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신앙과 굳센 의지 그리고 인내였습니다.
2) 신앙적인 고통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 인내 없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128 태어나서 성혼을 할 때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하루도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성혼 후에도 갖가지 풍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 그리고 사랑의 길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생각만 해도 견디기 어려운 가시밭길이었지만 그 무엇도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일찍이 예수님과 문 총재를 시험했듯이 나 역시 혹독하게 시험했습니다. 그 가혹하고 지독한 시련을 나는 인내와 헌신으로 이겨 냈습니다.
한편으로 그때는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깊이 느낀 때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친히 나타나셔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129 아기를 넷 낳을 때까지 청파동의 어두컴컴하고 옹색한 방에서 출산했습니다. 다섯째부터 가까스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 하나 배 아프지 않고 낳은 자식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여섯 살이 되어 골목에 나가 뛰어놀기 시작할 때부터 세상 사람들의 눈총과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 나라 안에서는 문선명의 아들딸이라 하여 비난받고 나라 밖에서는 동양사람이라고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
130 단지 문선명 한학자의 아들딸이라는 이류 하나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나는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 문 총재가 세계 순회를 떠난 어느 날 세 살이 안 된 효진이가 방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차나 자전거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날 때라 흰 종이에 어설프게나마 얼굴 하나를 그렸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물었습니다.
"효진아, 이 사람이 누구니?"
효진이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종이에 또 한 사람을 그렸습니다. 처음과 다른 얼굴이었지만 이번에도 영락없이 아버지였습니다. 평소 활달한 효진이는 그날 얌전히 앉아 그림만 그렸습니다. 하루 종일 아버지 얼굴만 그리면서 싫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림 그리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에야 길고 긴 그림 그리기를 멈췄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아버지를 행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품에 안기던 그 애틋한 뒷모습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만일 내가 기쁜 일만을 누려 왔다면 다른 사람의 깊은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천국의 즐거움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지옥의 제일 밑바닥까지 통과하고 온갖 쓴맛을 다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나 스스로를 단련케 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신앙과 굳센 의지 그리고 인내였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131 신앙적인 고통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그 시험을 이겨 내야 참다운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인내의 쓰디쓴 열매가 알알이 맺혀 어느 날엔가 빛나는 자랑이 됩니다.
▶ 종교의 길은
1) 참는 길이다.
▣ 1960.10.16(일)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일들. 전본부교회.
010-228 종교의 길은 참는 길입니다. 참고 희생하고 죽을 때까지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추구해 나오는 사람 중에는 참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참지 않으면 선한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010-230 하나님이 가는 길, 하나님의 아들딸이 가는 길,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은 어떤 길이뇨? 참고, 봉사하고, 희생하며 나아가는 길입니다. 여러분들, 참는 데 맹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 하나님을 위하여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참아야 합니다. 한때가 있겠거늘 그때를 위하여 참읍시다.
2) 참지 못하여 타락한 인간.
▣ 1969.3.29(일) 신앙자의 태도. 전본부교회.
006-087 그다음에는 참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도 참아 오셨습니다. 에덴에서 죄를 지은 그날부터 이날까지의 역사 노정은 참음의 노정이었음을 부정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 하늘이 택한 이스라엘 민족은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세계 어떤 민족 앞에 나타날 때도 유린당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몰리지 않은 시대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민족의 하나님이요, 백성의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지 못하여 타락한 인간이 되었던 연고로 참는 자가 승리의 한 날을 세울 때까지는 하나님도 참지 않으래야 참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고 뜻을 어겼으니 참는 한 자체를 찾기 전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해원 될 수 없습니다.
* 이렇게 6천 년 동안 참아 나오시며 분한 마음이 사무쳐 있으시되, 심판의 권한이 있으시되 심판하지 못하고 참으시는 아버지의 서글픔과 아버지의 비통함과 아버지의 원통함이 있는 고로, 참는 것으로 출발하고 참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에서 심판이라는 명사가 있는데, 그 심판은 무엇이뇨. 하늘이 참아 오신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한때라는 것입니다.
3) 참고 견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ㄱ. 타락한 세계에서의 생활철학은 참고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ㄴ. 어디까지 참고 견디어야 되느냐?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ㄷ. 누구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이다. 여기서부터 효의 도리가 시작된다.
ㄹ. 견디는 데는 目的이 있어야 된다.
ㅁ. 감사하는 마음이 밑바침이 되지 못하면 참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못한다.
ㅂ.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 아무개야, 더 이상 참지 마라. 그 길을 더 이상 가지 마라." 하고 정지시키는 것이 복귀의 자리이다.
▣ 1971.5.4(화) 중앙 수련원. 신앙자의 주의점
- 축복가정부인 전도대원 수련회.
044-027 인내와 극복, 이 말이 뭐예요?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군요. 싫긴 싫지요?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 사람이 참고 견디며 살게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墮落했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報應(응보, 선악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길흉화복의 갚음)을 치르고 넘어가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인간 조상이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것을 탕감 복귀하려면 끝까지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는 사탄이 꼼짝 못 하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참고 견디어야 되느냐?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참고 견디어 나오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분이 누구라고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의 천품과 피살을 받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의 생활철학은 참고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라구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부터 효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이요, 충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나라도 세계도 해방의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좋은 세계도 환영이요, 나쁜 세계도 환영이니 지옥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하에서 참고 견뎌야 합니다.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5대가 한 집안에 사는 어느 한 종갓집에 종손 며느리로서 지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어떻게 5대가 되는 식구들과 함께 사는지 그 비결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골방에 들어가더니 독을 열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을 忍자가 서너 독에 꽉 차 있더라는 것입니다. 참을 忍 字. 참기만 했겠어요? 참고 견뎠다는 것입니다.
견디는 데는 目的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이 없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원수를 몽땅 포위해서 전멸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대표해서 주님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참아야 합니다. 그런 목적 관념이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참고 견디기만 하면 안 됩니다. 참고 견디기만 하고 "아이쿠 힘들어라." 하면 되겠어요? 참고 견디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 같지 않게끔 感謝하며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도 감사한 마음과 찬양하는 마음을 갖고 참고 견뎌야지 불만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오다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는 무엇이 필요하냐? 뭐라고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참지 못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밑바침이 되지 못하면 참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하느냐? 보라구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내려다보고 사는 거라구요. 올려다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래도 통일교회를 믿고 하나님을 알고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지도 않고 말씀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감사의 마음과 찬송의 마음을 앞 놓아 가면서 참고 견디는 곳에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 이상도 참겠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 아무개야, 더 이상 참지 마라. 그 길을 더 이상 가지 마라." 하고 정지시키는 것이 복귀의 자리입니다.
감사와 참송의 마음을 가지고 참고 견디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셔서 "세상 가운데에 너 같은 아들이 어디에 있으며 딸이 어디에 있겠느냐? 지금 네가 하는 일을 딴 사람에게 시키겠다." 하시며 그를 안식의 자리, 하늘땅에 없는 복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옮겨 놓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 있는 정석온 노친네 알지요? 철산에 있던 감사패의 딸, 그들은 감사패인데 매를 맞아도 "매를 맞았으니 감사합니다. 핍박받았으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에게 욕을 먹었으니 감사합니다." 전부 감사로구만.
"내 사랑하는 아들딸을 하나님이 데려가서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과 갈라놓았으니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진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감사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저 感謝하고 讚頌해야 됩니다.
아침부터 부인이 바가지 긁고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서로 싸우고 죽는소리할 때도 "한 식구가 화가 났으니 감사합니다." 그래 보라구요. 세 사람만 그래 보세요.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10분 넘기나. "갈 데로 가라구. 아이구 모르겠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자극이 되면 전보다도 사이가 좋아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동네에서는 그들을 "감사패"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철산의 감사패 교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하, 그들은 대한민국에 큰 교육을 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교단이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해방 이후에도 몰리고 쫓기는 처참한 환경을 많이 당해 온 이 민족 앞에 이런 교단이 있는 것은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가까워 온다 그 말이거든요.
그런 것을 볼 때 한국 백성은 망하지 않는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참고 견디며 감사와 찬송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뭘 해야 하느냐? 相扶相助(서로 부축하고 서로 도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도와주며 서로 도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같이 살고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해야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 하려면 세상에서 맨 처음 뭘 해야 된다구요? 악착같이 참고 넘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고맙기 때문에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나만 됐으면 됐지. 남들이야 문제가 안 된다. 이젠 됐으니 한 때가 되거든 나만 도망가면 된다."고 하면 되겠어요? 자기에게 있는 재산과 모든 것을 내놓고 줄을 달아 가지고 "어서 와라, 어서 와. 너희들 먼저 가라." 하며 다 간 후에 자신은 뒤에서 제일 늦게 가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와주고 구해 주며 서로 도움받기 위한 인연을 맺어야 통일된 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도와주어야 되겠어요? 감사 찬송하는 사람들이 먼저 도와주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도움받기 위해서 나가 있어요, 도움 주기 위해서 나가 있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참고 견뎌야 됩니다. 다음에는 감사 찬송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한 것이 별것 아니라 그것입니다. 그다음에는 相扶相助해야 됩니다.
4) 이 길은 말할 것도 없이 어려운 길이다.
▣ 1967.1.1(일) 일편단심으로 최후의 고개를 넘어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017-219 사실은 선생님이 해방 직후 이 노정을 출발했을 때부터 이 민족이 이 뜻을 받아들였더라면 이 뜻이 이토록 연장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1946년도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평양을 찾아갔었다. 선생님은 7년을 걸고 이 길을 출발했으나 환경의 불비로 인하여 계획대로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평양을 거쳐 남한에 내려와서 부산으로, 서울로 옮기면서 뜻을 펴려고 하였으나 이 민족이 그 길을 가로막으며 하나님을 버렸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민족을 버릴 수가 없었기에 지금 다시 여러분을 중심 삼고 7년 노정을 찾아 세우시려는 것이다.
이 길은 말할 것도 없이 어려운 길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수의 식구들이 끝까지 견뎌내지 못할 줄로 안다. 그렇다고 하여 싸움이 과정에서 낙오된 식구들을 일일이 동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복귀 섭리를 중심 삼고 볼 때 이 기간을 고개라고 한다면 제일 높은 고개요, 골짜기라 한다면 제일 깊은 골짜기다. 선생님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이 골짜기에 고여 있다. 이 고개나 골짜기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평지를 만들어야 한다.
▶ 참는다는 뜻을 가진 인내라는 말이 가장 귀하다.
- 인내는 재출발의 동기요, 재창조의 동기가 될 수 있다.
▣ 1975.3.2(일) 행복과 불행의 기로. 배리타운.
076-214 참는다는 뜻을 가진 인내라는 말이 가장 귀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어요. 누가 한마디 말을 해서 성이 나지만 참자 이거예요. 자, 저기서 한마디 "왝" 하면 나도 "왝" 해 가지고 주먹이 왔다 갔다 하다간 내가 불행하게 되는 거예요.
다리가 부러지고 싸움만 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구요. 싸우게 되면 하나는 깨지게 마련이라구요. 그건 원칙이라구요. 깨지거나 파괴된다구요. 또 깨지지 않은 그 자체도 누가 와서 깨뜨려 버린다 이거예요.
* 자, 이것은 우리가 순리적으로, 생리적으로 분석해 보더라도 내가 왜 성을 내 가지고 내 기분 나쁘게 하고 말이에요, 내가 왜 말을 잘못해 가지고 그 입으로 말미암아 생리적으로 좋지 못한 변화를 얼마나 일으키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 미워하고 다 이런 건 독이에요. 독. 毒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
럴 때 "참는다. 난 참는다. 또 그러겠으면 그래라." 하며 그저 참아 나오게 되면 어떻겠어요?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암만 찾아와도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것인가를 발견해서 알 거라구요.
참는 사람은 앞도 바라보고 뒤도 바라보고 동서남북을 전부 다 비판할 수 있다구요. 벌써 참는 사람은 저쪽 입장을 생각도 해 주고 또 젊었을 때 늙었을 때 자기도 부모를 가져 보고 자기도 아들을 가져 보고 사방을 다 생각할 때 나도 그럴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아, 그러니까 나도 참아야지." 하며 자리를 잡는 거라구요.
그것을 벌써 정신적으로 모든 싸움에서 환경을 전부 다 정리해 가지고 내 편을 만들었다는 거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을 못 하고 있으면 "뭐야" 하면 대번에 "야"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엔 "뭐냐?" 그다음엔 무슨 말이 나오느냐 이거예요. 이 참는다는 게 얼마나 귀하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076-218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인내가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인내가, 인내가 얼마나 귀하냐. 자, 이렇게 보게 되면 인내는 재출발의 동기요, 재창조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발견할 거예요. 참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용서해 줄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는 언제나 저길 점령할 수 있는 거예요.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참는 것입니다. 참아요. 아담 해와가 죽는 자리에 나갈 때 참았고 십자가에 예수를 데려다 땅땅 못을 박는데도 참았다 이거예요.
자,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 그런 척하고 대하니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그 사람이 자기에 대해 전부 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대해 주고 그러면 얼마나 기가 막혀요?
* 자, 너희 집안에서도 그렇다구요. 가정에서도 형제들이 뭐 야단하더라도 참고 참고 이렇게 나가면 부모나 누구나 전부 다 그 앞에서 다 축복해 준다구요. "재는 두고 보자!" 하고.
▶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생각하여 행동하고 그다음엔 한 번 더 생각하고 참아야 된다.
▣ 1977.6.12(일) 한 번 더 생각하자.
093-319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생각하여 행동하고 그다음엔 한 번 더 생각하고 참아야 된다구요. 행동도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생님은 참기 놀음하는 거예요. 인내라는 말은 듣기 싫은 말이지만 가장 귀한 말이라는 거예요. 그럴 적마다 한 가지 생각을 하라구요. 힘들지만 한 가지 생각하라구요. 참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가 참음으로 말미암아 뭐가 되느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복을 내가 전부 다 인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자, 여러분들 낙심하고 다 어려운 일이 많은 걸 내가 안다구요. 그렇지만 선생님과 같은 어려움은 당하지 않았다 이거예요. 나는 피를 토하고 죽는 경지에서도 이를 악물고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피를 토하는 자리에 가서도 "아버지, 날 살려 주소." 안 그랬다구요. 내가 죽더라도 난 졸자가 아닙니다. 난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것이니 나를 위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런 기도를 하려고 했지 "아이고, 나 못살겠습니다. 나 고생시키지 말고 놓아 주소." 하지 않았다구요.
난 그런 기도를 배워 본 적이 없고 한 적이 없다구요. 우리가 어려운 것을 하나님이 다 알고 있다구요. 다 알고 있다구요. 그래도 가야 할 길이므로 어렵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보내는 거라구요.
▶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이다.
▣ 1994.3.12(토) 탕감복귀의 고개를 넘자. 중앙수련원.
- 일본 여성 수련회. 일본어.
256-018 양심은 하나님의 대표입니다. 육신은 사탄의 대표라구요. 이 두 가지에 의해 인간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빼앗기를 하는 것입니다.
* 종교는 양심적인 사람들을 하나님 편으로 이끌어서 육신적 사탄의 사람들을 소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강제적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과 사탄의 전략 전술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배상을 받는 거예요.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선한 것이 먼저 맞았기 때문에 그것이 개인으로부터 맞고 가정으로 맞고 국가 세계로 그것이 결실될 때까지 세계의 끝까지 맞고 와서 정리하지 않으면 친 사람들의 기준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맞고 배상을 받는 거예요. 그 배상받은 것은 사탄이 다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배상받는 것입니다. 악마는 치고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생활에서는 인내를 강조합니다. 참고 견디고 극복하라는 거예요. 참는 자가 이긴다고 하는 그 내용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바라보게 되니까 그런 결론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참고 견디고 극복하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戰略 戰術이 그런 내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서 보면 쭉 해명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법은 맞고 복귀해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 가정에서의 참음
1) "이분은 영원히 내 남편이니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 1981.3.29(일) 기도. 미국.
112-046 사랑하는 아내가 말이에요, 사랑하는 남편이 만약에 참지 못할 얘기를 하더라도 "이분은 영원히 내 남편이니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하면 그거 얼마나 아름다워요. 살아 나가다 보면 기분 나쁜 일도 많지만 사랑이라는 말은 기분 나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랑은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다는 거예요. 모든 것을 점령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 인내를 통해서 남편의 사랑을 안 미국 여자가 얼마나 있겠느냐? 자, 인내의 고개를 넘어 부모의 사랑을 체휼한 미국의 아들딸이 얼마나 있으며 미의 부모가 얼마나 있겠느냐?
2) 침묵과 인내는 평화를 이룰 수 있으니 어머니와 마찬가지다.
▣ 1996.2.18(일) 뜻과 우리의 정성. 우루과이 빅토리아 플라자 호텔
276-150 침묵은 뭐냐 하면 들은 것을 듣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침묵은 뭐냐 하면 들은 것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하는 거예요. 내가 본 것을 보지 않은 것으로 하는 거예요. 나를 중심 삼고 느낀 그것은 느끼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그것이 침묵입니다. 동양사상의 수도의 비결이 침묵입니다. 제일이 침묵이에요.
* 하나님은 침묵의 대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볼 때 "저 사람은 나를 닮았구나." 그런다는 거지요. 도와주고 싶다는 거예요.
부부생활 가운데서 남편이 이랬다고 말 한마디 하고 대꾸하면 점점 부딪치는 거예요. 침묵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예요. 남편이 욕을 해도, 눈을 보면 눈을 왜 보나 하고 말이에요, 그것을 잊어버리는 거예요. 보지 않은 것같이, 느끼는 모든 전부도 전부가 없었던 것으로 하는 거예요.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겁니다.
가정 파탄의 80%가 여자로 말미암아 벌어져요. 남자보다도 여자가 동기가 많다구요. 남자는 여자보다도 입이 무겁습니다. 여자는 뭐 와와와···. 또 표정이 안팎이 얇아요.
그래 이혼의 동기나 모든 가정의 파탄의 동기, 불순한 환경의 여건은 여자로부터 생긴다 이거예요. 남자들은 입이 두꺼워서 침묵을 지키고 행동을 몇 번 생각하고 하지만 여자는 즉각적입니다. 모든 폐단은 여자로 말미암아 생겼다는 거예요. 여자들은 주의해야 된다구요.
여자는 말이에요, 금 고리 하는 집게를 입에다 채워야 되겠다 이거예요. 여자는 장식품이 필요하잖아요. 귀고리 코고이 입고리까지 하자 이거예요.
* 여자는 이 침묵이 제일 중요해요. 큰 대갓집에 큰며느리는 침묵을 지키는 거예요. 보고도 잊어버리고 듣고도 잊어버리고 말하고 싶어도 참고 전부 다 참아 나오는 것입니다. 침묵과 인내는 평화를 이룰 수 있으니 어머니와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 신앙자의 주의점.
1) 하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제일 첫 순서는 참고 견디는 것이다.
2) 억지로 하는 것이다.
3)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4) 견디는 데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5) 참고 견디는 데는 무엇이 필요하냐? 감사하는 마음.
▣ 1971.5.4(화) 신앙자의 주의점. 중앙수련원.
- 축복가정부인 전도대원 수련회.
044-017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제일 첫 순서는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참고 견디는 거예요? 전체를 위해서 참고 견뎌야 됩니다.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중심적인 사상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불평불만이 동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하늘나라와 하늘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044-027 인내와 극복, 이 말이 뭐예요?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군요. 싫긴 싫지요?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 사람은 참고 견디며 살게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타락했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 조상이 참지 못 하고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것을 탕감복귀하려면 끝까지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 원칙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는 사탄이 꼼짝 못 하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참고 견뎌야 되느냐?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참고 견디어 나오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분이 누구라고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의 천품과 피살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의 생활철학은 참고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라구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부터 효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이요 충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나라도 세계도 해방의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좋은 세계도 환영이요 나쁜 세계도 환영이니 제옥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러한 원칙 하에서 참고 견뎌야 됩니다.
* 견디는 데는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이 없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 그다음에는 참고 견디기만 하면 안 됩니다. 참고 견디기만 하고 "아이쿠 힘들어라." 하면 되겠어요? 참고 견디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 같지 않게끔 감사하며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도 감사한 마음과 찬양하는 마음을 갖고 참고 견뎌야지 불만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오다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는 무엇이 필요하냐? 뭐라고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참지 못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밑바침 되지 못하면 참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하느냐? 보라구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내려다보고 사는 거라구요. 올려다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래도 통일교회를 믿고 하나님을 알고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지도 않고 말씀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감사의 마음과 찬송의 마음을 앞 놓아 가면서 참고 견디는 곳에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 이상도 참겠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 아무개야, 더 이상 참지 마라, 그 길을 더 가지 마라." 하고 정지시키는 것이 복귀의 자리입니다.
◑ 개척자의 길은 극복과 인내만 있을 뿐이다.
▣ 1970.4.12(일) 개척자의 길. 전본부교회.
031-054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심정 세계의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개척자가 가는 길은 극복과 인내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생활철학입니다. 그런 자리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힘들고 고달픈 자리예요. 기진맥진할 정도로 고달픈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저 개인 하나 쓰러지는 것은 좋지만 아버지여! 이 땅 위에 저와 같은 사람이라도 없다면 당신은 얼마나 불쌍하시겠습니까? 제가 제1의 소망이 되지 못할 때 제2 제3의 소망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아들딸이 없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당신은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를 알게 되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라는 새로운 종교를 중심 삼고 개척자의 깃발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런 개척자의 사명을 하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또 같이 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지의 교차로를 거칠 적마다 나는 이미 버려진 몸이라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더 염려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효도하는 길은 부모에게 요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가는 길이 효를 증거하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 참아야 하는 이유.
1) 싸우게 되면 하나는 깨지게 마련이라구요.
2) 재출발의 동기
▣ 1975.3.2(일) 행복과 불행의 기로. 배리타운.
076-214 참는다는 뜻을 가진 인내라는 말이 가장 귀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어요. 누가 한마디 말을 해서 성이 나지만 참자 이거예요. 자, 저기서 한마디 "왝" 하면 나도 "왝" 해 가지고 주먹이 왔다 갔다 하다간 내가 불행하게 되는 거예요.
다리가 부러지고 싸움만 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구요. 싸우게 되면 하나는 깨지게 마련이라구요. 그건 원칙이라구요. 깨지거나 파괴된다구요. 또 깨지지 않은 그 자체도 누가 와서 깨뜨려 버린다 이거예요.
* 자, 이것은 우리가 순리적으로, 생리적으로 분석해 보더라도 내가 왜 성을 내 가지고 내 기분 나쁘게 하고 말이에요, 내가 왜 말을 잘못해 가지고 그 입으로 말미암아 생리적으로 좋지 못한 변화를 얼마나 일으키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 미워하고 다 이런 건 독이에요. 독. 毒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럴 때 "참는다. 난 참는다. 또 그러겠으면 그래라." 하며 그저 참아 나오게 되면 어떻겠어요?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암만 찾아와도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것인가를 발견해서 알 거라구요.
참는 사람은 앞도 바라보고 뒤도 바라보고 동서남북을 전부 다 비판할 수 있다구요. 벌써 참는 사람은 저쪽 입장을 생각도 해 주고 또 젊었을 때 늙었을 때 자기도 부모를 가져 보고 자기도 아들을 가져 보고 사방을 다 생각할 때 나도 그럴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아, 그러니까 나도 참아야지." 하며 자리를 잡는 거라구요.
그것을 벌써 정신적으로 모든 싸움에서 환경을 전부 다 정리해 가지고 내 편을 만들었다는 거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을 못 하고 있으면 "뭐야" 하면 대번에 "야" 이러게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엔 "뭐냐?" 그다음엔 무슨 말이 나오느냐 이거예요. 이 참는다는 게 얼마나 귀하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076-218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인내가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인내가, 인내가 얼마나 귀하냐. 자, 이렇게 보게 되면 인내는 재출발의 동기요, 재창조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발견할 거예요. 참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용서해 줄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는 언제나 저길 점령할 수 있는 거예요.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참는 것입니다. 참아요. 아담 해와가 죽는 자리에 나갈 때 참았고 십자가에 예수를 데려다 땅땅 못을 박는데도 참았다 이거예요.
자,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 그런 척하고 대하니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그 사람이 자기에 대해 전부 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대해 주고 그러면 얼마나 기가 막혀요?
* 자, 너희 집안에서도 그렇다구요. 가정에서도 형제들이 뭐 야단하더라도 참고 참고 이렇게 나가면 부모나 누구나 전부 다 그 앞에서 다 축복해 준다구요. "재는 두고 보자!" 하고.
3) 질기고 강한 사람이 또 인내력이 강한 사람이 남아지는 거라구요.
▣ 1975.3.12(수) 남아지는 사람들. 배리타운.
076-315 강한 사람이, 질기고 강한 사람이 또 인내력이 강한 사람이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열 번 쓰러지더라도 열 번 일어설 수 있다, 그래야 된다구요. 그거 이해되느냐고요? 그렇지요? 그렇지 않느냐구요?
여러분이 생각해 봐요. 기독교가 얼마나 질겼느냐 이거예요. 400년 동안 로마 박해시대에 저 지하에 들어가 가지고 고생을 하면서도 그걸 뚫고 나가려고 투쟁을 했다구요. 계속적으로.
그런 것을 선생님이 생각하면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느냐,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환영하는 곳에서 남아지는 것은 그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를 반대하고 원수시하는 그곳에서 어떻게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5) 인내의 종착지는 어디인고? 여러분은 그 종착점을 더듬어서 헤매어 보았습니까?
6) 지쳐서 못 가겠다고 합니다.
- 땅을 두고 보면 행복한 자일지 모르나 하늘을 두고 보면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과연 가기가 어렵습니다.
7) 선생님은 해방 이후 오늘까지 나왔으나 아직까지 내 참음의 한계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또 끝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8) 참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요
9) 참음의 자리에서 태연자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 물질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을 참아야 되겠습니다. 자식으로 인해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내 일신에 대한 심적인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11) 참음의 6천 년 역사를 배반하는 그런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참고 참고 또 참아야 되겠습니다.
▣ 1959.3.29(일) 신앙자의 태도. 전본부교회.
006-089 그러면 그 참음의 종착지는 어디인고? 인내의 종착지는 어디인고? 여러분은 그 종착점을 더듬어서 헤매어 보았습니까?
* 여러분에게 참음이 있다 하지만 그 참음이 역사적인 참음의 종착점과는 먼 거리에 있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인연 된 사람들이 지쳐서 못 가겠다고 합니다. 통일교회는 좋지만 어려워서 못 가겠다 하는 말을 듣게 되는데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자일 거예요. 땅을 두고 보면 행복한 자일지 모르나 하늘을 두고 보면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가기가 어렵습니다. 가는 길은 눈물의 길입니다. 보고 울고, 느끼고 울고, 싸우면서 우는 눈물의 길입니다. 눈물이 그칠 시간이 이때인 줄 알았더니 아닙니다. 눈물이 더 연속되어야 하는 즉 더 참음의 눈물을 고대하시는 하늘의 심정이 있는 것을 알고 하늘이 처량한 모습들인 우리를 기다리는 것을 알게 될 때 내가 참았다는 그 사실도 하늘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해방 이후 오늘까지 나왔으나 아직까지 내 참음의 한계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또 끝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끝나기를 바라는 그 시간부터 자기를 살필 것이며 그 시간서부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느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요, 참으신 그분이 나와 영원히 같이 살 나의 아버지며 참으신 그분이 내가 모실 신랑이라고 여러분은 마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늘 앞에서 기뻐하고 영광을 누린 자가 있다 합시다. 그를 바라보고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참음의 자리에서 늠름하고 참음의 자리에서 태연자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 앞에 참음의 모습으로 나타난 자가 오늘의 이 혼란된 역사에서, 참음의 역사 과정에서 행복스러워하는 자보다도 귀한 자인 것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심정으로 오늘의 이 혼란된 시대를 넘어갈 줄 모르는 자는 하늘에 대해 배반자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은 물질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을 참아야 되겠습니다. 자식으로 인해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내 일신에 대한 심적인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참음의 6천 년 역사를 배반하는 그런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참고 참고 또 참아야 되겠습니다. 망하는 줄 알았더니 남아진 것이 하늘의 역사요, 쓰러지는 줄 알았더니 蘇生해 나온 것이 하늘의 역사입니다.
12) 천지가 망한다.
-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1969.6.22(일) 전본부교회. 선악과 흥망성쇠.
024-039 내가 천운을 품고 분노를 터뜨리면 천지가 망하기 때문에, 내가 분해도 그냥 앉아 있습니다. 내가 화를 내면 세상천지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는 참습니다" 해야겠고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다.
◑ 인내력의 동기 4가지.
1) 나는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것.
2) 아버지와 나는 같이 가야 한다는 것.
3) 내가 안 가면 아버지가 가셨다가도 다시 돌아오셔서 나와 함께 가셔야 한다는 것.
4) 내가 여기에서 주저앉으면 아버지는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또 끌고 가야 된다는 것.
▣ 1964.1.1(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 1964년 벽두 연두 훈시.
013-154 모든 것을 참고 넘어가려면 그것을 넘어가기 위한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인내력의 동기를 무엇으로 삼아야 하느냐?
나는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것, 아버지와 나는 같이 가야 한다는 것, 내가 안 가면 아버지가 가셨다가도 다시 돌아오셔서 나와 함께 가셔야 한다는 것, 내가 여기에서 주저앉으면 아버지는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또 끌고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번에 가지 못하면 세 번에 거쳐 가게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림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로 갖다가 십자가로 와서 십자가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에서 그런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개인에게 그런 곡절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요 가정에서 그것이 해결되지 않을 때는 가정에서 그런 곡절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갔다가 다시 와서 또다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 국가 세계에 있어서도 같은 이치를 통하여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부자간의 인연입니다. 같이 가야 할 타락의 한이 있는데 같이 가지 않으면 인간이 모든 고통과 슬픔을 당하면서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근본적으로는 아버지와 나, 둘뿐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제삼자의 후원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저나라에 갔을 때 그가 여러분보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게 되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자리에 있게 되면 여러분들이 그 사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렇듯 탕감복귀노정은 결코 후원받아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천사의 후원도 받지 않고 가는 길이요, 동지의 후원도 받지 않고 가는 길이요, 오직 홀로 가는 길입니다.
013-155 나는 형무소에서 쇠고랑을 차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들이 뜻을 대하여 저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가면 얼마나 복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또한 그런 사람을 보고 내가 뜻을 위하여 저렇게 비참하고 저렇게 고통을 당해도 괜찮다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까?
만일에 그러한 길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못 가면 하나님이 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인 비참, 슬픔 혹은 고통을 볼 때마다 그것들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인류를 눈물과 피와 땀으로 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록 실체로 그런 일을 행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심정을 중심 삼고 눈물과 피땀을 통하여 마음과 행동이 일체가 되었다는 그런 입장에 서게 되면 그럼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행동했다는 조건을 안고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 노아와 예수님의 인내.
1) 노아의 인내.
▣ 1971.5.30(일) 신앙의 심도. 전본부교회.
044-323 노아 할아버지는 120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120년이라는 기간을 생각할 때 그것은 12일도 아니고 12년도 아닙니다. 120년이라는 기나긴 기간은 전체 생애에 해당하는 귀중한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120년은 살다 남은 그러한 기간이 아닙니다. 노아에게 있어서는 일생에서 가장 귀한 생의 토막을 갖추어 드릴 수 있는 기간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기간에 수난길을 감수하며 120년을 하루같이 꾸준히 싸워 나온 노아 할아버지의 인내력과 성실성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충실함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 배후에서 얼마 만한 수고와 희생의 대가를 치렀겠습니까?
가정에서의 핍박도 있었을 것이고 동네의 반발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친척들이 그들 부정하고 이해 못 하는 일도 非一非再했을 것입니다.
* 그 하루가 슬픔의 날인 동시에 그 하루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매일 가중된 투쟁과 가중된 시련 가운데서 참는 시련도 컸을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2) 예수님
1) 사탄이 참을 수 없는 입장에서 참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에
▣ 1956.5.27(일)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라지. 전본부교회.
001-080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이 참지 못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놓고 참았기 때문에 또 사탄이 참을 수 없는 입장에서 참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에 또 참는 자의 표상으로서 세워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 대해 싸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2) "다 이루었다."
▣ 1971.7.4(일) 솔직한 신앙자. 전본부교회.
045-264 자기 일생을 두고 볼 때 무엇을 남길 것이냐? 무엇을 남기느냐?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터전을 밟고 섰을 때 당당할 수 있느냐? 여러분이 한 가지 행동이라도 잘 했으면 당당할 수 있지요?
일생을 살고 마지막 순간에 선이냐 악이냐 할 때 "아버지, 나는 아버지 앞에 선한 아들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 땅 위에서 백승 장군의 영광을 가진, 국가와 세계의 역사를 변혁시킨 영웅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다.
*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놀라우신 분이라는 거예요. 그 젊은 가슴에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밟고 넘어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라고 한 말은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정성과 노력을 다 했고 투쟁과 인내와 극복의 한계선을 세우는데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자신만만한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훌륭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이 참지 못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놓고 참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 대해 싸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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