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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강좌

자연은 제1의 성경

▣  1959.3.8(일) 전본부교회. 발걸음을 멈추고 지키시는 자를 다시 바라보자.  

005-342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우주의 법도에 의해서 변함없이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지구 자체가 그렇거니와 태양 자체도 자전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130만 배나 되는 질량을 가진 태양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이런 태양계 질량의 2천억 배나 되는 광대한 은하계가 있습니다. 이런 은하계를 소우주라고 하는데, 우주에는 은하계와 같은 성운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틀어서 대우주라고 합니다.

 

* 반경만 해도 수천억 광년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대우주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대우주를 변함없는 법도에 의해서 수억천만 년을 움직여 나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고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위대한 힘을 가지고 이 모든 천체를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는 그 웅장함과 위대함에 자연히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대우주를 창조하신 그분이 우리를 지켜 주시는 아버지요,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실존하시는 위대한 주인공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을 넓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 이러한 어마어마한 천체, 우리가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가치의 천체지만 그 천체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태양계 안의 하나의 위성인 지구라는 땅덩이 위에 대우주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한 보잘것없는 인간을 지어 놓으시고 인간을 중심한 하나의 이념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고마움과 그 기쁨가 그 영광됨과 장함이 얼마나 커야 할 것인가를 여러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또 우리가 삼라만상, 자연계를 바라볼 때, 사계절을 따라 변하는 자연현상과 때에 따라 모든 만물이 화동하여 미를 나타내는 것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무의미한 심정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는 새를 본다거나 나비나 벌을 볼 때, 흐르는 물이나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볼 때도 이  모두가 창조하신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반영된 모습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으신 만물을 보고 기뻐해야 할 것이었는데 기뻐해 본 일이 없으니 인간에게 슬픈 일이 있다 할진대 이 이상 슬픈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러한 슬픔을 느낄 줄 모르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슬퍼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인간이 슬퍼하기 전에 슬퍼하셨고, 인간이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시면서 인간을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하고 계십니다. 


005-344 이러한 하나님을 여러분은 마음 문을 열고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들어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한순간이 있어야만 인간의 가치가 회생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005-346 그러나 여러분이 신앙생활 도중이나 기도할 때 혹은 어두운 밤에 홀로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연계를 바라볼 때나 심각한 마음으로 마음문을 열어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을 느끼면서 자연계를 바라보게 될 때, 그 자연계가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 무수한 천체 세계가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을 실감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서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그 순간은 인간과 인간끼리의 감정으로 기도하는 어떠한 시간보다도 더 숭고한 기도의 시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나 그 아버지가 우리를 지켜 주는 줄로만 알았지 그 아버지가 이렇게 크고, 이렇게 위대하시고, 이렇게 세밀하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또 그 아버지가 하루도 아니고 창세전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수고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진정 마음으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 1959.6.28(일) 그리운 에덴. 전본부교회.

006-338 들에 자라고 있는 미미한 풀 한 포기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구루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내적 심정의 인연을 통한 사정이 거쳐 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상기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초목뿐만 아니라 들에서 뛰놀고 있는 어떠한 짐승이나 곤충, 어떠한 조류를 막론하고 이것들이 무심하게 되어진 것이 아니라 철두철미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통하여 지어졌고 실체의 손길을 거쳐서 지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느껴 봐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지으신 만물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 할진대 우리들은 어떠한 생각을 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만물을 지어 놓고 "선한지라" 하셨지만 그 가운데서도 제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  

 

풀이라면 풀 가운데서도 제일 사랑하는 풀이 무엇일까 생각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시간을 아끼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머문다 할진대 여러분은 사람을 짓기 전에 만물을 통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恩賜와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포기의 풀을 붙들고도 즐거워하면서 이것이 한날의 소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기쁜 심정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거치어 나온 풀이라는 것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타락한 인간이로되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친구의 입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풀이라면 풀 가운데서 어떠한 풀을 제일 좋아하실까, 꽃이라면 꽃들 가운데서는 "어떤 꽃을 사랑하실까", 지으신 나무들 가운데서는 "어떤 나무를 더욱 사랑하실까"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새는 물론이거니와 곤충 등 하등동물로부터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지음 받은 존재들이지만 "그 가운데서 어느 것을 아버지께서 제일 사랑하실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006-340 오늘날 우리들은 이 만물세계, 피조세계의 원리와 법칙, 공리와 공식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야가 과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에 깊이 숨어 있는 정서적인 분야를 나타낸 것이 문학일 것입니다.

 

자연에 나타나 있거나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어떤 형태로 구상하여 표현한 것이 예술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의 근본이치를 해명하려는 분야가 철학인 것입니다. 이런 단계 위에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참다운 종교과 종교가가 해명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자연 속에 깊이 흐르고 있는 정서적인 내용을 해명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종교가 짊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류의 문화는 자연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연을 떠난 인류 문화는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인간이 제아무리(제 딴에는 세상없이) 당당하게 그 위세를 자랑하고 권세를 누린다 해도, 자연을 무시한다면 그 모든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생활을 가치 있게 해 주는 것이 자연이요,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만상에 흐르고 있는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없고 하늘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의 풀을 바라보더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되겠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입장,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곤충이나 새 혹은 어떤 동물을 바라보게 될 때에도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 맺어지는 그런 내적인 감정을 체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떤 공식과 정의로써 즉 과학적인 논리로 그것을 해명하지는 못할지라도 혹은 문학적으로 그 정서를 표현하지는 못할지라도 혹은 예술적으로 그 미를 표현하지 못할지라도 정서적으로 사랑을 체휼하는 힘이 없을지라도 이는 위대한 과학자요 위대한 문학가요 위대한 예술가요 위대한 철학자요 위대한 종교가임에 틀림없습니다.  

 

▣ 1960.9.11 전본부교회

자연을 보고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도인이 아니다.

 

▣ 1960.5.9(일) 전본부교회. 하나님의 사랑가 더불어 사는 자가 되자.   

009-178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하고 귀여워합니다. 그렇잖아요? 그러면서도 제일 사랑해야 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귀여워할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돼요?

 

탄식하는 만물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여러분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6천 년 전 그것들을 지으실 때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의 손길을 체휼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길을 가다가 풀 한 포기를 보고도 눈물을 지을 수 있어야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붙들고도 울 수 있어야 됩니다. "주인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외로왔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한번 그래 보세요.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많이 울어 보았습니다. 바위를 붙들고도 울어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도 울어 보았습니다. 왜 그래야 되는지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이해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가치 있는 만물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인연을 맺은 귀한 만물이 오늘날 어떠한 왕궁에서 뭐 國寶니 寶物이니 하며 귀하게 여기는 물건만큼의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서글픔을 나는 알아줘야지. 나만은 알아주어야지" 하면서 나왔습니다.

 

"이 땅에 사는 30억 인류가 전부 몰라 주어도 나는 알아줘야지. 나만은 알아주어야지" 하는 마음을 여러분이 가진다면 이 민족은 앞으로 30억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어느 누가 萬物을 놓고 대대로 내려오는 자기 家門의 寶物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寶石이라 하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하게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합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당신께서 지으신 것을 심정적으로 알아주고 그것을 붙들고 눈물짓는 사람을 보고 '오냐'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겠는가 안 하시겠는가 생각해 보란 말이에요.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면 갈수록 그런 감정이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도통이란 그런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심정을 통해서 보면 모든 것은 하나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가정에 들어가서는 그 가정을 움직일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 그 가정은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 사회는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 국가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 지금은 사람이 만든 물건이 100%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을 거쳐 지어진 순수한 이 풀 한 포기를 무엇보다도 가치 있게 느낄 수 있는 세계가 되기를 나는 바라고 있습니다. 

 

어떠한 향기보다도 공기의 맛이 더 좋습니다. 내가 야목에 가서도 얘기했지만 사람이 공기의 맛을 알고 햇빛의 맛을 알고 물의 맛을 알면 병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심정으로 살면 누구나 건강체가 될 것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심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요, 심정과 더불어 영원한 존재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밥 한 술을 먹을 때도 "감사합니다. 황공합니다. 타락의 후손 앞에 이것이 웬일입니까?" 해 보십시오. 그래 보란 말이에요. 뭐 "맛이 있다 없다, 잘 입었다 못 입었다, 뭐 좋다 나쁘다, 지위가 높다 낮다" 해서는 안 됩니다.

 

▣ 1961.5.18(목) 전본부교회. 전통으로 남길 눈물과 땀과 피를 흘려라.

- 36가정 축복행사 후, 각자 임지로 보내면서 하신 말씀.

 

011-154 우주 자연을 무심히 보아서는 안 된다. 자연을 품고 노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 참다운 부모의 심정, 참다운 주인의 심정으로 자연을 붙들고 속삭일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하늘땅의 모든 것을 부여안고 살 때 천민이 된다.

 

 

▣ 1964.6.20(토) 자연과 민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014-101 선생님은 자연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지으셨을까 하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도토리나무나 여러 가지 풀잎을 보며 이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고 생각하노라면 이 모든 것이 신비스럽기가 한이 없었다. 여러분이 돌 하나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 우리는 무엇이든지 그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내용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이 갖는 그 본연의 가치만 알아도 말할 수 없는 복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연이 나를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 자연을 볼 줄 모르는 것이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알면 바람소리도 훌륭한 음악으로 들린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의 몸과 제일 가까운 것이 자연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탄식하는 자연의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한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높은 것을 추앙할 수 있다.

 

* 한 나라의 산과 땅과 물을 보면 그 나라의 민족성을 알 수 있다.

 

* 자기가 태어난 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몸도 사랑할 줄 안다. 또 자기의 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하늘도 칠 수가 없다.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자기가 태어난 이 땅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자연이 하나님의 섭리 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던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 1965.2.7(일) 동경교회. 중심을 구하여서 하나가 되자.

015-044 몸의 중심은 마음입니다. 자연은 사람을 중심으로 존재합니다.

 

▣ 1966.11.12(토) 잠다운 자녀가 되려면. 전본부교회.

- 제7회 참자녀의 날.

 

017-082 흘러가는 물소리가 내게 위로의 대상이 될 때 그 자연은 비로소 나와 인연을 갖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에 그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십니다. 역사는 그렇게 해서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요, 꼬인 역사의 고빗길도 거기서부터  풀리는 것이며 여기에서 원수가 친구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 1967.4.2(일) 천정과 인정. 청주교회.  

157-170 여러분의 몸뚱이의 부모가 뭐냐 하면 땅이에요. 땅. 알겠어요? 사랑의 공인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어요. 그렇지요? 그러니 부모의 공인을 받아야 돼요. 부모의 공인을 받았다 해도 마음은 부모가 마음대로 못 하는 거예요. 하늘이 주관해야지 사람은 참부모를 가져야 돼요.

 

땅은 우리의 몸뚱이의 부모예요. 이 고깃덩이의 부모예요. 이건 원소라구요. 이건 땅덩이의 요소라 이겁니다. 그래, 여러분의 낳아 준 부모가 있고 또 본성의 마음의 부모가 있어요. 참부모가 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은 땅의 공인을 받아야 돼요. 자연을 사랑해야 돼요. 땅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땅의 것을 먹을 자격이 없어요. 그다음에는 사람을 사랑해야 돼요. 그다음에는 하늘을 사랑해야 돼요.

 

▣ 1968.7.7(일) 전본부교회. 우리의 자랑.

020-255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앞으로 접근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자연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연은 여러분과 상관없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즉 여러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의 완성을 위해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깨달아 만유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출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목적의 세게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자로 설 수 없습니다. 도의 세계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자랑의 존재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동반한 자리에 서서 이 피조세계를 대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기쁨을 체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물을 놓고 나를 위해 지어진 자랑의 존재물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을 체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본성의 마음 터전 위에 연결될 수 있는 하나님이 찾고 자랑하고 싶었던 자식의 인연을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020-270  석온 씨 노친 왔어요? 지난번에 선생님에게 와서 "아, 선생님 이상해요. 오늘 내가 산에 가서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데 소나무 버드나무 할 것 없이 전부 춤을 둥실둥실 추면서 저에게 잘 부탁한다고 하는데 그거 왜 그래요?" 

 

그래서 "이 노친네 미쳤구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사탄 놈이 그랬구만!" 했어요. 그러나 그건 복이에요, 복! 그렇게 좋은 일이 있었으면 선생님이 반대를 하더라도 참이라고 믿어야지요. 

 

* 그래서 옛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연은 제1의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제2가 아닙니다.

 

* 성경보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세계가 제일이라는 거예요. 

 

 

 

▣ 1972.7.9(일) 섭리의 십자로. 전본부교회. 

059-101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교본이요, 교제로 전개시킨 것,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세워 놓은 것이 자연이 아니에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나뭇잎을 보고 자기 아들딸같이 여기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는 성인에 가까운 거예요. 미친 사람이 아니라구요.

 

▣ 1976.2.8(일) 축복. 전본부교회.

083-190 선다 싱(1889년 인도 ~ 1929년 티베트 선교 중 실종) 같은 양반은 만물은, 자연은 제2의 성경이다"는 말도 한 거라구요.

 

▣ 1992.2.1(토) 나는 최고의 존재다. 본부교회.

226-042 태양이 빛을 주고 주고 매일같이 주면서 "내가 준 빛에 대한 빚을 갚아라!"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빛에 대한 빚을 갚으라는 말이에요. 생명의 요소로서 비춰 준 빛에 대한 빚을 갚으라는 말을 들어 봤어요? 물이 매일같이 나를 먹여 주면서 "야, 내 빚 갚아라!" 하는 말을 들어봤어요? 

 

공기는 매 시간 인류 역사에 있어서 영원히 끊임없이 보급해 줘 가지고 생명선을 유지시켜 주는 입장에 서 있느니 이것을 값으로 치면 무한한 값인데도 불구하고 공기가 "야, 내 빚 갚아라!" 그래요?

 

물하고 공기하고 태양이 빚 갚으라고 하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의 생명이 존속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무한한 빚을 지고 있는 거라구요. 그 자연의 은덕을 고마워해야 됩니다


그 자연을 누가 그렇게 만든 거예요? 창조주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는 것보다 자연을 만든 주인, 창조주에 대해서 더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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