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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노정

과학자대회

◑ 과학의 통일애 관한 국제회의

 

* 1972.11.23 제1회 미국 뉴욕

* 1973.11.18  제2회 일본 동경

* 1974.11.21 제3회 미국 

 

 

▣ 1977.12.4(일) 세계 복귀를 위한 우리의 책임. 워싱턴, D.C.

095-216 이 과학자 대회만 하더라도 맨 처음에 뉴욕에 올 때는 내가 저 꼬래비에 있어 가지고 거 성명없는 사람이었다구요. 저 꼬래비에 앉아 가지고 이러고···. 그 뭐 자기 종새끼만큼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다 몰라 봤다구요.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할 일을 한 거예요, 내가 할 일을.

 

095-218 그래서 창시자로서 인사를 해야 된다구요. 2차 대회 때 동경에 갔을 때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을 우습게 알기 때문에 "뭐, 레버런 문이 뭐냐? 전부 다 우리가 하는 것처럼 인사고 뭐고 다 빼 버려라." 이래 가지고 자기들 천지로 하려고 했다구요.

 

가 보니 그렇게 만들어 놔서 구보끼를 불러 "이놈의 자식, 누가 이렇게 하라 했느냐?" 하며 기합을 줬다구요. "여기 누가 회장이고, 너희들이 東大, 뭐야, 이 자식아? 누가 이기는가 보라" 하며 하루저녁에 내가 다 뒤집어 놓은 거예요.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며 하루저녁에 다 뒤집어 박았다구요. 

 

그 얼마나 밤새껏 두시 세 시 되기까지 안 된다고 해서 "안 되나 보자. 안 되면 전부 다 포기하는 거댜. 누가 힘이 있나 보자. 너희들이 힘이 있나, 레버런 문이 힘이 있나 보자. 정 그러면 내가 나서서 통역을 세워 가지고 이 일본 사람이, 동경대학의 학자들이 이 회의를 파탄시켰다고 국제적으로 선전할 것이다" 해서 때려잡은 거예요. 그런 배짱이 있다구요. "희의할 것 없으면 내 말 좀 들어라! 레버런 문이 왜 유명하냐, 내 말 좀 들으라구" 그런 뱃심이 있는 사람이라구요.   

 

자, 일본에서 저명한 사람들이 전부 다 레버런 문한테 들려 가지고 이름을 안 넣을 수 없으니 넣어 놓고 갈 때 얼마나 기분 나빴겠어요? 뭐, 회장은 얼마나 기분 나빴을까? 레버런 문이 나온 것이 얼마나 기분 나빴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게 삼엄한 자리에 당당하게 나가서 얘기한 거예요. 그 학자들이 이상하게 보든 말든 혼자 나가서 모른 척하고 얘기를 하게 한 거예요. 그게 멋이에요. 그래 가지고 대회를 끝냈다구요. 

 

그다음엔 1차 2차를 끝내고 3차 런던 대회를 ···. 그 영국 사람은 신사들이지요. 신사들이고 주인을 알아본다구요." 돈은 누가 내느냐?" 물질문명권에서 돈이 귀한 줄 알거든요. 거기서부터 정지작업이 ···.  그래 3차 만에 정지작업이 된 거라구요. 뉴욕에서부터 그다음 워싱턴에서 했고 이제 로스앤젤레스에서 ···.  이 미국을 때려잡아야 돼요. 미국이 레버런 문을 ···.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과학자대회가 원자탄 폭발보다 더 무섭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왜 로스앤젤레스에서 안 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했소?* 그래요. 뉴욕은 그렇다 하고 말이에요. 

 

* 그거 왜 했겠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버클리대학이 있고 스탠퍼드대학이 있기 때문에 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