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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모든 일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 칼은 갈지 않으면 무뎌진다. 자서전 69

 

69 보통학교를 마친 뒤 서울로 거쳐를 옮긴 나는 흑석동에서 자취를 하며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1938.4.12~1941.3.8)를 다녔습니다.

 

서울의 겨울은 무척 추웠습니다. 영하 2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것은 보통이었고, 그럴 때마다 한강물이 얼어붙곤 했습니다.

 

산등성이에 있던 자취집은 우물이 깊어 두레박줄이 열 발 이상 들어갔습니다. 끈이 자주 끊어지는 바람에 쇠사슬을 엮어 썼는데, 우물물을 퍼올릴 때마다 두레박줄에 손이 쩍쩍 들러붙어서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물을 길어야 했습니다. 

 

날이 추우니 솜씨를 살려 뜨개질도 많이 했습니다. 스웨터도 떠 입고 두꺼운 양말이나 모자, 장갑도 모두 직접 뜨개질을 해서 만들었습니다. 내가 뜬 모자가 얼마나 예뻤는지 그 모자를 쓰고 나가면 다들 나를 여자로 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한겨울에도 내 방에 불을 넣어 본 적이 없습니다. 불을 넣을 형편도 못 되었고 혹한에 집도 없이 길가에서 언 몸을 녹이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나마 지붕 아래 누워 잠을 청하는 내 처지가 호사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0 하루는 하도 추워 알전구를 화덕처럼 끌어안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다가 뜨거운 전구에 데어 살갗이 벗겨진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서울" 하면 그때의 추위가 먼저 떠오릅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반찬 하나 이상 올려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일식 일찬, 반찬 한 가지면 족했습니다. 자취 때 습관이 되어서 나는 많은 반찬이 필요 없고 짭짤하게 간이 된 것 한 가지면 족했습니다. 지금도 밥상에 반찬을 수두룩하게 올려놓은 것은 보면 괜히 번거로운 생각이 듭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나는 점심을 먹지 않았습니다. 산으로 쏘다니던 어릴 적 습관 덕분에 하루 두 끼면 배고픈 줄 모르고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서른이 되도록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서울 생활은 나에게 살림살이의 고단함을 절감케 했습니다.

 

1980년대에 흑석동을 찾아가 보니 놀랍게도 하숙하던 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내가 살던 문간방이며 빨래가 널린 마당이 수십 년 전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손을 호호 불어가며 찬물을 길어 올리던 우물은 사라져 안타까웠습니다.

 

* 그 시절 내 좌우명은 "우주 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부터 완성하라."였습니다. 내 몸을 먼저 단련한 다음에야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할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71 나는 식욕은 물론 일체의 感性과 欲求에 흔들리지 않고 몸과 마음을 내 의지대로 주관할 수 있을 때까지 기도와 명상, 운동과 수련으로 나를 단련시켰습니다. 그래서 밥을 한 끼 먹어도 "밥아, 내가 준비하는 일의 거름이 되어다오." 하며 먹었고 그런 마음으로 복싱도 하고 축구도 하고 호신술도 배웠습니다.

 

* 경성상공실무학교를 다닐 때는 학급 청소를 나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 남들보다 학교를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와 그랬습니다. 남이 도와주는 것도 탐탁지 않아 혼자 해치우려고 애를 썼고, 어쩌다 남이 청소한 것도 내 손으로 다시 했습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전부 "그럼 너 혼자 해라"고 해서 자연히 학교 청소는 내 몫이 되었습니다.

 

나는 좀처럼 말이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재잘재잘 얘기하는 법도 없었고 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주먹질을 한 것도 아닌데 동급생들은 나를 어려워하며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변소에서 소변을 보려고 기다리다가도 내가 가면 얼른 자리를 내주었고 고민이 있으면 우선 나를 찾아와 의논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선생님들 중에는 내 질문에 대답을 못해 도망간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72 수학이나 물리학 시간에 새로운 공식을 배우면 "그 공식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물고 늘어졌습니다.

 

*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논리 하나하나 검증해 믿기 전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멋진 공식을 왜 내가 먼저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공연히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밤새 울고 고집을 부리던 성격이 공부하는 데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겁니다. 공부를 할 때도 기도할 때처럼 온통 정신을 집중하며 정성을 쏟아부었습니다. 

 

* 모든 일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라 언제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한번 쓰고 갈지 않은 칼은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정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칼을 날카롭게 갈아 날을 세운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지속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정성을 들이면 자기도 모르는 새 신비스런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붓을 잡은 손에 정성을 넣어서 "이 손에 위대한 화가가 와서 나를 돕는다." 하고 정신을 집중하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그림이 탄생합니다.

 

나는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이야기하려고 말하기 훈련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골방에 들어가 "가갸거겨 갈날달랄···" 소리를 내어 빨리 말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73 나이를 많이 먹은 지금도 나는 말이 참 빠릅니다. 어떤 이들은 말이 너무 빨라 알아듣기 어렵다고도 하지만 나는 마음이 급해 도저히 천천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슴속에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인데 어떻게 천천히 말을 하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이야기를 즐기셨던 우리 할아버지를 꼭 닮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3시간이든 4시간이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으셨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밤이 새는지 새벽이 오는지도 모릅니다. 가슴속에 쌓인 말이 흘러나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밥 먹는 것도 달갑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 좋을 수 없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도 힘이 들어 이마에 진땀이 송골송골 맺히곤 합니다. 그래도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이야기를 계속해대니 차마 그만 가 봐야 한다는 말도 못 하고 나와 함께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입니다.    

 

※ 경성상공실무학교

  • 교훈 : 윤리 도덕을 존중하자 타인에게 아량을 베풀자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
  • 개교 : 1934년 4월 15일
  • 설립자 : 도이산요 (土居山洋)
  • 건학이념 : 기독교 정신에 기반하여, 조선인도 차별하지 않고 기술 교육
  • 설립 형태 : 사립 일반계 남녀공학
  • 교장 : 윤의진
  • 위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207 (도곡동 108)
  • 교목 : 은행나무
  • 교화 : 개나리
  • 학교법인 : 중앙대학교
  • 1934년 4월 15일 조선직업강습학원 설립 (경성부 연건동 195번지[現 서울 종로구])
  • 1936년 6월 27일 경기도 시흥군 장면 흑석리 234[現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교사 신축 이전
  • 1939년 2월 3일 경성농공실무학교 개편
  • 1944년 3월 2일 京城商工實務學校 개편
  • 1946년 9월 26일 경성상공중학교로 개편 (6년제)
  • 1951년 6월 7일 낙양중학교와 낙양공업고등학교로 분리
  • 1961년 11월 20일 낙양상업고등학교로 변경
  • 1962년 11월 24일 서울명수대상업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 1965년 2월 24일 학교법인 창문학원이 학교법인 중앙문화학원에 인수됨에 따라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및 부속여자고등학교로 개칭
  • 1991년 1월 18일 학교법인 중앙대학교로 명칭 변경
  • 1997년 3월 1일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와 부속여자고등학교를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로 통합, 현 위치로 교사 이전.

▶ 정성 들인다는 것은 뭐냐?   

- 나 자체를 무의 경지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 1970.11.22(일) 전진과 후퇴. 전본부교회.

036-101 정성 들인다는 것은 나 자체를 무의 경지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플러스라면 그 존재 앞에 완전한 마이너스의 형태로 몰아넣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기압권에 하나의 저기압권이 생겨나게 되면 거기에 있던 고기압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저기압권에 의해 고기압은 다른 어딘가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어딘가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저기압권에 커지면 커질수록 고기압권은 이에 비례하여 다른 곳에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저기압이 진공상태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한편으로는 끌어들이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방출 현상이 벌어지는 동시에 흡수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흡수되고 보급 보충되면서 여기에서 전진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 희생 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생의 가치를 추구함에 있어서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 입장이지만 희생하고 봉사하라는 것은 기압으로 말하자면 저기압권 형성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희생 봉사하는 데 있어서 나 자체를 완전히 주고 나면 저기압의 경우와 같은 진공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공이 생겨나면 우주는 내가 지녔던 양에 비례한 만큼의 가치를 반드시 보급해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자 즉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모습으로서 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될 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충 보급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라고 성품을 다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는 말씀은 누구에게 해당하는 것이냐? 하나님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다하는 것이 극에 달하게 되면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이냐? 상대 앞에 있어서 사랑의 힘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상대를 자극시킬 수 있는 하나의 작용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 작용이 하나님 앞에 미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미쳐 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대로 그 사랑을 다하게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도 영이요 뜻도 영이요, 정성도 영일 것입니다. 그러면 영의 자리에서 사랑하라는 말이냐? 아닙니다. 영 되는 입장에까지 나가게 되면 더 큰 사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의 작용의 요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에게는 오늘날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데 자기의 인격관을 중심 삼고 그 관을 채우기 위해서 사모한다면 자기의 영속적인 발전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 한계선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추구하면서 무한히 정성 들이고 무한히 그리워하고 무한히 흠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정이 가중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인연되어 오는 자극적인 열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열의를 가지고 작용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미쳐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환경을 타개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요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전진 발전할 것입니다. 

 

精誠을 들였다면 물 이상 精誠 들여야 된다. 

 

▣ 1996.2.18(일) 뜻과 우리의 정성. 우루과이 빅토이라프라자호텔.

276-140 여러분들, 선생님은 바다를 사랑합니다. 물을 사랑해여. 물이라는 것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모든 걸 품고 소화시킨다는 거예요. 

 

자르딘에 가게 된다면 말이에요, 미란다 강과 플라타 강이 있는데 그 둘이 음양이라구요. 플라타는 맑은 물인데 미란다는 흙탕물이에요. 어저께도 보니까 흙탕물이 얼마나, 세상으로 보면 도망가고 말이에요, 그럴 수 있겠는데도 불구하고 그 소용돌이 물에 그 맑은 물이 서슴지 않고 휘돌아 가는 겁니다. 자기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흙탕물과 더불어 화해, 빛깔이 달라졌지만 흐르고 흘러 시일이 가면 갈수록 다시 제 빛을 찾아 가지고 맑아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참부모의 사상은 뭐냐 하면 맑은 물과 같은 사상인데 흙탕물에 들어가더라도 그걸 품고 오래 淨化시킬 수 있는 能力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힘을 갖고 있느냐 하면 전부 다 자라나는 생명체의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또 무슨 힘이 있느냐 하면 저 땅 끝의 몇천 킬로미터에도 숨어 들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다는 거예요. 

 

* 그런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 통일교회 사상이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는 곳에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물과 같은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두 품고 소화시키서 깨끗한 것은 모든 만물 앞에 자랑하고 그다음에 숨어든 것은 생수의 근본이 돼 가지고 모든 것을 격려하고 모든 것을 새로이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땅은 어머니 상징이기 때문에, 하늘은 아버지 상징이고 땅은 어머니 상징인데 땅은 위대하다는 거예요. 모든 만물을 소생시키고 전부 다 번식시키는 것입니다. 땅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모든 더러운 것, 모든 세상의 나쁜 죽음의 피, 악한 모든 것을 다 흡수하는 거라구요.  

 

276-142 자, 精誠을 들였다면 물 이상 精誠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 변하지 않아요. 천년만년 움직이는 거라구요. 천년만년 쉬지 않는 것입니다. 땅도 천년만년 생명 생태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땅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공기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태양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정성을 들여야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 대신자로서 주인이 되고 모든 만물이 당신 아니면 안 되고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품에 품기겠다는 통일적인 세계가 거기에 빚어진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 정성을 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변명이 많아요.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정성의 도수가 더 크게 들어야 할 것이 얼마든지 남아 있기 때문에 변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는 거에요. 창세 이후에 지금까지 한 마디도 안 하고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 레버런 문이 지금 선생님이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새로 출발한다 그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새로운 정성이 가중되어야 된다 그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