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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노정

일본 유학 - 無門의 門 와세다 대학 부속 와세다 고등공학교

◑ 일본 유학

1934. 정주 사립 오산 보통학교 3학년 편입. 5학년으로 월반.

1935. 몰음마을 덕흥 장로교회 입교.

1935.4.~1938.3.25. 정주 공립 보통학교 4학년 진학.

1935,4,17. 소명

1938.4.~1941.3. 흑석동 중학시절 -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 수학

1941.3.31.14:10. 서울역 - 부산. 히까리 호.

1941.4.1. 02:40. 부산- 시모노세키. 쇼케이마루.

1941.4.14.~1943.9.30. - 와세다대학 부속 와세다 고등공학교 전기공학과(제25회) 2년 6개월.

- 애국

- 원리 규명

- 원수 사랑 실천

- 자아 주관 수행. 1일 2식. (1965.2.9. 일본어 宇宙主管願う前に我を主管せよ)  

 

1943.10.5. 01:15. 곤론마루 피격 사건.

1943.10. 중순 귀국.

1943.12. 맞선. 약혼.

1944.2. 만주전업 행 변경. 곽산 방문.

1944.3. 가시마구미 경성지점 전기부 취직.

1944.5.4. 최선길 씨와 성혼. 이호빈 목사 주례.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와세다 대학의 高田馬場의 길을 하루에 두 번씩 걸었다. 잘 걸었어요. 그것을 생각하니 "아, 가까운 곳에 왔으니까 옛날을 회상하여 "걸으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기도했던 그 기도의 정이 현재 일본의 일각에 성취된 감사의 기도를 하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면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으로써 와세다 대학의 戸塚町(토츠카초)를 다카다노바바로부터 걷기를 바란다. 거기에 있는 굽은 길, 거기에 있는 전신주 등 여러분들이 기억할 수 있는 곳에는 선생님의 눈물이 스며 있다고 생각해도 틀림없다.

 

▶ 早稲田大学 新宿区戸塚町一丁目104番地

 

▶ 大熊重信 おおくましげのぶ 

* 1838年3月11日~1922年1月10日4時38分(1月17日日比谷公園で「国民葬」が挙行された。100万人が沿道に並んだと報じている

* 肥前ひぜんの国、現 佐賀県 佐賀市 

* 1844년 弘道館(佐賀藩が設立した藩校)입학.

 

* 明治14年(1881年)10月の政変

この際に大隈を排除する理由としてあげられたのが、大隈が福沢・三菱・佐賀・土佐の民権派と組んで、払下げ事件等で反政府感情を煽り、政権奪取を企てているというものである。

実際に大隈・福沢・三菱はゆるい連携を持っていたが、共通の謀略をもっていたわけではなかった。

 

* 早稲田大学 1882年(메이지 15년) 8월 東京専門学校として設立。44歳.

- 제국대학 1886년 (메이지 19년. 內地 동경 교토 도호쿠 규슈 북해도 오사카 나고야. 외지 경성 타이호쿠) 설립.

- 1902년 9월 2일 전문학교에서 대학으로 승격. 지명을 따서 와세다 대학으로 개칭.

* 1913年 大正2年 創立30周年 早稲田大学の教旨

早稲田大学は学問の独立を全うし、学問の活用を効し、模範国民を造就するを以て建学の本旨と為す。

早稲田大学は学問の独立を本旨と為すを以て、之が自由討究を主とし、常に独創の研鑽に力め、以て世界の学問に裨補せん事を期す。

早稲田大学は学問の活用を本旨と為すを以て、学理を学理として研究すると共に、之を実際に応用するの道を講じ、以て時世の進運に資せん事を期す。

早稲田大学は模範国民の造就を本旨と為すを以て、立憲帝国の忠良なる臣民として個性を尊重し、身家を発達し、国家社会を利済し、併せて広く世界に活動す可き人格を養成せん事を期す。

 

* 総理大臣 第8代 1898年6月30日~1898年11月8日 第17代 1914年4月16日~1916年10月9日 

* 「無門の門」- 早稲田大学からは1935년(昭和10年)に門柱や門扉が撤去され「無門の門」となった。大学によれば学びたい人を拒まない、開かれた大学にするという建学の精神を象徴している。2015年には全面バリアフリー化された.

◑ 일본 유학의 4가지 목적.

1) 애국

2) 원리 규명과 사상 정립.

3) 원수 사랑 실천

4) 자아 주관 수행. 1일 2식. (1965.2.9. 일본어 宇宙主管願う前に我を主管せよ)  

5) 인간의 쓰레기와 같은 제일 밑에서부터 인간의 최고 영광의 입장까지 모두 연구

 

1. 애국

 

1) 서울에서 부산까지 8시간 기차 안에서 눈이, 코가, 입술이 붓도록 통곡했다.

- "불쌍한 이 민족을 누가 책임지겠는가

 

▣ 1987.5.1(금) 남북통일의 기수가 되자. 한남동. 한국 지도자.

163-299 내가 동경을 향해 떠날 때 서울역에서부터 부산역까지 달리는 그 기차 안에서 눈에 눈물이 어려 가지고 한강 철교를 지나면서 눈물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구요. "내가 실패의 사나이로 끝나지 않겠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민중의 새로운 정부를, 미래의 하나의 사랑의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했어요.

 

2) 1941년 4월 1일 새벽 두 시에 부산 부두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기도

- "내가 지금 비록 떠나지만 너를 더욱더 사랑하고 너를 위하여 더 많은 눈물을 흘려 주마"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 순회 노정 떠나시기 앞서 집회.

 

022-120 선생님이 1941년도에 일본에 유학을 가기 위해서 부산을 향해 서울역을 떠날 때 서울 장안을 바라보면서 불쌍한 이 민족을 누가 책임지겠는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022-122 일본에 갈 때는 보통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기차로 8시간 걸립니다. 나는 그때 기차를 타면서부터 오버를 뒤집어쓰고 통곡을 했습니다. 눈물이 끊이지 않아서 눈이 붓고 코와 입술이 붓도록 울었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 이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린 것으로 말한다면 선생님은 어느 애국자보다 더 많이 흘렸습니다. 선생님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던 1941년 4월 1일 새벽 두 시에 부산 부두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비록 떠나지만 너를 더욱더 사랑하고 너를 위하여 더 많은 눈물을 흘려 주마"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022-123 또한 선생님이 일본의 궁성을 지나게 될 때 나라를 잃어버리고 민족을 잃어버린 한을 품은 외로운 사나이로서 그 궁성을 응시하면서 "이제부터 20년 후에는 하늘이 한민족을 중심 삼고 승리의 깃발을 꽂으실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선생님은 이미 알고 하나님께 기도했었습니다.

 

"지금은 네가 우리 민족을 핍박하지만 앞으로는 반대로 내가 명령만 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너를 향하여 이 궁성을 향하여 화살을 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했던 것이 25년 만인 1965년도에 이루어졌습니다.

 

3) 일본 천황을 잡아치우는 운동을 했어요.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 1965.11.1(월) 소망의 조국의 슬픔. 광주교회.

- 제1차 세계 순회 마치고.

 

155-315 일본 가서도 선생님은 일본 천황을 잡아치우는 운동을 했어요.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南京과 다리를 놓아 가지고, 그런 얘기하면 참 여러분이···. 참 아슬아슬한 무엇이 많았습니다. 마, 그건 그만두자구요.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슨 뭐 하늘을 사랑한다구요? 내, 앞으로 이제 전부 다 한번 재심사를 하려고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하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4)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라 없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 1971.10.9(토) 중앙수련원. 국가와 우리의 사명.

- 전국 사업소장 수련회.

 

049-159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라 없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때 내가 원수의 나라 일본으로 떠나면서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눈물 흘리던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아요. 한강 다리를 지나면서 눈이 통통 붓고 코와 입술이 아프도록 울었어요.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도착한 날이 3월 21일이에요. 그때부터 나라를 중심 삼고 일본에 가 가지고 별의별 일을 다 했습니다.
나라 없으면 못 삽니다. 여러분, 나라가 있어요? 원수의 나라에서 아내를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했다가는 그 길을 망치는 것입니다.

 

5)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이 뭐냐?

6) 약소민족이 서러움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체험해야 되겠다

 

▣ 1990.2.17(토)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라. 국제연수원.

- 세계일보 과장 이상 간부.

 

199-213 내가 소년 시대 8살 10살 때부터 우리 집안에는···. 우리 증조부가 이승훈 씨, 최남선 씨 같은 3.1운동의 주역인 5인들과 친구입니다. 이 박사도 친구고 말이에요. 그분은 일제와 투쟁하다 감옥살이를 하고 그랬다구요. 그랬기 때문에 일경들이 우리 집을 언제나 주시했습니다.

 

그런 걸 보게 딜 때 "누가 우리 집을 이렇게 못살게 하고 이 나라를 이렇게 못살게 해? 우리 할아버지나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애국 동지들을 보면 누구보다도 나라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왜 나라를 갖고서 사람 행세를 못하고 밤에 몰려다니면서 쑥덕공론을 해야 돼?" 그런 것이 참 의문이었다구요.

 

"이 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이 뭐냐?" 하는 걸 그때부터 생각했어요. "이 나라가 일본보다도 센 나라였다면, 강한 나라였다면 이렇게 안 되었을 것이다" 하는 걸 알았지요. 문제는 그거예요. 약하기 때문에 약한 배경과 약한 기반에 서 있기 때문에 비참한 운명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그때 마음으로 생각한 것이 뭐냐? 세계 제일의 강국이 어느 나라냐? 그건 미국이다. 그때 벌써 미국이란 걸 알았어요. 그러면 미국이 일본보다 다 큰 나라인데 미국도 일본이 하는 놀음과 같이 자기 국권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약한 나라를 점령해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 마찬가지다. 한다!

 

그러면 정의의 국가, 이 세계를 대표해서 정의의 자리에 서서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보호하고 키워 줄 수 있는 그런 정의의 나라는 없느냐? 어릴 적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 할 때는···.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는 역자적으로 볼 때 그거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에 창조주가 있다면 창조주는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그럼 나라를 살리고 이런 압박받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창조주가 있다면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를 잡아서 이 일을 성사시키겠다 한 것입니다.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내가 기독교니 무슨 교니 종교를 통해 가지고 주 욱 탐사했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을 내가 한번 만나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러면서 10대를 지나고 20대를 향하면서 신앙적 노정에서 여러 가지 고민도 했어요. 그러면서 일본에 가 봐야 되겠다. 일본을 거쳐서 미국을 갔다 와야 되겠다. 현지에 가 가지고 약소민족이 서러움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체험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다면 내가 바라는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모험을 하는 대표자로 등장해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모험해야 돼요. 출세를 바라는 사람은 모험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7) 한 달에 한 번 경찰서에 불려 갔다.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한국이 일본 정권하에 있었을 때 선생님은 몇 번이나 유치장에 끌려 들어갔다. 이곳 東京에 있을 때에도 한 달에 한 번은 警察署에 불려 갔다. 그 警察署는 高田馬場 거리의 와세다 대학 쪽에서 오른편에 있다.

 

그때에도 선생님이 한국에 돌아가려고 하면 한국에 연락이 간다. "아무개가 한국에 돌아간다"라고. 학생이었지만 要注意 人物이었다. 그러나 보통사람은 선생님을 잘 모른다.

 

 

2. 원리 규명과 사상 정립.

 

1) 성서나 종교 서적 연구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그리고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친구들도 몰랐다. 선생님은 성서를 연구하기도 하고 종교 관계 서적이나 보통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철학서를 가지고 와서 읽었다.

 

2)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관계. - 박사 논문.

 

▣ 1990.11.28(수)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과 통일된 가족. 국제연수원.

- 남북총선대비 서울 동부 동 지도자 대회.

 

209-136 먹구름이 밀려와 가지고 소낙비가 내릴 때 "우르르 꽝꽝" 하고 번개가 치는 것은 수억 볼트의 음전기와 양전기가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수억 볼트의 플러스 마이너스 전기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거예요? 그거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

 

* 이것이 내가 박사 되기 위해 쓰려 했던 논문 내용입니다. 내가 전기학을 공부했어요.

 

* 자, 대답해 봐요. 수억 볼트의 플러스와 수억 볼트의 마이너스가 한꺼번에 나와 가지고 "꽝-" 하고 부딪힌 거예요? 플러스 플러스와 마이너스 마이너스가 합하지 않고 한꺼번에 나타난다는 그런 논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플러스 플러스 전기가 서로 합하고 마이너스 마이너스 전기가 서로 합해 가지고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를 세우지 않으면 해설법이 없는 것입니다.

 

* 이것이 우주의 존재성입니다. 상대가 결정된 다음에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또 하나의 같은 플러스나 마이너스를 반대하지만 상대를 결정하기 전에는 서로 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중에는 몇천 몇억 볼트의 플러스 전기가 진행되고 있다가 이들 중에 하나만 앞서더라도 상대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있지만 요것들이 딱 하나되면 "와르릉" 부딪치는 것입니다.

 

3. 사랑 실천

 

1) 휴일 가와사키 유산 탱크 청소

- 돈이 있으면 전부 친구에게 주었다.

- 누구보다도 일본을 사랑하자는 조건을 세우자.

2) 특별 고등형사 복수 계획

"불쌍한 것은 패한 일본이다. 이미 주권을 잃어버려 무릎을 꿇고 비는 사람을 때리는 자는 하나님이 벌한다"

3) 한국에서 쫓기고 있는 일본인을 조용히 불러 "고문당하기 전에 빨리 돌아가라"고 말하며 짐을 정리해 주기도 했다.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선생님은 일본에 와서 좋은 곳에 구경하러 다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후지산에도 가지 않았고 아타미 하꼬네 닛꼬에도 가지 않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땅에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고 나서 "저기는 좋은 곳이니 가 보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후에야 간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았다. 이것이 선생님의 주의이다.

 

休日 같은 때에는 가와사키에 있는 회사 등에 자주 갔어요. 거기에는 硫酸 탱크가 있는데 노동자가 그 유산 탱크 속에 들어가 정화하기 위해 원료를 쭉 내려보낸다. 그리하여 그 장치는 몇 년간 쓰게 되면 못 쓰게 되어 버린다. 硫酸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을 교환하기 위하여 그 탱크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 속에서는 15분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그런 곳에서 싸우면서 일했다.

 

돈이 없어서 그런 일을 했던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의 형님께 "전 재산을 팔아서 돈을 부치라"고 전보를 치면 형님은 세계 대표적인 가인이어서 곧 보내 주신다. 그런 사람은 좀처럼 없다.

 

선생님의 형님은 선생님이 어떤 남자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의 사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세계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고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남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열렬한 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여 전보를 치면 곧 보내 준다.

 

선생님은 돈이 있으면 전부 친구에게 주었다. 그래서 그런 곳을 돌아다녔다. 왜 그런 일을 했을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일본을 사랑하는 조건을 세우자, 그런 것을 생각했다.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커다란 삼목杉木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운 적도 있었다.

 

* 선생님은 일본인으로부터 많은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고문한 그 특별고등형사에게 복수를 계획하고 있는 친구들을 전부 모아 놓고 "불쌍한 것은 패한 일본이다. 이미 주권을 잃어버려 무릎을 꿇고 비는 사람을 때리는 자는 하나님이 벌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한국에서 쫓기고 있는 일본인을 조용히 불러 "고문당하기 전에 빨리 돌아가라"고 말하며 짐을 정리해 주기도 했다.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

 

* 심정의 세계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언어라고 하는 것은 경계가 되지 않는다. 선생님은 일본에 오면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하늘 사람이다. 그러니까 천국인이다.

 

4) 굶주린 친구를 위해

- 한 달 먹을 식권을 3일에 다 써 버렸다.

 

▣ 1965.11.1(월) 소망의 조국의 슬픔. 광주교회.

- 제1차 세계 순회 마치고.

 

155-315 여러분이 알다시피 왜정 때에는 식권이 있었습니다. 쌀이 참 귀했다구요. 그때 선생님은 동경에 있었습니다.

 

* 왜정 때에는 배가 고팠다구요. 그래서 苦學(학비를 스스로 벌어서 고생하며 배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너희들, 배고프지? 우리 집에 와라" 해 가지고 식권이 나오면 한 달 먹을 거 전부 다 모아 가지고 "먹어라, 먹어라, 마음껏 먹어라"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한 3일 되면 다 없어져 버립니다.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 순회 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23 일본에 가서도 굶주린 친구를 만나게 되면 선생님은 굶더라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굶주린 苦學生(학비를 스스로 벌어서 고생하며 공부하는 학생.)을 만나면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해 학생복을 벗어던지고 부두 노동을 했고 석탄 짐을 지고 운반을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젊은 동지들을 사랑하기 위해 싸워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나를 친한 친구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친구 중의 친구라면서 자기의 비밀을 자백하기도 했습니다.

 

▣ 1972.4.23(일) 메시아와 우리들. 동경교회.

055-081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망명자인 것이다. 하늘로부터 보내어진 스파이다. 간첩인 것이다. 밀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서 자유스러운 행동을 할 수 없다.

 

*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없다. 묵은 감정은 아무것도 없다. 사탄 세계의 감정을 남긴 곳은 사탄의 터전으로 돌아가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초민족적으로 하나의 이상 국가를 찾아오셨으므로 미국인도 영국인도 독일인도 과거에는 전부 서로 원수였지만 여기에 들어오면 하나의 형제자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죽더라도 서로를 위해야 한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055-097 사랑의 극치,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안겨서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식처럼 자기 형제처럼 생각하고 어린아이는 자기의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그러한 멋있는 남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 미국인들은 동양인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나는 미국에 가서 미국인들을 사랑했다.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은 지금부터 50년 전에는 모두 생명을 걸고 싸웠다. 선생님도 일본의 군인과 싸운 사람이다. 일본 관헌에게 고문도 당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다. 복수심을 가진 사나이다. 그들은 모두 원수인 것이다.

 

해방 직후에 그들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선생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때의 일은 그런 인연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던 것이고 당신들은 이제 때가 되었으므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면서 짐을 싸 가지고 돌아가게 해 준 사나이였다.

 

일본 국민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을 밀항선을 태워서 보냈는데 실패하고 돌아오면 되돌려 보내고 이렇게 두 번 세 번 되돌려 보내며 죽어도 돌아오지 말라고 명령한 사람이다. 그토록 일본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선생님은 일본의 누구보다도 일본인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일본의 장래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중국에 대해서도 장개석은 이렇게 될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 미국은 이렇게 되는데 하고 걱정하고 독일은 이렇게 되는데 하고 걱정해 왔다.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 태어났다고 해서 한국인만을 사랑하는 식의 남자는 아니다.

 

▣ 1989.7.9(일) 민족을 초월한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 본부교회.

- 6500가정 일본식구. 일본어.

 

192-279 일본 사람은 사실 선생님의 원수예요. 학생 시절에도 항상 뒤를 尾行해서 따라다녔어요. 일본의 그거 뭐예요? 일본 형사, 헌병! 그들은 선생님을 때려죽이려고 하고 선생님은 그들을 사랑을 가지고 살려 주려고 했어요.

 

거기에는 천하가 따라와요. 그래서 요즘에 선생님이 실감하는 것은 말이에요, 그렇게 심은 것이 열매를 맺는다는 거예요. 因果法則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가 존속하는 법칙이에요.

 

* 패전 후에 패한 사람들을 전부 돌려보내 주었어요. 원수를 대해서 복수를 한 것이 아니에요. 원수를 사랑을 중심 삼고 품은 거예요. 일본 사람들이 그 빚을 갚고 있는 거예요. 역사에 진 빚을 갚아야 돼요.

 

 

▣ 일본 유학시절. 자서전

- 1941년 4월 1일 새벽 2시 부산항에서 관부연락선을 탔다.

- 와세다 대학 와세다 고등 공학교 전기공학과.

 

83 서울에서처럼 도쿄에서도 안 가 본 데 없이 구석구석 돌아다녔습니다. 친구들이 닛코와 같이 경치 좋은 곳을 구경 갈 때에도 홀로 남아 도쿄 시대 곳곳을 걸어 다녔습니다. 겉은 번드레했지만 도쿄 시내에도 가난한 사람들 천지였습니다. 나는 집에서 보내주는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그 시절은 모두들 배가 고팠습니다. 유학생들 중에도 苦學生(학비를 스스로 벌어서 고생하며 공부하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나는 한 달치 식권이 나오면 모두 들고나가 고학생들에게 주며 "먹어라, 마음껏 먹어라." 하며 다 써 버렸습니다.

 

나는 돈을 버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무 데라도 가서 노동을 하면 밥은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돈을 벌어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학비를 도와주는 것도 나의 낙이었습니다. 그렇게 남에게 도움을 주고 밥을 먹이면 온 몸에서 힘이 펄펄 났습니다.

 

내가 가진 돈을 모두 나눠준 다음에는 리어카로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도쿄 시내 27개 구역을 리어카로 누비고 다녔습니다. 불빛이 화려한 긴자 사거리에서 리어카에 전신주를 싣고 가다 뒤집혀 사람들이 혼비백산 달아난 적도 있습니다. 덕분이 지금도 도쿄 구석구석을 손바닥 들어다 보듯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나는 노동자 중의 노동자요 노동자들의 친구였습니다. 땀내와 지린내가 진동하는 그들처럼 나 또한 노동판에 나가 진땀을 흘리며 일했습니다. 그들은 나의 형제였고 그래서 지독한 냄새로 싫지 않았습니다. 새까만 이가 열을 지어 기어가는 더러운 담요도 그들과 함께 덮었습니다. 때가 켜켜이 낀 손도 주저 않고 마주 잡았습니다. 땟국물이 흐르는 그들의 땀 속에 끈끈한 정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정이 구수하니 좋았습니다.

 

나는 주로 가와사키 철공소와 조선소에서 막노동을 했습니다. 조선소에서 빠지라고 부르는 석탄을 실어 나르던 통통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 사람씩 조를 짜서 새벽 1시까지 석탄 120톤을 빠지에 싣는 일을 했습니다.

 

4. 자아 주관 수행.

 

1) 걸을 때도 45도 이상을 보지 않는다.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선생님은 보면 입은 옷은 헌 옷 가게에서 산 싼 것들이다. 그 옷을 보면 반들반들 윤이 난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는 기분을 내서 포마드라든가 무엇인가를 바른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다.

 

* 또 걸을 때에는 밑에서부터 45도 이상 위를 보지 않는다.

 

2) 이 길 출발할 때의 제일 목표. - 육심 주관.

 

▣ 1972.4.23(일) 메시아와 우리들. 동경교회.

055-026 선생님은 이 길을 출발할 때의 제일의 목표가 그것이었다. "천주 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 완성하라" 이것이 문제였다. 거기에서 첫째는 육심을 어떻게 주관할까 하는 것이다. 육심은 "먹고 싶다, 살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생활의 주된 욕망인 것이다.

 

3) 사탄들은 안다.

- 여자들의 유혹.

 

 1999.9.10(금) 삼십절 선포. 중앙수련원.

304-119 선생님은 이런 걸 가지고 간지럽혀도 간지럼 안 탑니다. 그렇게 훈련했어요. 여자의 유혹에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을 누가 간지럽혀도 간지럼을 안 탑니다. 그런 훈련이 되어 있어요.

 

* 자기의 몸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사탄의 誘惑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제일 사랑하던 아내와 헤어졌다가 10년 만에 만나서 자기의식을 넘어서 붙안고 사랑하고 키스하고 벗는 줄도 모르고 벗어서 클라이맥스가 될 수 있는 경지에 가서 딱 영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돼요. 최후의 시험이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편네 말고 최고의 미인 수천 명이 벌거벗고 있고 나도 벗고 있는데 뛰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다 보니 그 미인 중의 미인의 생식기하고 자기 생식기가 맞닿았을 때 "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를 알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딸들을 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갔을 때도 선생님을 유인하기 위해서 일본 여자들이 얼마나 야단을 했는지 몰라요. 사탄들이 알아요. 선생님이 자는 이불 안으로 벌거벗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죽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죽어도 할 수 없지요. 그걸 어떻게 수습해요?

 

그래, 자기 몸을 맡겨야 됩니다.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고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무리 해도 영점이라구요. 不具者라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그 여자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없어요.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아들이 될 수 없고 본연의 사랑의 자리를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걸 참는 것은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4) 전당포에 가서 그저 반질반질하게 때가 묻은 옷을 학생복을 사서 입었다.

 

 1992.12.27(일) 본부교회. 새 나라 통일과 우리의 반성.

242-068 그래, 미남자이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여자들이 따라붙는 것입니다. 여자처럼 무서운 怪物이 없습니다. 제일 무서운 게 여자라구요.

 

일본 여자들은 정조관념이 강하지 않아요. 이것은 어디에 가든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몸을 수습하지 못하면 얼마나 큰 혼란이 벌어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에서 여자들을 만나 가지고 내가 色魔라는 소문을 듣고 살았어요. 여자들을 유린하고, 뭐 어떻고 어떻고 했다고 말이에요. 반대로 여자들이 나를 유린하려고 했지, 내가 여자들을 유린한 게 있으면 말해 보라구요. 박정민! 자기가 죽겠다고 나를 따라다녔지, 내가 손끝이라도 까딱 해 봤어? (안 했습니다.)

 

* 일본에서 공부할 때는 전당포에 가서 그저 반질반질하게 때가 묻은 옷을 학생복을 사서 입었다구요. 세탁을 안 해 가지고 냄새가 물컥 나고 땀내가 나는 그런 옷을 입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왜냐? 그렇게 다니면 여자들은 옆에 왔다가도 도망가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 가더라도 성경을 환히 알면서도 구석에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앉아 가지고 천하를 측정하는 거예요.

 

* 또 학생 때 극장 같은 곳을 가게 되면 말이에요, 나는 그때 20대라구요. 그런데 30세 35세 된 아줌마들이 선생님 옆에 앉아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선생님의 손을 붙들어요. 이런 신기한 일들이 많다는 거예요. 벌써 몸뚱이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이러십니까?" 하면 "아이쿠, 나도 모르게···, 세상에 이럴 수 있나?" 이러는 거예요. 그런 체험이 많다구요. 그러니까 어디에 가든지 여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앞에 여자가 나타나 가지고 길을 가로막고 말이에요···. 그래서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도를 닦으려면 미인 100명이 발가벗고 있는 가운데 발가벗고 들어가더라도 거기에 몸이 동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미인들 100명 1000명이 와서 유혹하더라도 끄떡없습니다. 그런 훈련을 한 것입니다.

 

자기의 몸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 앞에 못 가는 거예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큰 뜻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5) 여자처럼 무서운 게 없습니다.

 

▣ 1992.2.16(일) 본부교회. 천주의 승리자가 되자.

227-380 사탄 세계에서 선생님을 유인하려고 얼마나 애쓴지 알아요? 일본 같은 데 가 있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여자들이 그거 참 신기할 정도라구요. 그런 역사가 참 많습니다. 벌써 하루 이틀만 만나 주면 자기도 모르게 나만 따라오는 것입니다.

 

여자처럼 무서운 게 없습니다. 남자가 방에서 혼자 자는데 발가벗고 들어와요. 남자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는 거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지만 그걸 전부 다 극복해야 돼요.

 

* 옷을 가려 입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게 해서 새로운 여자로 만들어서 돌려보내야 할 책임을 지고 일해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을 농락하려고 별의별 일들이 다 많았지요. 벌거벗은 미인들 100명 가운데 들어가도 사고가 없어야 됩니다.

 

▣ 1964.6.12(금) 대구교회. 정신력과 훈련.

- 흥남감옥에서 선생님을 모셨던 손영출 씨 간증 후 말씀.

 

154-165 내가 볼 때 여자처럼 무서운 것이 세상에 없다고 봐요. 에덴동산에서 타락할 수 있는 요소가 100% 있었다 이거예요. 내가 생각할 때 천사장이 껍죽거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천사장, 그 종 녀석한테 해와가 틀림없이 "아이고, 등을 굽혀라. 등을 꼬부려라" 하며 뒷발로 그저 올라가려고 이랬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소질이 많거든요. 별의별 유혹을 다 했을 거예요. 별의별 일이 다 있었을 거예요.

 

5. 인간의 쓰레기와 같은 제일 밑에서부터 인간의 최고 영광의 입장까지 모두 연구.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선생님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이 입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가 있을까, 먹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라고 熟考한 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훈련을 하였다. 그래서 서른 살까지는 배고프지 않을 때가 없었다. 언제든지 밥을 가져오면 사발로 서너 그릇을 단번에 먹어 버린다. 그 정도로 배고프지 않을 때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고 하게 되었다. 전쟁 시대인 그때에는 식권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식권이 있어서 "몇 그릇이나 먹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먹어 보자"고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젊은이들이 모이면 참 재미있어요. 모두들 "야, 10그릇은 문제없다." "오늘은 자네 생일이니까 마음껏 먹어라, 내가 한턱낼게"하며 큰소리를 친다. 다카다노바바를 죽 내려가면 절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식당이 쭉 늘어서 있어요.

 

거기에서 선생님은 닭고기 계란덮밥을 일곱 그릇이나 먹었다. 일곱 그릇 먹고 나서는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배가 고픈 것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런 일도 하곤 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항상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선생님은 항상 배가 고팠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을까? 결코 밥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배만을 채우고 있으면 자신으로부터 민족이 멀리 도망가 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자기에게서 멀리 달아나 버린다. 배가 고파서 먹고 싶지만 그 이상으로 민족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진리이며 선생님의 신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서른 살까지는 배가 고프지 않을 때가 없었던 것이다.

 

▣ 1972.4.23(일) 메시아와 우리들. 동경교회.

055-053 일본에 와서도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했다. 학생 시절 학생복을 노동복으로 갈아입고 하루 동안 전신주를 끌면서 銀座 거리를 지나던 그때의 일을 지금도 생각할 때가 있다. 주위에는 늠름한 사나이들과 날씬한 여자가 왕래하고, 향기를 풍기며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실로 한평생 잊지 못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땀을 흘리면서 십자로에 왔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스톱" 신호였다. 그것이 가장 원수였다. 그런 기분···. 십자로를 통과할 때까지는 절대로 청색 신호가 꺼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스톱" 신호가 떨어지면 큰일인 것이다. 그런 때는 신호대를 단번에 때려 부수고 싶은 생각이 든다.

 

* 그런 "스톱" 신호가 나면 선생님은 배를 내밀고 중앙에 왕래하는 사람들을 땀을 흘리면서 바라본다. 그러면 그들은 싫은 표정을 하고 지나간다. 그것은 재미있는 인간의 전람회인 것이다. 그것이 선생님에게 있어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해 보고 싶다. 선생님은 品川의 빈민가를 휩쓴 적이 있다.

 

* 그러한 일이 선생님에게는 비상한 가치관이 되어 왔다. 여러 가지 일을 해 보았다. 인간의 쓰레기와 같은 제일 밑에서부터 인간의 최고 영광의 입장까지 모두 연구해 보았다. 어디에 가도 친구가 생긴다.

 

선생님은 한 끼쯤 먹지 않아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생각도 되지 않는다. 그런 관념이 강하다. 그런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역시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환경에 부딪쳐 그것을 뚫고 나가 목적점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때는 노동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또는 어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며 부두에 나가서 무거운 물건을 메는 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레도 끌지 않으면 안 되며 리어카도 끌지 않으면 안 된다.

 

* 때로는 선생님은 이러한 일을 한다. 선생님이 다까다노바바에 있었다. 선생님은 시나가와에는 상당히 관계가 있으므로 자주 왕래했는데, 비가 내리는 날 같은 때에는···. 이건 뭐 아가씨들이 새침데기 해 가지고 쑥 빼고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옷이 젖었을 때에는 일부러 아가씨의 옆으로 간다.

 

기분 나쁜 눈짓을 한다. 그것은 나쁜 마음을 해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저 여자는 틀림없이 이렇게 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두 번째는 이렇게, 세 번째는 이렇게 몇 % 들어맞는지 테스트해 보는 것이다.

 

어떤 때는 발을···. 그러면 틀림없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얼굴 모습을 보고 저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 했는데. 틀림없이 그렇게 나왔을 때는 기분이 좋다. 그렇게 연구하는 것이다.

 

055-075 사탄도 선생님을 보고는 감탄하고 있다. 저 남자는 저런 쓰라린 길을 끌려다녀도 불평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남자라고 하는 것이다.

 

*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자기 혼자서는 되지 않는다, 선생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이 필요하다. 사탄을 굴복시킬 때까지 선생님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메시아가 필요한가? 완전 복귀될 때까지 필요하다