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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자의 자세 ▣ 1971.4.25(일) 전본부교회.

▣ 1971.4.25(일) 전본부교회. 신앙자의 자세.

 

▶ 하나님의 수고의 대가.

 

043-101 내 功勞가 아니라 하나님의 功勞입니다. 여러분이 십 년 동안 뜻길을 그렇게 갔다 할 때에 그것은 자기의 공로로 말미암아 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수고의 실적을 통해서 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까지 뜻 앞에 남아졌고 오늘도 뜻 앞에 있어서 내일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에 "역사 과정에서 내가 하나님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웠고 너무나 많은 빚을 졌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 오늘의 나는 과거를 돌아볼 때에 타락의 후예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현재를 볼 때에 자신이 선한 자리에 섰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과거의 선조의 공적은 물론이요, 하나님이 현재 내 생명의 터전을 남기기 위해 무수한 수난의 피의 대가를 치른 결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살고 있다고 합시다. 밥을 먹고 산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산다는 이 사실에 대해서 여러분은 아무러한 관계나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산다는 이 사실만을 압니다.

 

* 그러나 살고 있다는 이 사실 배후에는 사망이냐 생명이냐 하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 여러분이 일상을 습관적으로 살고 있지만 자기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터전 그 밑바닥에서 치열한 생사의 투쟁을 하며 사망을 완전히 제압한 자리에 서 가지고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시 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 세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길을 존속해 가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밑바닥에서 선을 중심 삼아 가지고 무한한 힘을 소모하는 수고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보상 밑에서 오늘날 여러분이 기쁨을 차지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혹은 선 앞에 섰다는 자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보답이 없고 그런 대가의 치름이 없이는 자기 자신이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오늘날 타락권내에 처해 있는 자신의 뿌리가 그렇게 되어 있으면 뿌리 이상의 자리에서 혹은 종교가 그렇다면 종교 이상의 자리에 나 자신이 서야 변화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043-103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악으로부터 출발한 인간은 악에서 결실돼야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나 자신이 선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모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바쳐 드리고 하나님의 것으로서 원활히 주고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 생명을 걸고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야 점진적인 결과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의 자리는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먼저 기뻐하신 후에 내가 기뻐해야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렇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신앙자의 입장입니다.

 

▶ 삼각지대.

 

* 그러므로 언제나 생각하여야 할 것은 우리는 삼각지대에 서 있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삼각지대입니다. 내 개인을 중심 삼고 볼 때도 마음과 몸에서는 하나님과 사탄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보태 주면 나는 하나님 편으로 가는 것이요 반대되게 될 때에는 사탄 편으로 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 계신다는 자각된 마음.

 

*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 계신다는 자각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어떤 외로움이 있고 어떠한 어려운 수난 길에 부딪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기쁨을 맞으려면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고 겨울이 되면 모든 진액을 뿌리에 저장시킵니다. 그러한 나무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봄이 되면 그 뿌리로 인해 새로운 새 생명의 싹을 피어나게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 길을 가는 데도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내적인 중심에 하나의 생명의 동기를 집약시켜야 됩니다.

 

*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싸워 나가야 됩니다. 10년 신앙생활을 했으면 그 10년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되기 위해 싸운 것이어야 됩니다.

 

* 어려운 환경을 통하여 우리는 자료를 수집해야 합니다. 악이 얼마나 악한가와 그 악의 흉계를 알고 악이 그 범위를 얼마나 크게 하고 있느냐, 범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것을 측정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악이 선을 대하여 공격하던 그 이상의 힘을 모으고 그 이상의 공격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 태어나기를 악에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악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화합하고 있다.

 

* 또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를 악에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악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화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주의하지 않고 언제나 분별하지 않고 언제나 선 앞에 기준을 맞추지 않고 가다 보면 악으로 돌아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습관적인 행로는 그 기원에서 이탈할 수 없기 때문에 악의 기원을 가진 우리의 습관적인 행로의 결과는 반드시 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신앙자의 생활은 스스로가 맹세하면서 가는 것과 반대의 행로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빚진 자의 자세.

 

043-108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태도는 언제나 빚진 자의 자세여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돼요.

신앙자로서 제일 중요한 자세는 무엇이냐? 빚진 자의 자세입니다.

 

여러분, 빚져 봤어요? 빚진 것이 없으면 빚을 좀 져 가지고 단련해 보라구. "빚진 자의 수고가 어떻구나." 하는 것을 알아보십시오. 빚을 갚지 못하는 자리에 서 보라는 것입니다. 정말 비참합니다. 한 푼이라도 빚을 지면 그 조건으로 멱살을 잡힐 수 있고 근본적으로 인격을 부정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거기에는 인격이 없습니다.

 

빚이라는 것을 반드시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빚진 자가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는 것을 채권자가 보게 될 때에는 동정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빚을 갚을 것은 꿈도 안 꾸고 돈 있으면 좋은 것을 사고 먹을 것 다 사 먹으면서 자기만 잘살려고 하는 날에는 禍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빚진 자는 언제나 빚을 갚겠다고 하는 태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빚을 갚고야 말겠다고 하는 태도가 빚보다 크게 될 때에는 채권자는 그 사람을 참소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를 동정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렇지요?

 

신앙자의 태도도 이와 같은 빚진 자의 자세라야 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기쁜 것이나 이익이 찾아오면 그것을 누구한테 돌려야 되느냐? 그럴 때에는 빚을 갚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신에게 어떤 기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 삼아 가지고 빚을 갚아 주어야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을 내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빚진 사람이 채권자의 재촉을 받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불응하면 그는 완전히 부정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로 말미암아 기쁨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신앙 길이라는 것은 영원한 목적을 표준해 가기 때문에 그 목적을 찾을 때까지 묵묵히 가야 하는 겁니다. 침묵이 선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복귀 섭리를 누구한테 선포하시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무도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모르고 있는 가운데 역사는 그 한계점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빚진 자의 자세를 망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돈이 없거든 "나는 이렇게 이렇게 빚진 자다." 하는 가슴에 사무친 격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붙들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여러분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올바른 신앙자의 자세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복귀의 행각 노정에 있어서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중대한 문제를 맞게 될 때에는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초조함 속에서 복귀의 어려움을 알고 또 이것을 해결 짓기 위해서 밤을 새워 가며 몸부림쳐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 고비 한 고비 밟고 가는 길이 복귀의 길이 아니겠느냐.  공적인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러한 입장에서 몸부림치며 뒤넘이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 사람들은 그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종족을 망하게 하고 자기 선조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자세는 빚진 자의 자세여야 됩니다. 한마디의 말, 한 가지의 행동을 잘못하면 자기 혼자만 걸려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땅이 걸려들어갑니다. 지금까지 잘 쌓아 놓은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043-113 신앙 길에 있어서 한번 잘못하는 날에는 그것을 바로잡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렇지요?

 

신앙자로서 생각할 수 없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 죄를 지었으면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시랑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나는 그런 기도 못 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으면 기도가 안 돼요. "아버지"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나 부끄러워요.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여러분 그런 것을 알아요? 그저 철부지 같이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사랑하는 아버지···" 하는 것은 떠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해야 됩니다.  

 

자기의 동지를 만나도 예절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이 앞서야 돼요. 하나님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 아버지 앞에 서기에 부끄럽다고 자기의 자세를 갖추고 또 갖추는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자식이라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사정을 생각하고 세상이 악하니만큼 이런 나를 필요로 하시는 아버지의 사연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동정의 마음을 유발시켜 가지고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버지라는 말만 하게 되어도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회개를 해도 그 회개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회개가 되는 겁니다. 인간은 죄짓는 것이 당연하고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닙니다.  

 

*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앙 길에 있어서 빚진 자와 같이 처신해야 됩니다.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자의 참다운 친구가 되어 주고 부끄러워하는 자를 감싸줄 수 있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런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 보아야 예수님의 고마움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이 고마운 분이란 것도 알고,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沈默이 흐르는 것입니다. 언제나 침묵이 흐르는 거예요. 내가 공석에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이 4월 달에는 젊은 식구들을 대해 가지고 말했는데 내가 더 힘들었습니다. 말할 때까지는 오랜 침묵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 침묵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말하기 전에 침묵의 기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무아의 수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열 번 이상을 생각합니다. 그런 자리로 자기를 몰아넣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들은 아주 잘해요. 말은 남의 말을 하고 행동은 남의 행동을 하면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나는 대 됐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신앙자의 자세는 빚진 자의 자세라는 것을. 자기의 신앙생활에 동정을 남기고 가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거예요. 지금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043-115 여러분은 公判場에 선 罪囚와 마찬가지입니다.

 

* 우리 앞에 누가 있느냐? 사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말 한마디하게 될 때에도 반드시 그 말을 걸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서 "넌 내 것이다." 하고 거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내 일생에 몇 번씩 공판정에 설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이것으로 큰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악한 것을 중심 삼아 가지고 조건을 걸려고 하는 檢事의 마음, 악한 사람이 아닌데 악하다고 조건을 걸고 들어서는 것을 느껴 봐야 합니다. 선생님에게 그것을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또 변호사가 변론하는 데 있어서 자신은 자신의 죗값이 사형임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는데 변호사가 그 생명을 구해 주기 위해 변증할 때에 느껴지는 죄스런 마음도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섰을 때에, 여러분을 놓고 예수님과 사탄이 일생 동안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통일교회 선생님과 사탄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043-103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三角地帶입니다. 내 개인을 중심 삼고 볼 때도 마음과 몸에서는 하나님과 사탄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보태 주면 나는 하나님 편으로 가는 것이요, 반대되게 될 때에는 사탄 편으로 가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 계신다"는 自覺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어떤 외로움이 있고 어떠한 수난길에 부딪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기쁨을 맞으려면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됩니다.

 

* 다시 말하면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고 겨울이 되면 모든 진액을 뿌리에 저장시킵니다. 그러한 나무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봄이 되면 그 뿌리로 인해 새로운 새 생명의 싹을 피어나게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도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내적인 중심에 하나의 生命의 動機를 集約시켜야 됩니다.

 

*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싸워 나가야 됩니다. 10년 신앙생활을 했으면 그 10년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心情과 하나되기 위해 싸운 것이어야 됩니다.

 

* 여러분이 어려운 환경에 에워싸인 그런 입장에 서거든 "봄이 오면 내가 이것을 다시 한번 발휘하여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간다, 어느 한때 두고 봐라, 그때가 오거든 나는 이렇게 간다"라고 할 수 있는 信念을 가져야 됩니다.

 

어려운 환경을 통하여 우리는 자료를 수집해야 합니다. 악이 얼마나 악한가와 그 악의 흉계를 알고 악이 그 범위를 얼마나 크게 하고 있느냐, 범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것을 측정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악이 선을 대하여 공격하던 그 이상의 힘을 모으고 그 이상의 공격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신앙길에 있어서 슬픔에 사로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마음이 어느 한때에 풀어질 것이다" 하는 信念을 갖지 못한다면 신앙길를 갈 수 없습니다.

 

또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를 악에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악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화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注意하지 않고, 언제나 分別하지 않고, 언제나 선 앞에 基準을 맞추지 않고 가다 보면 악으로 돌아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악의 기원을 가진 우리의 습관적인 행로의 결과는 반드시 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43-108 신앙자로서 제일 중요한 자세는 무엇이냐? 빚진 자의 姿勢입니다. 여러분, 빚져 봤어요? 빚진 것이 없으면 빚을 좀 져 가지고 단련해 보라구. 빚진 자의 수고가 어떻구나 하는 것을 알아보십시오. 빚을 갚지 못하는 자리에 서 보라는 것입니다. 정말 비참합니다. 한푼이라도 빚을 지면 그 조건으로 멱살을 잡힐 수 있고 근본적으로 인격을 부정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거기에는 인격이 없습니다. 빚이라는 것은 반드시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빚진 자가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는 것을 채권자가 보게 될 때에는 동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신앙자의 태도도 이와 같은 빚진 자의 자세라야 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기쁜 것이나, 이익이 찾아오면 그것을 누구한테 돌려야 되느냐? 그럴 대에는 빚을 갚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신에게 어떤 기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 삼아 가지고 빚을 갚아 주어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을 내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길이라는 것은 永遠한 目的을 標準해 가기 때문에 그 목적을 찾을 때까지 묵묵히 가야 하는 겁니다. 沈默이 先行하는 것입니다.

 

43-111 신앙길에 있어서 악한 것은 자꾸 긁어내야 됩니다. 긁어내야 그것이 떨어져 나가잖아요? 그러나 선한 것을 긁어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요? 선한 것을 통해서 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악은 선편에서 싹 쓸어내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악을 빨리 제거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43-113 신앙길에 있어서 한번 잘못하는 날에는 그것을 바로잡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신앙자로서 생각할 수 없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 죄를 지었으면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나는 그런 기도 못 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으면 기도가 안 돼요. "아버지!"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나 부끄러워요.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 하나님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 아버지 앞에 서기에 부끄럽다고, 자기 자세를 갖추고 또 갖추는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자식이라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사정을 생각하고 세상이 악하니만큼 이런 나를 필요로 하시는 아버지의 사연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동정의 마음을 유발시켜 가지고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버지!"라는 말만 하게 되어도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회개를 해도 그 회개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회개가 되는 겁니다. 인간은 죄짓는 것이 당연하고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닙니다.

 

*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좋은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단장하여 어엿한 신부 차림으로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옷을 빌려 입거나 혹은 꿰맨 옷을 입고 갔다고 해 보세요. 옷을 장만하지 못하고 그렇게 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여러분은 그와 같이 얼굴을 들 수 없는 한때를 당해 봐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느껴 봤어요?

 

*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운 자의 참다운 친구가 되어 주고 부끄러워하는 자를 감싸줄 수 있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런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 보아야 예수님의 고마움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이 고마운 분이란 것도 알고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아의 수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열 번 이상을 생각합니다. 그런 자리로 자기를 몰아넣습니다.

 

자기의 신앙생활에 동정을 남기고 가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거예요. 지금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43-119 여러분은 公判廷에 선 죄수와 마찬가지입니다.

 

* 우리 앞에 누가 있느냐? 사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말 한마디하게 될 때에도 반드시 그 말을 걸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서 "넌, 내 것이다" 하고 거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내 일생에 몇 번씩 公判廷에 설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이것으로 큰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악한 것을 중심 삼아 가지고 조건을 걸려고 하는 검사의 마음, 악한 사람이 아닌데 악하다고 조건을 걸고 들어서는 것을 느껴 봐야 합니다.

 

선생님에게 그것은 좋은 追憶이었습니다. 또 변호사가 변론하는 데 있어서, 자신은 자신의 죗값이 사형임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는데, 변호사가 그 생명을 구해주기 위해 변증할 때에 느껴지는 죄스런 마음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섰을 때에 여러분을 놓고 예수님과 사탄이 일생 동안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과 사탄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각에 처한 운명의 판가름 도상에 있어서 자기의 생명 되시는 분, 생명의 발판이 되시는 분이 계시니, 여러분 앞에 천 번 만 번 폭풍이 불어 치더라도 그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보답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43-125 사탄은 뭐냐? 악이라는 것은 자꾸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 대신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악입니다. 자꾸만 높아지려는 것이 사탄의 본질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 그러니 높여 주라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높여 주느냐? 하나님 이상 높여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을 하나님 이상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 그러면 가인을 하나님 이상 높여 주었다면 가인이 그 이상 올라갈 수 있어요? 올라갈 데가 있어요, 없어요? 없으니까 내려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