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11.9(일) 전본부교회. 가야 할 험한 길
026-245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치 않는 길, 더욱이나 자기의 생명이 위협받는 문제가 개재되어 있는 길은 피하고자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길을 피하려 할 것입니다.
오늘 한때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길이라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인생의 행로를 苦海라고 한 데에는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타락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 인간에게는 그 타락으로 인하여 생긴 원한의 과정을 어차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을 타고났기에 수천수만 년의 역사 과정을 거쳐서라도 그것을 넘지 않으면 그 한의 길은 우리 앞에 영원히 남아있게 되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연고로 그 순간부터 우리 인간은 행복의 요건을 갖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불행의 요건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가 행복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행의 세계를 박차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행복한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만이 불행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함께 불행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행복의 곳을 찾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행복해지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나 인간이 같은 입장이 되어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도 역사 과정을 거치며 현시점까지 찾아온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험한 길 중의 험한 길이요, 세상의 인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그런고로 타락으로 인하여 남아진 이 길은 그 누구도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길이 되었습니다.
* 이렇게 엄청나고 심각하고 그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 험한 길이지만 우리에게는 험한 길 자체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그 험한 길을 넘어가야 할 목표가 있고 하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목표와 사명을 이루기 위해 거기에 배치되는 모든 요건을 밟고 넘어선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의 역사 과정에 복귀의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026-247 우리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넘기 어려운 험한 고개를 넘어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그 고개를 넘지 못하셨다면 구원섭리니 복귀섭리니 하는 명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명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인류는 하나님과 격리되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 자꾸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026-253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오늘 탕감 노정을 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런 험한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길에 처해 있습니다. 이 고개를 누가 넘어야 할 것이냐? 이 고개는 그 누가 대신해서 넘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부모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기에 그 부모가 넘었다고 해서 그 자식이 함께 따라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전부가 쇠사슬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이 쇠사슬을 끊고 넘어가야 됩니다.
이것은 부모가 끊고 넘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가 겪어야 할 시련과 고통이 탕감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개를 넘어가는 데는 반드시 각자가 책임지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 그러면 패자의 서러운 잔을 마신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즉 지옥에 간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이 험한 고개를 넘어가기를 싫어한 자기들이요, 험한 고개를 회피해 가려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험한 고개를 맞아 자기가 응당 넘어가야 할 필생의 노정으로 알고 그 고개를 넘기 위하여 들인 힘과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생명을 투입해서라도 넘어가야겠다고 했던 사람들은 그 고개를 넘어 서러운 역사 과정을 뚫고 나아가서 하늘과 관계 맺고 중간 영계인 낙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낙원에 가 있는 사람들의 배후를 역사 과정을 통해 미루어 볼 때 그 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험한 고개를 많이 넘었느냐가 문제입니다. 개인적인 험한 고개를 넘었느냐, 가정적인 험한 고개를 넘었느냐, 국가적인 험한 고개를 넘었느냐, 세계적인 고개를 넘었느냐 하는 차이에 따라 천적인 위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026-256 오늘날 우리들은 이 험한 길을 지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생명이나 재산 모든 것을 다 투입해 가지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결의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차피 떠나가야 할 이 길이기에 떠나는 우리는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청산 짓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민족이 반대하더라도 반대하는 그 모든 것을 돌파하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향하여 출발한 노정에 있어서 우리는 이 세계를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우리 앞에 험한 길이 가로놓여 있다면 그 길을 박차고 넘어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026-259 그러면 타락권내에 있는 우리가 하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 절대시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느냐? 우리 자신이 타락권내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처해 있는 자리는 절대시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타락권내에 절대 세계가 있다는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중심 삼고 그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절대시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우리 인류에게 험한 길을 제시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장사로 말하면 몇 배 이상의 이익을 남길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죽음의 길이지만 가도록 사정없이 우리를 내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러시는 것입니다.
* 중생하려면 지금까지의 사망의 세계를 떼어 버려야 합니다. 떼어 버려야 합니다. 세계에 대한 욕망이나 나라에 대한 욕망 그리고 사회를 중심 삼은 권위 등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을 떼어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떼어 버린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렇듯 복귀라는 관념을 생각할 때 복귀의 길은 험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 길에는 평탄이란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비참한 길입니다. 여기에서 수많은 인간들이 죽어 갔습니다.
* 그러므로 이것을 일시에 탕감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 삼고 죽겠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 그러니 내 뜻을 하나님 뜻에 일치시키고 죽음의 길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항상 "내가 지금 사는 것은 죽을 몸이 덤으로 사는 것인데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여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왕에 죽은 몸이니 이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위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왕 죽었던 몸인데 뜻을 알고 가는 길에서 다시 살아 남게 된 것만 해도 이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살려 주셔서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공을 갚아 드려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죽고 사는 것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의 목숨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대해 충신이 되고 역적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026-263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에는 험한 고개가 숱하게 많았습니다. 그 숱한 길, 험한 길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자체를 청사에 빛낼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해 주고 승리적 조건을 세우게 하는 하나의 요건이 되었으면 되었지 파탄시키는 요건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 험한 고개를 어떻게 극복해서 넘었느냐에 따라 승리의 발전을 얼마나 잘 닦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런 험한 길을 가게 하는 것은 인류를 희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에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험한 깊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한참 꽃다운 청춘시절에 자기의 둘도 없는 신랑과 신혼살림을 해야 할 여성이었는데 통일교회를 믿고 이런 길을 걸어 나오다 보니 누더기 옷만 입게 되고 나이만 먹게 되어 이제 주위를 돌아보니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어서 그냥 살았으면 세상의 아들딸이라도 낳고 살았을 텐데 이게 뭐냐. 安着할 곳도 없이 쓸쓸하기 짝이 없고 寂寞江山이다. 통일교회 괜히 믿었다."라고 후회를 합니다. 여자들, 이것이 잘된 거예요, 못 된 거예요?
* 하늘을 위해 몽땅 바친 그것을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꽃다운 청춘시절을 배신자를 위해 바쳤으면 다시 빼앗아 아야 합니다.
* 효자의 한마디 불효한 말은 부모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믿었던 만큼 가깝던 만큼 절대시했던 만큼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 길을 가는 데는 가다 보면 절벽강산도 있고 큰 수렁도 있는 것입니다.
026-265 그러나 그 고개를 끝까지 못 넘게 될 때는 나중에 가서는 사망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아는 한 지금은 아무리 절박하고 험한 길이라 해도 끝까지 간다면 歷史가 알아주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을 해서 가르쳐 주게 되면 생사지경을 넘어서 부모의 명령을 지켜야 할 것이 자식의 도리가 아니겠어요?
효를 다하는 자식은 가다가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가 가라는 대로, 부모의 명령대로 자기의 몸을 희생하며 그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뜻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는 사랑하는 처자가 있더라도 두고 가야 하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더라도 두고 가야 합니다. "가자!"고 하는데 "나는 못 가겠습니다" 하면 여러분은 큰일입니다.
여자는 천도에 따라 순응해서 여자로서 가야 할 길을 가야 합니다. 남편이 "같이 죽자"고 하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죽더라도 저나라에 가서 같이 살면 됩니다. 남편의 명령을 절대시하고 남편의 명령에 순종한 뒤에는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제는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요? 영계가 있는지 알아요, 몰라요? 영계가 있다는 것만은 알지요? 세상의 인류가 다 모르더라도 영계는 틀림없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그것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영계에 가는 길은 반드시 이 길을 통해야 합니다. 이 길에는 하나님께서 같이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026-266 제비는 음력 9월 9일이 되면 강남으로 갔다가 음력 3월 3일이 되면 돌아온다고 합니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 참 용합니다. 어떻게 자기의 살길을 찾아 강남으로 갔다가 다시 살길을 찾아 돌아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제 집을 찾아오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생각해 보아요. 봄이 되면 제비들이 몰려와서 지지배배 울며 집집마다 처마끝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고 야단입니다. 그렇게 살다가도 가을만 되면 여기서는 살기 어렵다고 전부 다 강남으로 갑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갑니다. 참 신기한 일이에요.
*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겨울이 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피부로 느끼는 것입니다.
* 선생님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모릅니까? 알면서도 안 한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몰라서 못 했다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지만 알면서 안 했다면 그의 가는 길은 지옥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원망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만을 믿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사람들은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릅니다. 밤인지 낮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심치 않고 하나님을 믿고 간다면 통일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망하는 길을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지도 않고 의심한다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험한 길이기는 하지만 끝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끝을 보는 날에는 세계는 나와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의 끝은 언제 올 것이냐? 그 끝이 오는 날이 끝날입니다.
여기에는 세계가 동원되어야 하고 온 인류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이 험한 길이 막혀 있기에 뚫고 가기 위해서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절반 이상이 동원되었다는 기준을 넘어서야 정상 코-스로 가는 것입니다.
026-269 우리가 가야 할 험한 길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험한 길과 내용이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험한 길을 가라면 전부 다 울고불고 야단합니다. "아이고 힘들어서 못 가겠다. 이 길은 비참한 길이야. 생각도 하기 싫고 보기도 싫다. 끔찍끔찍한 길이야."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그 끔찍끔찍한 길도 울고불고하며 가는 길도 소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아무리 가까운 이를 보내야 하는 아픔이 있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가정이 희생되는 것은 분하고 원통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가정이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찾아야 할 국가의 운명이 섭리 앞에 다가오는 것을 볼 때 자기의 가정의 희생된 것을 보고 눈물 흘려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아무리 슬프더라도 국가가 해방이 되었거든 쌍수를 들어 만세를 불러야 합니다.
국가가 해방이 되었거든 어머니의 시체를 옆에 놓고도 만세를 부르는 것이 나라의 충신이라는 것입니다 처자의 시체를 옆에 놓고도 아픈 가슴을 억누르며 수천 년 역사 속에서 민족이 바라 나온 그 소원이 이루어진 해방의 날을 맞아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사람, 아픈 가슴이지만 오히려 기쁨으로 나라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야 애국자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통일 용사들은 못 갈 데가 없어야 합니다. 38선도 넘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반드시 여기를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데는 죽는 자도 있을 것이고 자기가 살기 위해 도망가는 자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민족 통일의 해원이 자기의 죽음 앞에 가까운 것을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이것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그 죽음길에서 찬양해야 합니다. 민족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는 해방의 역군들이 필요합니다.
* 때가 오게 되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들이치더라도 선생님은 걸리지 않습니다. 탕감법에 의해서 선생님은 여러분을 7배까지 칠 수 있습니다. 7배가 아니라 70배를 치더라도 선생님은 천법에 걸리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생명을 건 자리에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쉽다고 할 정도로 기절하여 쓰러지는 일을 수십 번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최고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좋은 재로를 갖추게 하는 것이 시련의 길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260-271 하늘을 앞세우고 시련과 환난을 당하는 험한 길은 망하는 길이 아니고 흥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알겠지요? 험한 길을 가는 것은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시련과 환난을 당하는 험한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은 놀부사상입니다. 반면에 시련과 환난을 당하는 험한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은 흥부 사상입니다. 놀부가 잘했어요, 흥부가 잘했어요? 흥부가 잘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좋았어요? 처음에는 놀부가 좋았고 나중에는 흥부가 좋았습니다.
* 산한 사람은 그 시대에서 볼 때는 배반자요 그 시대로부터 버림 받은 자 같이 보이지만 역사는 그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통일교인이 가는 길을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내용이 다라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선생님이 가자고 하여 엄청난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여러분은 앞으로 복 받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 것 이상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통일교회 들어와서 "전도하지 말라"는 것 이상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는 험한 길이라는 것은 희망에 벅찬 길이지 절망과 관계 맺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밥을 얻어먹는 처지에 있더라도 주먹밥을 쥐고 먹는 순간에도 희망에 넘쳐야 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이것이 변하여 훗날 죄악 세계의 옥상에 차려 놓은 진수성찬을 때려 부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고 이 손가락이 수많은 금수저를 때려 부술 날이 올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은 거적때기 같은 것을 입고 있지만 왕실의 보좌를 때려 부술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은 손을 대지 않고도, 싸우지 않고도 때려 부술 수 있게 됩니다. 멋진 방어 진지, 멋진 성을 쌓는 일에는 시련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026-273 여러분은 뜻을 중심 삼고 나오던 과거지사를 절대 후회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기뻐서 자신이 책임지고 한 행동이라 생각하고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가라 했지만 여러분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갔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능동적으로 했고 또한 자기 자신이 한 일이니 스스로 책임을 진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죽을 고비에서도 불평하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죽을 길에서 원수까지 동정해 주었습니다. 죽을 자리에 내몰리더라도 동정을 해 주는 입장에 서야 원수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원수가 원수를 낳게 되어 또 다른 원수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026-274 안중근이 대학교 교수를 했습니까? 유관순이 대통령 부인이었습니까? 뭐 결혼이나 해 보았어요? 이들이 한 행동이 얼마나 미욱해 보였겠어요?
일본 관원들이 총칼을 겨누고 있는데 감히 어쩌자는 것입니까? 만세를 부르고 이등박문을 죽이고 그랬겠습니까? 누구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그것은 전부 다 나라를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존속하는 한 靑史에 그 이름이 빛날 것이고 그 이름이 부활할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죽으면 세계가 사는 날에는 부활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님이 세계를 위해서 싸우다 죽어 한 줌의 흙밖에 남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계가 있고 하나님이 계시는 한 반드시 승리하여 부활의 한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영광의 꽃을 가지고 장식하여 꽂고 승리의 권한을 갖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시련과 고통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이제는 시련과 고통이 좋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았을 것입니다.
* 선생님이 가기 힘든 험한 길로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 누구에게도 명령하지 못한 명령을 받을 만큼 하늘에 가까운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생명을 걸고 그런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용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통일의 용사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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