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는다는 뜻을 가진 인내라는 말이 가장 귀하다.
- 인내는 재출발의 동기요, 재창조의 동기가 될 수 있다.
▣ 1975.3.2(일) 행복과 불행의 기로. 배리타운.
076-214 참는다는 뜻을 가진 인내라는 말이 가장 귀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어요. 누가 한마디 말을 해서 성이 나지만 참자 이거예요. 자, 저기서 한마디 "왝" 하면 나도 "왝" 해 가지고 주먹이 왔다 갔다 하다간 내가 불행하게 되는 거예요. 다리가 부러지고 싸움만 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구요. 싸우게 되면 하나는 깨지게 마련이라구요. 그건 원칙이라구요. 깨지거나 파괴된다구요. 또 깨지지 않은 그 자체도 누가 와서 깨뜨려 버린다 이거예요.
* 자, 이것은 우리가 순리적으로, 생리적으로 분석해 보더라도 내가 왜 성을 내 가지고 내 기분 나쁘게 하고 말이에요, 내가 왜 말을 잘못해 가지고 그 입으로 말미암아 생리적으로 좋지 못한 변화를 얼마나 일으키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 미워하고 다 이런 건 독이에요. 독. 毒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럴 때 "참는다. 난 참는다. 또 그러겠으면 그래라." 하며 그저 참아 나오게 되면 어떻겠어요?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암만 찾아와도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것인가를 발견해서 알 거라구요.
참는 사람은 앞도 바라보고 뒤도 바라보고 동서남북을 전부 다 비판할 수 있다구요. 벌써 참는 사람은 저쪽 입장을 생각도 해 주고 또 젊었을 때 늙었을 때 자기도 부모를 가져 보고 자기도 아들을 가져 보고 사방을 다 생각할 때 나도 그럴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아, 그러니까 나도 참아야지." 하며 자리를 잡는 거라구요.
그것을 벌써 정신적으로 모든 싸움에서 환경을 전부 다 정리해 가지고 내 편을 만들었다는 거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을 못 하고 있으면 "뭐야" 하면 대번에 "야"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엔 "뭐냐?" 그다음엔 무슨 말이 나오느냐 이거예요. 이 참는다는 게 얼마나 귀하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076-218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인내가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인내가, 인내가 얼마나 귀하냐. 자, 이렇게 보게 되면 인내는 재출발의 동기요, 재창조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발견할 거예요. 참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용서해 줄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는 언제나 저길 점령할 수 있는 거예요.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참는 것입니다. 참아요. 아담 해와가 죽는 자리에 나갈 때 참았고 십자가에 예수를 데려다 땅땅 못을 박는데도 참았다 이거예요.
자,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 그런 척하고 대하니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그 사람이 자기에 대해 전부 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대해 주고 그러면 얼마나 기가 막혀요?
* 자, 너희 집안에서도 그렇다구요. 가정에서도 형제들이 뭐 야단하더라도 참고 참고 이렇게 나가면 부모나 누구나 전부 다 그 앞에서 다 축복해 준다구요. "재는 두고 보자!" 하고.
▶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생각하여 행동하고 그다음엔 한 번 더 생각하고 참아야 된다.
▣ 1977.6.12(일) 한 번 더 생각하자.
093-319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생각하여 행동하고 그다음엔 한 번 더 생각하고 참아야 된다구요. 행동도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생님은 참기 놀음하는 거예요. 인내라는 말은 듣기 싫은 말이지만 가장 귀한 말이라는 거예요. 그럴 적마다 한 가지 생각을 하라구요. 힘들지만 한 가지 생각하라구요. 참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가 참음으로 말미암아 뭐가 되느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복을 내가 전부 다 인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자, 여러분들 낙심하고 다 어려운 일이 많은 걸 내가 안다구요. 그렇지만 선생님과 같은 어려움은 당하지 않았다 이거예요. 나는 피를 토하고 죽는 경지에서도 이를 악물고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피를 토하는 자리에 가서도 "아버지, 날 살려 주소." 안 그랬다구요. 내가 죽더라도 난 졸자가 아닙니다. 난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것이니 나를 위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런 기도를 하려고 했지 "아이고, 나 못살겠습니다. 나 고생시키지 말고 놓아 주소." 하지 않았다구요.
난 그런 기도를 배워 본 적이 없고 한 적이 없다구요. 우리가 어려운 것을 하나님이 다 알고 있다구요. 다 알고 있다구요. 그래도 가야 할 길이므로 어렵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보내는 거라구요.
▶ 침묵과 인내는 평화를 이룰 수 있으니 어머니와 마찬가지다.
▣ 1996.2.18(일) 뜻과 우리의 정성. 우루과이 빅토리아 플라자 호텔
276-150 침묵은 뭐냐 하면 들은 것을 듣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침묵은 뭐냐 하면 들은 것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하는 거예요. 내가 본 것을 보지 않은 것으로 하는 거예요. 나를 중심 삼고 느낀 그것은 느끼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그것이 침묵입니다. 동양사상의 수도의 비결이 침묵입니다. 제일이 침묵이에요.
* 하나님은 침묵의 대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볼 때 "저 사람은 나를 닮았구나." 그런다는 거지요. 도와주고 싶다는 거예요.
부부생활 가운데서 남편이 이랬다고 말 한마디 하고 대꾸하면 점점 부딪치는 거예요. 침묵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예요. 남편이 욕을 해도, 눈을 보면 눈을 왜 보나 하고 말이에요, 그것을 잊어버리는 거예요. 보지 않은 것같이, 느끼는 모든 전부도 전부가 없었던 것으로 하는 거예요.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겁니다.
가정 파탄의 80%가 여자로 말미암아 벌어져요. 남자보다도 여자가 동기가 많다구요. 남자는 여자보다도 입이 무겁습니다. 여자는 뭐 와와와···. 또 표정이 안팎이 얇아요.
그래 이혼의 동기나 모든 가정의 파탄의 동기, 불순한 환경의 여건은 여자로부터 생긴다 이거예요. 남자들은 입이 두꺼워서 침묵을 지키고 행동을 몇 번 생각하고 하지만 여자는 즉각적입니다. 모든 폐단은 여자로 말미암아 생겼다는 거예요. 여자들은 주의해야 된다구요.
여자는 말이에요, 금 고리 하는 집게를 입에다 채워야 되겠다 이거예요. 여자는 장식품이 필요하잖아요. 귀고리 코고이 입고리까지 하자 이거예요.
* 여자는 이 침묵이 제일 중요해요. 큰 대갓집에 큰며느리는 침묵을 지키는 거예요. 보고도 잊어버리고 듣고도 잊어버리고 말하고 싶어도 참고 전부 다 참아 나오는 것입니다. 침묵과 인내는 평화를 이룰 수 있으니 어머니와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이다.
▣ 1994.3.12(토) 탕감복귀의 고개를 넘자. 중앙수련원.
- 일본 여성 수련회. 일본어.
256-018 양심은 하나님의 대표입니다. 육신은 사탄의 대표라구요. 이 두 가지에 의해 인간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빼앗기를 하는 것입니다.
* 종교는 양심적인 사람들을 하나님 편으로 이끌어서 육신적 사탄의 사람들을 소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강제적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과 사탄의 전략 전술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배상을 받는 거예요.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선한 것이 먼저 맞았기 때문에 그것이 개인으로부터 맞고 가정으로 맞고 국가 세계로 그것이 결실될 때까지, 세계의 끝까지 맞고 와서 정리하지 않으면 친 사람들의 기준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맞고 배상을 받는 거예요. 그 배상받은 것은 사탄이 다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배상받는 것입니다. 악마는 치고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생활에서는 인내를 강조합니다. 참고 견디고 극복하라는 거예요. 참는 자가 이긴다고 하는 그 내용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바라보게 되니까 그런 결론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참고 견디고 극복하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戰略 戰術이 그런 내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서 보면 쭉 해명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법은 맞고 복귀해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1. 인내의 종착지는 어디인고? 여러분은 그 종착점을 더듬어서 헤매어 보았습니까?
2. 지쳐서 못 가겠다고 합니다.
- 땅을 두고 보면 행복한 자일지 모르나 하늘을 두고 보면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과연 가기가 어렵습니다.
3. 선생님은 해방 이후 오늘까지 나왔으나 아직까지 내 참음의 한계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또 끝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4. 참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요
5. 참음의 자리에서 태연자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물질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을 참아야 되겠습니다. 자식으로 인해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내 일신에 대한 심적인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7. 참음의 6천 년 역사를 배반하는 그런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참고 참고 또 참아야 되겠습니다.
▣ 1959.3.29(일) 신앙자의 태도. 전본부교회.
006-089 그러면 그 참음의 종착지는 어디인고? 인내의 종착지는 어디인고? 여러분은 그 종착점을 더듬어서 헤매어 보았습니까?
* 여러분에게 참음이 있다 하지만 그 참음이 역사적인 참음의 종착점과는 먼 거리에 있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인연 된 사람들이 지쳐서 못 가겠다고 합니다. 통일교회는 좋지만 어려워서 못 가겠다 하는 말을 듣게 되는데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자일 거예요. 땅을 두고 보면 행복한 자일지 모르나 하늘을 두고 보면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가기가 어렵습니다. 가는 길은 눈물의 길입니다. 보고 울고, 느끼고 울고, 싸우면서 우는 눈물의 길입니다. 눈물이 그칠 시간이 이때인 줄 알았더니 아닙니다. 눈물이 더 연속되어야 하는 즉 더 참음의 눈물을 고대하시는 하늘의 심정이 있는 것을 알고 하늘이 처량한 모습들인 우리를 기다리는 것을 알게 될 때 내가 참았다는 그 사실도 하늘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해방 이후 오늘까지 나왔으나 아직까지 내 참음의 한계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또 끝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끝나기를 바라는 그 시간부터 자기를 살필 것이며 그 시간서부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느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요, 참으신 그분이 나와 영원히 같이 살 나의 아버지며 참으신 그분이 내가 모실 신랑이라고 여러분은 마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늘 앞에서 기뻐하고 영광을 누린 자가 있다 합시다. 그를 바라보고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참음의 자리에서 늠름하고 참음의 자리에서 태연자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 앞에 참음의 모습으로 나타난 자가 오늘의 이 혼란된 역사에서, 참음의 역사 과정에서 행복스러워하는 자보다도 귀한 자인 것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심정으로 오늘의 이 혼란된 시대를 넘어갈 줄 모르는 자는 하늘에 대해 배반자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은 물질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을 참아야 되겠습니다. 자식으로 인해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내 일신에 대한 심적인 고통이 있습니까? 이것도 참아야 되겠습니다.
참음의 6천 년 역사를 배반하는 그런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참고 참고 또 참아야 되겠습니다. 망하는 줄 알았더니 남아진 것이 하늘의 역사요, 쓰러지는 줄 알았더니 蘇生해 나온 것이 하늘의 역사입니다.
8. 개척자의 길은 극복과 인내만 있을 뿐이다.
▣ 1970.4.12(일) 개척자의 길. 전본부교회.
031-054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심정 세계의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개척자가 가는 길은 극복과 인내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생활철학입니다. 그런 자리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힘들고 고달픈 자리예요. 기진맥진할 정도로 고달픈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저 개인 하나 쓰러지는 것은 좋지만 아버지여! 이 땅 위에 저와 같은 사람이라도 없다면 당신은 얼마나 불쌍하시겠습니까? 제가 제1의 소망이 되지 못할 때 제2 제3의 소망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아들딸이 없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당신은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를 알게 되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라는 새로운 종교를 중심 삼고 개척자의 깃발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런 개척자의 사명을 하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또 같이 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지의 교차로를 거칠 적마다 나는 이미 버려진 몸이라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더 염려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효도하는 길은 부모에게 요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가는 길이 효를 증거하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9. 노아와 예수님의 인내.
1) 노아의 인내.
▣ 1971.5.30(일) 신앙의 심도. 전본부교회.
044-323 노아 할아버지는 120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120년이라는 기간을 생각할 때 그것은 12일도 아니고 12년도 아닙니다. 120년이라는 기나긴 기간은 전체 생애에 해당하는 귀중한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120년은 살다 남은 그러한 기간이 아닙니다. 노아에게 있어서는 일생에서 가장 귀한 생의 토막을 갖추어 드릴 수 있는 기간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기간에 수난길을 감수하며 120년을 하루같이 꾸준히 싸워 나온 노아 할아버지의 인내력과 성실성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충실함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 배후에서 얼마 만한 수고와 희생의 대가를 치렀겠습니까?
가정에서의 핍박도 있었을 것이고 동네의 반발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친척들이 그들 부정하고 이해 못 하는 일도 非一非再했을 것입니다.
* 그 하루가 슬픔의 날인 동시에 그 하루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매일 가중된 투쟁과 가중된 시련 가운데서 참는 시련도 컸을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2) 예수님 "다 이루었다."
▣ 1971.7.4(일) 솔직한 신앙자. 전본부교회.
045-264 자기 일생을 두고 볼 때 무엇을 남길 것이냐? 무엇을 남기느냐?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터전을 밟고 섰을 때 당당할 수 있느냐? 여러분이 한 가지 행동이라도 잘했으면 당당할 수 있지요?
일생을 살고 마지막 순간에 선이냐 악이냐 할 때 "아버지, 나는 아버지 앞에 선한 아들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 땅 위에서 백승 장군의 영광을 가진, 국가와 세계의 역사를 변혁시킨 영웅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다.
*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놀라우신 분이라는 거예요. 그 젊은 가슴에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밟고 넘어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라고 한 말은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정성과 노력을 다 했고 투쟁과 인내와 극복의 한계선을 세우는데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자신만만한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훌륭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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