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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전통

성지 자료 - 천원사 2022.03.10.

1. 성지란 무엇인가

 

성지의 의의 모든 종교는 성지를 갖고 있다. 성지는 거룩한 땅, 신성한 곳으로 보통 종교 창시자 가 태어난 곳이며 그분의 발자취가 어린 곳이다. 성지는 종교인들이 소망을 영접하는 기점이요, 숭배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신앙인들은 성지를 순례하면서 정신적 안위를 얻고 자신들의 신앙을 돈독히 해 왔다. 우리들이 성지를 순례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성지를 찾는 것은 우리의 갈 길을 앞서가신 참부모님의 노정에서 참부모님의 심정과 각오와 결단을 상속받기 위함이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늘부모님의 뜻을 위해 일편단심 걸어가신 참부모님과 같은 길을 우리도 걷고자 함이다.

 

참부모로서 공식노정 출발을 준비하셨던 서울 흑석동 시절, 북한에서의 고난을 극복하시고 남하하시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하시기까지 노정, 협회 창립 이후 선교 확대와 하나님 나라와 평화세계 실현을 위한 발걸음을 성지 순례를 통해 새롭게 알아갈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1년에 한 곳이라도 성지를 순례하면서 자녀들에게 참부모님의 심정을 체휼케 하자. 이것이 전통을 세우는 것이요, 후손에게 전통을 상속하는 길이다.

 

성지 택정의 역사

 

1960년 참부모님 성혼 이후 3년 동안 가인 아벨 자녀가 일체화되어 사탄의 참소조건이 없는 가운데 참자녀의 날, 참만물의 날이 선포된 기대 위에 성지가 택정 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잃어버린 땅을 찾을 수 있는 시대권 내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참부모님께서는 1962년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청파동 1가 전본부교회를 중심으로 서울 일원에 5개 성지를 택정한 뒤 그곳의 흙과 돌을 채취하였으며 1965년 세계 40개국 순방 중에 각국의 성지를 택정하시고 그곳에 한국에서 가져온 흙과 돌을 묻으셨다.

 

이는 한국의 수도 서울 성지를 세계적으로 접붙여 주고 정성과 승리 기반을 동등한 기준에서 분배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참아버님께서는 36가정 72가정을 찾아 민족적 중심을 만들고 세계 국가형인 120가정을 세웠기 때문에 세계 국가 섭리시대로 들어가면서 40개국에 120개 성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성지 택정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 천지만물을 창조한 기준과 같다. 그러므로 아담 승리권의 심정 기준에서 하늘자녀 입장인 선교사를 각국에 파송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적 활동기반이 마련되었다.

 

성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가정과 같이 성별 된 곳이므로 그곳에 천사세계, 즉 영계 영인들이 협조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성지 택정은 경제 복귀의 터전을 마련하는 의미도 있었다. 성지 택정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 천지만물을 창조한 기준과 같기 때 문에 아담 승리권의 기준에서 하늘자녀 입장인 선교사를 각국에 파송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적 활동기반이 마련됐다.

 

1965년과 1966년 택정 된 120개 성지 중 한국의 성지는 모두 15곳으로 지방으로는 춘천 청주 대구 부산 광주 전주 대전 수원 등지였고 서울에서는 구진봉 인왕산 흑석동 태능 남산 도봉산 전본부교회였다.

 

<관련 말씀>

 

성지가 없이는 거룩한 사람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제물을 끌고 다닙니다. 성경에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으며···"(롬 3:10)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지와 성인이 있기 전에는 성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011-262, 1961.11.08)

 

대원들끼리는 삼위기대를 이루어 서로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지도록 하라. 대원들이 상봉하는 곳은 성별하고 만물복귀의 기준을 세우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 부 근을 지나는 식구들이 왕래 시에 들러서 기도하고 갈 수 있도록 하라. 이렇게 하여 성별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성지를 편답(遍踏)하는 관습을 기르도록 하라. 만물의 가치에 대한 자극으로 인하여 자기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쓰러진 것은 축복받은 것에 대한 애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음력 8월 이내에 성지 성별을 완료하라. 대원이 없는 곳도 성별해 두고 성별한 곳을 사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도해야 한다. 사방 8자 이상의 땅을 오전 0시 30분에 성별한다. 음력 9월 10일(다시 일자를 변경하 심) 이내로 각 지방의 성지를 결정하고 성별하라. (012-047, 1962.09.10.)

 

지난 3년간은 인간으로서 상속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할 기간이었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그 단계를 넘어서 만물복귀를 하는 해로 들어가니 앞으로는 계속 적으로 같은 표어를 쓴다. 그래서 성지 복귀도 필요한 것인데 어떻게 해서든지 성지를 사야 하고 일단 사게 되면 절대로 팔지 못한다. 살아도 성지 가까이에 가서 살고 죽더라도 성지 가까이에 가서 묻히려고 해야 된다. (012-119, 1963.01.01)

 

선생님 앞에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땅을 찾아야 할 세계적인 투쟁노정이 남아 있다. 이것이 이 땅에 온 선생님의 사명이다. 이것을 중심하고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는 것이 제2의 사명이요, 성별하지 않고도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 드는 것이 제3의 사명이다. 이 세 가지의 사명을 놓고 봉헌식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성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를 중심 삼고 하나되어 하늘과 연결지을 수 있어야 한다. (012-183, 1963.05.01.)

 

성지를 결정하면 타락하기 전의 천지가 생긴 기준과 같다. 사람을 창조하기 전의 기간에 만물이 생긴 것과 같다. 그것이 있으면 영계, 천사는 하나님의 창조에 협력해 아담을 만들 수가 있다. (015-150, 1965.10.07)

 

땅을 지음으로 인간을 창조한 것같이 성지가 나옴으로 새로운 자녀를 찾는 섭리를 할 수 있다. (015-274, 1965.10.24)

 

성지가 택해졌다는 것은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땅을 지은 것과 같은 입장이다. 여기에 성도가 서면 인간과 땅이 창조된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세계와 영계가 협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016-008, 1965.12.21)

 

만물의 날을 가졌기 때문에 성지를 택정하게 되었습니다. 땅이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영계의 천사세계가 비로소 아담을 창조하던 것과 같이 이 성지를 결정함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재창조 역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영계가 지상을 대하여 협조할 수 있는 기반이 닦아졌다는 것입니다. (153-182, 1963.11.16)

 

선생님은 1964년 12월 31일과 1965년 1월 1일 양일에 걸쳐서 7개의 성지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세워 국가적 기준에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를 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016-071, 1965.12.26)

 

예수님이 사시던 당시에는 성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있고 성지를 책정하여 그 성지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보다 복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017-143, 1966.12.11)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찾으려고 했던 개인 완성, 가정 완성, 종족 완성, 민족 완성의 기준 즉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가정과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종족과 하나님이 찾기 위한 민족적인 기준을 오늘날 우리가 넓혀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124쌍을 한국 각지에 배치하면서 성지를 택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 성지를 중심 삼고 일체적인 인연을 갖추어 나가며 사명을 다하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개인적인 사명을 다한 것이 기준이 되어 세계사적인 전체의 책임을 중심 삼고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승리의 시대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서울 지역에 동 서 남 북 4대 성지와 중앙성지 그리고 본부 등의 7개 성지를 선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승리의 시대가 오자 선생님은 1964년 12월 31일과 1965년 1윌 1일을 기해 7개 성지에서 흙과 돌을 가져다가 외국에 가지고 갈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이 흙과 돌은 무엇이냐?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아담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전부 다 사탄한테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찾아올 수 있는 승리적인 터전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땅을 찾을 수 있는 시대권 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러기에 성지에 있는 흙과 돌은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지를 선포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과 성지가 일치되면 어떠한 인연이 벌어지느냐?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가 복귀됐다는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성지를 선택하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사람과 땅과 만물을 복귀할 수 있는 땅을 갖추고 사람을 찾아 하 나님을 대할 수 있는 초점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또한 성지를 결정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는 영계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그때는 영계가 바로 천사세계입니다. 천사세계는 아담 해와가 빨리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생활권 내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사세계는 아담과 해와를 협조하여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평화의 터전을 이룩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성지는 하나님에게 축복받은 가정과 같이 성별 된 곳이므로 그곳에 영계가 협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016-075, 1965.12.26)

 

선생님은 우리 교회가 있는 곳에 갈 때마다 앞으로 아벨적인 존재의 터전을 복귀해야 되겠다는 기도를 하고 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위한 섭리적인 계획에 의하여 성지를 선택해 왔습니다. 성지를 택정해 온 것은 경제적인 복귀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각 곳에다 아벨적인 재정 지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각 나라에 갈 적마다 선생님의 이름으로 저금을 해 주었습니다. 미국에 가면 미국 돈으로, 일본에 가면 일본 돈으로, 독일에 가서는 독일 돈으로 예금통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016-079, 1965.12.26.)

 

주일날 예배 때에는 반드시 목욕재계하고 하나님 앞에 경배를 드리고 또한 성지에 찾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찾아 드는 사람이 없을망정 하나님이 그 부락을 굽어살피고 거기에 동역할 수 있는 심정적인 터전을 닦아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혼자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그 자리는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하시니 절대로 외롭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3년 이상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였는데도 그 동네에서 찾는 자가 없다면 그 동네는 망하는 것입니다. (017-293, 1967.02.15.)

 

앞으로 세계 사람들이 다 한국에 오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한국은 관광지밖에 될 게 없습니다. 공업지도 없고 농사 지을 데도 없게 돼요. 관광지로서 한국은 경치가 참 좋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한국만큼 아름다운 나라가 없습니다. 어디 가든지 참 묘하고 귀하고 그래요. 각국 지도자들은 한국의 성지순례를 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래, 지금 목사들이 성지라고 해서 순례하고 있지요? 이 운동이 정착 돼야 한국 통일교회는 빨리 발전할 수 있습니다. (173-073, 1988.01.03)

 

이제 통일교회는 국민학교 4학년부터 성지를 참배하게 해야 됩니다. 4학년 때는 4학년 때 가는 성지를 정해서 반드시 참배해야 되고 그다음에 5학년 때는 5학년 때 가는 성지를 정해서 반드시 참배해야 되고 6학년 때는 6학년 때 가는 성지를 정해서 반드시 참배해야 돼요. 그다음에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도 물론이고 대학교 4학년까지 전부 다 순례의 코스를 정해서 참배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을 준비해야 돼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소견입니다. 이것만 해 놓으면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인가를 다 압니다. 국민학교 때 안 갔으면 탕감법에 있어서 커서라도 가야 돼요. 중고등학교 때 안 갔으면 커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안 갈 수 없다구요. 이것을 패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만 만들어 놓으면 교육을 안 해도 전통을 따라서···. 선생님이 남긴 역사적 전통을 한 보 한 보 거쳤다는 해방감에 놀라운 자신을 발견할 때 그 결의와 다짐함이 얼마나 귀하겠어요!(225-313, 1992.01.26)

 

지상에 있는 수많은 종교들은 자기 개인 구원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오늘 통일교회 식구들의 모습들은 일국을 해방하고 난 후에 내가 해방되겠다는 구원의 도를 찾아 나섰습니다. 하나의 세계를 해방하고 나서 내 해방 길이 있어야 된다고 알고 왔습니다. 그 과정은 비참했지만 사랑으로 얼룩진 길이었기 때문에 천세만세 만민이 가진 오관의 감촉으로 더듬고 기억으로 남기려고 하는 보물적인 기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생애의 과정은 비참하였지만 내가 살았던 부산 피난민 시절의 땅은 통일가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그 옛날 외로운 방에서 눈물지으며 참의 길을 찾아 허덕이던 그곳에 오늘날 통일교회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174-055, 1988.02.23.)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살았던 곳은 앞으로 성지가 됩니다. 조국의 땅이라는 것은 선조들이 남긴 유적이 많이 곳이에요. 유적으로 남길 수 있는 세계의 성지와 성물은 나라를 위하더라도 팔 수 없는 것입니다. (242-177, 1993.01.01.) 

 

2 심정 상속을 위한 세계성지택정 이야기 한국의 세계성지들

 

심정 상속을 위한 세계성지택정 이야기

: 한국의 세계성지들 임현진 교수(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 “몰리고 쫓길 때 기도하러 갈 곳이 없었던 우리에게 이제는 하나님 앞에 사정할 수 있는 성지를 택정한 것이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승리의 팻말을 꽂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 천일국 완성의 시대에서 고난의 탕감복귀시대 기억하기 천일국 9년, 우리는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감격적인 승리의 현장을 목격하는 천주사적 증인이 되었다. 참부모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사랑 이상의 실체로 창조한 인간의 타락으로 무구한 역사를 슬픔과 고통의 심정으로 침묵해 오셨음을 증언해 왔다. 그런데 올 1월 15일과 31일 한국 천정궁과 미국 뉴욕에서 3차에 걸쳐 ‘만왕의 왕 하나님 해방권 대관식’이 거행되면서 하나님께서 완전한 섭리의 주재자로 복권되는 대역사가 있었다. 참부모님을 중심한 통일운동의 역사적 결실이 하나님의 해방 석방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또한 통일운동의 역사는 참부모님께서 하나님의 뜻 성사를 위해 세상의 몰이해와 핍박으로 여섯 번 옥고를 치르는 등 고난의 생애를 감내해 오셨음을 고백하고 있다. 세간의 불편한 시선들은 섭리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했었다.

 

그런데 참아버님의 구십 성상을 기념하며 발간된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김영사)로 인하여 그 숭고한 생의 가치를 전 세계인이 새롭게 이해하는 대역사가 있었다. 참부모님의 성혼 50회 금혼식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 55주년을 맞아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의 삼 시대권 대승리를 가져올 섭리적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2013년 1월 13일 천일국 완성을 향한 통일운동은 축복과 감사의 후천개벽시대에 맞춰 실세화, 전문화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뜻에 대한 내적인 희생과 열정을 우리의 외적인 문화적 토양 위에서 화려하게 꽃 피워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도전의 패러다임 은 통일운동이 겪어 온 고난의 탕감복귀시대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세워져야 한다.

 

통일운동의 승리는 몰리고 쫓기는 환경에서도 말씀 앞에 절대복종해 온 통일공동체의 심정적인 사연들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제1차 세계순회노정을 중심한 120개 세계 성지 택정 노정은 천일국 시대 꼭 탐구되어야 할 역사적 주제이다. 왜냐하면 성지 택정이 세계적 주권을 하늘 편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택한 성지를 세계적으로 연결하는 과정이었기 1)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16권 (1986), 262. 때문이다.

 

한반도의 중앙 7개 성지와 지방 8개 성지를 전 세계 40개국 105개 성지와 연결하여 세계를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택지로 복귀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던 것이다. 인간 구원을 위한 축복 결혼식 세계 성지의 택정은 1960년 4월 11일 참부모님의 역사적인 성혼식과 더불어 전개된 제1차 7년 노정의 섭리사적 대사건이었다. 참부모님께서는 성혼 이후 본격적으로 타락한 인간과 사탄 주권 하에서 탄식하는 땅과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구원섭리를 펼치 셨는데 그중 첫째 방법은 축복결혼을 통한 인간의 구원이었다. 이른바 구원의 첫 수레바퀴는 참부모님의 성혼과 더불어 시작된 축복결혼식이다. 특히 제1차 7년 노정의 전 3년 노정기간 동안 1960년 4월 16일 3가정, 1961년 5월 15일 33가정, 1962년 6월 4일 72가정, 1963년 7월 24일 124가정 축복이 거행되었 다. 36가정은 인류조상을 복귀하는 아담시대 가정형이었으며, 72가정은 하나님 아래 한 종족 또는 민족형으로 택함을 받았다. 124가정은 120국가를 대표한 국가형으로서 평면적인 세계를 복귀하는 가정으로 축복 받았다. 뜻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갖고 희 생과 헌신의 삶을 결단한 선배 가정의 축복은 전세계 인류의 축복을 상징한 것이었 다. 실제로 이들 선배가정은 축복 받은 후 양가에 격식을 갖추거나 신혼여행을 할 여유 도 없이 임지활동을 출발했다. 참아버님께서는 부모의 심정과 종의 몸으로 행하고, 전 통으로 남길 눈물과 땀과 피를 흘려야 하며, 뜻을 위해 충성하라고 격려하셨다. 선배 가정들은 말씀에 따라 매년 여름과 겨울 40일 계몽전도에 헌신하며 참부모님의 뜻을 이루는데 절대적으로 헌신해야 했다. 말씀에 따르면,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 성장한 인 간은 완성 아담의 몸 속 씨앗의 입장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온전한 구원을 받기 위 해서 참자녀님과 쌍태의 입장에서 복중복귀하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 선배가정들은 참가정의 자녀된 입장에서 전도활동에 일제히 나서는 한편 그 고생을 조건으로 하여 참부모님의 태중에서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은 값비싼 축복과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예진님 탄생 3일을 기념하던 1961년 1월 29일 주일 참아버님께서는 식 구들에게 쌀·콩·밤을 분배하고 밥과 미역국과 우유를 먹이게 하셨다. 또 10환짜리 동 전을 분배하셨다. 원죄 없는 참자녀님의 탄생과 더불어 축복가정이 참부모님의 하늘 적인 사위기대와 일체된 입장에서 하늘 앞에 복귀되는 축복이 있었던 것이다. 모든 축복가정은 참가정의 확대된 일원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드릴 정예용사 이자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참부모님을 중심한 세계적 종족편성이 축복을 통해 성취되었고, 이들의 전적인 헌신 기반 위에서 외적으로 계몽전도, 원리운동, 승공운동, 초교파운동, 해외선교 등 세계 적인 통일교회 판도가 형성될 수 있었다. 잃어버린 땅과 만물을 복귀하는 성지택정 섭리 - 11 - 한편 구원의 둘째 수레바퀴는 잃어버린 땅과 만물을 찾기 위한 성지 택정 섭리였다. 사탄 주권 하에서 되찾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관권 속에서 생활하고 활동하려면 성 별된 택지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참부모님께서는 1962년 9월 10일부터 음력 9월 10일(10월 8일)까지 식구들로 하여금 전국 지방성지를 선정하고 성별하도록 지시 하셨다. 가인권 자녀들이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성별된 땅을 사수하고 정성 드리면 서 만물복귀의 기준을 세우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사방 8자 이상의 땅을 오전 0시 30분을 기해 성별하여 성지로 택정하는 운동이 펼쳐졌다. 특히 참아버 님의 직접 지시에 따라 서울 북쪽 삼청공원 구진봉, 중앙 남산 장충공원 성지(10/5, 유효원, 김영휘, 곽정환 참석), 서울 남쪽 흑석동공원, 동쪽 국유림 태릉 성지(10/6, 김영휘, 곽정환, 한인수 참석), 서울 서쪽 인왕산 성지(10/7, 김영휘, 곽정환 참석)가 차례로 택정되었다. 이런 기대 위에 참부모님께서는 세계 120개 국가를 대표하는 124가정 축복을 마치 고 나서 메시아의 권한으로 ‘땅’을 복귀하는 섭리를 본격화하신다. 1964년 12월 31일 과 1965년 1월 1일을 기해 식구들에 의해 택정된 서울지역 5개 성지와 본부교회의 흙과 돌을 채취하도록 지시하셨다. 이 때 채취한 흙과 돌을 가지고 참부모님께서는 1965년 1월 28일 일본 도쿄를 첫 기착지로 삼으시고 제1차 세계순회를 떠나셨다. 이 후 일본(8개소), 미국(55개소), 캐나다, 파나마, 콜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이상 1개소), 독일(3개소), 네덜란 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이상 1개소), 스위스(2개소),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 아, 이탈리아, 바티칸, 그리스, 이집트(이상 1개소), 요르단(3개소),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 이란, 인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타이, 베트남, 필리핀, 홍콩, 대만(이상 1 개소) 등을 거치며 40개국 105개 성지를 택정하시고, 그곳에 한국 서울에서 가져온 흙과 돌을 심어두었다. 1965년 10월 10일 귀국하실 때까지 총 256일간 서양 24개 국가, 동양 16개 국가를 거치는 대장정이었다. 참부모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해 세계 40개국을 한국의 수도 서울과 연결하신 것이다. 참부모님 성혼 이후 잃어버린 사람을 축복으로 찾고, 잃어버린 땅과 만물을 참가정의 승리 위에 새롭게 창조하는 역사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직 접 주재하시고 선한 천사세계와 영계가 함께하는 지상의 초점이 마련된 것이며, 이를 통한 통일운동의 적극적 공세가 세계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기반이 확보된 것이다. 한국의 세계성지 택정섭리 그런데 제1차 세계순회 노정을 통해서 모든 성지 택정이 마무리 된 것은 아니었다. 참아버님은 귀국 후 1965년 12월 7일부터 22일까지 지방을 순회하며 각 도소재지에 8개 성지를 택정하셨다. 또한 1965년 12월 31일과 1966년 1월 1일 서울 7개 성지를 택정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 나라 일본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세계에 한국의 터전을 - 12 - 번식하여 준 터 위에 다시 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하늘 앞에 온전히 봉헌하기 위한 15 개소 성지 택정이 있었던 것이다. 성지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 특히, 한국은 아버지의 나라로서 각 성지를 중심으로 영계와 육계가 함께 하는 협조섭리를 통하여 반드시 복귀해야 할 조 국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참아버님께서 직접 15개소의 세계성지를 택정하신 이후 지 구장, 지역장, 구역장들에 의해 지역성지, 구역성지까지 택정되었다. 한반도의 읍면동 단위까지 성지를 택정하여 복귀의 중심기지로 세우게 하셨던 것이다. 국가복귀를 위 해 하늘이 직접 임재하는 성지가 식구들의 기도와 정성으로 심정의 불이 활활 타올라 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섭리의 도약을 목전에 둔 천일국 시대에 그러나 많은 지역성지는 고사하고 전국의 세계성지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당시 참부모님의 행적을 따라가며 전 국의 세계성지들을 살펴보자. 8대 지방성지의 택정 제1차 세계순회 이후 한국에서 지방성지 축복차 전국을 순회한 역사적 사실은 성화  제52호(1996년 2월 1일자)에 처음 기록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생님께서는 세계 105개소의 성지를 택정하고 돌아오신 후 그 완성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지 난 연말을 기하여 국내 각 지구본부를 중심으로 한 주요지역들을 역방하시었다. 최원복 선생과 각 지구장들을 대번제(代番制)로 수행케 하시고 12월 7일 서울을 떠나신 선생님께 서는 전국 각 지구본부 단위로 8개소의 성지를 택정하시고 16일만인 동 22일 귀경하셨는데 그 일 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2월 7일 : 서울 발 - 고양 - 파주 - 의정부 - 포천 - 가평 - 춘천 착 12월 8일 : 춘천 발 - 춘성 - 양구 - 홍천 - 횡성 - 원주 착 12월 9일 : 원주 발 - 제천 - 단양 - 충주 - 음성 - 진천 - 청주 착 12월 10일 : 청주 발 - 보은 - 옥천 - 영동 - 김천 - 상주 - 점촌 착 12월 11일 : 점촌 발 - 예천 - 안동 - 의성 - 군위 - 대구 착 12월 12일 : 대구 발 - 영천 - 포항 - 경주 착 12월 13일 : 경주 발 - 울산 - 양산 - 동래 - 부산 착 12월 14일 : 부산 발 - 김해 - 마산 - 함안 - 의령 - 진주 착 12월 15일 : 진주 발 - 하동 - 광양 - 순천 - 여수 착 12월 16일 : 여수 발 - 보성 - 장흥 - 강진 - 나주 - 광주 착 12월 17일 : 광주 발 - 담양 - 순창 - 정읍 - 김제 - 전주 착 12월 18일 : 전주 발 - 이리 - 논산 - 대전 착 12월 19일 : 대전 발 - 공주 - 홍성 - 서산 착 12월 20일 : 서산 발 - 당진 - 예산 - 온양 - 천안 - 평택 착 12월 21일 : 평택 발 - 안성 - 여주 - 이천 - 용인 - 수원 착 12월 22일 : 수원 발 - 시흥 - 서울 착 - 13 - 세계성지로서 택정된 한국의 지방도시는 춘천(106번), 청주(107번), 대구(108번), 부 산(109번), 광주(110번), 전주(111번), 대전(112번), 수원(113번)이다. 그러나 정확한 장소는 문헌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지난 1년여 간 대전을 제외한 해당 성지를 답 사하였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당시 참부모님의 행적을 따라가 보자. 1965년 12월 7일 참아버님께서는 최원복 선생, 윤승순 운전기사를 수행원으로 서울 전본부교회를 떠나 춘천을 향했다. 강원지구본부 춘천교회(지금의 조양교회 자리) 1층 부모님 방에서 주무셨다. 12월 8일 아침 한인수 지구장을 비롯한 지구식구들을 대동 하고 강원도청 뒤에 위치한 봉의산을 오르셨다. 참아버님께서는 중턱에 위치한 십 수 명이 앉을 정도의 반석에 멈춰 서시고, 반석 위에서 중앙을 확정하시고 일곱 발자국 거리에 동서남북의 4방위를 결정하셨다. 그리고 중앙에는 참아버님께서, 각각의 위치 에는 최원복 선생과 강원지구장 내외, 한 간부가 섰다. 남쪽으로는 식구들이 서게 하 신 다음 엄숙한 기도와 말씀으로 택정의식을 거행하셨다. 당시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흙과 돌을 주변에 뿌리고 심었다. 이로서 강원도와 세계 40개국 105개 성지가 실체적 으로 연결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성지의 택정의 의미를 헤아리지도 못했을 때, 이미 참아버님께서는 다음 순회 장소를 향하여 떠나셨다. 오전 10시 30분 무렵 춘성지역을 방문하여 말씀 을 주신 것을 시작으로 양구, 홍성, 횡천, 원주를 거치셨다. 강원도가 하나님의 뜻 앞 에 바로 서서 조국창건에 기여하기를 고대하셨던 참아버님의 피땀어린 노정이었을 것 이다. 원주에서 하루를 보내시고 12월 9일 제천, 단양, 충주, 음성, 진천 등 충북 일대 도 시를 거쳐 청주에 도착하셨다. 12월 10일 참아버님께서는 이수경 지구장과 김기영 사 모를 비롯한 200여명의 식구들을 대동한 가운데 도청 인근의 가까운 우암산 자락 당 이산을 오르셨다. 지금 청주교회 뒤편에 위치한 작은 동산인데, 인근에 ‘대한불교 천 태종 명장사’(청주시 상당구 대성동)라는 절이 있다. 우암산은 본래 와우산이라 하였 는데, 당이산의 위치는 우암산 자락 소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곳에서 역시 참아 버님께서는 중앙에 서시고 일곱걸음 위치에 있는 동서남북의 사방으로 최원복 선생, 지구장 내외, 한 간부를 세우셨다. 그리고 남쪽 위치에서 열두걸음 뒤편에 식구들을 서게 하셨다. 세계에서 가져온 흙과 돌을 뿌리고 심으시며 충청북도와 세계 각 성지 를 연결하시는 택정의식이 거행되었다. 성지 택정 후 참아버님께서는 다시 보은, 옥천, 영동, 김천, 상주를 거쳐 점촌에서 하루를 묵으셨다. 12월 11일에는 예천, 안동, 의성, 군위를 거쳐 경상북도의 중심 대 구에 도착하셨다. 이튿날 12일 새벽 6시 참아버님께서는 곽정환 지구장과 윤정은 사 모를 비롯한 경북 중심식구들과 함께 달성공원을 찾으셨다. 이곳에서도 참아버님께서 는 최원복 선생, 지구장 내외, 간부 등을 청주에서처럼 동서남북에 세우고 성지 택정 의 의식을 가지셨다. 경상북도 각지를 순회하며 도착한 대구에서 경상북도 전체를 하 나님께 봉헌하는 상징적 의식이 치러진 것이다. 대구에서 예배를 집례하시고 영천, 포 - 14 - 항을 거쳐 경주에 도착하셨다. 60여명의 경주 지역식구들이 모여 환영하였다. 12월 13일에는 다시 경주를 떠나 울산, 양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셨다. 부산 의 택정지역은 범내골 눈물의 바위였다. 12월 14일 참아버님은 역시 최원복 선생, 유 종영 지구장과 강정자 사모, 지구식구들을 대동하고 성지를 택정하였다. 참아버님께서 남한에서 재출발 섭리를 일으키셨던 범내골 역시 경상남도 일원을 복귀하기 위한 중 심성지로 택함을 받은 것이다. 12월 14일과 15일에는 각각 진주와 여수에서 머무시고 16일 저녁 광주에 도착하신 참아버님께서는 12월 17일 광주 구시가지에서 도청이 내려다보이는 사직공원 정상으 로 올라 성지를 택정하셨다. 당시 최용석 지구장 내외와 함께 광주식구 소수가 참석 했다. 12월 18일에는 12시경 전주 완산구 중화산동 기전전문대학의 뒷산인 화산 정 상에서 전북지구 성지를 택정하셨다. 전북도청이 내려 보이는 지점에서 정수원 지구 장 내외, 엄일섭, 한봉조, 정동석, 한건수, 김종철 회장 등 전북지구 목회자들과 전주 의 이차남 권사 등 중심식구들도 70∼80여명 참석하여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12월 19일에는 대전에서 홍종복 지구장 내외와 중심식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보문산 공원 정상에 성지를 택정하였다. 12월 20일과 21일에는 서산과 평택 등을 거쳐 수원에 도 착하셨다. 12월 22일 전국 8개 지구성지 중 마지막으로 택정된 수원 성지는 전통의 화성 서장대 터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에서 참어머님과 유효원 협회장 이하 간부들이 내려와 동참한 가운데 특별히 참아버님이 중앙에 서시고 북쪽에 유효원 회장 동과 서 에 각각 최원복 선생과 참어머님께서 서셨다. 남쪽에는 당시 협회 간부 한 사람이 섰 으며, 다시 식구들이 남쪽으로부터 떨어진 위치에서 행사에 동참하였다. 총 16일간 전국 8개 시도를 돌며 택정한 지구 성지들은 세계 성지의 돌과 흙을 가 져다 심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연결되었다. 참아버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식구 들을 축복으로 찾으시고 이 성지택정으로 이 세계를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으로 바꾸는 신비로운 섭리를 진행하신 것이다. 당시 성지의 택정은 잃어버린 땅과 만물을 복귀하 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국 72개 지역에는 저축기금 1천원이 하사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경제복귀의 기반도 성지를 중심으로 확보해 나갈 것을 축복하신 것이 다. 사실 이 성지택정의 의미는 일반식구들뿐만 아니라 일선 목회자들에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말씀으로는 하나님의 주관하는 특별한 성지로 이해는 하였으나, 이 땅이 하 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장소이며 해당 행정도를 복귀하기 위한 전초기지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이후에도 참아버님께서 직접 해당 성지를 찾으셨다는 기 록은 거의 없다. 때문에 택정 이후 일선 신앙하는 식구들에 의해 기도와 정성의 장소 가 되기는 하였으나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땅으로 보호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문평래 원로 목사는 광주 지역에서 당시 20대 초반 청년의 나이로 성지택정에 참여 하였으나 정확한 당시의 상황과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기도 하였다. 어 떤 성지를 가더라도 당시를 기억하는 의인들이 있었지만 정확히 그곳에 참부모님께서 심은 말씀을 기록으로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다. 당시를 촬영한 기록사진도 청주, 전 주, 수원 등 3개 지역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세월이 흐르면 참아버님께서 핍박 - 15 - 받고 고난 받는 통일공동체를 이끌며 손수 기도의 중심기지를 찾아 헤맸던 성지택정 의 이야기들은 잊혀질 수도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참아버님께 서 품으셨던 기도를 이루어드리는 현장으로 성지를 되살리지 않는다면 이는 머지않은 장래에 현실이 될 것이다. 7대 서울성지의 택정 참아버님께서는 엄동설한 12월 힘겨웠던 지방성지 택정을 마무리하시고 12월 31일 을 맞이하셨다. 세계를 하나님께서 주관하는 대지로 복귀하기 위한 성지택정은 1965 년 12월 31일과 1월 1일 양일에 걸쳐 결실을 맺게 된다. 1964년 12월 31일과 1965 년 1월 1일 식구들이 세웠던 서울 성지에서 채취했던 흙과 돌로 전세계 113곳을 연 결한 터전 위에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이 임하는 서울에 7개 성지를 택정하는 역사가 진행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참아버님께서는 양일간에는 참어머님, 유효원 협회장, 김영휘 목사, 최원복 선생, 이정옥 선생, 이득삼 선생, 이요한 목사를 대동한 가운데 6742호, 2063 호 차로 이동하시며 서울 7개 성지를 택정하셨다. 12월 31일에는 오전 7시 구진봉 (114번) 성지를 택정하셨다. 지금은 북악스카이웨이 옆 공군기지가 들어서 있다. 오전 9시에는 인왕산(115번) 성지를 택정하셨다. 참아버님께서 1955년 7·4사건으로 수감되 셨던 서대문형무소 감옥 창살 바깥으로 바라보시며 억울한 죄수들의 한을 풀어주겠노 라 다짐하셨던 봉우리에 올라 성지로 택정하신 것이다. 또한 오후 1시에는 참아버님 의 제2의 고향으로 기억되는 흑석동(116번) 성지를 택정하셨다. 지금의 국립묘지 호 국지장사 뒤편의 너른 바위이다. 오후 4시에는 태릉(117번) 성지를 택정하셨다. 태릉 교회 식구들이 택정한 성지에 나무를 심고 주변에 통일기 모양으로 돌을 심어 놓았는 데 지금은 낙엽에 덮여 잘 볼 수 없게 되었다. 한 때 이곳을 찾아 눈물로 기도했을 식구들의 심정이 이제는 흔적만 남은 성지 주변 통일기에서 절절히 느껴져 온다. 1966년 1월 1일에는 오전 7시 10분 남산(118번) 성지를 택정하셨다. 일요일 새벽기 도회 뒤 자주 찾으셨던 남산을 성지로 택정하신 것이다. 이어 오전 8시 20분 도봉산 (119번)을 성지로 택정하셨다. 도봉산은 1964년 8월 4일 혜진님께서 생후 8일 만에 돌연 승화하신 뒤 임시로 터를 잡아 모셨던 곳이다. 참어머님께서는 참아버님께서 제 1차 세계순회를 떠난 후 도봉산에서 자녀님들과 함께 집을 구해 머무르며 혜진님을 위해 기도하시고 정성 드리셨던 뜻깊은 역사가 서린 장소이기도 하다. 뒤이어 오전 11시에는 전본부교회(120번)로 돌아와 마지막 세계성지를 택정하셨다. 그렇게 1964년 말 이래 햇수로 3년에 걸친 120개 성지 결정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세계성지와 국가복귀 세계성지의 흙과 돌은 하나님 임재의 터전이 된다. 한국의 땅과 돌과 사람을 상징적 - 16 - 으로 연결해 세계적인 가나안 땅의 영적 기대를 확립한 것이다. 성별된 사람으로서의 축복가정, 성별된 땅으로서의 성지가 하나된 자리에는 하나님의 역사권, 천사세계의 협조가 임할 수 있다. 세속주권의 중심지인 중앙청, 박물관, 도청 소재지 등을 연결한 세계성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권을 되찾아 오시는 신비로운 역사가 진행되었던 것이 다. 제1차 7년 노정기간 동안 참아버님에 의해 손수 택정되었던 세계성지는 상징적인 하 나님의 나라였다고 볼 수 있다. 몰리고 쫓기는 수난의 교회역사에 있어 성지는 하나 님의 위로와 보살핌 속에서 뜻을 위해 정성 드릴 수 있는 축복된 장소였던 것이다. 이제 고난을 넘어선 2세대가 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심정적으로 만나려면 역사의 중요 한 발자취가 있는 세계성지들을 몸으로 다니며 만나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최초로 간구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된 공식적인 택지, 세계성지는 승리를 부르는 천일국 시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후속세대가 심정을 상속받는 중요한 기지로 되살아나야 할 것이다. 

 

3 제3차 세계순회 출발과 성지

 

1. 참부모님 제3차 세계순회 출발

 

참부모님 양위분께서 최원복 선생과 김영휘 협회장을 대동해 1971년 12월 5일부터 1972년 5월 8일까지 156일 동안 세계순회를 하셨다. 여러 가지 국내 사무 정리 관계로 연기를 거듭해 오시던 제3차 세계순회 일정이 드디어 실현된 것이다. 참아버님께서는 순회를 앞두고 전국 순회 대집회를 주재하셨다.

 

1971년 11월 5일 대구 (부산, 경남·북), 6일 광주(전남·북), 7일 중앙수련소(서울, 경기, 강원, 충남·북) 순이었 다. 식구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평균 4~5시간씩 말씀의 은사를 내리셨다. 특히 마지막 중앙수련소 성회는 그 일대를 잔치 분위기로 만들었다.

 

참아버님께서는 과로를 무릅쓰고 7일 밤과 8일 아침 두 차례 4~5시간씩 감동의 말씀을 주셨다. 그중 당부하신 지시말씀의 요지는 첫째로 참아버님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던 것을 대신해 남북통일을 위해 내외적으로 결속하고 다짐하는 기도 정성이었다.

 

둘째는, 통일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밤낮 쉬지 않고 선전해 민족이 갈 방향을 제 시하는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셋째는 일선 전도대원들과 교회장이 기도와 활동으로 하나될 것을 주문하셨다. 일을 놓고, 나라를 놓고 하나되라는 것이다.

 

1971년 12월 5일 아침 장시간 주일예배 말씀을 통해 서울 식구들에게 간곡한 당부를 주셨다. 오후 5시 25분 1백여 명의 식구 대표들이 환송하는 가운데 김포공항 발 NWA기 편으로 역사적 순회노정에 등정하셨다. 일본 캐나다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스 이스라엘 이란 인도 타이 자유중국 등 총 15개국이었다.

 

축복 7단계 째인 777가정 축복으로 세계 종족편성 기반을 완성해 어떤 민족에게든 길이 열렸다. 민족적 각 종교, 각 씨족을 초월한 기반 조성 후 세계 상대권의 종족권 연결을 위한 가정이다. 이때부터 참부모님의 세계적 진출이 가능했다. 축복가정 3년 동원으로써 국가적 재탕감과 가정 복귀기반을 닦게 하고 1971년 세계적 행로를 출발하셨다.

 

제3차 세계순회는 3차 7년 노정 대비를 위한 것으로서 일본을 통한 경제복귀와 미국에 자리 잡기 위한 순회였다. 그간 한국 기독교를 구하려 하셨는데 이젠 세계 기독 교와 미국을 구해 줘야 된다. 새로운 방향 전환으로 국제적 활동을 준비하셨다. 상당한 자원이 필요했고 세계 각국 부흥단 순방에 대비한 강사 인력 준비도 지시하셨다. 40개국 이상 선교부 설치에 이어 몇 년 이내 120개 선교부 설치가 금후 사명이었다.

 

참아버님께서는 출국직전 재단은 김원필 씨, 협회는 황환채 씨 중심으로 잘 해 주기를 당부하시며 한강물이 얼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김일성 환갑을 기한 남침 위기설 이 있던 때였다. 황환채 총무부장은 매일 새벽 남산 성지기도를 다니며 밤늦게까지 2층 참아버님 방과 회의실을 사수했다. 독감이 걸려도 눕지 않고 계속하다가 기침이 멎지 않아 두 달 만에 병원에 갔더니 간염이라고 했다. 누워서 쉬어야 된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옆으로 벽에 기대앉아 회의를 주재하곤 했다. 그 후 참아버님께서 아시고 청평수련소에 들어가 쉬라고 말씀하셔서 얼마 동안 요양한 일도 있었다. 

 

사실은 출국 준비 때 미국 비자 발급이 어려워 일본으로 가서 신청하기로 했다. 1971년 12월 5일 일본 출발을 위해 참부모님 일행은 김포공항으로 나갔다. 출국 수속을 하던 중 외무부의 실수로 여권과장의 출국인증 날인이 빠진 것을 알았다. 예약한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김영휘 협회장 등은 참부모님께 돌아가 쉬고 계시면 다시 준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참아버님께서는 어떻게든 오늘 출국해야 한다며 공항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마침 일요일이라 난감했다. 다행히 여권과장 집으로 전화 연락이 닿아 사무실로 나오겠다고 했다. 그는 과원들과 청평 호수 야유회를 약속했는데 컨디션이 나빠 마음이 안 내켜 쉬고 있던 차에 연락을 받게 됐다.

 

김영휘 협회장과 유종영 섭외부장이 택시를 타고 외무부로 가서 날인을 받아 마지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유 신헌법이 선포되고 다음날부터 해외 출국이 금지됐다. 그때서야 협회간부들은 참아버님께서 왜 그토록 출국을 다그치셨는가를 알았다. 그런 절박한 상황을 이미 영적으로 감지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 입국 여권이 오래전에 끝난 아시아경제인대표회의 참석 목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조회하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입국수속 때 마침 한국 생활 경험이 있는 일본인 직원을 만나 친밀한 의사소통을 시도하심으로써 곧바로 통과가 되신 일도 있었다.

 

1971년 12월 5일 오후 7시 반경 참부모님 일행은 일본 하네다(羽田) 국제공항에 도착, 일본 본부를 방문하셨다. 이번 여행은 전례와 달리 반(半) 비공개 여행이어서 전체 집회를 많이 갖지 않으셨다. 부장, 순회사, 지구장 등 간부들만을 소집해 계속 회의를 가지셨다.

 

12월 6일 아침 9시 함께 조찬을 끝낸 후 회의를 주재하시면서 한편으론 미국비자 발급을 추진하셨다. 일본 지시사항은 1972년 3월까지 현 식구 포함 4배가 전도활동, 새 식구 3분의 1씩을 승공 · 전도· 사업 분야의 활동에 투입할 것 등이었다. 특히 각 지구 사업요원을 7명씩 차출하고 공산당 간부들을 이론투쟁으로 굴복시킬 것을 강조하셨다.

 

사업부문은 1인당 수입이 제일 많은 일에 집중 투입하고 사업 종목의 분담 수정과 수입 목표액을 정해 주셨다. 일본 사업이 성공하면 내년부터 구미로 진출할 계획도 시사해 주셨다.

 

주일 미국대사관에 미국비자 신청을 했는데 한국인들이 왜 일본에 와서 받으려고 하느냐며 거부했다. 아무리 교섭을 해도 어려웠다. 궁리 끝에 김영휘 협회장이 중학교 동창으로서 일본의 한국문화연구원장인 최서면 씨를 통해 캐나다 비자를 받게 됐다.

 

마침내 참부모님 일행은 이시이 미츠하루(石井光治) 일본협회 섭외부장을 수행원에 추가해 12월 11일 오후 11시 30분 1시간 연발로 팬암사 보잉 747 점보제트기 편에 일본 도쿄를 출발하셨다.

 

오전 10시 40분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리셨다가 두 시간 후인 12 시 45분 다시 이륙, 오후 8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셨다. 식구들이 꽃다발을 올리고 환영했다.

 

1970년 매입한 로스앤젤레스 교회 건물은 중심 시가지를 바라보는 전망 좋은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1.5 에이커(약 1천836평) 대지 위에 세워진 거창한 3층 건물이며 방이 18개나 됐다. 그 외 시내 중심가 가까이에 매입한 교회가 있고, 시 반대편 쪽 전세 교회 하나가 더 있었다. 참아버님께서는 로스앤젤레스 교회 도착 직후 12일 새벽 2시까지 식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현지 각 방송국은 계속 참부모님 내방 사항을 방송하고 있었다.

 

참부모님 일행은 1971년 12월 12일 낮 12시 50분 ‘에어 캐나다’ 기를 타시고 로스앤젤레스를 이륙해 캐나다로 향하셨다. 이때 한국 식구들에게 전하신 당부의 말씀은 ‘조국 수호를 위해 기도하라’는 내용이었다.

 

오후 8시 캐나다 토론토에 기착하신 후 교회로 가셨다. 곧바로 미국 입국비자를 신청했으나 여의치 않아 12월 17일까지 식구들에게 말씀하시고 화동하시면서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도 하셨다.

 

이때 미국 비자발급 신청은 미국으로 도주한 한국 목사 사건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래서 남미 엘살바도르행 여권을 제시하고 설득해 14일간의 통과비자를 받고 가까스로 캐나다에 입국하셨다.

 

다시 미국 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했는데 내주질 않아 따져 물었더니 1967년도 공산당 활동 경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상적 중상모략이 있었다.

 

참부모님께서 미국 교회 지도자들에게 전화지시를 하셨다. 미국 내 네 개 단체가 상원의원들을 통해 국무성에 진정서를 내고 대사관에 항의문을 보냈다. 결국 대사관이 국방성에 문의했는데 반대 진정서가 돌아왔다. 한국 대사관에 조회한 결과 승공 지도자로 판명이 난 것이다. 그런 고초 끝에 12월 17일 미국 입국비자를 받으셨다.

 

12월 18일 오전 11시 앨리게인 항공의 작은 비행기 편으로 토론토를 떠나 오후 2시 10분 극적으로 워싱턴 국제공 항에 도착하셨다. 이날 밤 케네디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리틀엔젤스 공연 관람을 하시 고 워싱턴교회로 가셨다. 당시 워싱턴교회는 엎셔스트리트의 일반 민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을 매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동부교회 전체 책임자는 김영운 선교사였다. 12월 19일 주일예배를 주재하시고 박보희 선교사 댁에 초대 돼 만찬회를 가지셨다. 12월 20일 저녁 워싱턴교회 환영회가 열렸다.

 

12월 21일 이후에는 매일 참아버님께 서 특별 말씀집회를 주재하셨다. 특히 12월 30일까지는 저녁 8시부터 4시간씩 주로 워싱턴 식구들에게 말씀을 베풀어 주셨다. 통역은 최원복 김영운 김상철 김영휘 씨 등이 번갈아 맡았다.

 

12월 31일부터 4일간은 김영휘 협회장을 세워 미국 식구들에게 제1회 원리수련회를 실시했다. 170명이 모여 주야 강행군의 강의로 전·후편 원리를 다 듣고 응용문제 시험까지 치렀다.

 

그런 가운데 1972년 새해 새로운 출발을 기했다. 1971년 12월 18일은 참부모님 양위분께서 미국 입성을 통해 본격적 세계섭리노정을 출발하신 역사적 기점으로 기록됐다. 한국 승리 기반을 일본 캐나다 미국에 연결시켜 주려 하셨다. 캐나다는 미국 앞에 해와 입장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방해 역사를 했고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미국 다음으로 독일과 영국 순회가 성공되면 그런 조건들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이후로 34년 만인 2004년 참부모님 평화의 왕 등극 때까지 피눈물 어린 섭리역사가 세계적 아벨 국가인 미국을 중심하고 전개됐던 것이다.

 

2, 제3차 세계순회 직후 국내 주요 행사

 

1972년 5월 9일 전국 교회장 및 축복가정부인전도대원 조장회의가 열렸다. 5월 10일 430가정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5월 11일 청평에서 참아버님 주재 하에 36가정 집회가 있었다. 5월 13일부터 20일까지 전국 순회사 수련회가 청평수련소에서 개최됐다.

 

5 월 13일 참아버님께서 청평에 다녀오셨으며 14일 주일새벽 말씀을 하시고 구리 통일동산에서의 재경 식구 합동 야외예배를 주재하셨다.

 

5월 16일 청평에 다녀오시고 17일에도 청평에 다녀오셨다. 5월 18일 대구교회에 순회 가시어 19일 귀경하신 뒤 청평에 다녀오셨다. 5월 18일 학사 대항 춘계체육대회가 6개 학사 60명 참가 하에 중앙대에서 개최돼 회기학사가 우승했다.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전북 중고등학교 교장 승공교육이 156명 참석 하에 실시됐다. 5월 20일 참아버님께서 승공연합에서 외국 대학생 식구들에게 말씀하시고 21일 주일새벽 말씀을 하셨다.

 

5월 22일부터 31일까지 10일간 제1회 전국 기동전도대원 수련회 후 6월 1일부터 전국 각도 9개 팀 기동대가 발족됐다. 5월 22일 참아버님께서 기동전도대원수련회 개회식에서 말씀하셨고 23일 전주에 다녀오셨다. 5월 28일 주일새벽 말씀을 하신 후 청평 에 다녀오셨으며 29일 말씀하셨다. 5월 31일 기동전도대원수련회 폐회식에서 말씀하 셨다. 1972년 6월 1일 참아버님께서 주일새벽 말씀을 하셨다. 6월 3일 서울 도큐호텔에서 전 미해병대 사령관 월트 대장 및 데이비드 마틴 씨 등과 요담하셨다.

 

 

6월 4일 주일새 벽 말씀을 하시고 경주에 다녀오셨다. 6월 5일 참부모님 주재 하에 서울, 경기, 강원, 충남, 충북 식구 합동집회가 중앙수련소에서 열렸다. 6월 6일 청평에 다녀오시고 말 씀하셨다. 6월 8일, 9일 부산에서 경남·북 식구집회를 주재하신 후 상경해 청평에 머 무셨으며, 10일 청평에서 통일신학생들에게 말씀하셨다. 6월 10일 주간종교 창간 1주 년 기념강연회가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6월 11일 참부모님께서 제10회 만물의 날 기념행사를 주재하셨다. 오전 7시부터 전 본부교회 2층에서 중심가정들이 모여 1차식을 가졌으며, 중앙수련소로 집회장소를 옮 겨 11시부터 4백여 명이 모인 가운데 기념예배를 가졌다. 이어서 지난해 활동유공자 에 대한 시상식과 국제승공연합 창립 5주년 기념대회를 속개했다. 6월 12일, 13일 광 주에서 전남·북 식구집회를 주재하신 후 상경해 청평에 머무셨다. 6월 15일 참아버님께서 경북 봉화 석포공장에 내려가 16일 새벽 귀경하신 후 본부교 회 2층에서 사탄굴복에 대한 상징의식을 거행하셨다. 6월 17일 제주도에 내려가 18 일 귀경하신 후 청평에 다녀오셨다. 6월 19일 일본 식구 마쓰다 사장 외 3명을 대동 해 청평에 가셨고, 21일 청평에 다녀오셨다. 6월 20일 주간종교 창간 1주년 기념 대 - 23 - 강연회가 열렸다. 6월 24일부터 14일간 중앙수련소에서 일본 식구 172명 수련회가 개최됐다. 6월 25일 참아버님께서 주일새벽 말씀을 하시고 청평에 다녀오셨다. 6월 27일 청평에 머무셨고, 오전 중 협회 간부들을 접견하셨다. 6월 29일 청평에 머무셨 으며, 이날 축복가정협의회 회의가 있었다. 1972년 7월 1일 참아버님께서 남산성지 기도회에서 말씀하시고, 이날 협회 지방기구 를 9개 교구 153개 교역으로 전면 개편했다. 7월 2일 주일새벽 말씀을 하셨다. 7월 6일부터 41일간 특별활동기간을 설정하고 기도회 및 전도활동을 실시했다. 7월 10일 참아버님께서 청평수련소 일대 주요 산과 호수 등 21개 곳 명칭을 새로 지으셨다. 이 무렵 청평을 자주 왕래하시면서 그 일대를 국제명소로 개발하시기 위한 계획을 구체 화해 나가셨다. 7월 9일, 16일 참아버님께서 주일새벽 말씀을 하셨다. 7월 10일 일본 식구 84명이 내한해 5일간 중앙수련소에서 수련을 받았다. 7월 11일부터 20일까지 10일간 전국성 화대학생회가 38명 참석 하에 대구, 부산에서 전도활동을 펼쳤다. 7월 14일 일본 식 구 141명이 내한해 6일간 중앙수련소에서 원리수련을 받았다. 7월 15일 주간종교사 주최 통일문제 시국강연회가 개최됐다. 7월 17일부터 26일까지는 원연 제7차 하계수 련회가 제1차 국제대학생워크캠프라는 이름으로 한국 2백여 명, 5개국 학생 2백여 명 참석 하에 충남 금산군 평촌면에서 개최됐다. 7월 20일부터 하계 40일 전도가 실시됐으며, 특히 통일신학생들이 2개월간 활동했다. 7월 21일 일본 식구 227명이 내한해 2주간 중앙수련소에서 원리수련을 받았다. 7월 24일부터 8월 2일까지 중앙대 원연 주최 하계농촌봉사활동이 안면도에서 실시됐다. 7 월 25일 제3차 한·일교수친선세미나가 104명 참석 하에 개최됐고, 일본 교수단 35명 이 내한해 10일간 체류했다. 대학생승공세미나가 1차 7월 26일부터 8월 3일, 2차 7 월 28일부터 8월 5일, 3차 7월 30일부터 8월 7일까지 실시됐다. 7월 27일부터 30일 까지 제8차 성화학생회 전국총회가 777명 참석 하에 중앙수련소에서 개최됐다. 7월 27일, 31일 참아버님께서 말씀하셨으며, 31일 전주에 다녀오셨다.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4일간 세계자유청년십자군 승공교육이 미국 청년 35명 참 석 하에 중앙수련소에서 개최됐다. 8월 1일 참아버님께서 남산성지 기도회에서 말씀 하시고, 3일 말씀하셨다. 8월 2일, 8일 국제승공연합 인솔로 제4차 한·일교수친선세미 나 참석 차 한국 교수단 90명이 도일했다. 8월 6일 참아버님께서 주일새벽 말씀을 하 시고, 전본부교회에서 일본 기성가정 하세가와 아키라(長谷川晃)-다케우치 미쓰에(竹 內みつえ) 부부를 축복하셨다. 8월 9일부터 14일까지 제2차 한·일대학생친선세미나가 일본 도쿄에서 개최됐다. 8월 12일부터 20일까지 9일간 제2회 한·일 합동의료봉사활동이 일본 40명과 한국기 독교구원회 등 48명 도합 88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주 익산농장, 대구 칠곡농장, 부산 국립원호병원 등에서 무료진료로써 전개됐다. 8월 13일 참아버님께서 주일새벽 말씀 을 하셨다. 이날 13일부터 18일까지 6일간 전국교역자수양회가 165명 참석 하에 청 평수련소에서 개최됐다. 8월 14일, 17일, 18일 참아버님께서 말씀하셨으며, 20일, 27 - 24 - 일 주일새벽 말씀을 하셨다. 8월 20일 일본 식구 206명이 내한해 14일간 원리수련을 받았다. 8월 28일 원리연구위원회가 발족됐다. 

 

4 남산 성지 방문 기록 사진 및 영상 자료

 

1. 실록 기록

새벽에 남산 중앙성지에서 선생님께서 많은 말씀하여 주심 1967.11.05 대한민국

○ 선생님께서 남산성지 다녀오심 1968.12.01 대한민국

○ 새벽 경배식 후 남산중앙성지 다녀옴 1969.01.26 대한민국

○ 선생님 양위분께서 남산 중앙성지에 다녀오심 1969.02.01 대한민국

○ 선생님 남산성지 다녀오심 1969.08.01 대한민국

○ 선생님 남산 성지순례(원리연구회학생 帶同) 1969.10.01 대한민국

○ 새벽 남산성지에서 선생님께서 식구들에게 말씀주심 1970.11.01 대한민국

○ 남산 성지에서 선생님 말씀 1970.12.01 대한민국

 

2. 영상 자료

 

○ 남산 성지 말씀 구본부교회 1971.04.01 VHS

○ 남산 성지 말씀 남산성지 1971.05.01 VHS

○ 남산 성지 말씀 남산성지 1971.06.01 VHS

○ 남산 성지 말씀 구본부교회 1971.12.01 VHS

○ 남산 성지 말씀 남산성지 1972.07.01 VHS

 

3. 사진

 

1955. 1.1 남산성지 기도회를 마친 후

1955년 초 흥인동 교회시절 학생식구들과 함께 남산에서

1984년 남산성지

2000년 2월 6일 참아버님 남산 방문 

2000년 2월 6일 참아버님 남산 방문

2000년 2월 6일 참아버님 남산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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