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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전통

한국의 성지 - 충의애관

◑ 충의애관 

주 소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3가 25-15번지 중구통일회관 5층

● 문 의 : 충의애관 02-2265-8882 | 이종선 관장 016-678-2078

● 개관시간 : 오전 10시~오후 5시(매주 일요일 휴관

*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에서 대한극장 쪽 출구로 나와 중구청 교차로에서 우회 전, 남산을 향해 100m 정도 가면 좌측에 있다

 

충모님 가정 추모 충의애관은 1994년 11월 7일 참부모님을 모신 가운데 ‘홍순애 대모님 기념관’으로 개관됐다.

 

1995년 8월 24일 한남국제연수원에서 김경계 충모님 가정, 문용수 대형님 가정, 홍순애 대모님 가정의 영인 축복식이 거행 됐다. 이 세 가정을 함께 모시게 되면서 참아버님께서는 "충의애관(忠義愛 館)"이라고 명명해 주셨다.

 

2009년 참부모님께서는 대모님 가정은 신문로 공관으로, 대형님 가정은 문씨 종친회로 옮겨 모시게 하셨다. 이후 충의애관은 충모님 가정만을 모시는 곳이 되었는데 2010년 중구통일회관의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면서 4층에서 5층으로 옮기게 됐다.

 

참부모님께서는 1991년 북한 방문 때 충모님의 존영을 모셔올 수 있었다. 아쉽게도 존영 이외 다른 유품들은 구할 수 없었다. 참아버님은 3대를 한 가정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참부모님께서 오래도록 사용하던 물건을 보면 충모님 가정이 어떤 가정인지 느끼고 교훈을 얻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참가정의 가치 있는 물품들을 전시하게 하셨다.

 

*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pp.117-118, 김영사)

흥남감옥에 있는 동안 몇 번이나 어머니가 찾아오셨습니다. 정주에서 곧바로 흥남으로 오는 차편이 없어 서울로 내려갔다가 다시 경원선을 타고 스무 시간 넘게 걸려 오시려니 그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한창나이에 옥살이하는 자식에게 먹이기 위해 사돈의 팔촌에게까지 쌀 한 줌씩을 얻어 미숫가루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면회소의 철창 밖으로 아들의 얼굴을 마주한 어머니는 눈물부터 흘리셨습니다. 그렇게도 강인하신 분이 감옥의 아들을 보시자마자 목이 메어 얼굴도 들지 못하시고 계속 우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결혼할 때 입었던 명주바지를 건네주셨습니다. 입고 있던 관복은 암모니아에 녹아 너덜너덜해져서 속살 이 내비쳤지만 어머니가 주신 명주바지를 입지 않고 다른 죄수에게 줘 버렸습니다. 빚을 내서 마련해 오신 미숫가루도 어머니가 보시는 눈앞에서 다른 이들 먹으라고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아들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정성을 다해 지어 오신 음식과 옷을 모두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몹시 슬퍼하셨습니다.

 

“어머니, 나는 문 아무개의 아들이 아닙니다. 문 아무개의 아들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아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아들이기 전에 세계의 아들이요, 하늘과 땅의 아들입니다. 그들을 먼저 사랑하고 나서 어머니의 말을 듣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도리임을 압니다. 나는 졸장부 아들이 아니니 그 아들의 어머니답게 행동해 주십시오.”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을 내뱉었지만 어머니의 눈물을 보는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자다가도 그리워 깨는 어머니이건만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사사로운 모자의 인연보다는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따뜻하게 입히고 더 배불리 먹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