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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심원 효진님 흥진님 대모님

김주환 천심원 팀장 간증 - "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삶을 확인해 보자"

◑ 김주환 HJ천주청평수련원 천심원 팀장 간증 중. 

- 1654차 수련 2024년 10월 4일 

- 1800가정의 2세 

- 7년쯤 수련원에서 시무 중. 

 

▶ 수련원에서 일하게 된 계기와 40일 수련에 들어오게 된 계기에 대해서 간증.

 

선문대 통일신학과에 입학했다. 나름대로 신앙을 열심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축복이 어려워지며 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우울증도 걸리고, 극단적인 시도도 했다. 대학생활은 다 망가졌다. 불평불만과 원망의 마음에 악신이 상대기준을 조성해서 역사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야 되겠다, 이제는 참부모님을 더 이상 믿지 않아"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떠나려고 생각하니까 한국에 있어 가지고는 떠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해외와 가자" 마침 호주에 자리가 생겼다. "호주로 도망을 가야 되겠다"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해서 호주로 떠났다.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영어를 배우러 갔구나. 아니면 해외 경험을 하러 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 본마음은 "더 이상 신앙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나는 우리 교회를 믿지 않아" 그게 본마음이었다. 

 

교회를 떠나 호주라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았다. 너무도 행복했다.

 

그런데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어려운 사건들이 연속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공포감을 느꼈다. "영계에서 들이치는 것 같다. 영계에서 나를 깨닫게 하려고 사건이 일어나는 것 같다" 속으로 그렇게 느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영계도 믿지 않아. 이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라고 끊임없이 합리화시켰다. 급기야(마지막에 가서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단판기도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일도 있었다. 

 

"그래도 영계를 믿고 싶지 않아. 교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런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끊임없이 겉돌기만 했다.

 

고향 집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 날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저에게 "축복을 받아야 된다. 신앙을 해야 된다."고 했다. 그 주제로 어머니와 밤새도록 대화를 했다. 끝까지 제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절대로 축복을 받지 않습니다. 절대로 신앙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포기하십시오" 밤새도록 그런 대화가 오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집에 계신 어머니였다.  "집에 계시면서 왜 전화를 하셨을까?"

 

"마당으로 잠깐 나와 봐라" 고추를 널고 계셨다. 고개 돌리셨는데 눈이 마주쳤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퉁퉁 부어 있었다. 직감으로 "뭔가가 있구나" 하고 느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너에게 물어볼게. 너 정말 신앙을 하지 않고 축복을 받지 않겠느냐?" 저도 고집이 있는 편입니다. "네, 저는 죽어도 축복을 받지 않습니다. 포기하십시오"

 

"그래? 그러면 좋다. 엄마의 소원이 있다. 이것만 들어준다면 다시는 신앙 이야기도 축복 이야기도 꺼내지 않겠다"

"네, 말씀하십시오" 

"나에게는 다섯 명의 자녀가 있다. 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네가 신앙을 하지 않고 축복을 받지 않으면 축복받지 않은 너의 동생 3명도 너를 핑계 대며 너를 따라서 축복을 받지 않을 것 아니냐. 똑같이 사랑하는 자녀들이니까 네가 이 집을 떠나 주면 좋겠다" 

"제가 왜 떠나야 됩니까, 우리 집을!?"

"너는 이미 원리도 알고 말씀도 알고 축복의 가치도 아마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잃어버리고 너 때문에 나머지 3명의 자녀를 참부모님 앞에 잃어버린다면 나는 살 이유도 살 수도 없다. 그러니 5명 중에 너 한 명을 버리고 나머지 네 명을 데리고 참부모님과 함께 가겠다. 약속해라. 다시는 죽을 때까지 우리 집에 오지 않겠다. 연락하지 않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니 아버지가 성화하셨다는 소식이 있어도 절대로 와서는 안 된다." 

 

저는 그때 결심했다."네, 죽을 때까지 오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짐을 싸서 집을 떠났다. 

"마지막 인사드립니다, 어머님. 그동안 너무 감사했고 건강히 계십시오" 

 

버스를 타고 집을 떠났다. 참 많은 눈물이 흘렀다.

"해외로 가든, 제주로 가든 가능하면 멀리 떠나라. 절대로 나타나서는 안 안된다"   

그렇게 떠나고 나서부터 또 의미가 있는 꿈을 꾸고 영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다.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사연이 있어 "쓰러져 가는 부모님의 집을 다시 지어 드려야 되겠다. 그래야 내가 편히 영계에 가겠다" 그렇게 해서 1년 동안 부모님을 위해 집을 직접 지어 완성했다. 

 

완성하니까 어머니께서 "긴히 할 말이 있다. 너는 40일 수련에 들어가야 된다"고 하셨다.

"저는 40일 수련이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제 인식 속에는 영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 죄를 지은 사람, 아픈 사람, 그런 분들이 40일 수련에 들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다.

 

"절대 안 갑니다" 

"40일 수련 들어가라"

"안 갑니다" 

한 달 동안 실랑이(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다)했다.  

 

실랑이를 하는 동안 제 몸에서 기기 빠져나가는 느낌이 왔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데도 이상하게 몸이 약해졌다.

"내가 병에 걸렸나? 암에 걸렸나? 내 몸이 왜 이러지?"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3시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와 잠을 잤는데 새벽 5시가 되어 부모님이 훈독회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제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갈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몸이 왜 이러지? 오줌이 마려운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몸에 열이 나는 것 같으면서 몸 상태가 이상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제 몸에서 제 영인체가 분립이 되었다.

"야, 이게 뭐지?"

침대에 누워 있는 제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와 살다 살다 유체이탈하는 꿈도 꾸네. 야, 신기하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아주 심각하게 마음이 바뀌었다. 왜냐 하면 꿈을 많이 꾸었지만 이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영인체의 영적 오관이 열려서 영적으로 느끼기 시작하니까 "이게 꿈이 아니네!"

 

이 꿈과 영계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너무 달라서 누구라도 구분할 수 있다. 

"아, 꿈이 아니네. 큰일 났다. 그러면 내가 죽은 것 같은데 어떡하지" 몸으로 돌아가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었다. 제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거실에서 훈독회하시는 아버지 어머니께 정말 간절히 외쳤다. 

"엄마! 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 주세요! 저 여기 있어요! " 아무리 소리를 쳐도 듣지를 못하셨다. 

"아버지!  아버지! 살려 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아무리 외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와 똑같은 모습의 제가 나타났다.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끝났어. 기회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줬어. 이제 네가 영원히 살게 될 곳으로 가자" 

저는 그때 정말 심각함을 느꼈다.

"저는 못 간다. 결혼도 못했고 자식도 없고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도 못 했고, 나 못 간다"며 난리를 피웠다.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눈물 콧물 침이 흐르고. 못 간다고

그러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삶을 확인해 보자"

우주 전체가 저의 삶으로 도배가 되었다.

어느 장면을 제가 응시했다. 그 영상 속으로 또 다른 저와 함께 빨려 들어갔다.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양심을 어기고 죄를 짓던 상황으로 싹 들어가 버렸다. 세 명이 있는 것이다. 그 당시의 저. 죽은 저, 또 다른 저. 3명이서 그 당시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너 이때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이렇게 했었잖아? 보이지? 기억나지? "    

저는 평소 하던 대로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댔다. 

"나는 이때 몰라서 그랬고 철이 없어서 그랬고 누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랬고" 막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핑계를 누가 듣고 있는가 하면 제가 듣는 것이다. 사람은 나누어져 있는데 생각이나 마음이 3명 안에 똑같이 느끼는 것이었다. 말하면 말할수록 듣는 사람은 나 스스로인 것이다. 소용이 없다. 아무리 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저는 그렇게 불과 몇십 초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인생에서 양심의 가책이 되었던 순간들, 죄를 지었던 순간순간들에 다 들어가서 직접 확인했다. 그 확인하는 그 순간순간이 생지옥 중의 지옥이었다.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고 거북하고 괴로운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하고 우리 집 지붕 위로 다시 올라왔다. 지붕 위에 떠 있었다.

"다 확인했지? 네가 영원히 살 곳으로 가자" 

 

갑자기 이동을 하게 되었다. 살게 될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마을을 AI로 비슷하게 표현해 봤다. 마치 전쟁에서 폐허가 된 회색빛의 마을에 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적으로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저를 보더니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다 알게 되었다.   

 

천 명이 넘는 모인 사람들이 저에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저 새끼를 죽여라! 몽둥이로 두들겨 패라! 쫓아내라!" 난리가 났다. 

영계에서는 동시에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소리를 쳐도 한 명 한 명의 소리가 다 들린다. 그게 시공을 초월하는 개념일 것이다.

 

기억에 남는 건 칼을 든 아저씨의 말이 생각이 난다. 

"저 XX새끼를 칼로 찢어 죽이겠다. 참부모님을 만나고 축복가정 2세로 태어났고 원리도 듣고 말씀도 그렇게 많이 듣고 통일신학과까지 나왔다는데 그렇게 산 놈이 죄짓고 저렇게 살았는데, 나는 참부모님도 만나지 못했고 원리도 말씀도 몰랐고 축복가정도 아니고 어떻게 내가 세상에 저런 나쁜 사람이랑 같이 살 수 있냐!  절대로 안 된다! 저 새끼를 죽여라!"

 

영계에서는 소리를 치는데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오게 된다. 그 공포감은 제가 과장하지 않고 설명한다면 지상에서 느끼는 최대치의 공포에 곱하기 100 정도 하면 그 공포감을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저는 사시나무 떨듯이 다리가 떨리고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턱이 떨리고 눈물 콧물이 흐리고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엄마 아빠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래? 그럼 질문 한 가지를 할게. 대답해 봐"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질문 내용은 

"네가 참부모님을 위해한 실적, 실적을 한 가지만 말해 봐" 

제가 실적이 뭐가 있습니까? 2세들이 실적이 뭐가 있을까요? 교회에 친구들 형식적으로 데리고 간 것? 아니면 행사에 친구들 데리고 간 것? 그것도 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각은 났지만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없잖아? 없지? "  제가 저를 잘 아니까 또 다른 저는 저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그리고 "가자! 너무 늦었어. 끝났어. 기회를 너무 많이 줬잖아" 

 

다시 이동을 했다. 그때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때의 일이 떠올랐다. 바로 밑의 여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 제가 하늘에 처음으로 간절히 맹세했던 일이 떠올랐다. 

"제 여동생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제 인생을 하늘 앞에 바치겠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면서 주먹이 퉁퉁 부어오를 때까지 주먹으로 바닥을 치면서 "제 인생을 바칠 테니 목숨만 살려주세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순간 느끼게 되었다. 

"살려만 주시면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하고 소리를 쳤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시 한번 더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니까 "그래? 마지막 질문이다. 대답해 봐. 너 참아버님 천주 성화 이후에 어머님이 어떻게 사셨는 줄 알아?" 

"모른다"고 대답했다. 

"자, 저길 봐 봐" 

온 우주가 어머님의 영상으로 바뀌었다. 그 영상에는 서재와 같은 곳에서 어머님께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된 상태로 눈물 콧물을 닦고 계셨다. 그 닦은 휴지가 이 어깨까지 쌓여 있었다. 영상과 함께 그때 참어머님의 마음을 그대로 제 마음에 넣어 주었다.

 

방금 전까지 제 자신을 위해서 억울해하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그 어머님의 마음이 들어온 순간 마음이 칼로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폈다. 그 어머님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잠깐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잠깐의 느낌으로 대성통곡이 벌어졌다. 너무 신세가 처량하고 슬프고 안타깝고 불쌍하고. 

 

이 어머님의 심정이 들어와서 그때부터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영상이 사라졌다. 

"너 어머님이 이렇게 가슴 아파할 때 지금까지 뭐 했어?" 저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이제 가자. 정말 끝났다" 

 

다시 그 마음로 가까워졌다. 그때부터 마음이 바뀌었다.

"이대로 영계에 데려갈 거면 왜 나에게 어머님의 그런 비참한 심정을 느끼게 해 줬냐? 왜 나에게 어머님 마음을 느끼게 해 줬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를 살려내라!. 살려내! 살려만 주면 이제 지상에 가서 어머님을 위해서 정말 초등학교 2학년 때 지키지 못했던 약속 지킬 테니까 이제는 진짜 어머님을 위해서 인생을 바칠 테니까 나를 살려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데 멈추질 않고 마을로 계속 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제가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야, 개새끼들아 살려내! 너희들이 나를 살려내지 않으면 어머님을 위해서 인생을 바치겠다고 한 2세 한 명을 없애는 것이다. 이 개세끼들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먹혀 들어갔다. 거의 도착했는데 멈추는 것이었다.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집 지붕으로 돌아옸다. 지붕을 통과해서 침대에 누워 있는 제 육신으로 영인체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떨이는 마음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여 보자. 

"하나 둘 셋" 움직여지는 것이었다.

너무 신이 나서 잠이 안 왔다. 30분 정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베개를 주먹으로 키면서 감사합니다만 외쳤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얼마나 다행인지. 

 

아침식사하러 거실로 나갔다. 아버지 어머니가 새롭게 보였다.

전날까지 만해도 잔소리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도 듣기 싫고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어. 아버지가 무능력해서 내가 이렇게 살았어" 온갖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서 목소리도 듣기 싫던 제가 진짜 말하지 않고 참으려고 했는데 입에서 

"살아 계신 나의 하나님!" 하고 말을 해 버렸다. 그리고 주방에서 걸어오시는 아버지를 갑자기 꼭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갑자기 와 이라노! 미쳤나!"  하면서 나를 밀쳐 냈다. 정말 진심에서 우러났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날 저녁식사를 하면서 "부모님, 저 40일 수련에 들어가겠습니다" 

"어? 한 달이 넘도록 죽어도 안 들어간다고 말도 못 꺼내게 하더니 갑자기 왜?" 

"아, 가야 될 일이 있습니다. 갔다 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빨리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그래, 수련비 줄 테니까 빨리 준비해서 가라"  짐 싸서 40일 수련에 들어갔다. 

 

저희 어머니는 아들이 40일 수련 들어가면 축복 대상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계시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40일 들어가서 6, 7년 교회 떠나 있다가 갑자기 왔기에 수련에 열심히 안 참석했다. 찬양역사 후 천심원, 밥 먹고 천심원 가니까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맨 뒤 시계 밑에 벽에 등을 기대고 눈 뜨고 가만있었다. 기도하고 싶지도 않고 기도가 우러나오지도 않았다. 경배 정성은 귀찮았다. 훈련부장이 성지 갔다고 왔냐고 물으면 갔다 왔다고 거짓말하고 거기 앉아 있었다. 계속 거짓말했다. 

 

앉아 있는데 누가 저를 불렀다. "주환아!" "응, 누구지!" "주환아!" "주환아!" 세 번 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도 없었다. 참부모님이 나를 부르셨나 하고 존영을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지금부터 축복을 위한 정성을 들여라" 

 

그래서 제가 "엉, 갑자기요? 갑자기 축복을 위한 정성요? 어떻게 들이면 되는데요? 하고 물어봤다.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한 가지 생각이 나는 것은 축복나무, 축복나무만 생각이 났다. 성지도 안 가다가  축복나무만 오르내렸다. 천정궁이 보이는 능선에 서서 경배를 드렸다. 그런데 슬프지도 않고 무슨 대단한 기도도 하지 않는데 기도를 시작하면 눈물이 그렇게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겨울인데 이상하게 흘러내렸다. 한 일주일정도 반복되었다.

 

기도를 시작한 그 자리에서 지금의 제 장인어른을 만났다. "내 딸과 축복을 받지 않겠느냐?" 

지금의 아내와 헤븐지 버거에서 만나 축복을 약속하고 약혼식을 하고 그해 축복을 받게 되었다.    

 

제안을 받은 그날 저녁에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어느 공직자분께서 본인의 딸고 축복을 받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소개를 받아 볼까요, 말까요?" 여쭤 보았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거다. 40일 수련 들어가라고 한 이유가 그거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 사람하고 축복받으면 된다"  

"누군지 얘기도 안 했는데 축복을 받으라고요? "

"그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축복을 받으면 된다. 그 사람이 남자는 아니지 않냐. 그 사람하고 축복을 받아라" 

 

* 40일 수련받으면서 훈련부장  팀장 국장님이 "신학과를 나왔으니 수련원에서 훈련부장으로 일해 볼 생각이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