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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전통

흥진님의 승화식.

◑ 흥진님의 승화. 

* 1984.1.2. 오전 1시 15분. 흥진님 승화.

 

▶ 흥진 님께서 운명하시는 그 순간 참아버님.

 

"흥진아, 잘 가거라. 너는 영계에 가서 동서고금 젊은 영들을 동원하는 총사령관이 될 것이다. 자유세계의 영들뿐만 아니라 공산 진영의 젊은 영들까지 동원하여 이 땅 위에 자유롭게 내려와서 땅 위의 모든 젊은이들을 깨우치고 일으켜서 하늘 역군으로 만드는 사명을 네가 수행할 것이다.", "아빠 엄마는 너와 같은 효자를 가진 것을 영원히 자랑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참어머님.

 

"얘들아, 너희들이 이렇게 울고 흩어지고 슬퍼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생명보다 중요한 분이 아버지가 아니시냐? 흥진 오빠가 아버지 대신 가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아버지가 아니 계시면 이 세계가 어떻게 되며 인류가 어떻게 되며 공산주의를 누가 막겠느냐? 그러니 하나님께서 흥진 오빠를 데리고 가시고 아버지를 건재케 하신 것을 눈물로 감사해야 할 것이 아니냐. 너희들도 흥진 오빠와 같이 아버지를 생명으로 하여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거라."

 

▶ 흥진 님 세계 승화식 중 박보희 선생의 승화사 중

얼마 전 축복 가정 몇몇을 대동하고 워싱턴에 있는 본인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만일 총을 가진 흉한이 나타나 아버님을 쏘려고 할 때에 너희들이 몸을 던져서라도 아버님을 지켜 드릴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고 그들로부터 다짐을 받으신 후 "나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아버지 대신 내가 기꺼이 죽을 수 있다."고 하시고 "내가 죽고 아버지가 사실 수 있다면 나는 추호도 서슴지 않고 내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리겠노라." 하시며 당신도 손을 들고 선서하셨다.

 

사고가 나던 당일에도 한 미국 식구와 점심을 나누면서 죽음이라는 문제를 놓고 대화를 하셨다. 그때도 "나는 아버지 대신 죽을 수가 있다. 다만 내가 축복결혼을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간다고 하면 그 한 가지가 좀 섭섭하지만 이 세상에서 위대하신 아버지 대신 죽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사고 7시간 전의 말이었다.

 

▣ 1986.1.3(금) 제3회 애승일. 본부교회.

- 축복 2세.

 

137-290 우리 흥진 군이 가서 승화식할 때까지 눈물 한 번 안 흘렸어요. 피가 튀겨 나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천 사람 만 사람의 아들을 바쳐 가지고 하늘의 한을 풀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의 무엇이라도···.

 

자식이 죽는 자리에 있어 하늘의 동정을 바라는 눈물을 나는 못 흘려요. 죽으면 죽었지 못 흘려요. 그러나 가고 난 다음에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지만 말이에요.

 

승화식이 끝나고 난 다음에 아버지로서 할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몰랐다면 그가 죽기 전에 모든 사탄 편의 것을 정리하고 통일식으로부터 그런 탕감적인 조건을 안 세웠으면 흥진이는 비참한 죽음을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