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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의

총서

◑ 총서 總序

▶ 행복과 욕망

 

001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될 때 오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欲望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 본의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그 욕망이 선보다도 악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를 맺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심은 이러한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지향하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망의 어두움을 헤치고 생명의 빛을 찾아 고달픈 길을 더듬고 있는 인생이다.

 

불의의 욕망을 따라서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누려 본 사람이 어디에 있었던가? 인간은 누구나 그러한 욕망을 채울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민하게 된다  

 

002 바울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롬 7:22~24)라고 개탄하였던 것이다.   

 

▶ 선의 욕망과 악의 욕망, 모순성.

 

우리는 여기에서 선의 欲望을 成就하려는 本心의 指向性과 이에 반하여 악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邪心의 指向性이 동일한 개체 속에서 각기 相反된 목적을 앞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인간의 矛盾性을 발견하게 되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내에 矛盾性을 갖게 될 때에는 破滅된다. 따라서 이와 같이 모순성을 가지게 된 인간 자체는 바로 破滅 狀態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모순성은 당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리는 萬無(절대로 없다.)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존재도 모순성을 內包하고서 生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러한 모순성을 내포한 운명적인 존재였다면 애당초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모순성은 後天的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파멸 상태를 일러 基督敎에서는 墮落이라고 한다.  

 

▶ 무지 그리고 내적 진리의 종교와 외적 진리의 과학. 

 

003 인간은 이와 같이 타락되어 自己 破滅에 이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邪心으로부터 오는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本心으로부터 일어나는 선의 욕망을 따라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것으로써 그 자체의 모순성을 除去하려는 필사적인 努力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궁극에 있어서 선과 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예) 유신론과 무신론

본심과 사심

모순성을 갖게 하여 파멸을 초래케 한 근본원인은? 

 

*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선의 욕망을 따라 본심이 지향하는 선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는 이 무지를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선악을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 인간의 타락을 지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이 무지에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은 마음과 몸의 내외 양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적인 면에 있어서도 내외 양면의 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지에도 내적인 무지와 외적인 무지의 두 가지가 있게 된다.

 

내적인 무지란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영적인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사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내세來世와 하나님에 대한 존재 여부 또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무지란 인간의 육신을 비롯한 자연계에 대한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물질세계의 근본은 무엇이며 그 모든 현상은 각각 어떠한 법칙에 의하여 일어나는가 하는 것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004 인간은 유사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무지에서 지에로 극복하기 위하여 진리를 찾아 나왔다. 그리하여 내적인 무지에서 내적인 지에로 克服하기 위하여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종교요, 외적인 무지에서 외적인 지에로 극복하기 위하여 외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과학이다.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종교와 과학은 인생의 영면의 무지에서 양면의 지에로 극복하기 위하여 양면의 진리를 찾아 나온 방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무지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가지고 본심의 욕망이 지향하는 선한 방향으로만 나아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는 종교와 과학이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 내외 양면의 진리가 상통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의 실제에 있어서 인간이 밟아 온 과정을 두 가지로 대별하여 본다면 첫째는 물질로 된 이 결과의 세계에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길이다. 

 

* 과학의 만능과 물질적 행복, 이러한 육신을 중심한 외적인 조건만으로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석가 - 왕궁의 영화(물질, 몸)와 마음의 보금자리(정신, 마음). 

 

* 왕궁의 영화를 버리고 마음의 보금자리를 찾아  정처 없는 구도의 행각을 즐긴 것은 비단 석가뿐이 아닐 것이다. 

 

▶ 釋迦牟尼 - 석가족의 성자

* 네팔 남쪽 석가 공화국  - 부족 국왕의 장남. 

* 기원전 560년 경 슈도다나 Suddhodana, 정반왕와 마야 부인 Mahamaya 사이에서 태어났다.

* 석가모니는 태어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고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 이는 "우주 안에서 오직 나만이 높다. 삼계가 모두 괴로움이니 이제 내가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뜻이다.

* 생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여다.

* 유년 시절 궁전 안의 안락함이 모든 인간의 생활인 줄 알았다. 어느 날 궁 밖으로 나와 밭갈이하는 농부를 보고 인간들이 수고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인간 사회 고통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에게 잡아먹히는 벌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쇠약한 을 보고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태어나서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운명에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 16세 때 콜리아 공화국의 공주 야쇼다라Yaśodhara와 결혼. 아들 라훌라 Rahula(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한 명.)

* 가족에게 무언의 이별을 고한 채 29세 때 출가. 6년간의 고행 끝에 35세 12월 8일 새벽에 깨달음을 얻어 열반 涅槃(열반은 번뇌의 불을 꺼서 깨우침 지혜를 완성하고 완전한 정신의 평안에 놓인 상태. 불교 수행의 최고의 이상향.)

* 기원전 480년 80세 入滅.

 

▷ 사상 

 

1) 8苦

ㄱ. 우리가 여기에 태어났다는 것은 바로 아픔의 뿌리이다 (生).

ㄴ. 태어나서 늙게 되는 것은 또한 아픔이다 (老).

ㄷ. 살아가면서 병이 들면 아픔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病).

ㄹ. 삶을 언젠가는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것에 아픔을 깨닫는다 (死)

ㅁ. 사랑하고 헤어지는 아픔을 깨닫는다 (愛別離).

ㅂ. 미워하고 한숨지으며 아픔을 깨닫는다 (怨憎會).

ㅅ. 무엇을 얻고자 하나 얻지 못하면서 아픔을 깨닫는다 (求不得).

ㅇ. 사람으로 태어나 가진 다섯 가지 조건(몸 - 色, 마음 -  受 想 行 識)에서 비롯되는 아픔을 깨닫는다 (5취온五取蘊).

- 5취온이 되게 하는 근본 요인은 욕탐欲貪이다.

 

2) 연기 - . 因果法則

因緣 - 인은 직접적인 원인, 연은 간접적인 원인.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인 만큼 자타가 불이(不二)함을 깨달아 머무름이 없는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연기(緣起)”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뜻이다.

 

此有故彼有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此起故彼起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此無故彼無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此滅故彼滅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

-  雜阿含, 卷13

 

3) 慈悲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전제로 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한다. 진정한 자비란, 인간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 즉 미물에까지 미치는 사랑을 의미한다.

 

4) 사성제 四聖諦 (4가지의 높은 깨우침.) - 아함경阿含經에 나온다. 

- 고(苦)성제 :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 집(集)성제 : 그 고통은 바로 탐욕과 진노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 멸(滅)성제 : 번뇌와 무명을 모두 끊어 버린 절대평화, 절대자유 해탈의 경지를 가리킨다.

- 도(道)성제 : 멸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여덟 가지의 올바른 수행 생활”을 설명하여 팔정도의 방법이 있다.

 

005 인간이 밟아 온 과정의 그 둘째는 결과적인 현상세계를 초월하여 원인적인 본질세계에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철학이나 종교. 

 

006 온 인류의 구원을 표방하고 2천 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판도를 가지게 된 기독교의 역사를 들추어 보라. 

 

* 공산주의 출현

- 자본주의의 재욕의 바람이 유럽의 기독교 사회를 휩쓸어 기아에 허덕이는 수많은 서민들이 빈민굴에서 아우성을 칠 때 그들에 대한 구원의 함성은 하늘이 아닌 땅으로부터 들려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다. 

 

* 그렇게 무자비한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반기가 들렸던 사실은 있을 만하기도 하다. 이렇게 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유물사상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사회는 유물사상의 온상이 되었다. 

 

▶ 새 진리

 

- 경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교과서

 

* 이와 같이 종교와 과학은 인생의 양면의 무지를 타개하기 위한 사명을 각각 분담하고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 과정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상충하여 서로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은 양상을 보여 왔으나 인간이 그 양면의 무지를 완전히 극복하여 본심이 요구하는 선의 목적을 완전히 이루자면 어느 때든지 과학을 찾아 나온 종교와 종교를 찾아 나온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주는 새 진리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새 진리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은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 신도들에게는 못마땅하게 생각될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서가 이미 그것만으로서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리는 유일하고 영원불변하며 절대적이다. 그러나 경서란 진리 자체가 아니고 진리를 가르쳐 주는 하나의 교과서로서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로 그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높아져 온 각 시대의 인간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가르쳐 주는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와 방법에 있어서는 시대를 따라서 달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성격을 띠고 있는 교과서마저 절대시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 그러면 그 새 진리는 어떠한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인가? 종교가 찾아 나온 내적 진리와 과학이 찾아 나온 외적 진리를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을 내외 약면의 무지에서 내외 양면의 지에로 완전히 극복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 타락 인간에 있어 앎은 생명의 빛이요, 또한 소생의 힘이 된다. 그리고 무지는 사망의 그늘이요 또한 파멸의 요소인 것이다. 무지에서는 어떠한 정서도 일어날 수 없으며 무지와 무정서에서는 어떠한 의지도 생길 수 없다.

 

이렇듯 인간에게 있어 지 정 의가 제구실을 못 하게 될 때에는 거기에 인간다운 인간의 생활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가지고는 살 수 없도록 지어졌다면 하나님에 대한 무지야말로 우리 인생을 얼마나 비참한 길로 몰아내고 있는 것인가?   

 

* 그러므로 이 새 진리는 하나님의 실재성에 관하여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을 비롯하여 하나님 자신을 반역하는 타락 인간을 버리지 못하시고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구원하시려고 애써 오신 애달픈 심정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어야 한다.   

 

*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범죄하게 되었던 것은 실상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어디까지나 관념적이요, 실감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성을 실감하는 자리에서 범죄한 인간은 부득이 지옥으로 보내질 수밖에 없는 천법을 안다면 거기에서 누가 감히 죄를 범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죄 없는 세계를 천국이라 할진대 타락 인간이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찾아 나온 이 세계야 말로 바로 그 천국인 것이다. 그리고 이 천국은 지상의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지상천국이 되는 것이다.   

 

* 이와 같이 인간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이 최종적인 진리는 어떠한 경서나 문헌에 의한 종합적인 연구의 결과로나 혹은 어떠한 인간의 두뇌에서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성성에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계 10:11)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진리는 하나님의 계시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이 땅 위에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셨으니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이시다.  

 

▶ 성서 

 

▷요한계시록 10장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 또는 시간이 다시 없으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And he said unto me, Thou must prophesy( prάfəsài 예언, 예측하다. ) again before many peoples, and nations, and tongues(혀, 말, 입, 언어), and kings.

 

▷요한복음 16장 25절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 새 진리와 행복 - 말씀 중. 

▶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반대부터 했습니다. -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서문. 2009.3.1 청평에서  

 

 朝聞道면 夕死可라는 말이 있다.  1971.1.10

원리를 찾기는 망망한 바다 가운데서 모래알을 줍는 것과 같았다. 뜻길 24

 인간의 욕망을 달성할 수 없으면 인간의 행복은 영원히 있을 수 없다. 1994.1.23

 최하의 자리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라고 있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된다.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된다. 또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하나님의 소망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후 거기에 만물의 주재로 아담 해와를 세워놓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에 충만하라. 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였는데 인간이 이 축복을 성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었다. 인간이 이 축복을 성취하는 날에는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아버지가 되고, 아담 해와는 그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딸, 이것은 架空的인 명사가 아니다. 이것이 가공적인 명사라면 기독교의 모든 것은 거짓말이 된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제일 귀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면 이 천지간에 제일 귀한 것은 무엇이냐? 모든 피조물이 자기의 생명을 주고라도 갖고 싶어하는 분이 있으니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1960.5.1  

 

▶ 행복한 사람은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은 때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으래야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불행하신 분이다. 1961.10.14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모시고 싶어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1962.12.19

 죽도록 좋아할 수 있는 부모를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1969.11.15

 

▶ 악과 싸워 승리하지 않으면 행복은 있을 수 없다. 혹 행복이 오더라도 그것을 느낄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공의를 위해 싸우고 하나님 대신 주어야 한다. 도의 길은 주는 길이다. 1961.10.14 

 슬픔도 같이하고 기쁨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자는 행복하다. 1959.7.5

 행복은 자기에게 달린 것이다. 1989.4.2

 사랑에 의해 살고 사랑에 의해 죽는 사람은 행복하다. 1988.11.7

 첫사랑의 상대를 남편으로, 아내로 맞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

 

 건강한 사람 199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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