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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마태복음 16 (막 8:31-9:1; 눅 9:22-27)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

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7)*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헬, 당신께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 1971.8.13(금) 청평수련소. 우리의 사명과 책임.

- 제1차 교회장 수련.


046-164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 하는 것이 우리의 가르침이 아닙니까? 전부 다 반대입니다. 역설적인 방법이 곧 복귀 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좋다는 것은 절대 안 합니다.

 

▣ 1971.11.4(목) 전본부교회. 하늘이 가는 길.

051-025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그 무엇을 그리는 자리에서 산다는 것이 아니라구요. 죽고자 하는 자가 사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만이 산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승리의 자리에서 개인의 끝을 결할 수 있는 사람도 죽고자 하는 각오를 하지 않고는 개인으로서 승리를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과 더불어 죽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가정으로서 가야 할 끝을 하나님과 더불어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두말할 것 없습니다. 또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와 더불어 죽고자 하는 이런 일체가 통일된 자리에서 그런 것을 결하지 못하게 되면 그 국가의 뜻을 중심 삼아 가지고 끝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결론을 두고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언제 그 끝된 자리에 서 봤느냐?

 

* 하나님은 그 끝이 오기를 얼마나 바랄 것이냐? 내 개인의 끝이 이 순간에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 죽고자 하는 사는 산다는 말은 하늘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활의 내막을 선포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죽음을 각오한 투쟁의 노정을 엮어 가고 있다는 배후의 사실을 우리는 새삼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죽기를 원하면 될 리 없는 것입니다. 이 말 자체가 모순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세계는 엇갈린 세계, 반대의 세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 완전부정할 수 있는 최후의 극점이라는 것은 죽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죽는 그 자리에서부터 세상의 인연이 끊어지고 하나님과 새로운 인연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는 이별하게 되고 하나는 상봉하게 되기 때문에 하늘이 바라는 제1보의 기준이 그 자리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단연코 그런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 1982.10.31(일) 어제와 오늘. 본부교회. 

122-020 죽겠다고 하는 사람이라야 그다음에 사탄이 떠나는 거예요. 사탄이 떠나야 내 것이 되는 거예요. 그래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이 그거라구요. 나를 완전히 없애 버리고 하나님을 절대 시인하는 자리에 있어야 사탄이 떠남으로 말미암아 해방권이 되어 가지고 내가 살 수 있지 그 해방권을 갖추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 이거예요. 

 

▣ 1985.4.7(일) 벨베디아. 

- 4월 20일이 참부모의 날이지만 부활절 휴가차 나오셔서 앞당겨 행사 거행.

 

134-188 죽어야 산다, 죽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 1992.12.27(일) 새 나라 통일과 우리의 반성. 본부교회. 

242-064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그래, 선생님이 참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살고자 해야 되겠어요, 죽고자 해야 되겠어요? 죽고자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엇을 중심 삼고 죽느냐 하는 게 문제라구요. 나를 중심 삼고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 삼아 가지고 타락했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 복귀하려면 반대로 하나님을 중심 삼고 죽으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 삼고 죽고 사는 문제가 갈라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 삼고 죽겠다고 하고 살겠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시인하지 않는 한 하늘에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선생님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어요, 안 믿어요?   

 

▣ 1998.11.18(수) 복귀 완료. 브라질 자르딘 세계평화이상가정교육본부. 

- 남미 40일 수련. 

 

296-329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나의 일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1) 사탄 세계의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죽이라,

 

▣ 1998.12.19(토) 생사에 대한 이해. 워싱턴 타임스사.

- 1991년 창설한 세계평화종교연합 대회 기조문.

 

297-265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한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하고 참된 생명을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 세계의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은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역설 같지만 타락과 복귀의 태용을 중심 삼고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귀의 정상적인 논법입니다. 

 

2) 죽고자 하는 사는 산다는 말은 하늘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증거한 것입니다. 

 

▣ 1971.11.4(목) 전본부교회. 하늘이 가는 길.

051-025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그 무엇을 그리는 자리에서 산다는 것이 아니라구요. 죽고자 하는 자가 사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만이 산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승리의 자리에서 개인의 끝을 결할 수 있는 사람도 죽고자 하는 각오를 하지 않고는 개인으로서 승리를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과 더불어 죽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가정으로서 가야 할 끝을 하나님과 더불어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두말할 것 없습니다. 또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와 더불어 죽고자 하는 이런 일체가 통일된 자리에서 그런 것을 결하지 못하게 되면 그 국가의 뜻을 중심 삼아 가지고 끝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결론을 두고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언제 그 끝 된 자리에 서 봤느냐?

 

* 하나님은 그 끝이 오기를 얼마나 바랄 것이냐? 내 개인의 끝이 이 순간에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사는 산다는 말은 하늘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활의 내막을 선포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죽음을 각오한 투쟁의 노정을 엮어 가고 있다는 배후의 사실을 우리는 새삼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죽기를 원하면 될 리 없는 것입니다. 이 말 자체가 모순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세계는 엇갈린 세계, 반대의 세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 완전부정할 수 있는 최후의 극점이라는 것은 죽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죽는 그 자리에서부터 세상의 인연이 끊어지고 하나님과 새로운 인연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는 이별하게 되고 하나는 상봉하게 되기 때문에 하늘이 바라는 제1보의 기준이 그 자리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단연코 그런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3) 위해서 살라는 것이다. 

 

▣ 1998.8.16(일) 참부모와 참된 성. 코디악. 

- 주일 경배식 후 말씀. 

 

295-032 자기를 위해서 살면 망하는 거예요.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자신도 혼자는 못 느끼니까 위해서 창조한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간단한 것 같지만 우주의 근본 이치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육의 생각을 죽이라. 

- 양심. 

 

▣ 1995.10.31(화) 참된 가정과 나. 올림픽 펜싱 경기장. 

- 10월 6일 부산 외국어대학~ 참부모님 전국 순회강연.

 

275-048 그래서 성경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역설적인 논리를 가르쳐 준 것도 육신이 사는 그대로 가면 지옥에 가는 것이요, 육신을 죽여 가지고 양심의 해방권을 가지면 천국을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을 완전히 굴복시켜서 양심이 절대적인 주체의 자리에 서게 되면 우리 양심은 무한한 욕망과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 자기를 무시하라.

 

▣ 1972.8.28(월) 신앙생활. 제1차 경기도 기동대 수련회. 청평.  

061-171 그러기에 대상적인 위치는 뭣이냐?  타락성을 완전히 해탈해야 됩니다. 타락성을 완전히 해탈하기 위해서는 자기 개인에서부터 해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에서 승리해야 되고 가정에서 승리해야 되고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승리해야 된다구요. 이것이 타락성 해탈권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無視하라는 것입니다. 自己를 無視해 가지고 하나님의 對象이 되라는 것입니다. 대상이 되라는 것은 뭐냐? 뜻을 중심 삼고 하나님의 목적관을 중심 삼고 거기에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상적 가치를 세우게끔 몰아내라는 거예요.

 

◑ 원리강론 서론

1. 탕감복귀원리

 

1) 탕감복귀

246 탕감조건을 어떠한 방법으로 세우느냐 하는 문제다. 무엇이든지 본래의 위치와 상태로부터 떠난 입장에서 원상으로 복귀하려면 그것들로부터 떠나게 된 경로와 반대의 경로를 취하는 탕감 조건을 세워야만 한다. 

 

 

▶ 하나님은 인간세상에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 앞에 모순된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 1971.10.17(일) 본을 세우야 할 지상시대. 전본부교회.

049-278 하나님은 인간세상에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 앞에 모순된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제시 조건을 갖고 나오지 않고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인연을 맺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하나님의 경고 "세상을 박차고 나서라"

 

▣ 1960.6.26(일) 전본부교회. 길을 잃은 양과 아버지.

010-020 이 땅은 원수의 땅입니다. 주인이 달라요. 나를 낳아 주고 길러 주던 본래의 주인은 내가 먹고 입고 자는 생명적인 모든 요소에 값을 칠 줄 모릅니다. 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수는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에 값을 치고 나중에는 생명까지 보상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러한 인생이기에 하나님은 이제까지 인간을 대할 때 모순되게 또는 역설적으로, 억측적으로 대했고 그런 입장에서 역사를 지배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들을 조심해야 됩니다. 조심하는 동시에 원수들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원수가 오는 길도 알아야 되고 원수가 있는 곳도 알아야 됩니다. 비밀을 알면 피할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밀을 모르면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편안히 잠자고 제멋대로 살다가는 자기의 생명마저 빼앗기에 됩니다. 이것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잘났건 못났건 다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경고하셨어요. 세상을 붙들라고? 아닙니다. "세상을 박차고 나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야 참주인입니다. 본연의 주인을 잃어버린 인간을 보고 잘살라고만 한다면 그건 원수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도의 길은 박차고 나서야 하는 길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하나님은 주인을 잃어버린 인간, 주인의 인연을 모르는 인간이 박차고 나서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은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가긴 가야겠는데 가는 길을 알 수 없단 말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흘러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여러분은 구원받게 될 것이다. 

- 사탄세계는 죽음의 세계이다. 

 

▣ 1971.12.12(일) 로스엔젤스. 신앙생활에서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것들.

052-043 여러분이 세상과 더불어 가게 되면 죽음,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세상과 분립되고 타락한 인간들이 흘러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여러분은 구원받게 될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이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모순되는 말처럼 들리지만 진리인 것입니다. 사탄 세계는 죽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사탄 세계와 분립되어짐으로써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되고 그런 여러분을 통해서 인류가 구원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큰 것을 주려면 하늘은 먼저 큰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모순된 역사를 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 1957.10.6(일) 전본부교회. 우리는 영광의 새나라를 차지하자.

003-110 타락 인간에게는 투쟁의 역사가 없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과 예수님은 나에 대하여 사랑만을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이 어느 한 때 나에 대하여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 심판의 하나님, 심판의 예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여러분이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은 시련과 고통도 주시는 분임을 알고 모실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나에게로 돌아오고 이 땅 위의 모든 천륜과 인륜의 법도가 승리한 나를 중심 삼고 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하늘 앞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없을진대 나 한 자체가 천륜 앞에 세울 수 있는 조건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큰 것을 주려면 하늘은 먼저 큰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모순된 역사를 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신 앞에 닥치는 모든 시련을 보고 낙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늘의 안타까움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니 땅 위에서 슬픔이 사라지게 될 때 함께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