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5.11(일) 전본부교회. 짐을 지우는 자가 되지 말자.
- 새벽 경배 후.
▶ 편지를 써도 좋은 내용을 써야 됩니다.
022-323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면 그 위기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책임을 진 사람은 누구보다도 고심을 해야 됩니다. 옆에서 구경하고 평하는 사람들은 책임을 진 사람의 입장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위기, 위기"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했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새로운 움직임이 연결되어야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편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천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개인이 책임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를 자기가 책임진 듯이 얘기하는 것은 지극히 두려운 일입니다.
선생님이 일하는 데 있어서 환경적으로 부딪칠 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사방에서 바람을 맞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본부를 믿고 실낱 같은 본부의 소식, 본부가 잘되고 발전한다는 소식만 바라고 있는데 본부가 어떻고 어떻다고 평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목을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의 특명에 의한 것이라면 모르지만 쓸데없는 편지들을 해서 있는 말, 없는 말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전부 다 정착하지 못한 떠돌이들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꾸 흉을 보게 되면 이 철없는 본부 패들 앞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순회 가서 보면 제일 골치 아픈 것이 그것입니다. 난데없는 말들, 선생님은 생각지도 않은 말들, 사실과 맞지도 않는 말들을 전부 다 편지로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 편지를 누가 해 주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무슨 책임자인 것처럼 해 가지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개척시대에 개척하는 자리는 시작부터 어려움이 있습니다.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싸움은 출발부터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자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담도 하지 않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러쿵저러쿵 편지를 합니다.
왜 그런 편지를 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입니까? 소망을 주고 희망을 북돋워 주지는 못할망정 왜 상처를 주느냐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외국에 편지 보내는 것을 통제해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편지라는 것은 받는 사람을 격려해 주고 그 사람이 가는 길에 플러스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편지는 헛된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뜻을 위해 충성하려고 노력하는데 왜 편지를 해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 편지를 써도 좋은 내용을 써야 됩니다. 본부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따라가는 사람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언제나 서로 보템이 될 수 있는 말만 해야 합니다.
022-325 우리는 신앙세계에 있기 때문에 또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언제나 서로 보템이 될 수 있는 말만 해야 합니다. 그런 말은 하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고는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들 합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교회로부터 전부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떨어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폐단이 무엇이냐? 교회에 속한 모든 물건을 존중시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것이니 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별의별 녀석이 다 있어요.
▶ 자기 자신의 짐을 절대로 교회에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 통일교회 무리들도 이젠 짐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여러분을 환영했지만 선생님을 만났으면 선생님에게 짐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짐을 지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짐을 절대로 교회에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짐을 지되 사적인 입장에서 교회에 짐을 지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적인 입장에서 응당히 짐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평이 많습니다.
*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서양 사람은 자립정신이 강합니다. 벌써 18세만 되면 혼자 자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철저한 교육 방침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양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것이 현제의 세계관을 만드는 분기점입니다. 自立精神이란 스스로 개척해 가지고 스스로 찾아가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공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기준이 있습니다. 이때가 어떤 때이기 때문에 어떤 노력을 해야 된다는 기준이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준을 망각해 버리고 그 기준 앞에 염려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좋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을 원수시할 줄 알아야 됩니다.
공적인 길에서 개인이 이익을 보겠다고 하면 거기에서 모든 부패가 벌어집니다. 不祥事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적인 일에는 보템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적인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일에서 개인의 이익을 보겠다고 하면 망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단체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국민이 많은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 지난날을 간증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간증할 수 있는 준비까지 해야 합니다.
022-327 지난날을 간증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간증할 수 있는 준비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날과 오늘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간증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헛된 것입니다.
즉 과거에 아무리 잘했더라도 하루의 실수로 역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거에 천 번 만 번 잘했더라도 한 번 법을 어기면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적인 자리는 외롭다면 지극히 외롭고 무섭다면 지극히 무서운 자리입니다.
▶ 앞으로 원리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데 원리원칙이 아니면 무엇으로 그 세계를 만들겠습니까?
022-328 앞으로 본부에서는 책임 못한 사람들은 절대로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선생님 가까이 있는 사람은 원리원칙대로 책임을 다한 사람 아니면 안 됩니다. 원리원칙대로 책임한 사람 아니면 부장이나 지구장 지역장의 보직을 절대 못 줍니다.
* 앞으로 원리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데 원리원칙이 아니면 무엇으로 그 세계를 만들겠습니까? 본부도 그렇습니다. 책임을 완수한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022-330 피곤할 때 반작용을 일으키게 하면 그 피곤이 풀립니다. 갑자기 팍 누르면 정신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피곤하면 갑자기 더 피곤하게끔 단단히 결심하면 거기에서 반발이 온다는 것입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참 이상합니다. 몇 시간은 자야 됩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렸는데 몇 시간 자고 나서 하자고 합니다. 죽을 때에 "아 몇 시간 자고 죽겠소." 하면 그것이 통할 것 같아요?
'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 편에 서자 ▣ 1968.6.9(일) 전본부교회. (2) | 2024.12.10 |
---|---|
한을 남긴 책임분담 ▣ 1972.10.22(일) 전본부교회. (0) | 2024.12.10 |
생애에 있어서 귀중한 청년기 ▣ 1968.10.27(일) 전본부교회. (0) | 2024.12.04 |
소명받은 사람들 ▣ 1986.10.8(수) 용인 연수원. (2) | 2024.11.30 |
정지와 전진 ▣ 1970. 6.14 (일) 전본부교회. (0) | 2024.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