어가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인간 조상이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것을 탕감 복귀하려면 끝까지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는 사탄이 꼼짝 못 하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참고 견디어야 되느냐?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참고 견디어 나오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분이 누구라고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의 천품과 피살을 받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의 생활철학은 참고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라구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부터 효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이요, 충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나라도 세계도 해방의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좋은 세계도 환영이요, 나쁜 세계도 환영이니 지옥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하에서 참고 견뎌야 합니다.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5대가 한 집안에 사는 어느 한 종갓집에 종손 며느리로서 지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어떻게 5대가 되는 식구들과 함께 사는지 그 비결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골방에 들어가더니 독을 열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을 忍자가 서너 독에 꽉 차 있더라는 것입니다. 참을 忍 字. 참기만 했겠어요? 참고 견뎠다는 것입니다.

 

견디는 데는 目的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이 없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원수를 몽땅 포위해서 전멸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대표해서 주님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참아야 합니다. 그런 목적 관념이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참고 견디기만 하면 안 됩니다. 참고 견디기만 하고 "아이쿠 힘들어라." 하면 되겠어요? 참고 견디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 같지 않게끔 感謝하며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도 감사한 마음과 찬양하는 마음을 갖고 참고 견뎌야지 불만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오다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는 무엇이 필요하냐? 뭐라고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참지 못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밑바침이 되지 못하면 참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하느냐? 보라구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내려다보고 사는 거라구요. 올려다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래도 통일교회를 믿고 하나님을 알고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지도 않고 말씀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감사의 마음과 찬송의 마음을 앞 놓아 가면서 참고 견디는 곳에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 이상도 참겠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 아무개야, 더 이상 참지 마라. 그 길을 더 이상 가지 마라." 하고 정지시키는 것이 복귀의 자리입니다

 

감사와 참송의 마음을 가지고 참고 견디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셔서 "세상 가운데에 너 같은 아들이 어디에 있으며 딸이 어디에 있겠느냐? 지금 네가 하는 일을 딴 사람에게 시키겠다." 하시며 그를 안식의 자리, 하늘땅에 없는 복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옮겨 놓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 있는 정석온 노친네 알지요? 철산에 있던 감사패의 딸, 그들은 감사패인데 매를 맞아도 "매를 맞았으니 감사합니다. 핍박받았으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에게 욕을 먹었으니 감사합니다." 전부 감사로구만.

 

"내 사랑하는 아들딸을 하나님이 데려가서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과 갈라놓았으니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진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감사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저 感謝하고 讚頌해야 됩니다.

 

아침부터 부인이 바가지 긁고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서로 싸우고 죽는소리할 때도 "한 식구가 화가 났으니 감사합니다." 그래 보라구요. 세 사람만 그래 보세요.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10분 넘기나. "갈 데로 가라구. 아이구 모르겠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자극이 되면 전보다도 사이가 좋아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동네에서는 그들을 "감사패"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철산의 감사패 교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하, 그들은 대한민국에 큰 교육을 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교단이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해방 이후에도 몰리고 쫓기는 처참한 환경을 많이 당해 온 이 민족 앞에 이런 교단이 있는 것은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가까워 온다 그 말이거든요. 

 

그런 것을 볼 때 한국 백성은 망하지 않는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참고 견디며 감사와 찬송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뭘 해야 하느냐? 相扶相助(서로 부축하고 서로 도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도와주며 서로 도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같이 살고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해야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 하려면 세상에서 맨 처음 뭘 해야 된다구요? 악착같이 참고 넘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고맙기 때문에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나만 됐으면 됐지. 남들이야 문제가 안 된다. 이젠 됐으니 한 때가 되거든 나만 도망가면 된다."고 하면 되겠어요?  자기에게 있는 재산과 모든 것을 내놓고 줄을 달아 가지고 "어서 와라, 어서 와. 너희들 먼저 가라." 하며 다 간 후에 자신은 뒤에서 제일 늦게 가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와주고 구해 주며 서로 도움받기 위한 인연을 맺어야 통일된 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도와주어야 되겠어요? 감사 찬송하는 사람들이 먼저 도와주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도움받기 위해서 나가 있어요, 도움 주기 위해서 나가 있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참고 견뎌야 됩니다. 다음에는 감사 찬송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한 것이 별것 아니라 그것입니다. 그다음에는 相扶相助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