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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시련과 3대 축복

  試鍊의 사전적 의미- 겪기 어려운 단련이나 고비- 의지나 사람됨을 시험하여 봄.

 

▣ 1959.8.9(일) 하나님의 경주장에 선 인간들. 전본부교회. 

007-134 연단하려면 편안한 자리에서 안 됩니다. 연단이라는 것은 들이침을 받는 자리에서 되어집니다. 이러한 내적 준비의 수련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들이칠지라도 이것을 쳐부수고 나갈 수 있는 내 몸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적 결심도 변할 수 없거니와 이 몸이 뒤넘이치는 시련이 부딪쳐 온다 할지라도 거기에 져서는 안 됩니다.

 

* 우리들은 이런 경주 마당에서 하나의 종목을 택해 달려야 할 하나의 경주자이니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변치 않는 신념을 갖고 연단해야 합니다. 

 

* 자나 깨나 그 목표를 정복하기 위한 결의에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일본의 명도를 만드는 데도 두드리는 법이 있다.

 

▣ 1965.1.31(일) 예수의 최후와 우리의 각오. 동경교회. 

015-035 일본의 명도를 만드는 데도 두드리는 법이 있다. 오직 한 곳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천주 정신을 주입하고 천지의 힘을 합하여 해머로 때린다.  

 

지나고 보니 사랑이었다. 

 

 1987.2.3(화) 지나고 보니 사랑이었다. 미국 세계선교본부. 

- 참부모님 탄신일. 

 

161-182 밝은 날이, 밝은 태양이 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치 않는 흐린 날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 나온 역사 시대를 두고 보면 태양은 갖고 있었지만 구름 낀 날이 많았다 이겁니다. 구름뿐만이 아니라 비가 내리고 벼락이 치고 태풍이 부는 그런 날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의 일생에 있어서 태풍이 부는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아마 세상의 역사 시대의 기후 가운데 나타난 이상현상, 이상기후현상 이상의 태풍이라 할까, 모진 바람이 불어 쳤다고 보는 거예요. 

 

*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역사 시대를 보면 이 구름이 있었다 이거예요. 이 악마의 구름, 검은 구름이 끼어 가지고 전부 다 방해해서 태양빛을 못 내게 하고 그 빛을 따라 사는 모든 통일교회의 무리를 전부 다 수렁에 박아 넣기 위한 역사를 거쳐왔다는 거예요.

 

*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에게 과거의 핍박과 시련을 어떻게 참아냈느냐고 물어보면 신앙의 빛을 가진 사람, 신앙의 힘을 가진 사람만이 극복할 수 있었다는 대답이 나옵니다. 아무리 태풍이 몰아쳐도 아무리 태풍이 불어오고 어려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거쳐갈 뿐이지 끝에는 반드시 광명한 태양빛을 맞을 수 있는 기쁨의 날이 오는 것이다! 그런 실력을 가진 자만이 남아졌다 이겁니다.   

 

161-187 그렇지만 우리는 말예요, 핍박이 올 줄 알고 사는 사람이니까 핍박해라 이겁니다. 핍박해라 이거예요. 핍박이 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핍박 오기를 바라고 그걸 맞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너희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지만 앞으로 전부 다 굴복할 것이 뻔해! 너희들의 때는 끝이 보여." 이러면서 그것을 바라보고 가는 사람들이라구요. 얼마나 자신만만한 표정이에요. 

 

161-198 그래서 오늘 68세를 맞으면서 이제는 모든 고개를 다 넘고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이것이 전부 다 하늘이 보다 더 귀한 것을 갖다 주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거예요. 보다 더 큰 것, 보다 더 귀중한 것, 보다 무한한 것을 갖다 주기 위한, 축복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의 길이었더라 이겁니다. 

 

* 내가 자리잡은 것은 그야말로 이와 같은 수난길을 통해서 다져진, 사탄이 점령했던 모든 것을 완전히 빼앗아다가 우리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하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아무 뜻 없는 시련은 없습니다. 참아버님 자서전 107 

104  1946년 8월 11일 나는 남한에서 올라온 스파이라는 죄명을 쓰고 평양 대동 보안서로 끌려갔습니다. 이승만이 이북 정권에 욕심을 내고 북한에 밀파한 첩자라고 옭아맸습니다. 소련 조사관까지 나서서 나를 심판했지만 죄가 없는 걸 어쩌겠습니까. 결국 석 달 만에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만,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문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러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지만 교회 식구들이 거둬주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예수님이 어느 한 때 나에 대하여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 심판의 하나님, 심판의 예수님이 된다.

-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큰 것을 주려면 하늘은 먼저 큰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모순된 역사를 하실 수밖에 없다. 

 

 1957.10.6(일) 전본부교회. 우리는 영광의 새나라를 차지하자.

003-110 타락 인간에게는 투쟁의 역사가 없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과 예수님은 나에 대하여 사랑만을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이 어느 한 때 나에 대하여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 심판의 하나님, 심판의 예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여러분이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은 시련과 고통도 주시는 분임을 알고 모실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나에게로 돌아오고 이 땅 위의 모든 천륜과 인륜의 법도가 승리한 나를 중심 삼고 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하늘 앞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없을진대 나 한 자체가 천륜 앞에 세울 수 있는 조건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큰 것을 주려면 하늘은 먼저 큰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모순된 역사를 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신 앞에 닥치는 모든 시련을 보고 낙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늘의 안타까움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니 땅 위에서 슬픔이 사라지게 될 때 함께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 타락한 인간들이 흘러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여러분은 구원받게 될 것이다. 

 

 1971.12.12(일) 로스엔젤스. 신앙생활에서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것들.

052-043 여러분이 세상과 더불어 가게 되면 죽음,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세상과 분립되고 타락한 인간들이 흘러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여러분은 구원받게 될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이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모순되는 말처럼 들리지만 진리인 것입니다. 사탄 세계는 죽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사탄 세계와 분립되어짐으로써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되고 그런 여러분을 통해서 인류가 구원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1971.10.17(일) 본을 세우야 할 지상시대. 전본부교회.

049-278 하나님은 인간세상에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 앞에 모순된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제시 조건을 갖고 나오지 않고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인연을 맺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 1971.10.10(일) 전본부교회. 인연 된 통일 식구와 가정.

049-203 타락한 시대에는 역리가 진리로 통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 원리강론 제2장 모세와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

310 아모스 3장 7절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제1절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

1. 예수님의 전형 노정으로 야곱 노정과 모세 노정을 세우신 이유

2. 야곱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 노정과 예수 노정

 

312 야곱 노정은 바로 사탄을 굴복시켜 나아간 노정이다. 그리고 사탄을 굴복시키는 노정은 사탄이 침범했던 그 경로를 되돌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1) 인간은 원래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이었는데 천사장으로부터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함으로써 타락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야곱이 하란에서 처자와 재물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여 가정적인 가나안 복귀 완성자가 되기 위하여는 사탄과 생명을 걸고 싸우는 시련에서 승리해야 했던 것이다. 야곱이 얍복장에서 천사와 생명을 걸고 싸워 승리함으로써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것은 (창 32:25~28) 바로 이러한 시련을 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천사를 사탄의 입장에 세워서 야곱을 시험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야곱을 불행하게 하시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천사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하는 시련을 넘게 함으로써 아벨의 입장을 확립게 하여 가정 복귀의 완성자로 세우시기 위함이었다.

 

천사가 이러한 시련의 주체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천사세계도 복귀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모세도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민족적 가나안 복귀 완성자가 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는 시련에서 생명을 걸고 극복해야 되었었다. (출 4:24)

 

만일 인간이 이러한 시험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당하지 않고 사탄에게 당하다가 그 시험에 패스하게 되면 사탄에게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시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예수님도 인류를 지상천국으로 인도함으로써 세계적 가나안 복귀 완성자가 되기 위하여는 광야 40일 시험에서 생명을 걸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마 4:1~11)   

 

 

▣ 원리강론 제3절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 섭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 노정.

 

377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킴으로써 이 세 가지 축복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그 창조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이 세 가지의 축복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사탄은 축복 복귀의 길을 막기 위한 그 세 가지의 시험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마태복음 제 4 장 시험을 받으시다(막 1:12-13; 눅 4:1-13)
1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시 91:11,12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신 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신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비로소 천국을 전파하시다(막 1:14-15; 눅 4:14-15)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사 9:1,2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  3대 시험은 사탄이 예수님의 전체의 목적을 걸고 한 시험이다. 

 

▣ 1963.1.3(목)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참된 축하. 전본부교회.

012-125 3대 시험은 사탄이 예수님의 전체의 목적을 걸고 한 시험이다.

 

2. 세계적인 종말 시기에 있어서 세계 인류는 세 번 하늘의 시험과 사탄의 시험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1958.1.3(금) 삼위기대의 의의. 전본부교회.

003-242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세계적인 종말 시기에 있어서 세계 인류는 세 번 하늘의 시험과 사탄의 시험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차 2차 3차 세계 대전입니다. 개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 3가지 시험

- 물질적인 투쟁의 과정.

- 종교적인 투쟁의 과정.

- 천국의 이념

 

▣ 1957.10.13(일)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 세우자. 전본부교회.

003-121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사탄으로부터 몇 가지의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40일 금식 기간에 먼저 먹을 것으로 시험받았습니다.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굶주린 인간들에게는 희소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부정하고 자신이 먹을 것 때문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생활권내에 있어서의 모든 조건을 사탄 앞에 잃지 않았다는 입장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인간은 물질을 중심 삼은 투쟁 역사를 거쳐왔는데 예수님께서 사탄의 제1차적인 시험에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물질을 중심 삼은 투쟁 역사를 종결시키게 되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다음 예수님은 어떠한 시험을 받게 되었던가.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이끌려 교회의 성전 꼭대기에 서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는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지도할 수 있는 종교 이념을 갖고 나타나신 예수님에게 "뛰어내리라"는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유대교적인 습관과 그들의 주장 앞에 굴복하여 그들의 지도자의 입장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다음엔 무슨 시험이 있었습니까?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꼭대기에 올려놓고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우주적인 이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을 뜻을 세워 드리기 위해 사탄의 그러한 요구를 일축해 버리셨던 것입니다.  

 

003-123 그러면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땅 위에 새로운 천지 즉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 뜻을 나타내는 실현 과정에서 이와 같이 역사적인 불신의 모든 조건을 탕감하고 복귀한다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을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에게도 물질적인 조건을 중심한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인간이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게 된다면 이 땅은 자연히 암흑의 세계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을 밟고 올라서 예수님의 천국의 이념을 받들고 나서야 하겠으며 나아가 전 세계 기독교인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여러분은 옛날 예수님께서 사탄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물질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고 그다음에는 종교적인 투쟁의 과정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어떠한 역경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서도 변치 않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예수님의 그러한 인격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끝날에 처한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세계적인 성전 이념을 찾아 세워 드리기 위해서는 가거에 좋아했던 어떤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4.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 4천 년 역사 전체의 노정을 마음으로 염려하면서 최후의 승리의 방패를 세우고, 사탄을 굴복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비장한 심정을 갖고 높은 산꼭대기를 향하여 올라가던 예수였다.

 

▣ 1959.1.25(일) 산을 찾아가시는 예수의 슬픈 심정. 전본부교회.

005-193 그러면 3대 시험 과정에서 사탄에게 이끌려 높은 산꼭대기로 올라가던 예수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 것인가. 4천 년 역사 전체의 노정을 마음으로 염려하면서 최후의 승리의 방패를 세우고, 사탄을 굴복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비장한 심정을 갖고 높은 산꼭대기를 향하여 올라가던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5. 네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아느냐? 

-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어떻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렇게 하지 말아라" 

 

▣ 1970.2.27(금) 아버지와 아들. 구리시 수택리 통일산업.

- 제1차 협회 간부 수련회.

 

029-165 예수님이 40일 금식을 하는 동안에 사탄이 나타나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로 떡이 되게 하라"고 한 것은 물질의 가치를 얼마나 아느냐? 네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아느냐? 너를 대하는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의 가치가 얼마나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물질도 초월해야 하고 자기도 초월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적인 모든 요건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복귀의 원칙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예수와의 인연이 맺어졌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자리는 배고파 굶주릴 때에 떡을 요구하던 그 간절한 마음을,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때의 욕망을 넘어선 자리라는 것입니다. 또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던 당시에 애탔던 그 마음을 넘어선 자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신경이 곤두서 가지고 온몸과 마음이 거기에 견제를 받기 때문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심각한 자리에서 40일 금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입장이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빵 한 조각이 세상의 그 무엇과 비할 것인가? 여러분들도 금식해 보았으면 알겠지요?

 

그러니 사탄이 이러한 외적인 모든 환경을 중심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아들의 특권으로서 무한한 가치와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지 않으냐" 할 때 죽음길, 망할 길도 응당히 가야 할 자기 앞에 있어서 빵이 무엇이며 자기 자신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떻게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어떻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렇게 하지 말아라" 하는 말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하는 그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할 수 있겠느냐" 한 것이 시험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자신의 가치와 물질에 대한 가치를 두고 어떻게 할 것이냐?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에 있는 자기 실체와 물질을 놓고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굶주림 앞에 돈 십 원, 빵 한 개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빵 하나를 놓고 아버지 앞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것은 뭐냐면 "아버지께서 복귀의 도상에서 인류를 찾아 나오시기에 얼마나 얼마나 서러우셨사옵니까? 그 물질이 제물의 입장에 있사오니 그것을 제가 먹고 제가 대신 제물의 입장에서 제 실체를 바치니 이 몸뚱이를 아버지께서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시련을 防止하는 방법.

 

▣ 1971.3.21(일) 흥망의 분기점. 전본부교회.

042-253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시련이 없을 수 없습니다. 어두운 밤과 같은 것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냐? 그러한 시련 굴곡이 오는 것을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냐?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는 방법은 무엇이냐?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시련을 넘어가자.

 

1. 남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통을 겪어야 한다.

2. 낙심하지 않고 더 큰 것을 위해 참고 나가면 그 시련을 준 사람은 반드시 꺾이게 된다.

3. 나무는 가지가 많을수록 그만큼  시련을 겪는다.  

 

▣ 1965.1.27(수) 민족적인 시련을 넘어가자. 전본부교회.

014-327 남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런고로 여러분이 가는 길에는 설움과 고통이 따른다.  

 

* 누구로부터 시련을 받는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더 큰 것을 위해 참고 나가면 그 시련을 준 사람은 반드시 꺾이게 된다.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면 그를 반대한 자가 꺾이게 된다.

 

* 책임진 입장에서는 기쁨과 설움과 화를 마음대로 나타낼 수 없다. 시시한 것은 잘라 버리고 보다 큰 것을 중심하여 관계 맺어야 한다.

 

* 나무는 가지가 많을수록 그만큼  시련을 겪는다.

 

* 생명이 있는 곳에는 투쟁이 있다.

 

자기 마음에 먼저 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4. 더 큰 선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은 시련이다.

- 대하는 뜻이 최고이면 그것에 대비하는 시련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 아버지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동원하여 각 방면에서 최고의 시련을 당하게 할 것이다.

- 최고에서 최하까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시련을 받게 하는 목적은 세계적인 상을 주시려는 데 있다.

- 편안한 자리는 피하고 고통의 자리에 서야 한다.

- 울면서도 전체를 위하여 이 길을 가야 한다.

- 사탄이 천지창조의 영광의 기준을 파괴하였기에 복수하고 그것을 다시 찾자니 시련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 어찌하여 고생을 시켜야만 하느냐? 이것을 재료로 삼아 사탄으로 하여금 말없이 항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 1963.3.16(토)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 제15회 전국 전도사 수련회 수료식.

 

012-165 더 큰 선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은 시련입니다. 공적인 시련과 연단의 기반 위에 세워진 선이라면 그 선이 사정상 일시적으로 침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 선의 기대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날까지 간직해 온 것은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선은 그러한 기반을 중심 삼고 그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첫째 조건은 신념입니다. 대하는 뜻이 최고이면 그것에 대비하는 시련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세운 3년이 중요한 시련 조건이라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시련이 세계적인 것이라면 세계를 판단할 수 있고 그 시련이 하늘땅을 대신하고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선지 선열을 대신한 것이라면 세계의 복을 다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동원하여 각 방면에서 최고의 시련을 당하게 할 것입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시련을 받게 하는 목적은 세계적인 상을 주시려는 데 있습니다. 

 

택한 백성을 시련 도상에 놓고 이끌어 온 것과 그들을 이끌어 오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늘이라는 것을 알고 이 모든 역사적인 심정을 상속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애급 고역 4백 년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한때 그런 고생이 있을 것을 알고 삼천만을 대신하여 힘껏 싸워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는 고충도 많았고 분한 마음을 하늘 앞에 호소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 나라 내 민족 내 땅 내 아버지의 이념만을 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우는 가운데 그 생활환경이 쪼들리고 급박해진다 할지라도 내적으로는 더욱 강해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그러한 때를 갖지 못했기에 시련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도 아버지의 길에 함께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편안한 자리는 피하고 고통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울면서도 전체를 위하여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고통스러운 복귀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내 40여 평생의 울분심이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버지의 6천 년간 쌓인 울분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이 어려움이 한때 악을 처단할 수 있는 재료로 나타나게 해야 됩니다.   

 

* 하나님은 처참한 것 같지만 결국은 완전 정복하십니다. 시련을 주시는 것도 우리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부모도 그러한 부모가 없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그러시겠습니까?  

 

사탄이 천지창조의 영광의 기준을 파괴하였기에 복수하고 그것을 다시 찾자니 시련이 불가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고생을 시켜야만 하느냐? 이것을 재료로 삼아 사탄으로 하여금 말없이 항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 참아버님 흥남감옥 쇠고랑

-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 1966.10.14(금) 경기도 남양주군 광릉. 뜻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다하자. 

- 서울 제1, 2, 3교회 식구. 

- 이북 출감일 16주년 기념예배. 

 

016-342 선생님은 그때 감옥에 들어가던 날 팔에 쇠고랑을 차면서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 선생님은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갈 때 신중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평시에 나를 위로하는 자보다 내가 죽음길에 있을 때, 감옥에 있을 때 나타나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생각했습니다. 

 

016-343 선생님은 20년이나 이 길을 걸어왔으나 지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부르는 아버지와 내가 부르는 아버지와는 심정적인 인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분하고 원통한 자리, 감옥까지 수고의 길을 더듬어 찾아오신 아버지와의 인연이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있을 때는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어떤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나를 돌려 눕히려고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옛날 나를 찾아 주시던 하나님이 지금도 중요한 일을 위해 기도할 때면 언제나 함께 게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재산은 바로 이것입니다.

 

환경을 피하지 말고 그 환경을 소화시켜야 합니다. 선생님은 흥남감옥에서 해마다 모범 노동자 상을 받았습니다. 노동자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고 어떻게 하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일터에 나가기 전 한 데서 두 시간씩이나 신검을 받을 때는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를 당했습니다. 차라리 일터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릅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은 감옥이 얼마나 좋은 곳이고 얼마나 고마운 곳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확고한 자리에 세우시기 위해서 나를 감옥에 넣어서 작전상 시련시킨 것입니다. 과거에 고생하던 기준이 있기에 현재의 생활에서 고생이 있어도 그때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참아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감옥 같은 데서는 바늘이 몇 푼 안 하는 것이지만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전깃줄 같은 것을 얻으면 그것을 유리조각으로 갈아서 바늘을 만들던 일이 눈앞에 선합니다. 지금도 반찬이 없으면 그때 맨밥을 먹던 일을 생각합니다. 그때는 냉수 맛도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냉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바늘 하나를 3년 만에 얻을 정도로 물질적인 궁함도 컸지만 감옥에서는 배고픈 것이 제일 궁한 것이었습니다. 금식을 해 보았으면 다 알겠지만 감방에서는 이웃에서 무슨 음식을 하고 있는지 다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 그 냄새 한 번 맡으면 십 리를 걸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았던 것입니다. 

 

* 가치 없이 고생한 것은 소용이 없지만 크나큰 뜻을 품고 한 고생의 경력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재산입니다. 

 

016-345 여러분은 하나님께 끌려가지 말고 하나님을 모시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세 번 이상 죽음을 각오해야 된다.

 

▣ 1965.1.1(금) 승리적 주관자가 돼라. 전본부교회. 연두 훈시.

14-253 여러분, 적어도 세 번 이상 죽음을 각오해야 됩니다. 죽음의 자리를 세 번 이상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한 자리를 거쳐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실체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대할 수 있는 승리적인 주관자의 자리에 나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슬픔과 고통과 죽음의 길에서도 승리적 주관권을 갖출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 선생님도 이 길을 출발할 때에 죽음을 몇 백 번 각오했습니다. 그러한 시련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자신에게 명령하는 그런 훈련 기간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민족적인 죽음의 고개와 민족적인 고통의 고개와 민족적인 슬픔의 고개를 넘고 세계적인 죽음의 환난과 세계적인 고통의 환난, 세계적인 슬픔의 환난을 당해 보아야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이 슬퍼하고 하늘땅이 생사의 기로에서 몸부림칠 때, 이것을 해결지어 가지고 승리의 일로를 개척해야 하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 1971.9.12(일) 통일의 요인과 방안. 전본부교회.

048-191 나는 죽음의 자리를 많이 거쳐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죽겠다고 각오를 하면 난데없는 결과가 벌어지는 거예요. 이제는 내 때가 왔기 때문에….

 

내 한 가지 한이 무엇이냐? "내 기력을 다하고 소신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있는 정력을 다하여 할 것을 다 해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할 것을 다 해 보고 끝났을 때는 고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앞이나 인간 앞에 할 것을 다 못하고 가는 날에는 그것이 한스러울 것입니다.   

 

▣ 1975.4.6(일) 참된 신앙 길. 전본부교회.  

077-164 선생님은 감옥에 가더라도 "어, 또 감옥 간다···" 감옥 가게 되면 그곳이 왕궁이라고 생각을 한다구요.

 

죽음의 자리를 가도 뜻을 위해 나서는 거예요.

 

오늘 죽기를 각오했던 내 생명이 아니냐. 원래는 청춘 때에 죽으려고 했는데 50이 넘어 죽으니 무슨 한이 있느냐 이거예요. 지금 미국 활동은 생명을 내놓고 하는 겁니다. 

 

◑사명에 비례한 시련

 

▣ 1957.6.30(일) 하나님을 위한 승리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002-305 오늘날 우리가 우주적인 소망의 한 날, 승리의 한 날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사탄과의 싸움의 노정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우리의 책임도 큰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싸움의 노정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 큰 눈물의 골짜기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 1964.7.17(금) 우리의 사명이 크다. 전본부교회.

- 서울 지구 합동 속회.

 

014-109 하늘의 복귀 섭리 프로에는 어떠한 개인이 승리하기 위한 과정에도 반드시 그에 버금가는 탕감 조건이 있습니다. 범위가 작으면 작은 것에 비례한 탕감 조건이 있고 범위가 크면 그 큰 것에 비례하여 탕감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이 종말시기에 있어서 우리에게 책임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우리 사명에 비례한 탕감 조건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사명이 크면 클수록,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거기에 비례한 탕감 조건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여러분과 통일 제단이 지고 있는 책임이요 사명인 것을 우리는 절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 1964.9.14(월) 진실만이 진실을 빼앗아 올 수 있다. 전본부교회.

014-141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들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서는 안 되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아서도 안 되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시련과 투쟁이 많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내용만 가지고는 안 된다. 실적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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