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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사 1. 2. 3 ▣ 1971.12.27(월) ~ 29(수)워싱턴, D.C.

▣ 1971.12.27(월) 워싱턴, D.C. 통일교회사 1.

052-138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한국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한국의 애국지사들 가운데에는 일본의 압제에 대항해서 싸웠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사위기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귀 섭리의 목적은 이 사위기대를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과 하나님의 섭리 속에 4수가 많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40년과 400년 탕감기간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복귀, 탕감이 이 원리에 따라서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이 하나님의 섭리에서 아담 국가가 되려면 해와 국가의 통지하에 놓여져야 합니다. 해와 국가를 이겨냄으로써 독립을 쟁취해야 됩니다. 일본은 독일과 이태리와 결합되었는데 그들 나라는 모든 사탄 편 국가들이었습니다.

 

민주주의 편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가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독일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20년 안에 복구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감당해야 할 큰 의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패했던 나라가 먼저 공격합니다. 그 세 나라 즉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연합해서 사탄 국가들을 이겼습니다. 한국은 40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일본은 사탄 편 여성 국가였습니다. 그 40년 기간에 일본은 한국의 모든 문화적 전통 그리고 심지어 한국의 언어까지 없애려고 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 기간 동안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투옥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일본 정부에 의해서 투옥되고 억압받았던 한국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 받기 위해 그 사람들은 애국자 효자 또는 그들 사회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애국자들은 나라를 위해서 그들 자신들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서도 그러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섭리를 위한 기대를 찾으시고 넓히실 때는 항상 사탄의 반대 아래서 역사하십니다. 그때 선생님은 한 청년으로서 다가오는 공생애를 위해 자신을 준비했습니다.

 

시간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에 가까워짐에 따라 압박은 더욱더 가혹해졌습니다. 일제 말기에 일본인들은 그들의 압박을 가중시켰고 기독교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신사 참배를 거부하며 지하로 숨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주로 갔고 어떤 사람들은 소련으로 갔고 어떤 사람들은 산으로 가서 숨어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일본으로부터 해방의 그날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와 내통했던 기독교 목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지시에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하에서 산에서 여전히 믿음을 지키며 해방의 그날을 기다리면서 싸운 애국적인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052-139 전쟁의 끝이 가까이 오고 있을 때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더욱 심각해졌고 그들은 결정적인 심판 또는 결정적인 판결을 한국에 내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에 의해서 또는 영계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인도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일본 경찰들이 자기들을 붙잡으려고 할 때 피하거나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세계의 역사가 한국을 중심 삼고 전개될 것이라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습니다. 또한 선생님도 그러한 몇몇 단체들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선생님이 그런 집단들과 연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때 선생님은 여러분이 지금 배우고 있는 원리의 어떤 것도 결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의 말씀도 있었거니와 선생님이 한국의 해방 직후에 이 일을 시작하기로 하나님께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때에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만에 의해서 성취될 수는 없습니다. 함께 일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모든 기독교회가 분열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기성교회와 더불어 일하지 말라는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원산의 백남주와 철산의 聖主敎 金聖道.

 

052-140 한국의 땅은 동과 서로 구별됩니다. 동쪽에는 산이 많고 서쪽에는 평야가 많습니다. 또한 한국에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특별한 사명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동쪽 부분은 남성적인 모습을 하고 서쪽 부분은 여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한국의 땅 모양과 같은 형태를 취했습니다. 즉 동쪽 부분에는 남성적인 특질을 그리고 서쪽 부분에 여성적인 특질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북한 동해안에 원산이라고 불리는 한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하나의 기독교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서해안에는 鐵山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하나의 기독교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동해안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따랐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자신의 과거와 앞으로 닥쳐올 일과 앞으로 일어날 것들을 말했습니다.

 

元山에서 일어난 운동의 지도자는 백남주였습니다. 또한 거기에 그 남자의 상대였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한명화였습니다. 그녀에게 예수가 나타나서 그녀를 통해서 예수가 백 씨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주가 나와 함께 계시고 주가 나를 통해서 말씀하신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 씨는 무릎을 꿇고 그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씀하려고 하는 것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그것으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둘에게 일어났던 그 일이 목사에게 전해졌고 목사들은 그것을 듣고 그 둘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영적인 단체들과 기성교회들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계시를 또는 말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영적인 운동의 내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영적인 현상을 컨트롤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단은 그 여자가 하는 말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하늘로부터의 말씀에 의해서 서해안 지역에 어떤 또 다른 집단이 있다는 것과 그 집단과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 그녀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래서 백 씨는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갈 때 하늘이 그에게 신발을 신지 말라고 해서 맨발로 서해안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 거리는 약 130마일이 될 것입니다.

 

052-141 서해안 지방의 철산에는 그리 늙지 않은 약 쉰 살 정도 된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김성도라는 부인이었습니다. 김성도를 중심 삼고 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에게 남편이 있었는데 그녀가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기 시작하자 그 남편은 그녀를 박해하여 거의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그 당시에 한국에는 유교가 널리 보급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면 그는 자기의 조상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녀는 항상 밤 1시에 일어나 아침나절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모르는 자에게는 그런 행동이 이해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런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녀는 신앙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영계에 의해서 그 당시에 한국에서 특별히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대화를 가졌습니다. 그녀는 직접 계시를 받았습니다. 즉 그녀는 하늘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한국 해방의 정확한 날짜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재림주가 육신을 쓴 인간으로 한국에 올 것이라는 것도 들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주님에 의해서 한국이 특권을 가진 나라가 될 것이며 한국에 의해서 온 세계가 하나님에게 복귀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하늘로부터 받았던 12가지의 중요한 가르침이 있었는데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일본으로부터 한국의 해방

2) 재림주님은 한국으로 오실 것인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쓴 한 인간으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한국인이다.

3)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과일이 아니고 타락은 사랑의 행위였다. 즉 타락은 사랑의 잘못 사용으로 일어났다.

4) 남자와 여자는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결혼은 참된 결혼이 아니라 거짓 결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결혼한 부부들에게는 성생활을 하자 말라고 가르쳤다.

5) 주님은 새로운 혈통을 세우려고 오신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을 영접하려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과 몸을 정결케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성생활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많은 여자들이 그녀에게 와서 하늘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고 지상에 에덴동산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며느리는 한 목사의 딸이었습니다. 그 목사는 매우 독실한 목사였습니다. 그녀의 며느리 또한 영적인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하늘로부터 받는 계시를 이해했습니다.

 

큰아들은 그의 어머니가 하는 일을 믿기는 하였지만 그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늙은 부인은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에게 부부 생활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의 말에 복종하지 않고 아내와 같이 생활했습니다. 그 결과 영계가 그녀를 데려갔습니다.

 

그 당시에 그 늙은 부인은 탕감의 원리를 몰랐지만 그것은 남편이 그토록 자기를 가혹하게 핍박했기 때문에 남편의 행동을 탕감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들과 며느리를 통해서 그것을 탕감하기를 원했습니다. 

 

* 그 부인의 말에 의해서 그녀의 둘째 아들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녀의 다른 딸들도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들이 그녀의 아들에게 일어났을 때 동해안 지방에 있던 그 사람이 그녀가 있는 곳에 왔습니다. 그것은 가정적으로 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족적으로 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들이 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서쪽 집단과 동쪽 집단이 결합함으로써 그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복귀의 관점에서 볼 때 동해안 집단은 천사장의 자리에 있었고 서해안 집단은 해와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또한 하늘은 그 천사장 집단에게 해와의 집단으로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해와의 집단이 아니라 천사장의 집단이 찾아간 것입니다.

 

052-143 그런 일들에 의해서 이 운동은 온 한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모든 기성교회들이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압박이 가장 극심한 때였습니다.

 

얼마 후 일본인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계시받았습니다. 그들이 계시받았던 것을 그들은 해를 거듭하여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 것들이 목사들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목사들은 이 집단을 멸망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일본 정부 관리들에게 가서 그런 것들을 말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기성교인들은 신사 참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거부했는데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이 우상 숭배를 금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이 집단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그들이 이 집단에 가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목사들이 일본의 관리들에게 갔던 이유입니다.

 

그 목사들의 고발에 의해서 그 늙은 부인은 투옥되었습니다. 그녀는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석방 후에 그녀는 죽었습니다. 한편으로 그녀의 죽음에 의해 지하에서 계획되었던 하나님의 일에 행운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똑같은 운동을 시작하시기 위해서 다른 부인을 선택했습니다.

 

▶ 腹中敎의 허호빈

 

그 부인은 김성도 여인을 따랐던 대단히 독실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허호빈 여사였습니다. 그녀의 남편도 역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 역시 김성도 여자를 따랐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로 결합되었고 단호했으며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이 앞에 놓인다 하더라도 전진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진지하게 하나님에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김 여인의 일을 이어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김 여인을 통한 이 일이 하나님의 참 섭리라고 믿으면서 열렬하게 기도했습니다. 이 부인, 허 여사도 또한 계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가 그녀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는 그 부부에게 지상에서 마지막 사명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찾으려고 애써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는 김 여인을 찾을 수 있었고 그녀를 통하여 마지막 사명을 준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녀를 받아들여야 했던 목사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이 부부에게 계시를 내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는 그들에게 어떤 처지에서도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자기의 뜻을 받을 것을 부탁했습니다. 김 여인은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으나 이 부부는 일체가 되어서 남편으로부터의 박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박해은 외부 세계로부터 밖으로부터 기성교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특별한 계시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의 심정과 아담의 타락을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는가 하는 것과 예수 때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침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가르침 받았습니다.

 

또한 마리아에 대한 것과 자기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그 상황을 얘기했습니다. 예수는 자기의 어린 시절에 관한 것과 어머니 마리아가 그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었던 것에 관한 것도 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세례 요한이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것들을 미루어 볼 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원인은 유대 민족의 불신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부부가 계를 받을 때 그들은 전체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주님이 한국 사람으로 오실 것이라는 것도 가르침 받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하늘의 왕자로 오신다는 것과 6천 년 역사의 희생 후에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계시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지상의 모든 것 또는 과거 역사의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모든 한을 해원하고 복귀하고 해결한 사람들이어야 되고 예수가 그의 생애에서 완수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결말 지은 사람들이어야 됩니다.

 

052-145 또한 그들은 예수가 하늘의 왕자로 태어났었다는 것을 하늘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애는 왕자의 생애가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는 그의 생애에서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가 입는 모든 옷은 가장 좋은 옷들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는 최고의 것들로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의 실수로 말미암아 예수는 음식과 옷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그의 생애에서 가질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탕감하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집단은 그 모든 것들을 탕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에수를 위해 모든 것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에수가 어릴 때부터 서른세 살 때까지 입을 옷들을 만들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가 3일마다 갈아입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옷들을. 여러분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가지씩이 아니라 한복 한 벌과 양복 한 벌씩이었습니다. 한 번은 한복으로 그리고 한 번은 양복으로 매 3일마다 입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이 그의 옷을 만들 때에 그들은 재봉틀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한 번에 세 바늘 이상 꿰매지 말라고 들었고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온 방을 깨끗이 청소해야 했으며 한 벌을 다 만들 때까지는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 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너희가 그런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너희는 주를 영접하지 못하리라." 하늘은 그렇게 그들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것에서 실수를 했을 때에는 하늘로부터 가혹하게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의 지시들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 집단은 추종자들이 천 명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천 명의 사람들이 7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세끼를 마치 잔치상같이 준비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 고기를 먹었습니다.

 

옷들의 크기는 예수의 성장에 따라서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그들이 예수의 옷 만드는 것을 끝낸 후에 그들은 오실 주님을 위한 옷을 만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 주님의 옷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정성을 들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그 주님을 위한 식사를 가지고 왔을 때 300번의 절을 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3천 번까지 절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늘은 말하기를 "비록 너희가 예의를 갖추고 3천 번까지 절을 하여 주를 받든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에 대하여 너희의 존경을 표하는 데 있어서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3천 번 절하려면 거의 10시간이 걸립니다. 절을 마친 후 그들은 쓰러졌습니다.

 

하늘은 그들에게 소매의 길이 등 모든 크기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남편도 그녀가 들었을 것을 들었습니다. 재림주는 그녀의 남편보다 더 몸집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학문적인 배경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하늘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주님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기를 날마다 날마다 기다렸습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만일 그들이 명령을 받으면 언제라도 쓰러져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 만큼의 각오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052-147 그 부인은 남편을 특별히 훈련시켰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당신은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장이에요. 그 천사장에 의해서 해와의 순결이 더럽혀졌어요. 나는 재림주님을 영접해야 할 사람인데 당신에 의해서 나의 순결이 더럽혀졌으니, 당신은 죽어야 돼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내보내며 죽어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그녀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녀가 죽으라는 말을 하자 그는 나가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으려고 하자 그녀는 그에게 죽지 말라고 했습니다.

 

겨울에 그녀는 자기 남편을 삼베옷을 입혀서 내쫓았습니다. 그녀는 맨발로 남편을 내보내고 6개월 동안 돌아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얻어먹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천사장으로 인해서 생긴 6천 년을 탕감 지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떠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일주일 후에 그녀는 그들 다시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6일 만에 6개월을 탕감 지었습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들을 때마다 만일 그가 그녀를 믿고 순종하면 탕감이 되었고 그 기간이 단축되었습니다.

 

특이한 일은 그녀가 계시를 받을 때마다 그녀의 배가 그녀가 받는 말씀에 따라서 경련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왜 그녀가 그런 체험을 했던가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녀는 기독교인이었고 주님이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늘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녀에게 주님이 한 어머니의 배를 통해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상기시켜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단은 기성교회들에 의해서 "복중교"라고 불렸습니다. 그녀의 배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런 체험에 의해서 하나님은 그녀로 하여금 주님이 어머니의 배를 통해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일본이 1945년 8월 14일(화), 음력으로는 7월 7일에 항복할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녀는 하늘로부터 받았던 것을 자주 공공연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음력으로 7월 7일에 떨어진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녀가 공개적으로 얘기했던 이유는 만일 그녀가 감옥에 갇히더라도 그녀는 곧 풀려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들었고 그래서 그녀는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일본 경찰에 의해 석방되기 전날 그녀는 천황의 머리 위에 한 천사가 서서 천황한테 "너희는 하늘의 원수들, 그래서 너희는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다음 날, 일본 천황은 라디오 방송으로 항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다음날 몇 시에 천황이 방송할 것이라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다음 날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하늘로부터 받았던 모든 것이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방의 날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 "일본이 멸망할 때 너희는 재림주를 만날 것이다."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기성교회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한국이 해방되었을 때 일본인에 의해서 투옥되었던 많은 독실한 목사들이 풀려났습니다. 그들은 기성교회의 재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성교회도 內的 外的으로 分裂되었습니다.

 

▶ 李龍道 목사와 허호빈

- 1947.8.11.~1947.10.31. 감옥에서 춘향이(허호빈)와 이 도령의 만남. 

 

052-148 동해안 지방에서 일어난 영적인 운동에는 또 다른 후계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용도였습니다. 그는 목사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많은 성령의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함으로써 하늘은 그런 영적인 일꾼들을 하나로 묶고자 했습니다.

 

* 이 목사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예수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이들 두 교회, 즉 복중교와 새로운 예수교회를 통일하라는 하늘로부터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쪽 집단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동쪽 집단이 있는 곳으로 갔으나 동쪽 집단은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들 두 집단의 통일을 이루는 데 실패함으로써 하나님은 하나의 새로운 운동,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지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또 다른 한 사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는 김 씨였습니다. 그 이후에 이 목사는 죽었습니다. 이 목사의 영이 김 씨(김백문)에게 와서 영적으로 자기의 사명을 인계했습니다. 이 김 씨로부터 새로운 집단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그것을 성장과정의 관점에서 본다면 첫 노정은 소생 단계였고 이 씨는 장성 단계 그리고 김 씨는 완성 단계였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는 장성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와 같은 자리였습니다.

 

그는(이용도)는 1932년에 33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한국의 해방은 1945년에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12년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의해서 여러분은 하늘이 주를 위한 길을 준비하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본인의 압제를 이겨내게 하려고 그렇게 일찍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런 환경 가운데서 선생님은 선생님의 길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허 부인을 중심한 그 서쪽 집단은 해방 후에 재림주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오시는 주님은 신부가 있어야 하고 그분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신부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준비했고 12제자와 70문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평양에서 제일 좋은 집을 샀습니다. 좋은 집을 사서 주를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은 남한에 있었습니다.

 

▶ 여호와의 부인 박을룡.

 

052-149 복귀섭리로 볼 때 자신을 여호와의 부인으로 선언하는 한 여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 여인을 찾지 않고서는 섭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그러한 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남한에서 선생님은 그러한 한 여인을 찾기 위해서 모든 종교 집단과 유명한 목사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해방 후 3개월이 되던 1945년 11월에 김 씨(김백문)를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그에게 큰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 그는 개신교 수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하나의 수도원(이스라엘)을 소유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재림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세력을 준비하라."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하늘로부터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집단을 찾아가서 그를 만났고 그와 함께 6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거기에 김 씨를 따르던 많은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곳에 가기 전에는 김 씨를 따르라는 계시를 그들은 받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곳에 간 후로 그들은 김 씨가 아니라 선생님을 따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 원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서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선생님은 김 씨로부터 모든 것을 상속받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6개월 후에 김 씨는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고 그는 선생님의 머리에 자기의 손을 얹고 전 세계의 솔로몬 왕의 영광이 선생님에게 임하게 될 것을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선생님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가장 천한 일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손수 앉은자리를 청소하는 등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선생님은 끝자리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김 씨를 만난 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당시에 매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만일 김 씨가 하늘로부터 "선생님에게 그러한 축복을 해 주라."고 들었다면 그는 선생님에게 모든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질문들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5%의 책임분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전에 따르던 독실한 추종자들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도 그것을 알았고 그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선생님은 그로부터 축복을 받았고 그래서 선생님은 그가 가지고 있던 것을 상속받았습니다.

 

052-151 선생님이 김 씨로부터 축복을 받은 후로 선생님은 안나와 같은 한 늙은 여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녀 자신을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인이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남한과 북한 사이를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북한에 자신이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들 집단 외에도 구약시대적인 집단들과 같은 많은 집단들이 있었습니다. 그 집단은 하나의 신약시대적인 집단이었습니다. 거기에 구약시대적인 집단의 역할을 했던 백 씨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든 집단에 대해서 언급할 시간이 없습니다. 끝날에는 구약과 신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횡적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 여인이 북한에 있고 거기에 그런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탕감복귀의 원리에 따라서 선생님은 선생님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그 집단들을 만나러 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는 그가 신부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맞이할 신부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가 올 때 그 준비된 집단들은 신부의 위치에서 준비한 것을 가지고 그들이 찾아와야 합니다. 만일 그 준비된 집단의 지도자였던 그 여인이 주님이 계신 곳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더라면 하나님이 그녀에게 그곳을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하늘은 그녀에게 그곳을 가르쳐 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선생님은 안나와 같은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양쪽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그녀는 하늘 편에서 일했고 때로는 중간 입장에서 일했습니다. 하늘 편이 아니면 중간 입장. 그러나 사탄 편은 아니었습니다.

 

052-152 그 나이 많은 여인(박을룡)을 만난 이후 선생님은 그 집단에 사람을 보내서 허 부인에게 "선생님의 집단이 무엇인지를 기도해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허 부인은 하나의 큰 징후를 기대했지 한 젊은 남자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난 그녀는 그가 큰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에 선생님은 한 젊은 여자를 그 집단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집단으로부터의 반응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허 부인은 그녀의 집단의 간부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또 다른 계시를 받았는데 그것은 춘향이가 감옥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난 것처럼 그들이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너는 춘향이가 감옥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났던 것처럼 주님을 만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북한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점령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공산주의자들은 이 집단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기부금을 모금해서 좋은 옷들을 만들고 좋은 집을 샀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집단을 그때의 종교적 사기꾼으로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간부들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때에 선생님도 그 집단과 관련되어 있다고 고발되었습니다. 실제로 선생님은 아무런 관련도 없었으나 그런 식으로 고발당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집단의 지도자와 같은 방에 갇혔습니다. 허 부인 밑에 그 집단을 이끌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선생님과 같은 방에 있었습니다. 그날이 1947년 8월 11일이었습니다.

 

그 집단의 간부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매우 가혹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허 부인에게 "만일 그녀가 계시를 받을 때 그녀의 배가 경련을 일으킨다는 것을 부인한다면, 그녀는 풀려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김일성의 시대였고 그는 종교를 박해했으며 모든 종교를 말살시키고자 했습니다. 허 부인의 남동생은 심한 고문으로 죽었습니다. 허 부인도 또한 심하게 고문을 받았고 그녀의 옷들이 거의 다 찢어졌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선생님은 10월 31일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거의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따라던 사람들은 선생님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다시 살아난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허 부인 다음 가는 사람이 있었던 방으로 들어갔던 때는 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밤 11시에 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그 사람은 선생님에 관해서 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그 방으로 들어갈 때 그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전에 그런 경험들을 했고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환경들에 매우 익숙했었습니다. 선생님은 변소 옆에서 잤습니다. 그 방 안에는 많은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감방장(허 부인 집단의 지도자.)이 말했습니다. 그 방의 규칙은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이 가장 나쁜 자리에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방장은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새로 오신 분은 특별한 분이니 자기 옆에 앉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 옆에 앉았을 때 그는 선생님에게 절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절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지난밤에 한 계시를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계시에서 선생님에게 절을 하는 허 부인을 보았고 그녀가 "이제 내가 만나고 싶었던 그 사람을 만났다."고 했는데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선생님이 그 사람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 선생님은 그에게 "나는 당신이 체험해 온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으니 나에게 당신이 경험해 온 모든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의 집단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을 설명했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복귀의 원리를 알았지만 그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 정도까지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선생님도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공산주의자들이 만일 그들이 하늘로부터 계시받았던 것을 부인한다면 그들을 석방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에게 "만일 당신이 공산주의자들 앞에서 당신이 체험해 온 모든 사실을 부인하기만 한다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그에게 "만일 허 부인이 거짓말이라도 해서 그녀가 체험했던 것을 모두 부인한다면 한 젊은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는 것을 허 부인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말을 허 부인에게 전달하도록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점심이 배급되었을 때 그 젊은이는 허 부인에게 얘기했습니다. 선생님이 말했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허 부인은 "춘향이가 감옥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났던 것 같이 그녀가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것을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아무것도 못 보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말을 따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인했기 때문에 석방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석방된 뒤에 허 부인의 남편이 선생님의 방으로 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녀의 남편에게 선생님이 그 젊은이에게 말했던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자기 아내를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생님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자신이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선생님은 편지를 쓰면 그것은 다른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9월 18일 아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식사 때에 밥을 배달하는 사람한테 그 편지를 허 부인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녀가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찢어 버리려고 하였으나 그때 그녀는 공산당 감시원한테 들켰습니다. 그것은 그 종이를 갖다 준 그 사람이 간수에게 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쪽지를 쓴 사람은 하늘의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당신은 기도를 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봐야 한다. 만일 당신이 계시받았던 모든 것을 부인한다면, 당신은 석방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 쪽지는 간수에게 발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1947년 9월 18일 오후 2시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남한에 있는 미군의 스파이로 고발되었고 선생님이 소련 조사관에 의해서 심문을 받았으나 선생님은 무죄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선생님은 10월 31일 오후에 풀려났습니다.

 

* 허 부인과 그녀의 추종자들은 否認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모두 학살당했습니다.

 

052-155 그 집단의 실패 때문에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을 찾아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조건적인 수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거기서 일을 했습니다.

 

감옥에서 석방된 후로 선생님은 다른 집단들과 관계를 맺었고 또한 그 집단의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선생님이 교회운동을 하자 식구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북한 정부의 정책은 모든 종교를 말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 목사들은 그들 교회의 많은 신도들이 선생님에게로 왔기 때문에 선생님을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세 번째로 투옥되었습니다. 그날이 1948년 2월 22일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은 선생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따르라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교회를 따랐던 사람들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고 물으면서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흩어졌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열두 제자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들 열두 제자들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감옥에도 죄수로 변장한 많은 공산당의 스파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서 한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계가 사람들에게 증거하였고 그래서 그들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선생님이 배고플 때 선생님이 알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에게 주먹밥을 가지고 왔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들이 꿈에 나타나서 주먹밥을 선생님에게 갖다 주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20명 이상의 사람들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1950년에 유엔군이 북한을 공격했고 맨 먼저 북한 흥남 부두에 상륙했습니다. 선생님의 감옥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유엔군에 의해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에는 많은 내력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동해안에 있는 흥남에서 평양까지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서해안 지방의 평양까지 걸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이전 추종자들 모두에게 선생님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는 사람들을 보냈으나 대부분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몇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052-156 선생님은 남쪽으로 피난 갔던 선생님의 추종자들을 찾으려고 부산까지 갔습니다. 선생님은 기성교회 목사들을 만나 보려고 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 재건 운동이 매우 활발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새로운 식구들과 함께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 유효원 초대 협회장.

 

선생님을 보지도 않고 선생님을 따른 첫 사람이 전 유 협회장이었습니다. 그는 원리의 원본을 보고 그것을 읽음으로써 선생님을 따르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선생님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유 협회장은 선생님보다 여섯 살 위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보다 6개월 위였습니다. 그래서 유 협회장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원리를 해설해야 했습니다. 유 협회장이 썼던 책은 유 협회장의 책이 아닙니다. 유 협회장이 그 책을 쓸 때 선생님이 그에게 이런 식으로 또는 저런 식으로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자세하게 그 책을 공부해야 합니다. 유 협회장으로부터 통일교회가 출발했습니다.

  

▣ 1971.12.28(화) 워싱턴, D.C. 통일교회사 2.

052-164 강제노동수용소에는 대략 800명의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일요일은 휴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들은 그들을 쉬게 하지 않았습니다. 소위 세뇌 시간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그들은 모두 죄수들이 다 알고 있는 거짓말만 했습니다. 실제로 죄수들은 거의 죽어 가게 되는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죄수들을 잘 대우하고 있다고 선전하는데, 모두 거짓입니다.

 

그들은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전에는 그들은 언제든지 면회객들이 올 수 있고 모든 종류의 음식과 죄수들을 위한 것들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국경일에 생선을 가져다주고 죄수들을 쇠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모든 것들을 먹게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1년 내내 그런 선전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수들이 김의 정권에 대한 반동분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치고는 그 강의에 대한 각자의 감상문을 쓰게 합니다. 그들은 그런 보고서들로써 책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감상문을 보존합니다.

 

그들은 좋은 감상문을 쓴 사람들을 뽑아서 죄수들 앞에서 낭독하게 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김일성을 찬양하게 하고는 그들에게 훌륭한 좋은 대우를 해 줍니다. 그들을 김일성과 일체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죄수들 앞에서 훌륭한 연설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보고서를 쓸 때마다 죄수들에게 박수를 치게 합니다.

 

만일 한 죄수가 박수를 계속 치지 않는다면 그는 체크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연사를 뽑을 때 그들은 가정 영향력이 있고 김일성을 가장 반대하는 그런 사람들을 뽑습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을 뽑아서 연설하게 합니다.

 

그것을 함으로써 그들은 죄수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이날 그들의 연설이 끝난 후에 공산당들은 그 연사와 같이 지낼 젊은 죄수들을 보내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말할 수 있었느냐고 묻게 합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말했습니까?"라고.

 

만일 그 연사가 "자기는 그런 식으로 말하도록 강요당했다"고 하면 공산당들은 그들 붙잡았습니다. 그들이 바로 공산당의 앞잡이였습니다. 그들을 독방에 가두고 고립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서운 형벌을 가했습니다. 그런 선전에 의해서 그들은 죄수들이 자기들의 마음을 바꾸게 강요합니다.

 

그들은 식사 때에 밥을 줍니다. 그들은 단지 세 입 정도의 밥을 줍니다. 그것은 심각합니다. 충분하지 않은 밥이에요. 국으로 그들은 무잎과 소금을 넣은 물을 줍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루에 8시간 일하게 합니다.

 

그들은 매일 작업량을 정해 줍니다. 그 일은 황산암모늄을 부대에 담아서 차에 싣는 것이었습니다. 동양에서는 짚 가마니를 사용합니다. 각 가마니에 황산암모늄 40 킬로그램을 넣어서 새끼로 묶어 가지고 짐차에까지 운반합니다.

 

그들은 창고에서 가마니들을 가져오고 새끼들을 가져옵니다. 그러면 그 가마니에 황산암모늄을 채우고 묶습니다. 그런 모든 일들이 죄수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교도소 밖의 일반 노동자들은 돼지고기를 먹는데 왜냐하면 그 암모늄이 피부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피부가 그 영향을 받으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에 대한 최대의 할당량은 70 가마였습니다. 그러나 죄수들의 작업량은 돼지고기도 없는 적은 밥을 먹는데도 하루에 130 가마였습니다.

 

여러분, 짚 가마니를 본 적 있어요? 우리는 그것들에 벼를 담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열 사람이 한 조를 이룹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루에 1300 가마니를 합니다. 비료 더미에서 그들은 그것을 가마니에 담고 새끼로 묶습니다. 그 이전에 그들은 저울을 대기시켜 놓습니다. 그것을 저울에 올려놓습니다. 그들은 그 가마니들을 저울에까지 지고 와야 합니다. 어깨에 멍이 듭니다.

 

공산주의자들은 3년 후에 죄수들의 80% 이상이 죽는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부족한 식사를 하고 그런 중노동을 하기 때문에 6개월간 작업을 하면 피부가 매우 상하게 됩니다.

 

나는 여러분이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아랫다리가 넓적 다리보다 커집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한다면 여러분의 넓적다리가 아이들보다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시체들 같이 보입니다. 그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게 적은 양의 식사와 그와 같은 중노동으로 항상 힘을 공급받지 못하고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의 위는 항상 작용을 해야 하는데···. 다음날 일어나면 자기 배가 널빤지 같이 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공산주의 노동자 수용소의 생활입니다.

 

만일 각자의 작업량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는 식사 배급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죄수들에게 있어서는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도소에서 작업장까지의 거리가 10리 길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그들이 감옥을 떠날 때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네 줄로 서야 하고 옆에는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손을 잡지 않은 것이 발견된다면 그들은 탈출하려는 것으로 고발당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없습니다.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들을 3년 안에 죽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052-167 선생님이 그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요? 사람은 육신만이 아닙니다. 만일 죄수들이 음식만을 먹고살게 되어 있었다면 그들은 죽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결심했습니다. 선생님은 정신력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어떤 것을 먹는 경험을 하게 될 때 여러분은 배고프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정신적으로 특별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이 먹는 음식의 절반으로도 살 수 있다고 마음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후 선생님은 그 생각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 다음날부터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음식의 절반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3주 동안 계속했습니다. 선생님은 절반의 음식을 먹고도 선생님의 작업량을 완수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0 사람이 한 조이기 때문에 그들은 일을 나누어서 합니다. 거기에는 더 쉬운 일과 더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가장 어려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가장 힘든 일을 할지라도 선생님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년 후 또는 10년 후에라도···.

 

3주 후에 선생님은 그것에 익숙하게 되었고 아주 자신만만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선생님의 몫의 식사를 모두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선생님의 식사는 절반이고 다른 절반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정신적인 위안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위안이 매우 큰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의 두 배 정도까지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을 할 때마다 선생님이 항상 시험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더 열심히 일을 할 때 선생님의 육신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를 분석하고 연구했습니다.

 

때때로 선생님이 속도를 높일 때 선생님의 몸이 변했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보통으로 일했으면 선생님의 몸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10 사람 중에는 몇몇 약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선생님은 자기 할당량을 완수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일을 보충하기 위해서 선생님의 할당량 이상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매일 그런 일을 계속했습니다.

 

작업하는 동안에 밥 생각을 한다면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할 때 밥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그것을 하도록 운명으로 정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일을 하려고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선생님은 마치 선생님이 복귀 섭리를 하는 것처럼 모든 심정과 모든 성의를 그 일에 쏟았습니다.

 

052-168 선생님은 작업하는 동안에 항상 선생님이 영계에서 경험했던 것을 생각했고 훗날 선생님의 후손들과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영화에서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후손들은 선생님의 일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하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8시부터 일을 시작했으며 10시 10분 휴식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들은 변소에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결코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휴식시간이라는 벨이 울려도 못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그때에야 비로소 휴식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몸은 일하고 있었으나 선생님의 영은 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와 같은 정신으로 일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체중은 거의 유지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거의 체중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수들이 매우 놀랬습니다.

 

선생님이 일하러 갈 때마다 선생님은 항상 가장 어려운 일을 찾았습니다. 몇 개월 후 선생님은 최고의 노동자로 불리웠습니다. 매일 조원들은 탈출 음모를 꾸미지 못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조가 바뀔 때 모든 죄수들은 그 최고의 노동자가 있는 곳으로 오기를 바랐습니다. 선생님의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은 결코 한마디도 안 했는데, 왜냐하면 선생님이 공산주의자들이 조직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에게 가장 힘든 일은 거짓 연설을 들은 후에 소감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감시원들은 그들의 주의를 선생님에게 집중시켜서 선생님을 고발할 조건을 찾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선생님의 방에 스파이를 놓아두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말 한마디하지 않았습니다. 감시원들이 한 죄수에게 밥을 조금 더 주어서 그 죄수를 앞잡이로 이용하는 것은 매우 쉬웠습니다. 공산주의 세계에서 그들은 밥으로 사람들을 조종합니다.

 

얼마나 죄수들이 밥을 갈망하는가에 대해서 예를 들겠습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을 때 여러분은 가끔 돌을 씹을 때가 있을 텐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뱉어 낼 것입니다. 그러나 죄수들은 뱉어 난 그것도 모조리 핥아먹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만일 한 죄수가 병이 나서 일을 할 수 없으면 그의 밥 배급량이 깎였습니다. 그 죄수에게는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혹하고 서글펐습니다. 그들의 밥 배급량이 반으로 깎일 때 그들은 마치 그들이 죽어 가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병든 죄수라도 자기 방에서 기어나와야 밥 배급을 다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열과 많은 고통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어나오려고 애를 썼습니다.

 

점심은 작업장에서 주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심을 먹기 위해서 그들은 작업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일을 할 수 없더라도 그들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또 저녁밥 배급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서라도 수용소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배급을 받을 때 그릇에 밥을 받습니다. 밥그릇을 받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밥을 입속으로 털어 넣습니다. 자기의 밥을 우물거리면서 두 눈은 다른 사람들의 밥그릇에 고정됩니다. 배식이 끝나기도 전에 다 먹어 버립니다. 그들은 자기가 먹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밥그릇을 받는 것을 보고는 자기 밥그릇이 비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옆 사람과 싸우기도 합니다. "네가 내 밥을 먹었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밥을 자기 입속에 털어 넣다가 목구멍이 막혀서 바로 죽어 버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한 비참한 생활이 공산당의 감옥소 생활입니다. 그것은 모든 반동주의자들을 제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한 죄수가 그의 밥을 다 먹기 전에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죽은 사람의 입에서 밥알을 꺼내 먹기 위해서 싸웁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해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이었는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052-170 가장 어려운 일은 비료를 가마니에 담은 후에 그것을 저울에까지 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는데 선생님이 그것을 했습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이것을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한 가마니는 88파운드(1파운드는 453.592그램. 약 40 킬로그램.)의 무게가 나갑니다. 이것을 저울까지 나르라는 겁니다. 선생님은 1300 가마니를 저울에까지 날랐습니다.

 

숙달이 되면 요령이 생깁니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더미는 줄어들고 결국 그것은 없어집니다. 그러나 저울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맞추는 데는 적어도 3 내지 5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루의 작업량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울을 이동시키지 않고 비료 가마니들을 나르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가마니를 들어서 던지는 것입니다. 한 해에 한 번 모범수를 뽑았는데 선생님이 뽑혔습니다.   

 

죄수들 중에서 선생님을 따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영계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20명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선생님을 따랐지만 선생님은 그들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휴식시간에 그들은 변소에 갔다가 옵니다. 비록 그들이 말을 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선생님 곁으로 와서 선생님에게 자기들이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비료 더미는 한 덩어리가 이 집만큼 높았습니다. 한 더미에서 일을 하는 몇 팀이 있는데 그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단지 변소에만 갔다 올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체했습니다. 그러나 감시원들은 하늘 편 사람을 따라다녔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들에게 선생님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그들이 감방에서 좁은 복도로 나올 때 그들은 네 줄로 섭니다. 그 복도는 좁은데 그때 따르는 사람들이 선생님에게 와서 윙크를 하는 것처럼 선생님을 껴안았습니다. 그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 만일 선생님이 그들에게 명령을 했으면 그들은 무엇이든지 했을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죄수들에게 면회가 허용되었습니다. 친척들이나 가족들이 올 때 그들은 미숫가루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이 미숫가루를 받을 때마다 자기 혼자서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같은 감방에 있는 죄수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 그런 미숫가루를 받았던 사람들은 그것을 종이에 싸서 숨겨 두었다가 과자를 만듭니다. 왜냐하면 매일 그 교도소 간수들이 몸수색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간수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숨깁니다. 그들은 그것을 작업장으로 가지고 와서 휴식시간에 선생님이게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같이 나누어 먹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일이 가장 잊혀지지 않습니다.

 

감옥에서는 콩 한 조각이라도 사고팔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는 귀한 것이 쌀이나 콩알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귀한 음식들을 선생님을 위해서 아꼈습니다.

 

그들은 유엔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평양으로 갔습니다. 그 길에는 단지 4명만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 외 다른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들 4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이런 일들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052-172 공산주의자들은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미국은 소련이나 중공에게 속지 않아야 됩니다. 비록 그들이 조약에 사인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핵무기를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북한을 봄으로써 그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휴전협정에 양측이 어떤 무기나 어떤 군사력도 증강할 수 없다는 조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핵무기를 증강시켰습니다.

 

선생님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에도 일본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선생님은 일본 정부에 대항해서 싸웠습니다.

 

공산당 교도소 조직은 대단히 강력했습니다. 북한에서 그들은 배급으로 모든 백성을 통제합니다. 만일 그들이 반동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면 배급을 줄여 버립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을 바꾸게 하거나 아니면 자살을 하게 만듭니다.

 

소련 군대가 만주와 북한에 도착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은 공장의 모든 기계를 떼어내서 시베리아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조그마한 모터까지 가져갔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활수준으로서는 여러분의 사고방식으로서는 공산주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앞에서는 자연스런 태도를 취할는지 모르지만 여러분 뒤에서는 여러분의 팔다리 목을 묶어서 끌어당깁니다. 오늘 밤 선생님은 이것을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

 

▣ 1971.12.29(수) 워싱턴, D.C. 통일교회사 3.

052-174 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하나님 편의 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 말고 누가 예수 편이에요?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완전히 복귀된 아담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 해와와 복귀된 세 천사장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타락 전의 에덴동산에 있었던 본래의 식구들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타락으로 인해 해와와 세 천사장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해와와 세 천사장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재림주가 이 땅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귀 섭리는 아담 해와 그리고 세 천사장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단히 얘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그분은 제일 먼저 천사들을 창조했습니다. 그다음에 아담을 창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세 제자들은 믿음의 자녀들이었고 동시에 복귀된 천사장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타락은 세 천사장들이 아담을 섬기는 데 실패함으로써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천사장들이 예수와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해와를 복귀하기 위해 예수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 세 천사장들은 예수의 일을 위해서 그들의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그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 천사장들이 아담을 섬기지 않았고 아담과 하나님과 더불어 일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적으로 복종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탕감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담이 어디를 가든지 간에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세 제자들도 심지어 십자가의 선까지도 예수와 함께 가야 했습니다. 만일 에수 때에 그 세 제자들이 그 십자가에까지 예수와 함께 갔더라면 영적으로 예수가 이 지상의 해와를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영적으로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영적으로 이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었더라면 사탄이 그의 일에 끼어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세 제자들을 잃게 됨으로써···.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들 따르지 않고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 영적 천사장들을 잃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활 후 40일 동안 도망갔던 그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영적으로는 예수가 세 제자들을 복귀하였으나 예수를 위한 복귀된 해와는 없었습니다. 그의 죽음 후 세 제자의 불신 때문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사탄의 주관권 아래 놓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항상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사탄이 예수 자신을 참소할 수는 없었다고 할지라도 예수가 제자들을 데려오려고 할 때마다 그들이 예수를 불신하였기 때문에 그 조건에 의해서 사탄이 항상 그들을 데려갈 수 있었고 간섭 침범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거 이해할 수 있어요? 그들은 불신하였기 때문에 사탄의 주관권으로 떨어졌고 거기서부터 예수는 그들을 되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052-178 아담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약시대 신약시대 그리고 성약시대를 거쳐 나오셨습니다. 왜 그분이 이 세 단계를 거쳐야 했던가 하는 이유는 아담을 복귀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해와를 복귀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바로 그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 해와의 자리와 신약시대 해와의 자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약시대의 해와의 자리를 복귀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함께 사랑하시기를 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오직 아담의 자리에 있는 남자들만 택하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등 ···. 신약시대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해와의 자리에 있는 여자들은 바른 조건들이 세워질 때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끝날에 그러한 조건들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해가 돼요?

 

한국에서 천사장들의 영역에 섭리의 3단계가 있었습니다. 세 천사장들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세 단계의 섭리 노정을 통과하셔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저께 설명했던 것처럼 한국의 동해안 지방에는 한 남자의 집단이 있었고 서해안 지방에는 한 여자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 남자의 사명은 3단계로 계승되었습니다. 백(백남주) 씨, 이(이용도) 씨 그리고 김(김백문) 씨로 ···. 그 여자의 사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그 영적 집단으로부터 한 남자와 그리고 그 남자와 일체가 된 세 여자들을 복귀할 수 있었더라면 그것에 의해서 해와의 복귀를 위한 모든 조건들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늙은 여자, 결혼한 늙은 여자에 비유될 수 있고 신약시대는 약혼을 하였으나 결혼할 수 었었던 여자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그 늙은 여자는 할머니에 비유될 수 있고 신약시대의 여자는 어머니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약시대의 여자는 딸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052-179 선생님이 김(김백문, 이스라엘 수도원) 씨의 집단으로 갔는데 그는 세 번째 단계의 남자였습니다. 김 씨가 선생님을 축복하기 전에 거기에서 선생님에게 주님을 증거했던 세 여인이 있었습니다. 만일 이들 세 여인들과 김 씨가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모든 그 조건들이 그 자리 그 시간에 복귀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김 씨 진단이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바로 그것이 완성 단계의 집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또 다른 기독교 집단을 찾아야 했고 그 집단과 함께 기성교회 목사들을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정부를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 그들 세 여인들이 선생님을 증거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선생님과 하나가 되어야 했으나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북한으로 가야 했던 것입니다.

 

북한에서 선생님은 그러한 세 여인과 한 남자를 복귀하기 위해 모든 조건들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예수가 그 기대를 잃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 못박힌 것은 선생님의 투옥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감옥은 육적인 지옥입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같은 상활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선생님이 투옥되었습니다. 그 감옥에서 선생님은 그런 인물들을 모두 복귀해야 했습니다.

 

이때 선생님 편에서가 아니라 그들 편에서 그들이 선생님에게로 와야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스스로가 선생님에게로 와야 합니다.

 

북한에 가는 것은 감옥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음 후에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으로 갔습니다. 그들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예수가 로마제국 치하에서 죽었는데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로마제국으로 가야 했고 거기서부터 복귀 역사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북한은 사탄 편 로마제국입니다. 민주 세계는 영적으로 복귀된 제자들의 입장입니다. 현 기독교 세계로 오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은 핍박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만일 김 씨 집단이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결국에는 모든 민주 세계가 선생님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공산주의 세계가 오늘과 같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기성교인들이 선생님과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한국은 미군정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성교인들을 통하여 선생님이 정부와 결합할 수 있었다면 그 기성교인들을 통하여 선생님이 선생님이 정부와 결합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정부를 통하여 선생님이 민주 세계와 결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 세계를 통하여 선생님이 그 당시에 공산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련은 1948년에 원자폭탄을 개발했습니다. 소련이 원자폭탄을 개발해내기 이전의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후였기 때문에 약했습니다. 우리는 1981년에서 1985년까지 공산주의를 일소해야 합니다.

 

북한에 도착한 이후로 선생님은 고난과 고통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통일교회 식구들도 역시 그와 같은 길을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식구들이 고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052-183 이제 선생님이 북한에 있었던 때로 돌아가 보도록 합시다.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들 잃었던 세 제자를 복귀해야 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이 그저께 밤에 말씀했던 것과 같이 허 부인 집단을 만났습니다. 거기에 그녀의 남편과 남자 멤버들도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다시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예수의 세 제자들이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들어간 감옥에서 죽음 앞에서도 선생님을 따를 수 있는 세 제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 갈 때 선생님은 그들 세 제자를 만날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은 그들을 만났습니다.

 

▶ 박정화.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원래 남한에서 살던 젊은이였습니다. 전쟁 후 그는 월북해서 북한 인민군 포병장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계급이 중령이었으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남한에 연고가 있어서 남한의 스파이로 고발당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에 사형선고를 받고 있었습니다. 집행의 날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감옥에 갇히기 전에 그는 인민군 포 사령부의 사령관 밑에서 일했습니다. 그 사령관의 이름은 무정이었습니다. 그가 체포될 당시에 그 사령관은 만주에 있었고 북한에 없었습니다. 그가 돌아온 후 그의 부하가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 사람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훈련시키면 매우 훌륭한 장교가 될 것이며 앞으로의 전쟁에서 크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김일성에게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처형당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낮에 환상을 보았는데 백발노인이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노인이 그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남한에서 오는 한 젊은 선생을 만날 것이며 그러면 그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환상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환상에서 보았던 것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로 그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왜 그 말을 믿지 ㅇ낳느냐고 마누라면서 다시 남한에서 온 선생을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꿈속에서 그 노인에게 얻어맞는 꿈까지 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꿈속에서 더 이상 때리지 말라고 빌고는 마침내 그 환상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그의 형량이 4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하늘의 인도에 의해서 되어졌습니다. 선생님은 그 감옥에 가기 전에 거기에 어떤 준비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대단한 희망을 가졌습니다.

 

1948년 2월 22일에 처음으로 선생님은 평양에 있는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그 후 같은 감방에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이 있는 그 감방에 수감되었습니다. 선생님은 4월 2일에 공개재판에 회부되었고 그 후 그 감방에 수감되었는데 그것이 4월 10일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 감방의 감방장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그러한 것들을 발설하려고 하였다면 그렇게 마무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서 선생님이 그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선생님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는 선생님이 그가 환상 속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그 감방에 들어가도 그는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다시 환상을 보았습니다.

 

다시 그 백발노인이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백발노인은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을 보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궁전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궁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는 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계단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세 계단을 올라갔을 때에는 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옥좌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너무 눈부신 광경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옥좌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에게 머리를 들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큰 집회가 있었습니다. 즉 큰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옥좌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끝자리에 앉았고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한 백발노인이 그에게 큰 절을 올리라고 하였고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다음에 그 노인은 그에게 머리를 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옥좌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이 선생님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 그는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052-185 영계로부터 그러한 가르침들에 의해서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했는데 그 사람들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매번 하늘이 그들을 가르쳤고 그들은 따르게 하기 위해서 환상이나 꿈 등 여러 가지로 역사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감옥에서 2년 8개월 예수의 공생애에 해당되는 기간을 보냈고 열두 사람을 복귀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두 사람을 복귀시킴으로써 예수가 잃어버렸던 모든 조건들을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더라도 선생님은 석방되었을 때 그들의 자리에 다른 사람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하기로 되어 있던 모든 것을 완수하였기 때문에 천사장 국가와 유엔군이 북한을 공격해서 선생님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감옥을 나왔습니다. (1950.10.14.)

 

네 사람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유엔군이 남한을 해방시켰기 때문에 그 조건으로 하늘의 운세는 다시 민주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고 다시 기독교를 복귀하기 위한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평양에 있던 선생님의 집단에서 선생님을 따르던 많은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도망을 갔기 때문에 그 집단 가운데 누군가가 선생님을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김 씨의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을 복귀시키기 위한 조건들을 세우기 위해 선생님을 따르던 멤버들의 수는 선생님이 감옥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돌아왔을 때에도 똑같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 김 씨의 역할을 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김원필이었습니다. 또한 거기에 세 여인도 있었습니다. 한 남자와 세 여인이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김 씨 집단에서 복귀하기를 원했던 네 사람을 복귀시킨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따르는 네 사람이 생기게 되었고 선생님을 감옥에서부터 따르던 네 사람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월남할 때 그들 중의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사람은 다리가 부러진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를 부산까지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선생님이 남한에 내려올 때의 일화가 상당히 많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수의 사람을 복귀하였기 때문에 남한에서 영적인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통일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완수함으로써 선생님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잃었던 것을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의 섭리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죽지 않았더라면 이 지상에서 복귀할 수 있었을 것이었습니다. 1960년부터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052-186 어머님은 그 집단의 출신입니다. 서해안 지방에 金(金聖道. 聖主敎) 여인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김 여인이 죽은 후에는 許 여인이 계속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님은 허 여인(허호빈. 服中敎)을 독실하게 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님(홍순애 대모님)이 어머니를 4살 때 그 집단으로 데리고 갔는데 허 여인이 어머니를 축복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로 사명이 승계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물론 그것을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1960년에 어머니를 만났을 때, 선생님은 그러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되었던 모든 것들이 1960년도에 하나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참부모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자녀의 축복이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북한을 떠날 때는 1950년 겨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1951년에 남해안에 있는 부산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선생님은 선생님이 성공했던 1960년까지 심한 박해와 싸웠습니다. 1960년 이후에도 우리는 박해를 받아 왔지만 우리의 일은 차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