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파동 전본부교회.
-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하차, 10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다. 서울역(서부역 방면)에서는 도보로 20분가량 소요된다
1955년 새 역사의 산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는 1954년 5월 1일 서울시 성동구 북학동 391-6번지, 일명 ‘세대문 집’에서 창립됐다. 이후 성동구 흥인동 241-44 번지, 중구 장충동 1가 37번지를 거쳐 1955년 10월 7일 용산구 청파동 1가 71-3번지인 청파동 전본부교회에 터를 잡았다.
참아버님께서는 1954년 7월 4일,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셨지만 3개월 만에 무죄로 석방되셨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오신 지 3일 후 전본부교회로 이전하셨다.
10월 10일에는 참아버님의 출감 환영회가 전본부교회 2층에서 거행됐다. 이때 다과가 준비되었지만 환영회가 시작되어도 먹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참아버님과 함께 울고 웃는 집회가 됐다.
전본부교회는 2층으로 된 적산가옥으로 1층에서는 예배와 수련회가 진행됐다. 초창기 식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회를 찾았으며 참아버님의 말씀 속에서 신령과 진리의 은혜 충만한 시간을 가졌다.
1층의 안쪽에는 참부모님이 사용하셨던 방이 있다. 이곳에서 여섯 분의 참자녀님들을 출산하셨다. 참아버님의 집무실은 2층 안쪽 끝에 위치했으며 공간이 협소했다. 책상 위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거북선과 일본을 상징하는 금각사의 모형이 놓여 있었다.
참아버님이 흘리셨던 눈물이 아래층까지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참아버님께서는 이 방에서 눈물 어린 정성을 들이셨으며 하 루 두세 시간도 채 주무시지 않는 강행군 속에 섭리를 이끄셨다.
그 외에도 2층에는 강의실, 효진님과 은진님의 방, 유효원 협회장의 방 등이 있었다. 전본부교회에서는 1960년 3월 27일(음력 3월 1일) 참부모님의 약혼식, 4월 11일(음력 3월 16일) 참부모님의 성혼식이 거행됐다.
또한 3가정의 축복식(4월 16일), 33가정의 축복식(1961년 5월 15일), 72가정 축복식(1962 년 6월 4일) 등도 열렸다. 전본부교회에서 탄생하신 자녀님은 예진님(1960년 음력 12월 11일), 효진님(1962년 12월 3일), 혜진님(1964년 6월 20일), 인진님(1965년 음력 7월 18일), 흥진님(1966년 음력 10월 23일), 은진님(1967년 11월 23일) 등이다.
명절로는 참부모의 날(1960년 음력 3월 1일), 참자녀의 날(1960년 음력 10월 1일), 참만물의 날(1963년 음력 6월 6일에 음력 5월 1일을 참만물의 날로 제정), 참하나님의 날(1968년 1월 1일) 등이 이곳에서 선포되었다. 또한, 40일 수련회(제2회를 제외하고 제1회부터 제17회까지), 21일 수련회, 14일 수련회 등 많은 수련회가 1969년까지 진행됐다.
참아버님은 1965년 1월 28일부터 세계 40개국을 순회하시며 120개의 성지를 택정하셨다. 첫 번째는 동경의 메이지신궁(1965년 1월 31일)이었으며, 마지막 120번째 성지가 이곳 청파동 전본부교회(1969년 1월 1일)였다. 전본부교회는 중앙 성지로서 세계 40개국의 성지와 연결되는 부모 성지로서 택정되었다.
*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pp.157-161, 김영사)
“하나님 우리 교회를 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교회를 불편해하거나 부끄러워한 적도 없습니다. 기도할 자리가 있으면 그걸로 감사할 뿐 넓고 편안한 자리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식구들이 모여 예배드릴 집은 있어야겠기에 2백만 원의 빚을 얻어 청파동 언덕에 다 허물어져 가는 적산가옥을 샀습니다. 스무 평도 채 되지 않는 아주 좁은 집이었는데 깜깜한 굴속 같은 외통길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골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둥이고 벽이고 모두 새까만 때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들과 함께 양잿물을 풀어 사흘을 내리 닦아대니 검은 때가 얼추 벗겨졌습니다.
청파동교회로 옮겨간 뒤 나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안방에 꼬부리고 앉아서 새벽 세 시, 네 시가 되도록 기도하다가 옷을 입은 그대로 잠깐 새우잠이 들면 또다시 다섯 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7년 동안 계속했습니다. 매일 한두 시간만 자도 졸린 기운 없이 눈이 샛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할 일이 마음속에 꽉 차 있으니 밥을 먹는 시간도 아까웠습니다. 밥상을 따로 차리는 일이 없이 방바닥에 밥을 놓고 쪼그린 채로 먹었습니다. "정성을 퍼부어라! 졸음 가운데도 퍼부어라! 지치도록 퍼부어라! 배가 고파도 퍼부어라!"라고 되뇌며 온갖 반대와 헛소문 속에서도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반드시 거둘 날이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한국에서 거둘 수 없다면 세계에서라도 분명히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밤새 기도를 하니 마룻바닥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마룻바닥에 내 피땀이 그대로 젖었습니다.
훗날 미국에 머무는 동안 교회 식구들이 청파동 교회를 반듯하게 뜯어고친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공사를 중지하라는 전보를 쳤습니다. 청파동교회는 나 개인의 역사가 담긴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 교회의 역사를 그대로 증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아무리 멋있게 뜯어고친들 역사가 사라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번듯한 꼴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뜻입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거기에 전통이 있고 빛이 있으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전통을 존중할 줄 모르는 민족은 망하고 맙니다. 세월이 지나 우리에게도 잘 지어진 교회들이 많이 생겼지만 나는 그런 곳보다는 청파동 언덕 위의 비좁고 낡은 집을 찾아가 기도하는 것이 더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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